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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Sep 04. 2024

수면교육이 다 뭐라니

5개월 8일

159일차의 아기. 하지만 여전히 낮잠이 가장 큰 과제다.


어쩌면 행복한 고민이었다. 낮잠이 제1이슈라는 것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밤잠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니까. 블로그 후기들을 보면 밤에 3시간씩 똘망똘망 웃으면서 엄마아빠랑 놀려고 하는 아기들이 정말 많았다. 유튜브나 육아서적들을 봐도, 다들 수면의식이니 뭐니 하면서 밤잠을 주로 다루었다.


어떤 유튜브에서는 ‘수면교육 잘 된 아이’라는 제목을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댓글에서 밝히기를 “낮잠은 아직도 잘 못 자요”라고 했다. 그래서 낮잠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첫째로 밤잠부터 잡으시고 둘째로 수면의식을 밤잠과 비슷하나 조금은 간소하게 진행하라는 얘기들 뿐이었다.


아무튼 백일이 지난 나의 아이도 아직 낮잠 재울 때 곧잘 저항한다. 예전 같았으면 퍼버법을 고민할 정도로 무조건 수면교육을 강행했을 텐데, 이제는 융통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번 등 대고 재워보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앉아서 껴안거나 일어서서 흔들어주며 아이를 재웠다. 그렇게 안은 채로 쪽쪽이를 딱 물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대체로 금방 눈이 감겼다. 훈련된 최면인가?


물론 그 방법조차 통하지 않을 때는 도로 거실로 데리고 나온다. “미안하다, 눈 비비길래 졸려하는 줄 알았어”라면서.


 - - -


희망하기로는 나도 수면의식에 책 읽어주기를 끼고 싶다.


하지만 아직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채 반 년도 되지 않았고, 글자를 익히려면 한참이나 남은 아기였다. 이따금 놀이 시간에 책을 보여주면 기특하게도 손으로 책장을 잡으려고 하기는 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것은 책도 입으로 가져가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 번은 재우기 전에 책을 읽어줘봤다. 역시나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애는 옆에서 으앙으앙하지, 공염불 외는 것도 아니고. 수면의식이든 뭐든 밤잠부터 하라기에, 막수 끝나고 트림도 마저 시킬 겸 동화책을 읽어주던 때였다. 실제로 해 보니까 피곤한 애 붙들고 헛수고를 하고 있었다. 금방 포기하고 범퍼침대로 데려가서 머리나 쓰다듬어줬다.


밤잠도 이럴진대, 잠투정 심한 낮잠 때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책은 놀이 시간에나 읽어줘야지. 그나마 최근 들어서 아이가 책에 시선을 두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니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나저나 수면의식에 책 읽기를 넣어주는 게 맞는 걸까? 그러다보면 나중에 ‘책 = 졸린 것’으로 인식될 것 같은데.


 - - -


이제는 뭐든 인위적인 것은 최대한 걷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뭔가를 억지로 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게 아닌 이상은 힘을 좀 빼고 지내기로 했다.


수면기록도 그만 쓴 지 오래되었다. 예전에, 특히 백일 이전까지는 낮잠 수면 패턴에 대해서 최대한 세세하게 기록했다. 몇 시에 무슨 방법을 써서 몇 분 만에 잠들었고, 얼마나 자고 일어났으며, 그 후 깨어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등등.


마치 오답노트를 적는 기분으로 기록을 꾸준히 했더니, 덕분에 아이의 깨어있는 시간이나 평균적으로 낮잠 한 번을 자면 얼마나 자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눕힌지 1분 30초 돼서 일어나고 했으니까 몹시 절망적이고도 필사적인 마음에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 자면 보통 40분씩을 자는데다가 어느 정도 낮잠 재우는 일도 손에 익어서 더 이상 기록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만 베이비타임에 수면 시작과 끝은 매번 체크한다. 이게 없으면 아이가 울 때 왜 우는지 알기가 너무 어렵다. 물론 여전히 왜 우는지 알아맞히는 일은 어렵지만, 그래도 수면이나 수유 시각 등을 기록해두면 비교적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2~3시간을 깨어 있었으면 당연히 피곤해서 우는 거겠지.


 - - -


이제 누군가가 육아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나는 첫 6개월까지의 육아는 ‘스케줄 운영’이 핵심이라고 얘기해 줄 것 같다.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수유를 하고……. 물론 이런 일들을 못하면 매 순간이 난관이겠지만, 아이 돌보는 법을 안다고 해서 육아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육아에서 ‘기술’은 여러 미덕 중 하나일 뿐, 육아 자체는 종합적인 전략(?)을 더 필요로 했다.


배불리 먹여야 힘을 내서 마음껏 놀고, 마음껏 놀아야 체력이 소진돼서 잠을 푹 잤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피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껏 밥을 먹을 수 있고, 밥을 잘 먹으면 또 충분히 놀 수 있었다. 그 반대라면 완전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배고파서 금방 울고, 울다 먹으면 지쳐서 잘 못 먹은 상태로 잠들고, 그렇게 자면 또 금세 허기져서 잠도 일찍 깨고.


 - - -


그렇지만 너무 힘주고 육아에 몰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아이는 귀엽고, 귀여운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 자체로 행복했다.


하루는 등 대고 재우기를 시도하려다가 도저히 안 돼서 껴안고 잠을 재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잠들고 나서도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조그만 입을 벌리고 세상 모르게 자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마음껏 껴안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육아의 복지구나 싶어서 그대로 쭉 재워주었다.


말 못 하는 아이에게 원칙을 알려주려면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이틀의 삐걱거림이 모든 걸 그르칠 리도 없었다. 아이는 맨날 울지만, 운다고 해서 ‘애착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때로는 아이가 달래지지 않는 잠투정을 부리면, “너 지금 이렇게 울어도 나중에 기억 하나도 못 할 거잖아……”라고 얘기한다. 본인에게조차 별 일 아닌 에피소드에 내가 전전긍긍할 필요가 있으려나. 그리고는 “애송이 녀석”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내 배 아파서 낳은 아기에게 애송이라고 하는 모습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애송이인 걸.


또 한편으로는, 이 아기는 나의 아이지만 남편의 아이이기도 했다.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살짝 공유지의 비극에 편승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뭔 일이 생기든 나의 무한책임은 아니라는 관점을 살짝 심어두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이가 울거나 너무 피곤해하거나 하면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제는 좀 마음을 놓기로 했다. 어쨌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하니까 말이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Fran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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