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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Sep 12. 2024

등 대고 자야 한다고는 하던데

6개월 8일

그저께는 육퇴 후에 매트에 널부러져 있었다.


남편의 비유에 의하면, 마치 낮 동안에는 스타크래프트 스팀팩 맞은 테란마냥 쌩쌩 다니다가 밤이 되었더니 방전된 것 같다고 했다. 낮에는 아이가 좀 운다 싶으면 달려가서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것을 해주기 바빴다.


아이가 얼굴이 좀 빨개지면서 꺅꺅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으우움…… 멈……” 하고 있으면 필시 트림이었다. 가끔은 운 좋게도 본인이 뒤집으면 셀프 트림이 돼서 얻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가서 일으켜 안아서 트림을 시켜줘야 했다.


그 밖에도 그때그때 해줘야 하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했다. 수시라기에는 길어야 3분의 시간차를 두고 이벤트가 발생했다. 이 장난감은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았으니 심심하고 지루해졌어요. 낮잠 자고 일어난 지 1시간이 지났으니 쉬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아기라서 혼자 쉬었다 노는 법을 몰라요. 배밀이를 너무 한참동안 해서 피곤한데, 되집어야 쉴 수 있다는 것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런데 요 며칠은 아이가 밤잠도 몹시 설치기 시작했다. 어쩐지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서, 만6개월에는 시련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더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동안 통잠을 몇 번 자기 시작했던 아이가 도로 신생아처럼 자꾸 깨다 보니 당황스러웠다.


어젯밤에는 정말 1시간에도 몇 번씩 깨곤 해서, 남편은 아예 범퍼 침대에 들어가서 아이랑 같이 잤다. 나는 초반에 자진 투입되어서 아이를 재워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안 되겠어서 GG를 치고 남편에게 바톤 터치를 요청했다. 평소에는 다정다감한 스킨십으로 아이를 잘 재워주던 남편도 이번만큼은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쉽게 잠들고 쉽게 깨기를 무한 반복했다.


그리고 그 엔딩은 5시 반 종달기상이었다.


- - -


아침에는 벌써 심신이 지쳐 있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방안을 궁리했다. 그나마 어젯밤에는 남편이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서 비몽사몽간에 쪽쪽이를 계속 물려줘서, 쓰던 것을 계속 쓴 덕분에(?) 공갈젖꼭지만큼은 설거지거리가 딱 두 개 나왔다. 아무튼 젖병과 쪽쪽이를 닦으면서 창 밖을 쳐다보며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어쩌면 어젯밤에는 뒤집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머미쿨쿨로 누르고 스와들업으로 싸매서 뒤집기를 못 하게 했는데, 이번만큼은 부모의 수동 트림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동 트림만이 속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는 너무 깨길래 내버려뒀더니 정말로 자기가 알아서 뒤집다가 두어 번 트림하고 게우고는 아침 여섯 시 반까지 통잠을 잤다.


그래, 그렇게까지 빈번한 밤중깸은 트림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게 정말로 정답이었다면, 최근에 새로 구매한 에어 메쉬 매트리스를 빼고 예전처럼 범퍼침대 맨바닥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토가 묻을 게 걱정되어서 애한테 트림을 하든 게우든 마음대로 뒤집고 다니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아, 애초에 그냥 매트리스가 아니라 만만한 토퍼 서너 장을 사서 그냥 건조기나 뺑뺑 돌려야 했던 걸까? 대형 손수건이다 셈 치고, 줄어들든 말든 그냥 쓰면서 말이지.


- - -


그래도 아침에 보니 날씨가 좋아서, 아이를 유모차에 납치해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출동했다.


드디어 여름 더위가 한 풀 꺾였다. 아파트 밖을 나서니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과연 23도의 기온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후끈해서 공원은 진작에 포기하고 근처 카페에 테이크아웃이나 하러 갔을 텐데. 피곤해도 이렇게 산책을 나가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날씨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살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날씨는 점점 더워졌다. 아무리 어린이대공원이 도보로 접근 가능한 거리라고는 해도, 바로 집 옆은 아닌지라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중간쯤 왔을 때는 햇볕이 벌써 뜨거워졌고, 우산으로 직사광선을 가려줘도 아이는 햇살이 유모차로 향할 때마다 눈을 찡그렸다.


아이는 점차 더 칭얼댔다. 예전 같았으면 이 때쯤 졸려서 잠들었을 텐데, 잠들기는 커녕 게우고 웅얼거렸다. 아무래도 길이 시끄러운데다 날씨도 더워서 도저히 잠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보다 싶었다. 게다가 만3개월처럼 잠이 쏟아지는 시기도 아니고, 만6개월이니까.


- - -


칭얼거리면서 게우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황망하고 난처한 일도 없는 것 같았다.


부디 잠들었으면 좋겠는데, 쪽쪽이를 물리고 유모차까지 태워주는데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등과 엉덩이에는 패드를 사이에 두고 아이스팩을 깔아준 데다, 정면에서는 회전 모드로 선풍기까지 돌려주고 있으니 더위는 문제가 아닐 텐데. 정녕 스와들업에 포장하거나 안아줘야지만 잠이 들 수 있게끔 내가 잠연관을 지어준 것이려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기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다른 집 아기들은 그냥 뒤척뒤척하면서 혼자 잠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우리 아이는 쪽쪽이가 항상 필요하고, 스와들업도 입어야 하고, 재울 때도 ‘잘 자’ 하고 방문 나오면 안 되고 끝까지 곁에 있어줘야 잠들게 되었을까?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걸까? 그 동안 잘못 키워온 걸까? 그렇게 내가 잘못했단 말인가……?


예전에는 자식의 성적이나 직업 등을 가지고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보면 의아해하곤 했다. 아니, 본인 학교 다닐 때 성적이나 잘 챙기고 본인 밥벌이나 잘 할 것이지, 무슨 자녀가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자기 소유물이자 아바타인 마냥 전전긍긍이람?


하지만 수면 습관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집을 보며 부러워하고 내 상황에 속상해하는 자신을 보며, 어쩌면 조심하지 않았다가는 나도 그 꼴이 날 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엄습했다.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거나 하면 ‘왜 우리 아이는 1등을 못할까’ 하고 셀프로 머릿속에 먹구름을 피워올리지 말아야 할 텐데.


- - -


우여곡절 끝에 집에 왔더니 아이가 응가를 했다.


다른 게 아니라 속이 안 좋아서 그랬구나. 그래서 몇 번 게우기도 하고. 하긴 나도 속이 불편한데 화장실을 못 가고 있으면 메스꺼워지고, 그런 상황에서 뭔가 덜컹거리는 교통수단을 타고 있으면 더 울렁거리기 마련인데. 그걸 가지고 나는 무슨, 아직 미취학아동은 커녕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두고서 ‘쪽쪽이조차 졸업을 못 했네’ 어쩌고 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반성도 잠시, 아이를 이제 진짜 재워야 하는데 건조기가 아직 안 끝나 있었다. 그 말은 즉 스와들컷이 아직 건조가 안됐다는 뜻이었다. 스와들업은 낮잠 때 입히기에는 너무 덥고 발까지 싸매야 해서, 완전한 스와들업은 아니고 그 일종인 스와들‘컷’을 입혀서 다리 부분은 뚫어주고 있었다. 평상복 차림에 스와들컷만 위아래 단추 딱딱 채워서 배 부분의 지퍼를 열어주면 최대한 시원하게 입혀줄 수 있었다. 그런데 스와들컷이 없으니, 그냥 지금 이 차림 그대로 휑하니 재워야 하는 수밖에는 없나?


평소 같았으면 스와들컷 입히고 팔 좀 잡아주면 자는 아이였는데, 건조기가 덜 끝났으니 그저 내복바람으로 내버려둬봤다. 역시나 바동거리면서 울었다. 트림인지 잠투정인지는 몰라도, 일단 세워서 안아들고 달랬다. 아이의 등이 땀으로 살짝 축축했다.


아이가 졸려하며 눈을 비비는데, 그로 인해 자동으로 눈물이 닦였다. 훌쩍이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마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어린아이 같았다. 조그만 머리통이 안쓰러웠다. 졸리고 피곤한데 잠이 안 오니, 네가 제일 힘들겠지. 에그, 가여워라.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잘 하고, 웃기도 잘 웃고, 여러모로 다른 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특한 면이 정말 많은 특별한 아이인데. 그런 네가 이렇게 울고 있으니 엄마 마음이 아프구나…….


- - -


아이가 가엾기도 하고, 일이 내 뜻대로 안 되다 보니 답답하기도 해서 몹시 속상했다.


잠은 무조건 등 대고 재워야 한다던 수면교육 전문가들과 의사들의 말이 떠올랐다. 베개든 뭐든 돌까지는 아이 침대에 놓아두면 질식 때문에 영아돌연사 증후군의 위험을 높인다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육아를 해보니, 나는 옆잠베개도 스와들업도 필요했다. 물론 늘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수면 아이템들의 도움 없이 생짜로 재우려다가는 양육자의 체력과 정신력이 남아나지 않을 판이었다. 머리로는 ‘등 대고 자유롭게 재워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천을 못하고 있으니, 전문가들의 핀잔이 귀에 와서 박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괴로웠다.


문득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유튜브가 알고리즘으로 내게 쇼츠 하나를 보여줬었다. 멘탈이 좋은 유쾌한 분 같았는데, 그런 사람에게도 악플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악플을 보고 마음 힘들어하지는 않고, 그냥 혼자 “X발새끼들!”이라고 하고 만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의 뇌내 알고리즘이 그 영상을 지금 틀어줬을까? 혹시, 전문가들에게 욕을 박아보라고? ‘X발새끼들, 지들이 와서 재워보든가,’ 뭐 이런 식으로?


얼추 흐름이 맞아떨어져버렸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조용히 있었다. 이것이 정녕 나의 내면인가? 못됐다, 못됐어. 기껏 수면교육 팁들을 알려줬더니 육두문자로 화답이라. 품 안의 조그맣고 고운 아이에게는 좀 숨기고 싶은 내면인걸……?


- - -


결국 아이는 안아서 재웠다.


안아 재우기는 정말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고 싶은 방법이었다. 이제 벌써 아이는 8kg에 육박했고, 앞으로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아이는 스와들업 없이 내복바람으로 안겨 잠들었다.


그렇네, 스와들업이 없으면 이러나 저러나 자동으로 졸업이 되겠구나. 어떻게든지. 이토록 간단한 문제였다니. 그렇다면 불태워 버릴까? 그러기에는 조금 아까운데. 그럼 차곡차곡 담아서 상자에? 아니면 친정에 맡기고 온다?


스와들업의 처분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아이를 눕혀서 좁쌀이불로 덮어줬다. 민트 엄마도 머미쿨쿨은 덮어줬었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 수면템 쓰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아니면 정말 일주일만 뒤집기 지옥을 각오하고 내복바람으로 지내게 해볼까? 아침에 남편에게 한 번 제의해 본 안건인데, 남편은 조금 머뭇거렸다. 하긴 냉정한 편인 나조차도 망설여지는 안건인데, 길거리 호객행위마저 일단은 들어봐주는 남편은 두말 할 것도 없지.


그래도 어쨌든 남편이랑 상의해서 협의가 완료된 다음에 진행하는 게 맞았다. 잠은 안방에서 세 명이 같이 자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러면 그 일주일 동안 애를 울리든 어떻든 자기 혼자 잠들어버릇 하게끔 하고, 남편은 저 쪽 끝방에서 자고 있으라고 할까?


- - -


그러다 오후 낮잠은 드디어 내복바람으로 등 대고 재우기에 성공했다.


남편이 전수해 준 ‘볼투볼’을 시도한 성과가 있었다. 남편은 신통하리만치 내복바람으로 등 대고 재우기에 탁월했는데, 아이와 볼을 맞대고 가만히 있는 ‘볼투볼’ 기술을 내게 늘 강조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나는 늘 실패했으나, 오늘 키포인트를 발견했다. 포옹하듯이 서로 얼굴 방향이 엇갈리게 볼을 맞대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맞댔더니 성공이었다!


아이 볼을 맞댄 채, 기뻐서 웃음이 났다. 안 돼, 참아야 해. 웃으면 광대 올라가서 아이랑 맞댄 볼이 움직이는데!


아무튼 안방을 빠져나와 홈캠으로 아이를 지켜봤다. 내복바람으로 잠든 아이. 정말정말 대견했다. 그런데 주어가 누구지? 아이가? 내가? 어쩌면 둘 다였다.


하긴, 스와들업 없이 안 잔다고 해서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그럴리는 없겠지. 언젠가는 본인이 알아서 졸업할 터인데. 육아는 정말 내 뜻대로 되지를 않는구나. 내가 마음 조급해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또 때로는 의외의 모습을 아이가 보여주기도 하고. 이인삼각 경기 같다가도, 결국 근본적으로는 아이가 자기 인생 사는 것을 내가 옆에서 보조해주는 것 뿐인가 싶어졌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정말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졸업하겠지? 말이 씨가 된다고, 설마 정말 계속? 그 정도면 맞는 사이즈도 없어서 진짜 졸업해야 할 텐데. 어쩌면 내가 천을 사다가 바느질로 지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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