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외웠던 속담 중에, 인생을 살아볼수록 ‘와 진짜 잘 지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말들이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빈 수레’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왜 빈 수레가 요란하지?’라고 의아해했다. 그러다 회사에서 구루마(끌차)에 물건을 실어 날라 보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우편물이나 문서를 잔뜩 실은 구루마는 묵직하게 끌린다. 반면에 짐을 모두 내려놓고 정리함으로 도로 가져다 놓을 때는 천둥이 따로 없다. ‘와당탕탕탕!’ 하는 소리 때문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회사에서도 빈 수레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묵직한 수레 같은 사람도 있다. 묵직한 사람들은 허투루 이야기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아랫사람들도 세심하게 챙겨주고, 지나간 자리를 살펴보면 땀이 촘촘한 바느질처럼 일이 말끔하게 되어 있다.
요란뻑적한 사람들은 완전히 딴판이다. 쉬운 표현보다는 외래어를 많이 쓰고, 알쏭달쏭한 추상적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서 들이민다. 사람을 대할 때도 진정성보다는 ‘관계 형성에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속셈을 가지고 평가부터 시작한다. 득이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찰싹 달라붙으며, 아니다 싶으면 아무렇게나 대한다.
그런데 그게 다 눈에 보이다 보니, ‘대체 일은 어떻게 하는 걸까?’ 하고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순살 아파트’ 모양새다. 자칫하면 붕괴할 듯이 철근도 엉성하고, 흘끗 둘러만 봐도 여기저기 누수가 벌써 눈에 띈다. 하지만 책임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돌려놓은 상태로, 정작 본인은 또 다른 부실 공사로써 한탕 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 있다.
옛날이야기대로라면 그런 사람들은 금세 탄로 나서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 권선징악은 늦게 찾아오는 것 같다. 개인적인 관찰담(?)으로는, 악인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승승장구하며 비참한 말로는 대개 나이 쉰은 넘어야 맞닥뜨리는 것 같다. 예컨대 차라리 알아서 제 발로 나가는 편이 그나마 가장 명예로울 정도로 궁지에 몰리거나, 아니면 끝내 해고를 당하거나, 그런 경우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건 정말 나중의 일이었다.
‘현실은 동화보다 부당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 수레’ 같은 삶이 부럽지는 않다.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리 인생이 잘 나간다고 해도 그것이 악행과 허위로 빚어졌다는 사실을 하늘이 알고 내가 알 텐데. 사이코패스나 윤리의식이 단단히 잘못된 사람 (혹은, 얼간이?) 같은 게 아니고서야, 그 모양으로 쌓아 올려진 본인의 삶을 바라보며 마음 편하게 행복할 수 있을까?악인은 악인대로 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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