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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Sep 21. 2024

요리도 안 하면서 이유식을 만든다니

6개월 29일

‘깝치지 말고 그냥 시판 할까……?’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주기 시작했더니 설거지가 두 배로 늘어났다. 그것도 기존 설거지와는 다른, 이종의 설거지가 추가되었다. 구멍 하나하나를 닦아주어야 하는 큐브, 어른 밥도 안 지어먹다가 최근에 엄청 쓰기 시작한 밥솥, 날카로운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 도깨비 방망이 등등.


이번에는 양파, 사과, 배를 갈아서 큐브를 만들었다. 원래는 라구 소스를 만들고 싶어서 양파를 샀는데, 추석이 겹쳐서 운 좋게 사과와 배를 많이 얻어와서 과일 퓨레도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퍼기 밥솥 칸막이를 사두었기에 세 가지 식재료를 한 번에 밥솥에 넣고 찔 수 있었다. 그게 없었다면 사과 한 번 찌고, 배 한 번 찌고, 마지막으로 양파랑 사과, 배를 넣고 쪘겠지?


물론 양 조절에 실패한 탓에 뚜껑을 열고 보니 양파 쪽의 내용물이 사과 칸으로 일부 건너가 있기는 했다. 칸막이 자체가 설거지에 추가된 점도 있고……. 그래도 세 개를 따로 찌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실은 라구 소스를 만들고 싶었다. 듣자하니 밥태기가 온 아기들에게는 라구 소스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소고기에 토마토랑 양파, 그리고 당근이나 버섯 같은 야채들을 넣고 볶아내면 맛있는 소스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고기랑 토마토는 이미 냉동실에 10g씩 큐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양파랑 사과, 배 정도를 섞어서 따로 큐브로 만든 다음에 토마토, 소고기랑 같이 토핑에 올리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큐브를 만들고 있었는데, 어쩐지 요리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 떠올랐다. 그들은 레시피대로 하지 않는다. ‘박력분 50g을 사용하세요’라고 하면, ‘박력분 없는데 강력분으로 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밀가루는 체 치고, 달걀은 흰자만 넣으세요’라고 하면, ‘꼭 체를 쳐야 하나? 달걀도 그냥 노른자랑 같이 넣으면 안 되려나’ 하고 생각한댄다.


분명 라구 소스 레시피에서는 ‘소고기와 토마토, 양파 등을 프라이팬에 볶아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소고기랑 토마토랑 양파를 따로 만들면 정말 안 되는지, 그리고 볶을 때랑 찔 때랑 맛에 큰 차이가 있을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해버렸다. 예전에 소아과 선생님께서 엄마들이 “우리 애가 이유식을 거부해요”라고 할 때, 막상 먹어보면 맛이 없다고 했었는데. 남의 얘기가 아니려나?


 - - -


부분적 라구 소스라는 희한한 큐브의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남편은 아이에게 막수를 주고 있었다.


아이는 밥 먹을 때 장 운동이 활발해지는지, 예전부터 꼭 분유 먹을 때 응가를 했다. 어쩐지 오늘은 응가를 한 번도 안 했다 싶었는데, 막수 끝나고 트림 시키려니 이제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유만 먹던 때와는 달리 요즘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비교적 된똥이 나왔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예전보다 힘을 잔뜩 주면서 응가를 했다.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머스타드 소스 같은 묽은 응가였는데, 지금은 쑥떡 반죽 같달까?


아무튼 그래서 남편은 아이 트림을 시켜주다가 멈칫했다. 다행히 트림을 한 번 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아이가 한 번 힘을 줘서 “뽀로록” 소리가 나고 끝이 아니었다. 한참을 기다려야 응가가 나왔고, 두 세 번에 나눠서 응가를 했기 때문에 ‘이제 정말 끝인가?’ 하고 눈치를 잘 살펴야 했다.


“부인쓰, 루나 이제 응가 다 한 걸까?”

“글쎄.”


‘글쎄’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또다시 “윽, 끙……” 하면서 힘을 줬다.


“어떡하지?”

“한 5분 정도만 기다려줄까? 지금이 7시 18분이니까…….”

“그러게, 아직 힘 주고 있네.”

“하여간 우리 역할이 다양하네. 인간 라라스 베개, 인간 침대에 이어서, 인간 변기까지.”


 - - -


이유식 만들기 시작하면서, 아이 돌보는 일을 친정 어머니와 남편에게 많이 부탁하게 됐다.


특히 친정 어머니께 더 그랬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매일 오후에 4시간 정도 머무르시면서 육아와 가사를 도와주셨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와 놀아주거나 칭얼댈 때 업고 다니는 일을 되도록이면 내가 주로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게 바뀌어서, 웬만하면 친정 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고 내가 설거지나 빨래 돌리는 일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이유식 시작하면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맞는 이야기였다. 이유식은 재료를 사다가 찌고 갈고 큐브에 덜고 해야 하는데, 그 앞뒤로 큐브 틀을 미리 준비한다든지 소분해서 이름표 붙이고 냉동실에 넣는다든지 하는 일까지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그러려면 앞서 큐브 틀에 냉동시킨 재료를 빼내서 설거지한 다음, 실리콘은 스팀 소독기에, 뚜껑은 UV 소독기에 넣고 돌리는 일이 또 필요하고…….


단순히 젖병을 씻거나 아기 빨래를 돌리는 일이라면 몰라도, 이유식을 만들고 뒷정리를 하는 일들은 친정 어머니께 부탁하기가 좀 난감했다. 예컨대 “냉동실에 소고기 큐브 만들어놓은 것 있는데, 그거 꺼내서 락앤락에 담고 이름표 붙여서 냉동실에 다시 넣은 다음에, 청경채 다 삶아지면 도깨비 방망이로 갈아서 큐브 틀에 10g씩 소분해줘……” 따위의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유식을 만들다가 중간중간 설거지 같은 집안일들을 했고, 그러다 보면 아이와 놀아주거나 아이가 보챌 때 달래주는 일은 친정 어머니와 남편의 몫으로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7개월에 돌입하는 이 아기의 몸무게는 이미 8kg에 육박했다. 단순히 안아 올리기만 하는 데에도 체력 소모가 커졌다.


또 예전이랑은 다르게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금방 뒤집어서 알집 매트를 온통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기 혼자 돌아다니다가 롤링 실로폰이나 아기 체육관의 플라스틱 받침에 머리를 찧을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기로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이유식을 직접 만드는 게 좋을까? 어쩐지 의도치 않게 고강도 육아를 나몰라라 하는 기분이 들어서 찜찜한걸…….


 - - -


시판 이유식 업체 홈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확실히 식단표가 좀 더 체계적이었다. 하루에 150g 짜리 이유식을 두 병씩 매일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고기가 매 끼니 들어가 있었고, <삐뽀삐뽀 119>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선식같이 가루로 된 이유식’도 아니었다. 만약 아직 한 끼에 150g을 먹지 못하는 아기라면, 유리병에 담긴 죽을 따로 소분해서 냉장고에 하루이틀 보관했다가 먹이는 방법도 가능했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만큼 식재료도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새송이버섯이 들어간 소고기죽, 또 어느 날은 아기가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닭백숙, 이런 식으로 매일 다른 메뉴가 제공되었다. 집에서 이렇게 식단을 꾸리려면 어림도 없었다. 새송이버섯 한 팩 사면 큐브가 열 개는 족히 넘게 나올 텐데, 그걸 보름 내로 다 쓰려면 매 끼니마다 소고기 버섯죽을 먹여야겠지.


하지만 아무리 다양하게 구성된다고 해도, 그 한 병을 아이가 다 먹지는 못할 것 같았다. 요즘 루나는 겨우 한 끼에 50~60g 먹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맨날 밍밍한 죽만 줘서 그런가? 하긴 나도 소고기 청경채 토마토 죽 같은 것을 식사로 삼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요리 실력의 엄마를 둔 것은 루나의 운명인걸…….


 - - -


아무튼 한 병에 3,500원에서 5,000원씩 하는 이유식을 아이가 남긴다면 아까운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아무리 소분한다고 해도, 그 소분한 것을 일주일에 걸쳐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다양한 종류를 먹이는 것’의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150g의 소고기 버섯죽을 사흘 내리 쭉 주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메뉴를 사흘 내리 주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청경채 사다가 갈아서 적당히 덜어 먹이는 편이 나아 보였다. 청경채 간 것을 남기는 게, 돈 주고 산 이유식 한 병을 남기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덜 불편할 것 같았다. 쌀죽이야 말할 것도 없이 집에서 만드는 게 훨씬 싸고. 아이 먹는 일에서 너무 가성비만 따지나 싶기도 한데, 그래도 우리집이 무슨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부잣집 같은 것도 아니니까.


물론 그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기껏 재료 사다가 갈고 찌고 해서 큐브 만들었더니 다 남기는 것보다, 그냥 마음 편하게 배달시킨 죽을 남기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는 말이었다. 역시 뭐든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법이었다.


그리고 재료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껏 평생 안 다뤄본 식재료들을 하나둘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양배추는 돈까스 집이나 이삭 토스트에서 채 썰어놓은 것만 먹어봐서, 그 한 통을 어떻게 사다가 조리할 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었다. 아니, 조리는 둘째치고 씻는 방법부터가 궁금했다. 생기기는 배추처럼 생겨서 흐르는 물에 한잎 한잎 씻어줘야 할 것 같은데, 안쪽까지 벌레가 들어가기는 힘들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진짜인가?


덕분에 양배추는 물론이고 브로콜리, 오트밀, 단호박처럼 생전 처음으로 다양한 원물의 식재료들을 다뤄보게 되었다. 게다가 조리법에 있어서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두부를 면포에 넣고 물기를 꼭 짜 준다든지, 과일을 쪄서 갈아내어 퓨레로 만든다든지.


그나저나 레시피책에서 얘기한대로, 두부를 면포에 담아서 짜내면 정말 물기가 쪽 빠졌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면포에 두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떼내기가 애매해졌다. 레시피책에서 이런 것도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쩐지 블로거들은 컵 위에 면포 얹고 두부를 한동안 올려두는 방식으로 물을 짜내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흐르는 물에 천을 씻으면서, 아기가 토한 손수건을 애벌빨래 하던 게 데자뷰처럼 떠올랐다. 대체 하루에 애벌빨래를 몇 번 하는 걸까?


어쨌든 정말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프라이팬에 고깃덩이 굽는 것 정도가 요리의 최대치였울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 시간에 육아를 다른 가족들에게 맡기는, 혹은 체감적으로는 ‘떠넘기는’ 데에 합당한 이유가 될까? 아무래도 그런 새로운 경험 따위를 이유로 삼으려 든다면, 그것은 정말 내 욕심이다.


 - - -


카페에 가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나, 엊그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무슨 생각?”

“그냥 /시판 이유식 해야 하나, 하고.”

“음…….”


아이는 유모차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백색소음기가 없어서 유튜브로 청소기 소리를 작게나마 틀어주었다. 귀가 무척 밝은 사람이라면 이 소리가 들리겠지만, 커피를 즐길 때는 백색소음보다 아기 울음소리가 훨씬 더 거슬릴(?)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교외 카페 나들이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임신했을 때, 출산 사흘 전쯤에 구리의 한 카페에 갔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가 만6개월이 되었으니, 그로부터 최소 여섯 달이 지난 셈이다. 정확히는 내일모레면 만7개월이니까, 반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이제는 카페에 와서도 회사 일이라든지 여행 계획 같은 이야기보다는 육아 얘기를 했다.


“힘들면 시판 이유식으로 해도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확실히 간을 좀 넣긴 할 거야.”

“그렇지? 소금 이런거 은근히 많이 쳐가지구.”

“건강은 둘째치고, 어쨌든 애기들이 잘 먹어야 많이 팔릴 테니까. 간을 해야 맛있을 테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 같아도 소금의 짭짤함과 참기름의 고소함 등 온갖 조미료의 힘을 동원해서잔뜩 풍미를 끌어올릴 것 같았다. 내가 간을 안 한대도 다른 업체들이 할 것이고, 결국에는 선택 받는 제조사들만이 살아남겠지.


 - - -


집에 와서는 오늘치의 집안일을 했다. 얼마 안 가서 어젯밤 밤중깸의 여파로 인한 피로가 몰려왔다. 알집 매트에 대자로 뻗어서 낮잠을 청하며, 남편에게는 아이 데리고 마실 겸 마트에 가서 홍두깨살을 좀 사달라고 부탁했다. 어제는 내가 당번이었으니 이 정도의 뻔뻔함은 괜찮겠지. 어쨌든 내가 안방에서 당번을 선 덕분에 남편은 끝방에서 꿀잠을 잤고, 덕분에 공멸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한숨 자고 나니, 남편이 소고기를 사들고 돌아왔다. 아이는 좀 놀다가 이내 피곤해졌는지 칭얼댔다. 남편이 아이를 재우러 간 사이, 홍두깨살을 밥솥에 면포를 깔고 물과 함께 담아서 고압찜으로 쪄내기 시작했다.


고기가 익어가는 사이에는 어제 만들었던 큐브를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어제 사과와 배, 양파를 잔뜩 쪄내느라 집에 있던 10g, 25g짜리 큐브 틀 두 개씩을 전부 소진해버렸다. 지금 비워내서 틀을 설거지하고 소독까지 마쳐놓지 않으면, 이따가 기껏 쪄낸 고기를 소분할 곳이 없어져버렸다.


시간이 지나 밥솥을 열자, 다행히 소고기는 어느 한 군데도 눌어붙지 않고 잘 익어 있었다. 대신에 이번에는 소고기 대신 면포가 잔뜩 검댕을 묻히고 있었다. 게다가 면포의 실오라기들이 소고기 조각 군데군데에 붙어 있어서 하나씩 떼내는 작업이 추가되었다. 나중에 면포는 세제 팍팍 뿌려서 빨아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소생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만 얼마 하는 소고기 대신에 면포가 희생되었으니 이 정도면 수지 맞는 장사인가…….


 - - -


그런데 이번에는 도깨비 방망이가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분유포트에서 물을 받아다가 고기를 갈아봐도, 물에 잠기지 않은 위쪽의 고깃덩이부터 갈아보려고 시도하는 도깨비 방망이로서는 고난이도 업무였다. 역시 고기를 한꺼번에 넣고 갈아버리는 게 아니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세 덩어리씩만 가지고 물 좀 부어서 차례차례 갈을 걸.


그런데 이렇게 간 소고기를 바로 큐브에 소분할 수가 없었다. 아까 전에 큐브 틀을 비워내다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 큐브들은 전날 저녁에 냉동실에 넣어놨으니 당연히 꽝꽝 얼어있을 줄 알았는데, 큐브를 쏙쏙 빼내면서 보니까 살짝 미적지근하게 얼어 있었다. 심지어 사과 퓨레 큐브는 절반 정도 큐브를 빼냈을 때 보니, 여전히 실리콘 틀에 퓨레가 너저분하게 붙어 있었다. 어쩐지 배랑 양파 꺼낼 때 평소에 다른 큐브들 뽑아내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빠지더니, 결국 덜 얼어서 그랬구나.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어제 배 퓨레를 실리콘 틀에 소분하다 보니, 큐브틀이 조금 부족했었다. 그래서 양파+배+사과 큐브를 붓던 틀에서 남은 칸에 배 퓨레도 부어놓고, 해당 큐브틀에는 ‘배 (15g)’과 ‘양파+배+사과 (15g)’이라는 표딱지를 나란히 붙여두었다. 그런데 막상 다 얼고 나서 열어보니까 둘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분명 색깔이든 뭐든 차이가 나리라고 생각했지만, 양파든 배든 익히면 갈색으로 투명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혹시나 하고 냄새를 맡아봤지만, 이미 하나의 틀에서 밤새 함께한 큐브들이라 구분이 불가능했다. 이걸 어쩐담? 어쩌기는……. 이제 아이는 랜덤으로 배 큐브 4개를 양파 큐브 대신에 먹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인가? 양파보다는 배가 더 달콤하니까…….


그렇게 배와 양파 큐브를 일부 빼낸 다음, 사과 큐브는 절반만 빼놓고 냉동실에 다시 돌려보냈다. 애석하게도 소고기 페이스트를 담아야 할 10g짜리 큐브틀이 바로 그 되돌아간 양파와 사과의 차지였다. 그래서 소고기의 소분은 내일로 미루고, 일단 오늘은 갈아서 락앤락에만 담아두었다.


그래도 소고기 작업이 끝난 다음에는 조금 궁금해서 냉동실을 다시 한 번 열어봤다. 사과 큐브 빼낸 것들이 락앤락 통 안에서 서로 엉겨붙어 있었다. 사과 큐브들, 정말로 덜 얼어있었구나. 이를 어쩐담? 녹였다가 다시 얼릴 수도 없고. 어쩌기는, 그냥 언젠가 10g 대신에 20g, 30g씩 사과를 주는 수밖에. 그래도 몽땅 망치지는 않았으니 이 정도면 희망적이지 않을까?


후우. 정말 깝치지 말고 그냥 시판 해야 하는 걸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Alyson McP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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