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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Sep 20. 2024

미래에서 온 나는 육아를 한다

6개월 23일

비가 왔다.


아침마다 날씨를 체크한다. 날이 화창하되 28도 이하면 오전에 산책을 나갔다 올 수 있다. 만약 비가 오거나 온도가 너무 높다면 아기 데리고 외출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아무리 유모차 커버로 비를 막아본대도, 한 손으로는 우산 들고 다른 한 손으로만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조금 버겁고 위험해 보였다. 날이 맑더라도 너무 더우면, 아이에게 아무리 선풍기를 쐬어주고 엉덩이에 아이스팩을 조심조심 깔아주더라도 결국 집에 오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하루종일 비였다. 이런 날은 고작해야 유모차 살살 끌고 집 근처 마트밖에 다녀오는 수밖에는 없었다.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았을까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물었다.


“밖에 사람들 우산 쓰고 다녀?”

“응. 그런데 누구는 쓰고 누구는 안 쓰고 그러네.”


역시 비가 오는구나……. 하지만 기온은 최저 26도, 최고 28도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고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겼는데, 이 정도라면 아기띠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유모차가 아니라 아기띠라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비도 엄청나게 퍼붓는 게 아니라 가랑비 수준이니까, 아기띠만 단단히 하면 아이에게 비 구경도 살짝 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베이비뵨 아기띠를 두르고 아이를 들처멨다. 마지막으로 썼던 게 만4개월 쯤이었던가? 백일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너무 더워진 날씨에 도저히 아기띠로 아이랑 딱 붙어다닐 수가 없게 되어서 유모차로 갈아탔었다. 그러다가 집에서 잠깐 아기띠를 써봤더니 이미 아이가 부쩍 무거워졌기에 어깨가 엄청 아팠던 기억이 있었다. 그 때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힙시트를 같이 착용했더니 8kg 아기를 안아 드는 것도 할 만 한 수준이 되었다.


 - - -


이번에는 스타벅스나 디저트39 같은 프랜차이즈 대신에 ‘소소한 그날’ 카페에 갔다.


임신과 모유수유 기간을 거치면서 카페인에 약해진 탓에, 디카페인 변경이 안 돼서 한동안 못 가던 카페였다. 혼합수유가 끝나고 나서는 ‘한 모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방문했지만, 그래도 카페인은 착실하게 몸에 작용해버렸다. 육아 때문에 잠은 진짜 제때 자야 하는데, 한낮의 유혹은 참지 못했던 일을 밤이 되어서야 후회하곤 했다.


더불어서 유모차로 갈아타는 바람에 제약이 또 생겼다. 경사진 진입로가 필요하고, 유모차 한 두 대쯤 돌아다녀도 눈치 안 보일 정도로 매장이 엄청 커야 했다. 그래서 프랜차이즈만 전전하던 차였으나, 라떼만큼은 이 근방에서 ‘소소한 그날’이 제일 맛있어서 한 번씩 생각이 났다.


어차피 우산을 들고 다니니 유모차를 몰 일도 없고 해서, 아이를 아기띠로 몸에 딱 밀착시킨 채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비는 가랑비였고, 카페 가는 길에는 길빵맨 한 명을 제외하곤 위험요소도 없었다. 대체 길빵은 왜 하는 걸까? 추측하건대 담배를 피우면서 길을 걷는다든지, 운전할 때 깜빡이를 넣지 않는 등의 행위는 필시 지능 장애와 연관이 있다. 인과관계라든지 사회적 문맥 같은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니,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다.


 - - -


카페에 도착하자, 사장님께서 아이를 알아보셨다. “많이 컸네요!”라고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솔직히, 못 알아보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장님 말씀대로 아이는 엄청나게 쑥쑥 컸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이웃집 아이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유모차에 실려 있는 작은 아기였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때는 아이가 걷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조카는커녕 주위에 아기 있는 집에 놀러가 본 적도 없어서 아기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전혀 없었다. 지금이야 아기는 태어난 지 반 년이 지나면 체중이 두 배를 훌쩍 뛰어넘고, 1년이 지나면 살살 걸으며 말도 좀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때는 전혀 아니었다.


몇 년 씩이나 지난 것도 아닌데, 사람이 ‘못 걷는’ 수준에서 ‘걷는’ 수준으로 갑자기 점프업을 한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런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이 아이가 그 때 그 아이 맞나?’ 하고 인지부조화 비슷한 것을 느꼈다. 급기야는 집에 가서 남편에게 “이웃집은 아이가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신 것 같아……!”라고 얘기를 해버렸는데, 나중에 보니 역시나 그 ‘어린이’는 예전의 그 ‘아기’가 맞았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카페 사장님께서 한참 전에 보셨던 백일 아기를 못 알아보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방문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때는 배냇머리도 밀기 전이었다. 보통 사람이 헤어 스타일이 바뀌면 잘 못 알아보곤 하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어렵지 않으려나? 하지만 감사하게도 카페 사장님은 아이를 알아보셨고, 나는 이 집 라떼를 더 자주 마시고 싶어졌다.


 - - -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곱창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입구가 크지 않은 것으로 봐서, 배달만 하는 집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안쪽이 더 깊어서 넓으려나? 어느 쪽이든 간에, 오전 8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기에 곱창집 문은 당연히 닫혀 있었다. 어두컴컴해서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은 답을 알아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문득, ‘언제낙 남편이랑 이런 고깃집을 한 번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고깃집을 간 지가 한참 되었다. 임신하고 간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마저도 올해 1월 새해벽두부터는 눕눕 임산부 신세였으니 최소한 아홉 달은 더 된 일이었다.


고깃집이라든지 와인바라든지, 그런 저녁 장사 위주의 식당은 구조적(?)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아기를 저녁 7~8시 사이에 재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터넷에는 육퇴 후에 애만 놔두고 부부가 집 근처로 마실을 다녀온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글에는 엄청나게 많은 악플들이 달렸었지……. 아무튼 나는 정당성은 차치하고,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에 그런 모험은 하지 못하고 있다.


카페나 텐동집 같은 곳은 낮에 혼자 잠깐 다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저녁에 파스타 집에 가서 와인을 한 잔 하거나 이자까야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좀 달랐다. 혼술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술 그 자체가 아니라 남편과 수다 떨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아이 맡기고 남편이랑 이따금 외출 다녀오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다.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낮에 잠깐 다녀오는 쪽으로 생각했지, 저녁에 오셔서 밤 9시까지 딸의 아들을 좀 봐주십사 하기에는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언제쯤 그런 저녁 외출을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먼 미래의 일처럼만 느껴졌다. 듣기로는 적어도 돌 까지는 낮잠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자게 된다는데, 그렇다면 밤에 7~8시에 재우는 일도 쭉 이어지겠지? 어쨌든 저녁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도 되는 시점이 와야 가능할 일이었다. 한 때는 퇴근하면 남편이랑 밖에서 저녁을 사 먹고 오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당연했던 생활이 무척 오래전의 일이자 앞으로도 요원한 일처럼만 여겨졌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이 영원할 리는 없었다.


먼저 아이를 키운 부모들은 한결같이 ‘찰나’를 언급했다. 지나고 보면 돌 전까지의 아기 시절은 정말 찰나의 순간처럼 쌩하니 지나가버렸다고 말하곤 했다. 카페에서 돌아와 아이를 낮잠 재워 주면서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요즘에는 아이를 재워줄 때, 아이가 등 대고 자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면 일단 울고 보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잽싸게 쪽쪽이를 물려서 진정시켜 준다. 그리고 내가 인간 머미쿨쿨이라는 느낌으로 온 몸을 이용해 아이를 살포시 눌러준다. 내 볼로 아이 볼을, 내 가슴으로 아이 가슴과 배를 눌러준다. 동시에 양손으로 아이의 양손을 각각 잡아서 파닥파닥과 눈 혹은 뒷덜미 긁기를 방지한다.


한 5분 정도를 그 상태로 모기 소리만큼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으면 아이가 어느새 스르륵 잠들어 있었다. 그게 5분이 될 지, 15분이 될 지, 아니면 아예 실패로 끝날 지는 그때그떄 상황에 다르지만, 오늘은 운 좋게 3~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바로 가슴을 떼면 허전해서 깨기 때문에 아이가 숨을 열 번 호흡할 때까지는 기다려준다.


아이와 몸을 맞대고 작은 숨소리를 세고 있으니, 아이의 자그마한 심장 박동이 맞닿은 가슴으로 전해져왔다. 그러고 보면 이 작은 심장 소리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심초사했었던가? 임신했을 때는 초기, 중기, 막달을 불문하고 늘 초조해 했다. 초기에는 초음파 보러 가는 날이 아니면 아이의 안녕을 확인할 수 없어서, 또 막판에는 조산을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이 작은 심장이, 어른보다 빠른 템포로 팔딱팔딱 뛰는 귀여운 소리가, 나중에는 어른 심장만큼 커진단 말이지……? 지금은 내 손 안에 무슨 탁구공처럼 쏙 들어오는 작은 손도, 이 다음에 아이가 장성한 때가 오면 나보다도 더 커진단 말이지?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게 커다래진 시기가 대부분이고, 이토록 조그맣고 귀여운 기간은 아주 짧겠구나.


 - - -


오후에는 등 대고 재우기가 안 돼서, 결국 품에 안고 재웠다.


희한하게 오늘따라 안눕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한 10~15분 가만히 자다가 빼액 하고 깨버렸다. 그렇게 두어 번을 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안은 채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푹 재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선 채로 좀 안아서 흔들어주다가, 완전히 잠들었다 싶었을 때 살포시 앉아서 범퍼침대 벽면에 등을 기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 참에 아이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제인 구달의 회고록에서, 그녀는 침팬지들을 찾아다니느라 산봉우리 위에서 밀림을 살펴볼 때 딱히 책을 읽거나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신기해 했으나, 오히려 제인 구달은 그 시간에 만약 독서 같은 것을 했다면 침팬지와 자연에 대해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많이 놓쳤으리라고 얘기했다.


그러니 나도 잠시만 책을 손에서 떨어뜨려 놓고, 이 순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가만 살펴보니 이제 입면은 충분히 했으니까 공갈젖꼭지는 빼줘도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집 아기들은 보통 푹 잠들면 ‘퉤’ 하고 뱉어서 오히려 쪽쪽이 셔틀 때문에 고생이라는데, 루나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내버려두면 쪽쪽이가 그대로 입에 있어서 중이염이 걱정될 판이었다. 살그머니 쪽쪽이를 뽑았더니 그 상태로 입을 벌린 채 숨을 쉬었다.


조그만 입이 헤 벌어져서 귀여운 역삼각형이 생겼다. 그 입에서 새근새근 작은 숨이 내뱉어지며 내 얼굴에 살살 와 닿았다. 이토록 무방비한 상태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아기라니. 포근한 자기 침대도 아니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약간 엉거주춤 껴있는 자세였다. 그런데도 꿈까지 꾸고 있는지 눈꺼풀 아래에서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럴 때 운이 좋으면 잠꼬대로 미소 띠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번에는 친정 어머니께서 안아 재우고 계셨는데 아이가 난데없이 “히힛” 하면서 웃었다. 이런 잠꼬대 미소는 별똥별 같은 것이라서, 가만히 잘 지켜보고 있으면 어쩌다 한 번씩 볼 수 있었다.


감긴 눈에는 속눈썹이 가지런했고, 눈꼬리의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짱구처럼 통통한 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가슴과 맞닿은 작은 배는 호흡에 따라 조그맣게 부풀었다 내려갔다 했다. 또 내 허벅지 위에 앉혀진 짜리몽땅한 다리를 쭉 따라가면 ‘나중에 무게를 지탱하며 걸어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동통한 발이 있었다.


뭘 해도, 예컨대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자도 귀여워져버리는 아기가 문득 더 귀엽게 여겨졌다. 어른보다 체온이 살짝 높아서 따끈한 아기를 꼭 껴안고, 아무런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1시간 정도 끌어안은 채 낮잠만 재워주면 된다니.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또 있을까?


 - - -


이런 아기 시절은 아마 고작해야 3년 정도겠지.


만3세만 되어도 어린이집 다니면서 자기 할 말 다 하고 지낼 테고, 돌만 지나도 낮잠을 하루에 한 번 정도만 잔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진짜 아기아기한 시기는 돌 전까지의 1년 남짓 뿐이었다. 100세 시대를 감안하면 이 아이의 백 년 평생 중 딱 1년, 즉 1%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가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계산해봐도, 지금이 30대니까 아마 앞으로 70년 가량의 남은 인생 중에서 겨우 1년 뿐이었다. 70분의 1이라니! 그렇지만 아마 루나가 학교를 다니고 어른이 될 떄까지,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 아이를 볼 때면 이따금 지금의 아기 시절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동글동글하니 모든 게 자그마해서 정말 귀엽고, 할 줄 아는 말은 “음~ 멈멈머……”라든가 “카앙~!” 정도가 전부인 아기. 기저귀를 갈아줄 때면 볼록 솟은 배와 엉덩이가 귀엽고, 세워서 안아 들고 뒤통수를 손으로 받쳐주면 목이 한 줌밖에 되지 않아서 귀여운 아기. 바닥에 내려놓으면 금방 뒤집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딸랑이를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지금의 아기 시절을 말이다.


그런 상상을 하며, 품에 안겨 잠든 아이를 내려다봤다. 어쩌면 나는 언젠가 미래에, ‘그 때로 잠시만 돌아가보고 싶네……’ 하고 추억에 잠겨 있겠지? 분명 그런 때가 있을 거야. 지금이야 인내와 인내의 연속인 나날이지만, 미래의 나는 지금을 떠올리면 매일이 반짝였던 것처럼 귀하게 여겨지겠지.


먼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미래에서 잠시 타임슬립을 해서 현재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코 영원하지 못하지만 그 반짝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과거로 잠시 돌아가고파 하는, 미래의 내가 바랄 법한 소원이 이뤄진 것만 같았다.


그러자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애틋하게 느껴졌다. 마치 인생을 편의에 따라 조각내서, 내가 원할 때마다 시점을 골라 다니며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당길수도, 돌이킬 수도 없이, 그저 현재만을 주구장창 이어가며 사는 게 아니라, 미래와 현재를 골고루 나누어 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일었다.


원래는 등 대고 재웠더니 자꾸 깨길래 어쩔 수 없이 안아서 재우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 그런 게 아니게 되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의 내가 원해서 온 지금이었다. 아기 안고 조용한 방에서 책 읽고 싶다. 돌이켜보면 그 때 낮잠 재우던 시간이 참 평온하고 좋았는데. 안방 베란다 쪽에는 얇은 이불 한 장을 빨랫대에 걸어서 햇빛도 아늑한 색으로 비추어 들어왔고. ‘그 때로 잠시만 돌아가보고 싶다’라는 나의 소원이 기적처럼 이뤄져서, 정말 잠시 머물러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글동글한 얼굴, 작은 코, 작은 숨, 세상 모르게 벌어진 입, 꿈 속을 헤매고 있는 귀여운 눈. 그리고 품 안에는 따끈한 체온과 자그마한 몸이 안겨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잡을 수 없어 영원하지 못하다니. 현재에도 과거의 저편으로 속속 사라져가고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나 아쉬운 마음이 들다니. 미래의 나, 지금 이 장면을 정말 사랑했구나.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Andrik Lang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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