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 날도 평범한 날이었어요
왈칵, 쏟아붓기 전까진 -
저는 2,500원을 주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라고
공손하게 주문했어요
노란 은행잎이 하늘에 눈부시고
참새는 노래하는,
오월도 아닌데 나비가 날아다니는
눈부신 거리를 걸어왔어요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스테인리스가 차가운 유리문을 밀어
사무실로 들어갔어요
층층이, 층층이 있었어요
그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꿋꿋이 들어가 좁은 책상에 앉겠다고
여느 때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참, 그거 아시나요
가장 벗어나기 힘든 덫은
내가 파고든 인파 속이라는 것을?
회색 책상에 아메리카노를 내려두었어요
모든게 잿빛인데 오직 커피 향만이 지켜줬어요
그 속엔 은행나무도 있고,
창밖에 서성이는 참새의 짹짹 소리도,
오월도 아닌데 저와 마주쳤던 나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전화를 몇 통 받고
서류를 급히 뒤적여 자료를 찾았고
컴퓨터 모니터와 벽에 붙은 표를 번갈아 체크했고
펜을 들어 자료뭉치 하나를 집으려 했을 때-
팟!
아메리카노는 책상 옆 바닥에 엎어졌어요
쓰레기가 되어 버렸어요,
더러운 얼룩이 되었어요,
나의 불쌍한 아메리카노는...
따뜻한 향이 몽실몽실 사무실에 퍼졌어요
그 안에는 은행나무도 있었고
참새 소리도 있었고
팔랑이는 나비도 있었어요
공손히 받아들었던
소중하고 불쌍한 나의
은행나무와
참새와
나비야
커피 향은 지워낼 수도 없이 하루종일 저를 맴돌았어요
그건 더 이상 향기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 냄새에 머리가 아팠어요
도망치고 싶었어요
넌 오늘이 얼룩졌어
넌 오늘을 얼룩졌어
네 오늘은 얼룩졌어
냄새가 제 머리채를 잡고 도저히 놓아주지 않은 탓에
너무 괴로워 왈칵 눈물을 쏟았어요
매우 평범한 날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