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2일
‘원영적 사고’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이돌 장원영님의 긍정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 분은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신다는데, 예를 들어서 컵에 물이 절반 차 있으면 “물이 반이나 있네? 완전 럭키비키잖아?!”라고 반응하는 식이다. 참고로 비키는 장원영님의 영어 이름이라고 한다.
며칠 전에 남편으로부터 ‘원영적 사고’에 대해 전해 듣고, 나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겸사겸사, 코로나 때문에 비몽사몽하던 며칠간 중단했던 감사일기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럭키비키’라는 표현이 입에 착착 감겨서, 뭔 일만 있으면 이걸 어떻게 ‘~하다니, 럭키비키잖아?!’에 갖다 붙일까 고민하게 됐다. 평소에는 분유포트에 대형 비커로 물을 담는데, 오늘은 도깨비 방망이 쓰느라 비커 설거지를 아직 못 했네. ……500ml 계량컵을 써 볼 수 있는 찬스니,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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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원영적 사고가 없었다면 버티기가 꽤나 힘들었을 하루였다.
우선은 아침에 아이가 5시 반쯤 기상해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6시 반에 일어나서 첫수를 하곤 했는데, 5시 반이라니? 첫수 시각이 당겨지면 그만큼 뒤의 일정들도 당겨지기 마련이라서, 최대한 쪽쪽이도 물려보고 안아서 다시 재우려고도 해봤지만 무리였다. 결국 아이는 6시 전에 침대 밖으로 나갔는데, 알고 보니 기저귀가 샜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안아 재우려고 옆으로 들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무튼 종달기상과 더불어서 간밤에는 1~2시간마다의 밤중깸도 있었기에, 아무래도 오늘 아이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7시 반부터 아이는 피곤해서 끙끙대기 시작했다. 치발기를 물면서도 온몸에 힘을 주고 끙끙끙. 잔뜩 느껴지는 피로감을 아기로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아침 7시 반이면, 본인 입장에서는 5시 반에 깨고 2시간이나 지났으니 슬슬 피곤할 때도 되긴 했다.
이래저래 지내다가 낮잠을 재웠는데, 역시나 대성통곡 끝에 잠들었다. 며칠간 도전했던 스와들업 졸업도 오늘부로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얘도 힘들고 부모도 힘든데, 스와들컷과 옆잠베개를 그냥 쓰는 수밖에. 그런다고 해서 뭐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스와들업과 옆잠베개 조합으로 어찌저찌 아기를 재웠다. 덕분에 낮잠을 2시간 정도 푹 재워서 종달기상의 여파를 살짝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일어날 때는 역시나 옆잠으로 잤던 탓인지, 쉬야를 하면서 줄줄줄 기저귀가 샜다. 밴드형 대신 팬티형 기저귀를 입혀봤는데, 그게 서툴었던 탓이었을까? 새도 정말 많이 새서, 범퍼침대 바닥에 고일 정도가 되었다. 그, 그래도 범퍼침대니까 물티슈로 닦으면 그만이니,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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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쯤, 이유식을 먹이고 두 번째 수유를 했다. 보통 이 시간대에 수유를 하면 장이 활발해지는지 응가를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아이 응가가 등 뒤로 다 샜다. 어찌나 많이 샜는지, 내복 상하의가 다 누렇게 젖었다. 그리고 아이를 앉혀주었던 내 허벅지의 바지까지 축축해졌다.
아이를 닦이면서는 내 상의에도 응가가 묻었다. 그 상태로 아이를 옆으로 들쳐메고 닦았더니 목에 둘러주었던 턱받이에도 옮겨 묻었다. 응가 묻은 팬티형 기저귀를 벗겨주는 것도 처음이라 어버버했더니 어느새 세면대에도 응가가 덕지덕지. 아이 손과 발이 세면대의 응가에 닿지 않게 하느라 또 진땀을 뺐다.
다 씻겨주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가 되니, 아이는 홀딱 발가벗고 나도 빤스 한 장만 입은 차림새가 되었다. 이런 경우에는 누가 먼저 옷을 입어야 하지? 아이를 챙겨야 히는 양육자? 아니면 조그만 아기? ‘그래도 아기는 체온 조절 능력이 부족하니까’라는 생각에, 일단 아이 먼저 기저귀를 채워주고 옷을 입혀줬다. 그런 다음 나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 내복과 내 옷을 세면대에 들고 가서 손으로 애벌빨래를 했다. 아이유의 <가을아침>을 흥얼거리면서 했던 덕분에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역시 육아에는 노동요가 필요하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애벌빨래를 하면서 보니까, 응가에 평소랑 다르게 허여멀건한 덩어리들과 곡식 껍질 같은 것들이 만져졌다. 이게 뭘까? 아, 엊그제 먹기 시작한 이유식의 쌀죽과 오트밀죽이 나왔구나. 아기 똥은 솔직해서 원재료가 그대로 나오기 마련이라더니, 정말 귀엽네. 이렇게 이유식 응가도 살펴볼 수 있고, 완전 럭키비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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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기저귀가 샌 탓에 아이는 이제 입을 수 있는 내복 바지가 더 이상 없었다. 대신에 조금 니트처럼 따스해 보이는 재질의 7부 바디수트를 입혀주었다. 초록색 바디수트를 입혀놓으니 초록 요정 같아서 아무튼 귀여웠다.
평소 같았으면 수유하고서 나도 점심을 먹었을 텐데, 도저히 그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응가 닦여주고, 뒷처리하고, 애벌빨래하고. 그 와중에 아이는 간밤에 밤잠을 설쳤으니 금방 피곤해져서 슬슬 샤우팅을 시작했다. 이 난리통에서 점심밥이 다 뭐람? 그냥 집에 남아있던 빵들을 주워 먹었다. 친정 어머니가 주신 치즈케이크, 남편이 주문해 둔 도라야끼, 내가 어제 큐브 만들고 남은 당근으로 구웠던 머핀.
육아를 하다가 힘들 때면 종종 마음을 다잡을 때가 있었다. 예전에 더 힘들었던 기억을 돌이켜보면서, ‘그런 날도 있었는데 이 정도 쯤이야’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말이다. 오늘은 ‘그런 날’을 하나 더 적립한 셈으로 치기로 했다. 경험치가 쌓였으니 이것도 럭키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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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하루를 보내고 났는데, 아이가 통잠을 잤다.
오랜만에 아이도, 나도, 남편도, 셋 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엄마 아빠보다 더 늦게까지 좀 더 자다가, 아침 6시 반쯤 밥 시간에 맞춰서 일어났다.
밤잠을 푹 잤으니 아이는 전날에 비해 컨디션도 훨씬 좋아져 있었다. 첫 수유를 한 다음, 나는 아침에 해야 할 집안일을 끝마치고 남편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반이었다. 어제 같았으면 벌써 피곤해서 아이가 끙끙대고,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난감해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혼자 한참 놀다가 지루해졌는지 아이가 칭얼댔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아이를 다리 안쪽에 폭 들어가게 뉘여주었다. 손수건을 가지고 아이 눈앞에서 흔들어도 보고, 고양이랑 사냥놀이 하듯이 톡톡 튕겨주기도 했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손수건을 잡아보려고 했다.
손수건 놀이가 시들해졌을 때쯤, 이번에는 배를 간질이면서 놀기 시작했다. 실제로 간지럼을 태울 의도였으면 옆구리를 간질였을 테지만, 이 조그만 아기에게 그런 가혹한 놀이를 시도하고 싶지는 않아서 배를 손끝으로 문질러주는 정도였다. 아이는 이 새로운 놀이에도 흥미를 느꼈는지 까르르 웃으면서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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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도 다 했고, 급하게 해야 할 다른 일도 없고. 나는 그저 마음 편하게 아이랑 놀기만 하면 되었다.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옹알이도 하고 방긋방긋 웃기도 하면서 엄마랑 노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인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맑고 동글동글한 눈이 정말 귀여웠다.
베란다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한가득 들어와서 거실을 비췄다. 온기가 느껴지는 따사로운 햇살이었다. 그와 함께, 혹시 인위적으로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평화롭고 화창한 아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아파트와 건물과 한강을 비추는 노란 햇살, 그 위로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들까지.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과 함께하는 소중한 순간이 놓여 있었다. 앞으로 몇 십 년이 흘러도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내 아이, 그 아이의 작은 아가 시절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다른 이의 시간도 아니고, 내 과거의 언젠가도 아니고, 상상 속의 미래도 아니고, 지금 내가 향유하고 있는 이 시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이라니. 사람은 너무 행복하면 눈물이 나온다는데, 그게 정말이구나.
엄마가 갑자기 울면 아이가 놀랄까봐, 나는 짐짓 괜찮은 척 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를 삼켜가며 계속 놀아주었다. 그러다 눈물을 쓱 닦고, 아이 옆구리를 붙잡고서 “로켓 점~프”를 외치며 몇 번 들어올려주었다. 아이는 그게 또 재미있어서 까르르 웃었다.
내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렇게 2024년 8월 22일 오전 7시 58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