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 6일
40주를 채워야 '만출'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제 30주차니 한 3/4 정도 다가왔다.
이 시기에 자궁경부 길이는 3~3.5cm 이상이어야 안전하고, 2.5cm 미만이면 위험하다고 한다. 나는 오늘 병원에서 측정해보니 1.7cm였다. 이런 케이스는 40%의 경우가 조산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60%에 들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쩌면 이 기록이 나중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서, 눕눕 생활의 작은 단면(?)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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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눕눕생활의 시작
꾸준히 올리던 블로그 포스팅을 이제는 누워서 쓰기 시작했다.
앉거나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큰 혜택인 줄은 몰랐다. 앉을 수 없으니 책상에서 그 동안 하던 모든 일들을 할 수 없게 됐다. 노트북을 쓸 수도 없고, 타이핑을 할 수도, 심지어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할 수도 없었다.
걸어다닐 수 없으니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원래 계획은 휴직하는 동안에 성수동 카페 도장깨기라도 하려고 했는데, 절대적인 침상 안정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서 요가나 베이킹을 하는 것조차 물거품이 되었다.
방법이 없을지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봤다. 눕눕생활하는 고위험 임산부들이 꽤 많았다. 자궁경부에 무게가 쏠리지 않으려면 누워 있는 수밖에 없었다. 자궁 수축마저 심한 사람들은 최소 2~3일, 길게는 몇 주씩 입원을 하며 수액이나 혹은 라보파 같은 수축억제제를 맞았다. 그리고 대부분 넷플릭스를 보며 지루함을 견뎠다.
40주까지 채우려면 10주가 남았는데, 두 세 달을 누워서 넷플릭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루 세 시간 정도는 그렇게 살 수 있겠지만, 매일 10시간 넘게 '시청'만 하는 생활은 좀 힘들어 보였다. 그랬다가는 정말로 폐인이 되고 말 거야.
눕눕생활의 꿀팁은 디스크 환자들로부터 얻었다. 처지가 비슷했다. 누워서 지내야 하는데 일은 해야겠고. 침대에 눕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쓸 수 있는 노트북 받침대부터 모니터 암 같은 쇼핑몰 리뷰에는 늘 디스크 환자들이 있었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어떻게 쓰는지는 블로그에 사진까지 첨부해가며 친절하게 작성된 포스팅들이 많아서 참고가 되었다.
# 첫 번째 시도: 노트북 거치대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에 검색해보니, 침대에 누워서 쓸 수 있는 노트북 거치대들이 많았다. 가격도 5만원 언더면 괜찮은 것 같고 해서 사봤다.
분명 각도상으로는 노트북이 금방 미끄러질 것 같은데, 막상 써보니까 희한하게도 노트북이 얼굴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타이핑을 하려면 어차피 손을 키보드에 하므로 지지대 역할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손을 떼기만 하면 노트북이 얼굴 쪽으로 기울어지려고 했다. 그래서 요가 매트를 묶어두던 고무 밴드로 노트북을 거치대에 묶어봤다.
하지만 그랬더니 이제는 무게 중심 맞추기가 어려웠다. 아예 거치대 자체가 얼굴로 기울어질 판이었다.
그래서 거치대를 얼굴에서 멀리 기울여 두었더니, 고개를 아래로 많이 숙여야 화면이 보였다. 으으, 목이 너무 아팠다.
그런 와중에 타이핑까지 원활하게 하려면 거치대가 배 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어깨 높이로 들거나 팔꿈치를 공중에 띄운 채로 주구장창 타이핑을 할 수도 없었다.
패스패스.
# 두 번째 시도: 자바라 태블릿 거치대
노트북 거치가 어려우면, 태블릿을 거치해 볼까.
예전에 샀던 자바라 태블릿 거치대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태블릿을 걸었더니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아무래도 이건 태블릿이 바닥면을 바라보도록 설치할 수도 있게 설계된 제품은 아닌 것 같았다.
또 패스패스.
# 세 번째 시도: 옆으로?
몸을 옆으로 뉘이고, 노트북도 옆으로 세워봤다.
타이핑을 할 때마다 노트북이 흔들렸다. 후.
# 눕눕생활자의 데스크 세팅
머리를 굴린 끝에, 결국에는 이런 조합으로 데스크 세팅을 만들었다.
1) TeamViewer: 노트북의 화면을 태블릿에 띄워주는 원격제어용 무료 소프트웨어. 이 프로그램을 노트북과 태블릿 양쪽에 설치해 준다.
2) 노트북: 침대 옆에 얌전히 클램쉘 모드로 놔둔다.
3) 키보드: 노트북에 연결한다. 타이핑할 때는 배 위에 쿠션 하나를 얹어서 그 위에 키보드를 뒀다.
4) 모니터: 노트북과 연결된 태블릿을 모니터로 활용한다. 거치대는 태블릿 전용 거치대를 사용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막상 노트북은 많이 활용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쓸 때는 완전히 휴직에 들어가기 전까지 회사 업무를 보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후로는 대체로 스피커를 연결해서 클램쉘 모드로 음악 재생 장치처럼 쓰는 게 고작이었다. 눕눕생활을 풍요롭게(?) 누리기 위해서 노트북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취미생활이었던 블로그는 누워서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해 받아쓰기를 시키는 방식으로 포스팅을 작성했다. 책을 읽을 때는 전자책을 다운받아서 전자책 단말기나 태블릿으로 봤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이 참에 게 임이나 실컷 하는 데에 사용했다. 정말 후회 없는 즐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