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대 사람

by 구의동 에밀리

일을 할 때는 개인적인 감정은 빼야 한다고 들었다.

흔히들 공과 사를 명확히 해야 프로페셔널이라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도 바로 ‘우는 직장인’을 타박하는 장면이다. 예컨대 주변 인물 중 누군가가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운다고 해결되지 않아.”

혹은 이렇게도 말한다.

“정신 차려. 여기는 회사야.”

주인공들은 보통 이 대목에서 각성한다. 그러고는 강인한 프로가 돼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소위 공과 사를 명확히 하는 선배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선배들은 회사에서는 절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 얘기뿐이다. 집이나 가족 이야기, 혹은 몽상 같은 것은 대화 주제로 오르는 법이 없다.

그런데 회사에 다닐수록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한 명만 가질지 아니면 둘째도 가질지 고민했던 얘기부터, 본인을 야망가로 포장하기보다는 “우리 같은 직원 나부랭이 미물들은~” 하면서 한껏 낮춰 이르는 것까지 인간미가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

대학생 때 다른 회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기억난다. 건너편 영업 부서 분이랑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고객이랑 친해지는 게 중요해. 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때도 고객을 집으로 초대해서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난 왠지 그런 게 적성에 맞아서 괜찮은 편이야.”

문득 두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 정도 인싸력을 가지려면 대체 어떤 천성을 타고나야 하는 걸까? 그리고 고객은 그 저녁 자리가 정말로 재미있었을까? 나라면 휴일까지 접대받는 느낌이라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왠지 그 고객이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일로 만난 사이라고 해도 상대방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고 점차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와의 관계가 갑과 을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미만 철철 흘러넘치고 일은 죽어라고 못한다면(혹은 안 한다면) 조금 곤란하다.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후자를 커버하는 경우는 여태껏 본 적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에피소드를 가만히 지켜보면, 역시 대체로 무능보다는 인격 상실과 관련된 일화가 많다. 신경질적이거나 무책임하다고 비난받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착한 바보’라며 손가락질받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공과 사를 분명히 해라’ 소리를 들었으면서, 결국에는 사적인 판단과 감정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회사 생활에서 드러나게 된다니.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다고 치면, 결국 내가 비교적 컨트롤할 수 있는 쪽은 업무 역량인 걸까? 문득 왠지 발가벗은 채 회사에 다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튼 그럼 최선을 다해서 일이라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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