5개월 1일
‘육아를 하다 보면 방학은 커녕 휴가조차도 없었다.’ ……라고 얼마 전에 글을 쓰다가 멈칫했다. 이 문장, 정말 맞는 말인가? 친정 어머니든 남편에게든, 아기를 맡기고 하루 이틀 정도는 쉴 수 있지 않나?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고 나서 지금껏 주말을 제대로 계획한 적이 없었다. 계획해봤자 아무 것도 실행할 수 없는 처지라고 생각했다. 특히 처음 몇 달은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해서, 반나절 이상을 어디서 보내거나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수유를 한 텀만 건너뛰어도 모유량에 영향이 있다는데, 두 텀씩 생략하면 나의 뇌하수체가 ‘어머 너 정말 모유 필요 없구나?’라고 판단할 것만 같았다.
주말만 되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동네 카페 한두 곳을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때로는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빌려오기도 했다. 그나마 가장 멀리 다녀온 것은 지하철로 서너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 가서 옆잠베개를 당근해 온 날이었다.
멀리 다녀오기에는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아이가 울면 특히나 멘탈이 쉽게 흔들리는 남편에게 아이를 한참 동안 맡겨가며 어디를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는 싶지만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하기에는 좀 그런, 애매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주말이 지날 때마다, 남편은 내게 “이번 주말은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라고 물어왔다. 그리고 아기는 자기가 보겠다면서, 어디 다녀오고 싶으면 다녀오라고 먼저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친정 어머니께서도 한 번씩 아기를 봐 줄 테니 남편이랑 둘이 고기라도 구워먹고 오라고 하셨고.
그런 상황에서, 육아에 휴가를 내지 못한다고 진짜로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나 자신을 어떤 틀 속에 구겨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로 치자면 부장님이 직원들에게 제발 여름휴가 좀 쓰라고 하는데 직원들이 괜히 눈치 보면서 연차를 못 올리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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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계획하기로 했다.
막상 주말이 되고 나서 대뜸 “나 오늘 한나절 동안 출타할 테니까 아기를 좀 부탁해!”라고 선언한다면 그건 도리상 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하루이틀 전에는 미리 얘기해서 일정도 물어보고 부탁을 해 두는 게 맞아 보였다.
그러니까 주말에 뭘 하고 싶은지 미리 계획을 해야 했다. 그래야 나도 주말 언제 도움이 필요한지를 남편에게든 친정 어머니께든 제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불현듯 복어 튀김이 먹고 싶었다. 임신 전에도 많이 먹던 음식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웬 복 튀김? 아무튼 지도에서 복어 요릿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찾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이 소중한 자유 부인의 기회를 복 튀김에 소진하는 게 과연 맞나? 가지 튀김이나 파스타도 평소에 잘 못 먹는 음식인데, 그런 게 나으려나?
하지만 따지다 보면 끝이 없으므로 우선 복 튀김으로 나의 주말 외출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잠실 롯데타워 근처에 금수복국이 있었다. 구의동에서 지하철로 가면 금방이었다. 그럼 토요일에, 조금 이른 점심시간으로 해서 다녀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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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친정 어머니께서 아기를 봐주시기로 하셨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서 외출을 다녀올 수 있었다. 원래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카페 마실 정도는 다녀봤는데, 아이 없이 부부 둘이서만 오롯이 어디를 다녀오는 것은 출산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이가 2월에 태어났으니, 7월이 되도록 근 다섯 달 동안 구의동 지박령으로 지낸 셈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아이가 유난히 오전 낮잠을 잘 자지 못했다. 분명 본인도 눈을 엄청 비비면서 졸린 표시를 확실히 했는데, 아무리 재우려고 해도 눈을 감으려다 번쩍 뜨고 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무려 40분 동안 씨름을 하고 나서야 나는 GG를 쳤고, 어머니께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맡겼다.
“한 10분 있으면 밥 먹을 때인데, 먹고 나서 졸려하면 놀게 해 줄 필요 없이 그냥 재워줘. 하하…….”
“알았어~”
그렇게 해서 정말 오랜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나갔다. 남편이랑 대학생들처럼 어깨에 손을 얹고 칙칙폭폭 열차를 만들어서 지하철역까지 갔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셋이서 기차를 만들겠다며 얘기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엄마는 정문호 소아과 미리 가 있을게”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니 두 꼬맹이 아들들의 어머니였다. 작은 아들은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조금 큰 아들은 본인 자전거를 타서 뒤따르게 하고 있었다. 정문호 소아과라면 자양동 저쪽에 있어서 우리도 가는 병원인데, 이렇게 우연히 이름을 들으니 또 반가웠다. 어쩌면 루나도 나중에는 자전거를 타든 엄마 손을 잡고서든 같이 소아과를 갈 수도 있겠지? 지금이야 카시트에 실려서 본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다녀오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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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복국에 뜨끈하고 부드러운 복튀김을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렀다.
그래도 젤라또 가게를 지나칠 수는 없어서 들렀고, 심지어 세 가지 맛으로 각자 한 컵씩 먹는 바람에 엄청난 과식을 했다. 집에 가기 전에는 롯데월드몰을 산책하며 소화도 시키고, 5층의 노티드에서 친정 어머니 드릴 도넛 4개도 구매했다.
롯데월드몰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가게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분명 리나스 샌드위치가 있었던 자리에는 처음 보는 카페가 들어와 았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다가는 왠지 “그 자리는 벌써 세 번째 가게가 바뀌었는데 그걸 이제 알았어?”라는 얘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 교통카드를 찍는 일도 오랜만이었고, 지하철을 타고 보는 한강도 오랜만이었고, 한강의 수위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물론 내 곁의 남편은 맨날 회사로 출퇴근 하면서 지하철을 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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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산책을 다녀오니, 나도 이렇게 전업 육아 모드로 전환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심지어 작년에는 회사 업무를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조산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른 휴직을 선택지에 넣기를 끝까지 주저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이 위주로 내 삶이 재구성되어서 지내고 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삶에 아이가 서서히 스며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결국 병원에서 휴직 권고를 받아서 새해 벽두부터 난데없이 집콕 생활에 돌입했고, 그 다음에는 눕눕 생활과 출산과 육아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육아의 세계에 던져졌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 일만 하던 일자무식한 초보 엄마였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출산 후에 뒤늦게 들어서 책이며 유튜브며 인터넷을 엄청 뒤져가며 육아에 파고들었다. 혹시라도 되게 중요한데 내가 미처 못 챙겨주는 게 있을까봐 노심초사한 마음도 컸다.
낮잠 시간도 잘 챙겨주고 싶었고, 수유량도 제대로 먹여주고, 밤잠도 푹 재워서 피로 회복을 온전히 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생활은 물론이고 머릿속의 고민들까지 온통 아이를 돌봐주는 일로 가득차 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심지어 밤에 잠을 자면서도 쪽쪽이 셔틀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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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스와들업과 좁쌀이불의 졸업이었다.
안그래도 아이가 이제 만 5개월로 넘어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기존에 쓰고 있던 스와들업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특히 낮잠용으로 쓰는 다리 뚫린 스와들업은 이제 허벅지가 꽉 낄 정도로 작아졌고, 라지 사이즈를 두 개 더 사야 할 지 아니면 이참에 졸업을 시켜버려야 할 지 고민이 됐다.
꼭 사이즈 문제가 아니더라도, 스와들업이든 좁쌀이불이든 아이를 싸매고 눌러가며 잠을 재우기보다는 본인 편한대로 잘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스와들업을 하면 나비잠 자세로만 잘 수 있고, 좁쌀이불로 눌러 놓으면 옆으로 돌아눕거나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인 내 입장에서도, 누가 나를 좁쌀이불로 눌러서 똑바로만 자게 한다면 정말 답답할 것 같았다.
그런데 복국 집에서 잠깐 홈캠을 봤더니, 아이는 내복 입은 채로 그냥 역류 방지 쿠션에 누워 자고 있었다. 좁쌀이불 대신 조금 큰 손수건이 아이의 배와 다리를 덮고 있었고, 어머니께서 곁에 앉아 아기 빨래를 개고 계셨다.
이럴 수가. 그 동안 스와들업이랑 좁쌀이불 없으면 아이가 낮잠을 금방 깰 줄 알고 고민했었는데. 장소도 조용하고 어둑어둑한 안방에서 제습기든 백색소음기든 틀어서 재워주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졸업이고 뭐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 녀석, 할머니 옆에서 잘만 자고 있잖아……?
어쩌면 아이는 정말 그냥 대충 키워도 되나 보다. 하긴 옛날에는 스와들업이고 뭐고, 그런 건 아예 있지도 않았지. 애들도 그냥 방바닥에 요 깔고 재우고 놀리고 했지, 범퍼침대며 알집매트며 그런 게 어딨어. 나도 요만했을 때는 17평 아파트에서 지냈다는데, 백색소음이 깔린 조용하고 완벽한 수면 환경 대신에 생활 소음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잘만 컸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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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기는 오늘부로 만 5개월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이제 조금은 한숨 돌리게 된 걸까? 아니면 이제 그나마 좀 육아가 손에 익었기 때문일까? 아니, 한 달만 있으면 이유식 시작인데, 또 입이 방정이지. 아무튼 오랜만의 외출 덕분에, 나는 이제서야 조금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이켜봤다.
이대로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다가 회사에 복직하면, 그 후로는 쭉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다가 은퇴하게 될까? 그렇게 사는 삶이 결코 나쁘지는 않지만, 다소 힘 빠지는 결말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한대도 결국 직원은 직원이고, 대기업에서는 대기업만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 만큼 그 특유의 단점 또한 감수해야 했다. 어쩐지 내 인생에서 상당한 시간을 뚝 떼내어 그걸 돈 받고 파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혼자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운데 앞으로 아이 키우면서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내게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아이에게 “널 키우기 위해 엄마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건 전형적인 어머니와 자식의 따따블 비극 레파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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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마치 주말을 계획하는 것처럼, 이제는 잠시 내게 질문을 던지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야 하는 시점인지도 몰랐다.
이번 주말을 장식했던 복 튀김은 물론 맛있었지만, 논쟁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제1의 메뉴는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좋은 음식들은 한참 많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덕분에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나는 복 튀김이 먹고 싶고, 그것을 먹으러 갈 것이다.’ 지도를 찾아보고, 주말에 아이를 잠깐 맡기고 바깥바람을 쐴 이유는 그걸로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완벽한’ 플랜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미래 계획으로 부를 수 없다며 스스로 심한 검열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관성을 벗어나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면 해야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중요한 문제를 계속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꿈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의외로 ‘귀찮아서’이려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정신없이 바빠진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덕분에 내 삶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아갈 계기도 얻은 것 같다. 인생 152일 차의 이 작은 아이는, 30년 넘게 살아온 내게 벌써 몇 개의 화두를 던져준 걸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Brian Yuras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