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19일
아이가 잠든 모습을 지켜봤다.
태어난지 170일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스와들업을 입고 자는 우리 아기. 인터넷을 보면, 만 3개월만 되어도 그냥 내복 바람으로들 자는 것 같았다. 그런데 루나는 어쩐지 모로반사가 여전히 좀 남아있는 듯 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 겨우 통잠을 몇 번 자기 시작했는데, 밤중깸이라는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스와들업 졸업에 도전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오늘은 남편이 부서 회식을 갔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딸이 걱정 되셨는지 막수할 때까지도 계셔주셨다. 마지막 수유가 끝나고 트림을 시켜준 다음, 아이를 잠옷으로 갈아입혀주려고 했다. 아무래도 메쉬 반팔 차림 그대로는 잘 때 입기에 너무 춥고, 그렇다고 해서 스와들업 안에 껴입기에는 여름이 조금 더우니까.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스와들업을 입혔더니 아이는 어느새 또 파워업이 되어서 방긋방긋 웃으며 팔다리를 사방팔방으로 휘저었다. 분명 저녁 먹기 전까지만 해도 피곤해서 눈이 벌개지고 찡찡댔는데.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재우러 갔을 텐데, 친정 어머니 앞에서 170일 된 아이를 스와들업에 꽁꽁 싸매고 있으려니 왠지 좀 민망했다. 민망하다? 어색하다? 뻘쭘하다? 비유하자면, 다 큰 어른이 자전거 라이딩 하러 한강에 나와 놓고는 자전거에 보조 바퀴를 달고 있는 기분이랄까. 집 뒷골목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달고 다녀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내 속마음이 티가 났는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좀 답답해보이긴 하네…….”
나도 동의하면서, “언젠가 졸업하기는 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게. 언젠가는……. 그런데 그게 지금이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나?
말이 ‘졸업’이지, 옛날에는 아예 스와들업 같은 것도 없었는걸. 그냥 부모가 내복 입히고 자면, 그 날로 내복 입고 자는 셈이지. 게다가 오늘은 남편도 없는 저녁이었다. 만약 남편이 있었다면, 나와 남편의 소심함이 시너지 효과를 내서 스와들업 졸업은 영영 물 건너갈 게 뻔했다. 그러니까 이 참에 내복을 입혀 버리자.
내복을 입히고 안방의 범퍼 침대로 아이를 데려가는 내게, 친정 어머니께서는 “정 안 자면 이걸 입히자”라며 스와들업을 건네주셨다. 그러네. 최악의 경우에는 그냥 원래대로 스와들업 입혀서 다시 재우면 되는데, 뭐가 그리도 험난해 보여서 나는 여태껏 이 도전을 미루고 또 미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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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들어가고 20분이 지났는데도 안 나오면, 그냥 귀가 햐…….”
이 말을 남기고서 나는 아이를 재우러 안방에 들어갔다.
아이는 내복 바람으로 눕혀져서 쪽쪽이를 물고 좁쌀이불을 덮었다. 며칠 전에 낮잠 재울 때 급하게 서두르다가 좁쌀이불로 아이 턱을 살짝 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이가 엄청 서럽게 울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서로 금방 화해했는데(사과했더니 신기하게도 금방 울음을 그쳐서 나는 그걸 용서로 받아들였다), 이후로는 좁쌀이불을 다룰 때마다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아차, 쪽쪽이를 야광으로 가져온다는 걸 깜빡했네. 할 수 없지,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는 수밖에.
아마도 난생처음으로 밤잠 입면 시에 내복 차림인 셈일 테니, 아이 입장에서는 팔다리가 다 휑하게 느껴졌을 테다. 처음에는 순순히 “이융이융……” 소리를 내면서 잠드나 싶었지만, 역시나 동작들이 산만해지고 사운드가 점차 추가되었다. 자유로워진 손으로는 귀와 목 뒤를 긁고, 마찰력이 생긴 맨발은 바닥을 밀어내서 좁쌀이불 위쪽으로 탈출했다. 맙소사, 발로 차지 말라고 이불의 3분의 2 지점을 접어 올렸건만, 본인이 밖으로 나가버리다니.
밤에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잠투정까지 부릴 기세가 되어서, 도저히 안되겠다는 판단 하에 아이를 안아 들고 흔들어주었다. 그래도 칭얼대기에, 아이가 제일 편안해하는 ‘딸기 망고 수박’ 노래를 들려주었다. 아기 병풍에 있던 과일 사진들 중에서 맨 윗줄의 딸기, 망고, 수박을 별 뜻 없이 멜로디만 붙여서 만든 노래였는데, 희한하게도 이걸 제일 좋아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나서 아이는 칭얼거림을 바로 멈췄다. 그러고는 한동안 안겨서 노래를 가만히 들었다. ‘아, 이렇게 정말 내복 입고 처음으로 밤잠 입면하는 건가?’라는 희망을 잠시 가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점차로 더 칭얼대다가, 어느 순간부터 웃기 시작했다. 보조개까지 만들면서 “히힛” 소리내어 웃었다. 엄마 품에 내복 바람으로 안겨 있어서 기분이 좋았나?
아무튼 분명해졌다. 오늘의 내복 도전은 실패였다. 7킬로 베이비를 15분이나 안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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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로 나가서 어머니께 상황을 보고하고, 스와들업으로 갈아입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스와들업으로 갈아입으면서도 엄청 웃었다. 보조개를 쉴새없이 만들어가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춤을 췄다. 옷 갈아입느라 잠시 기저귀 차림으로 있을 때도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즐거워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나저나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이제 스와들업으로 입히고 좁쌀이불에 쪽쪽이까지 했으니 재워야 했다. 그런데 왠지, ‘내복에는 실패했으니 혼자서 잠들게 하기라도 도전해봐야겠다’라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여러 육아서와 인터넷에서 읽었던대로, 아이에게 “잘 자”라고 얘기하고 방을 나왔다. 그랬더니 거실의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루나는? 혼자 있어?”
“응. 그래야 혼자 잠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대.”
“그래? 음……. 외롭겠다. 아까 기분도 좋았는데…….”
어머니의 이야기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홈캠으로 아이 영상을 봤는데,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두리번거리며 살짝 칭얼대기 시작했다.
찾고 있구나. ‘엄마는 어디 갔지……?’ 하고서.
나는 어머니께 아이 재우러 갈 테니 귀가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바로 안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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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야, 왜 안 자? 이제 자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를 범퍼침대 한 쪽으로 살짝 밀어서 내 공간을 만든 다음, 그 곁에 나란히 누웠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나를 보면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파닥거리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아이랑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으면 힐링이 된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천천히 도리도리하면서 어두운 방 여기저기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한 번씩 내 쪽을 봤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는 주로 내 쪽을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내 손 안에 모두 들어오고도 공간이 남는 작은 손이, 스와들업 밑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내 손바닥을 살살 긁었다. 마치 엄마의 존재를 눈으로 한 번 확인했지만, 졸려서 감겨가는 눈과 희미해져가는 의식의 틈에서 이따금 촉감으로도 확인해보려는 듯이.
이토록 나를 보며 안심하는 이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고 그냥 방을 나가버렸다니,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수면교육, 정말 꼭 해야 하는 걸까? 낮잠이야 그렇다 쳐도, 밤에 아이 재우는 시간은 하루에 몇 분 되지도 않는데. 게다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일종의 훈련으로 대체하기에는 너무도 귀하고 소중해서 좀 많이 아깝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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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잠투정 한 번 없이 스르륵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야광 모델로 바꿔 물려준 쪽쪽이가 아이 입의 오물거림에 맞춰서 위아래로 작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쪽쪽이에는 작은 별무늬들이 그려져 있어서 은하수 같았다. 언젠가 은하수가 보이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가야지. 요즘에는 은하수 볼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으니, 내가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도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이렇게 작고 작은 아기이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뛰어다닐 것이라 상상하니 신기했다. 돌이켜보면 신생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벌써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성장을 보여주었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 없이 휘젓는 것처럼 보이던 팔다리가 이제는 제법 정교하게 움직였다. 장난감도서관에서 빌려온 아기체육관의 티거 인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몇 달 전에 빌려왔을 때는 인형에 펀치만 겨우 날렸건만, 이번에는 인형을 이리저리 어루만져보고 입으로 가져와보기도 하면서 사뭇 다른 방식으로 놀았다.
오늘 하루만 해도 아이는 대견한 일을 많이 했다. 아침에는 엄마 따라서 유모차 타고 카페에 다녀왔는데, 이 더운 날씨에 모빌 하나 없이도 스스로 세상을 구경하며 의젓하게 다녀왔다. 오전 첫 낮잠 때는 엄마가 쪽쪽이만 이따금 물려줬더니 혼자 잠투정 좀 하다가 알아서 잠들었다. 그 후로는 종일 뒤집기를 하면서 하루아침에 뒤집기 선수가 되었다.
잘 먹고, 잘 크고, 잘 싸는 것만 해도 기특한데, 방긋방긋 잘 웃고 이것저것 의욕적으로 해보려는 것도 많다니. 이 기특한 아이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괜히 혼자만의 상상을 또 하게 됐다. 나는 살면서 운이 안 좋은 적도 꽤 있었는데, 어쩌면 신이 그 순간마다 나의 운을 조금씩 떼어와서 이 아이를 만나는 행운에 부어주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자 나의 지난 불운들이 모두 괜찮게 느껴졌다. 아아, 이 기적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불운들이 필요했던 것이었구나. 그렇다면 괜찮네, 괜찮아.
‘아이가 주는 행복이라는 게 있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직도 내 삶에는 수많은 불운들이 설명되지 못한 채 빙빙 맴돌고 있었겠지.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brandon s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