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8일
그러고 보니, 삼신상에 케이크를 올렸었다.
원래 삼신상이라고 하면, 삼칠일에 맞춰서 시어머니가 며느리 대신 차리는 상이라고 한다(참고로 삼칠일은 출산 후 37일째가 아니라 3x7=21일째라고 한다). 삼신은 세 명의 신이므로 밥 세 공기와 국 세 그릇, 정숫물 세 잔을 기본으로 해서, 세 가지 나물이 올라간다. 나물은 조상을 뜻하는 뿌리 나물, 부모 격인 줄기 나물, 자손을 뜻하는 잎 나물을 올리며, 각각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나는 원래 이런 걸 잘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결혼식의 3요소인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조차 ‘스튜디오는 사진 찍어봤자 나중에 안 보지 않을까’ 하면서 한 가지를 뭉텅 생략해버렸는걸. 돌이켜보면 덕분에 드레스도 결혼식 때 입을 한 벌만 고르면 되고, 메이크업도 예식 당일 아침에만 받으면 되어서 수고를 엄청 덜기도 했다.
아무튼 평소에는 편하게 살자는 주의였지만, 아이를 임신했을 때 하도 삼신할머니께 조산 위험 탈출을 간곡히 부탁드렸기에 삼신상은 도리상 차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요즘에는 삼칠일이 아니라 백일, 이백일, 돌 쯤에 주로 차리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삼칠일에도 차리고 싶었으나, 신생아 육아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허우적대며 지나가다가 백일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친정 어머니께 아이를 맡긴 다음 마트에 가서 나물들을 사왔다. 그럼 미역국의 미역은? 한 다발을 구매해서 다 소진시킬 자신이 없어서, 친정에서 몇 조각을 또각또각 부러뜨려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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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러는 동안 친정 어머니께서는 “정말 할 수 있겠어……?” 하고 걱정의 눈빛을 보내셨다. 이 딸내미는 평소에 요리를 했던 것도 아니고, 나물이라면 시금치랑 콩나물 데쳐본 게 전부였으니까.
어머니의 타당한 예측대로, 저녁 무렵이 되자 나는 육아로 지쳐 나가떨어졌으며 삼신상을 차릴 여력은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삼신상은 그냥 아무때나 차리는 게 아니라, 당일날 만들어서 동 트기 전에 가족들이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렇기에 보통 자정 무렵 차려서 먹고 끝낸다는 것이었다. 새벽수유에 어른 요리를 곁들여야 한다니. 평소에 요리를 하던 사람도 아니고.
결국 너무 늦지 않은 저녁에 배달앱으로 조각 케이크들을 주문했다. 냉장고에 보관한 다음, 자정이 넘었을 때 조그만 상에 차려 올렸다. 케이크에는 홍차나 커피가 어울릴 것 같았지만, 붉은끼가 도는 기호식품들은 왠지 신에 대한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한 번 끓였다 식힌 정숫물을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케이크 세 조각과 분유포트 물 세 잔이 삼신상에 올라갔다. 원래의 삼신상과는 ‘3’이라는 숫자와 물그릇만 공통되고 다른 건 하나도 맞지 않는 상차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만든 맛없고 질긴 나물들보다는 한 개에 6~7천원씩 하는 케이크를 더 맛있게 드시지 않을까? 게다가 미역국이랑 나물은 다른 집에서도 많이 드실테니, 우리집에서는 후식을 드시고 가면 좋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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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굳이 자정에 삼신상을 차릴 필요가 없어져서 그냥 새벽수유할 때 잠깐 상을 차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새벽 3시 쯤 삼신상을 아이의 근처에 차려두었고, 나는 인터넷에서 찾은대로 축문을 외웠다. 아기가 건강히 잘 크기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아이의 발을 만지면서 “우리 아기 발 크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되었다.
그 다음에는 한동안 삼신할머니와 놀 수 있게 아이를 잠시 방에 홀로 두고 부모들은 나와 있으면 된다고 들었다. 보통은 거실에서 하나 보던데, 우리는 안방에서 아이 범퍼침대 곁에 상을 차렸으므로 부모인 우리가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아이는 밤에 자다 깨서 누가 발 만지고 부시럭대놓고는 새벽수유도 안 해주었기 때문에 울기 시작했다.
“어…… 언제까지 놔둘까?”
“이제 그냥 수유하자…….”
비록 어딘가 허술한 삼신상 이벤트였지만, 그래도 치르고 나니 조금은 개운했다. 앞으로도 조금은 당당하게(?) 아이의 건강을 기원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