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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Sep 09. 2024

아기 엄마가 코로나에 걸리면

5개월 31일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일주일에 외출이라고는 주말 이틀 뿐이었는데, 정말 이러기인가? 아무래도 지난주 일요일에 잠실 나들이를 갔던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잠실 롯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염병 걸리기 딱 좋을 것 같아 피했는데, 오히려 그 대안으로 방문한 ‘서울책보고’라는 중고책방이 더 밀폐된 공간이었기에 코로나를 옮아온 것 같다. 아니면 지하철에서 전염되었을 수도 있고.


어쩐지 사람들이 콜록거린다더니. ‘잠깐인데 괜찮지 않을까?’ 하고 방심한 내 탓이었다. 원인이야 어떻든 일단 걸리면 고생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거늘, 마스크 하나 쓰는 게 뭐가 불편하다고 생략해버렸을까?


주말이 지나고 나서 월요일, 화요일 쯤부터 목이 살살 아프더니, 수요일에는 몸살이 왔다. 코로나 자가 검사 키트는 화요일까지는 완전히 음성으로 떴고, 수요일 오후에 다시 체크했을 때도 음성이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음성이래도 목이 칼칼한 것이 영 찜찜했다.


코로나든 감기든, 아무튼 아기 키우는 양육자가 아파서 퍼지면 안되니까 빨리 병원에 가 봐야 할까? 아니면 괜히 갔다가 진짜 코로나를 옮아오면 어쩌지?


갈팡질팡하는 나를 보고 친정 어머니께서는 “수액이든 항생제든 손을 써야 빨리 낫는다”며 얼른 병원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역시 판단력이 흐려질 때는 엄마 말을 들어야겠지. 그 길로 지갑이랑 핸드폰만 챙겨서 근처에 새로 생긴 내과에 갔다. 이번에는 마스크를 빼먹지 않았다.


 - - -


내과에 가서 증상을 하나하나 말씀드렸다. “자가키트로 검사했는데 음성이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의사 선생님께서도 목 상태를 보시고는 “코로나처럼 새빨갛게 붓지는 않았네요”라고 하셨다.


그런데 약까지 다 타서 집에 와보니, 아까 검사한 키트가 희미한 두 줄로 되어 있었다. 아니 분명 한 줄이었는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아까 결과는 1시간 지났으니까 못미덥겠지?’ 하고 다른 키트를 뜯어서 다시 체크해봤다. 이런, 이번에는 15분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희미한 두 줄이 떴다.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어서 내과를 다시 방문했다. “선생님, 집에서 다시 체크해보니까 두 줄이에요…….”


병원에서 코를 한 번 더 찌르고, 격리된 방에서 수액을 맞았다. 수액 맞는 동안에 책이나 읽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이 참에 잠을 자야 할 것 같았다. 밤에는 밤중깸으로 깨고, 낮에는 토끼잠으로 깨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밝은 불빛 아래에서 잠들 수 있을까? 눈을 감아도 좀 밝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문득 어디서 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순간 든 생각은 ‘루나가 깨려나?’였다. 어느새 잠들어 있었구나. 병원을 안방으로 착각하고 말이야. 반복되는 육아 일상이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 - -


병원을 들락거리며 우당탕탕 수요일을 보내고 나니, 곧이어 남편의 독박육아가 시작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징검다리 연휴였다. 으음, 남편에게는 다행이 아니라 청천벽력이려나……? 아무튼 이튿날인 목요일은 광복절이었고, 금요일은 남편이 연휴를 즐기기 위해서 연차를 쓴 상태였다. 덕분에 목금토일 내리 남편을 전력화(?) 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에 ‘희미한’ 두 줄이라고 해서 좀 방심을 하다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자가격리로 돌입했다. 아직도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아기 방이 격리병동으로 지정됐다. 요가 매트와 이불을 깔고, 커다란 비닐 봉투 한 개를 환자 전용 임시 쓰레기통으로 삼았다.


밥도 트레이에 담아서 방에 들어가 먹었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는 환기도 시켰다. 환기를 시킬 때마다 푹푹 찌는 8월 중순의 습기가 창문으로 확 밀려들어왔다. 불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어른은 걸리면 약이라도 쓸 수 있지, 아기가 걸리면 해열제와 그 독한 항생제를 써야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아기가 아프면 아기 봐주는 어른에게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고생길이 열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증상 자체는 코로나가 처음 돌기 시작했을 때 걸렸던 것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 때는 열도 펄펄 끓고 몸살에 인후통에 엄청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임신부 시절 앓았던 비염이랑 비슷했다. 코 막히고, 잠을 푹 자느라 누워 지내고, 코 푼 휴지는 쌓여가고.


 - - -


몸은 아팠지만, 육아를 반강제적으로 못 하고 있으니 왠지 장기 휴가를 온 것도 같고 해서 기분이 묘했다. 평소와는 다른 공간에서 잠을 청하자니 여행 온 느낌도 들었다. 육아휴직 중인 사람으로서 육아를 안 하고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구나.


허전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자꾸만 보다가, ‘이럴 바에야 책이나 읽자’ 싶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독서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게 돼서, ‘이렇게까지 책이나 읽고 있어도 되나?’ 싶어져 불안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만큼 스마트폰에서 쓸데없는 짤방이나 찾아보는 데에 시간을 쏟고 있다는 뜻일 뿐이었다.


그래도 연휴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방 문 밖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가서 안아다 얼러줘야 할 것 같은데, 안아줄 수가 없었다. 우는 게 안쓰럽다고 껴안고 있다가는, 아무리 마스크를 열심히 쓴대도 틈새로 바이러스가 빠져나가 아기에게 코로나가 전염될 게 분명했다. 그 위험을 감수하느니 울음소리를 좀 참아야지…….


 - - -


토요일에는 내과에서 처방 받은 약이 다 떨어졌다. 주말이라 병원은 일찍 닫아서 근처 약국을 들렀다. 약사님께서는 종합감기약과 함께 이런저런 영양제(?)와 스프레이 같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이거는 면역력 강화해주는 알약이고요. 이거는 비슷한 건데 첩약처럼 된 거예요. 그리고 이 스프레이는 코에 뿌리시면 되는 건데, 바이러스 사멸시키고 면역력 강화해 주는 거 거든요. 뭘로 드릴까요?”

“……효과 좋은 거 다 주세요.”


평소 같았으면 이것저것 따져볼 텐데, 아기가 아프니까 뭘 재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증상 완화든 바이러스 퇴치든, 쓸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해서 코로나를 하루빨리 물리쳐야 했다.


약빨 덕분인지, 월요일이 되자 음성이 떴다. 아침 저녁으로 테스트했는데 두 번 다 음성이었으니 확실했다. 역시 스프레이가 물리 퇴마(?) 역할을 톡톡히 했던 걸까? 1시간에 한 번씩 양쪽 코에 뿌렸더니 다음날 음성이 떴다던 손님 이야기를 약사님께서 해주셨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물론 수시로 뿌리는 일은 고역이었고, 아로니아 추출물이 들어있어서 콧물이 와인색이 돼서 줄줄 흘렀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월요일 저녁에 음성이 두 번째로 떴을 때는 기뻐서 아이를 껴안고 부비부비했다. 고작 닷새 정도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냈는데도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곤 했다.


그 짧은 사이에도 아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이 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일단은 ‘부우우’ 하는 사운드와 함께 투레질이 추가되어서, 아빠 품에 안겨서 푸루룽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뒤집기와 되집기를 연속으로 하면서 뒹굴뒹굴 구를 수 있게 되었고, 엎어놓으면 배밀이도 곧잘 하기 시작했다.


 - - -


그래도 월요일 밤에는 혹시 몰라서 격리병동에서 마지막으로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구나’ 하고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화요일부터는 마스크도 풀고 다시금 육아휴직 기간한정의 일시적 전업주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며칠 손을 놓았다고, 또 육아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 재우는 것도 최근에는 그냥 안아서 재우다가 옆잠베개를 부활시켜서 눕히곤 했는데, 자칭 수면교육 전문가인 남편이 그새 ‘등 대고 낮잠 입면하기’에 연속으로 성공해서 부담감이 밀려왔다. 나 때문에 도루묵이 되면 어쩌지? 아이가 놀 때도 전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뒤집으면서 노는 것 같아서 어떻게 강약 조절을 해줘야 할 지 고민됐고, 졸려하는 신호를 캐치하는 일에도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다 아이가 괜히 평소보다 더 뜨끈뜨끈하고 자주 보채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 코딱지를 면봉으로 슬쩍 꺼내서 코로나 검사 키트에 적셔봤다. 이렇게 해도 유효한가? 그렇다고 해서 어른처럼 코 깊숙히 찌를 수도 없는걸. 아무튼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덕분에 오후는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아무튼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어젯밤에 왔던 잠퇴행의 여파일 뿐이겠거니.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하루를 또 보내준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행운인가를 알게 해 준 이벤트였다. 애가 좀 짜증내고, 소리 지르고, 줄줄 게우고 한대도, 그러면 뭐 어떤가. 아무 일 없이 건강했던 하루, 그로 인해 육퇴 후 창밖의 밤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별 생각 없이 구경할 수 있는 하루는 그 자체로 굉장한 축복이었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Rendy Novan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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