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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는 이 없는 글

by 구의동 에밀리

눈을 떴다.


향긋한 바다 냄새도, 살랑이는 바람 소리도 없는 이 방은 현실이다. 오로지 매앰- 매앰- 소리만이 시끄럽다.


후덥지근한 이불을 걷어내고 나갈 준비를 한다. 속다래끼가 난 눈, 옅은 화장, 출근용 비즈니스 캐주얼. 구두 아닌 운동화를 신는다, 나는 지하철을 타니까.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이려고 반지 두 개를 낀다, 밖을 나선다. 과연 가방에 담은 책을 출근길에 읽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 때문에 무겁고 큰 가방, 이걸 가지고 나가면 뭐가 다를까?


차라리 작고 예쁜 핸드백, 인스타그램에 올릴 법한 멋진 자동차, 그런 게 내게 더 필요한 걸까.


계산기, 엑셀, 숫자와 키보드, 갖은 문구들, 영어로 된 수식들……. 왠지 멋져서 좋아라 끼고 다녔던 BA II Plus 재무계산기도, 케이스를 열자마자 질려 버렸다.


- 하우스가 너무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하우스 할 생각에 신나고, 죽을 때 까지도 하우스 하다가 죽을 거에요.


- 스폰 받으면서 타면 보드 비용 부담이 덜해서 확실히 실력도 늘긴 해요. 그치만 오히려 스폰 받는다는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하긴 하죠. 그 누나는 지금 회사 휴직하고 모델로서 일하는 걸로 알고 있긴 한데.


좋아서 하는 일의 댓가를 잘 모른다. 자칫하면 돈이 궁해진다는 정도?


얼마 전에 기사를 읽었다. 문학 예술인들 1년 평균 수입이 몇백 만 원 한다고 했다. 잠깐,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 잘못 읽었나 싶어서 다시 짚어보기도 했다. 1년 평균 수입이 내 월급 만하다니. 나는 월급이 연봉이 되어버려도 상관 없을까?


로스쿨을 가서 법조인을 하든, 글 쓰는 일이 재밌어서 글을 쓰든, 보딩이 좋아서 퇴근하자마자 맨날 보드만 타든, 아니면 춤 연습을 미친 듯이 맨날 하든, 요가를 새로 배워서 눈을 뜨건. 마음을 드디어 놓고 아 이대로 살면 되겠구나 싶을 날은 언제 올까?


오늘도 보딩을 하면서 느꼈다. 나는 천재적인 실력을 어디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새로 스텝을 배우면 남들이랑 비슷하게 휘청거리면서 연습한다. 글쓰는 작업도 그렇고, 회사에서 하는 잡무 성격이 강한 각종 일들도 그렇고, 어딘가 엉성한 것이 꼭 다른 사람들 비슷하다. 어떤 때는 더 잘하고 어떤 때는 더 못한 것을 보면 정말인지 꼭 평타 수준이다. 공부에 있어서도 얼마 전에 사수에게 혼잣말 비슷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정말인지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똑똑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사수는 "도대체 넌 기준이 어느 정도냐"고 어이 없는 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따 놓는 자격증들은 내가 아는 천재 친구들처럼 슥슥 책 넘겨가며 휙 딴 게 아니라, 들어가지도 않는 내용들 머리에 구겨 넣으면서 딴 것이란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드도, 친구 만나기도, 글쓰기도 미뤄서 간신히 이어갔던 지겨운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 놈의 수식들, 계산기, 영어로 된 설명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인정해야 할 것은 본인에게 있을 지도 모르는 천재성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책이나 신문에서 읽히는 천재성이?'라는 가냘픈 희망을 버리고 본인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천재성을 채굴하고 입증하려 남들보다 아주 월등한 탁월함을 추구하기란 숨막혔으니까. 숙련된 탁월함은 힘드니까…… 그나마 내게 가능성 있어 보이는 방법이란, 숨도 참아가면서 빨리 일반의 단계까지라도 도달하는 일 정도였다. 고급 인력이 되는 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빨리 자격증이라도, 빨리 취업, 빨리 인턴 여러개, 빨리…….


삶에서 여유를 될 수 있으면 제거하면서 살다가,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별로 없었나 싶었다. 함께 지낼 시간도, 마음 한 켠도, 나눌 대화도. 덜컥 겁도 났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읽다가 생전(生前) 장례식 부분을 보며 내 마지막에 대한 상상이 두려웠다. 사랑하고 함께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다던데, 내게는 그럴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어쩌면 애초에 유시민같은 연예인급, 슈퍼스타급 사람에 똑같이 비교하는 것 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까.


내게는 내게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여가와, 휴식과, 일과, 친구가 필요하다. 더 많은 돈, 더 멋진 휴양지, 더 그럴싸한 술집. '더 더 더'를 강박적으로 갈망할수록 오히려 갈증은 심해졌다.


그러나 궁금했다.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돈 뿐 아니라 본인의 한계, 밑천이 드러나는 재능, 인정 받지 못하는 시기의 절망, 그런 불안한 시기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남들과의 비교에서 '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가치관도, 본인의 현위치를 체크하고 더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니. 그래도 자신의 활동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때 남은 동력이라고는 '내가 좋아서 한다' 뿐 일텐데,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리면 그 '좋다'는 감정조차도 사라져버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할 수 있는 건 뭘까. 이것이 내 정체성의 큰 부분이다 라는 절박함 혹은 순수함? 사명감?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계속해야 한다는?


글을 쓰기 위해서 시작한 일들. 자신을 녹차 티백인 양 우려내서 좋은 글 한 잔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자 견문을 넓히겠다고 뛰어든 생활들. 그러나, 아아, 나는 외면 받는 글을 쓰면서 혼잣말같은 일기나 적는 나를 버틸 수가 없었다. 글은 사라지고 일들만 남은 나날. 너무도 힘든 시기를 거쳤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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