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주 4일
오늘은 일주일 만에 병원을 다녀왔다.
건국대학교병원으로 부모님께서 나를 차로 실어다 주셨다. 이번에도 평일 아침 9시 반쯤으로 예약을 잡아 두어서 그런지, 병원에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오늘도 초음파를 봤는데, 여기에 추가로 태동 검사를 한 다음에 진료를 받았다.
이제 배 초음파를 봤을 때는 아이의 머리부터 몸통, 다리, 발가락까지 하나하나 다 보였다. 신기했다. 맨 처음에 임신테스트기 결과를 보고 나서 산부인과에 들렀을 때는 ‘쩜’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다 됐다.
“어이고, 씰룩씰룩 하네요. 여기가 몸통이에요. 지금 호흡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고 나서는 질 초음파로 자궁경부 길이를 쟀다. 예전에는 초음파로 아이 모습을 보는 게 제일 궁금했는데, 이제 나의 초유의 관심사는 경부 길이다……!
“음. 짧게는 0.8~0.9cm 정도 나오네요.”
두둥! 지난번에는 1.3cm 정도 나왔고, 일주일 후에 그대로 유지가 되는지 보자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게 근육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보시다시피 길 때는 1.3cm까지도 가요. 하지만 짧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0.8cm 정도로 짧아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 번 측정해서 제일 짧은 걸 기준으로 해요.”
어느 틈에 0.4cm나 훅 깎인 걸까? 맨날 누워만 지냈는데 또 짧아져서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면…… 입원하라고 하실까요?”
“음, 글쎄요. 교수님께서 보통 입원해야 할 것 같으면 미리 얘기를 주시거나 하시거든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에서. 그런데 지난번에 말씀이 없었으니까, 아마 입원은 안 하지 않으실까 싶은데……”
“아. 그럼 한 번 말씀을 들어봐야겠네요.”
“네네. 그런데 입원을 해도 어차피 누워있는 건 거의 비슷해서……. 단지 집에 있으면 화장실이라도 더 들락날락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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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 검사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서 받았다.
“태동이 있을 때마다 버튼을 눌러 주세요.”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이 말을 남기고 다른 환자 분들을 보러 가셨다. 그런데 그 사이 잠에서 깼는지 아이가 계속 움직였다. 거의 쉬지 않고 움직였다.
‘지금 또 눌러야 되나? 아니면 좀 잠잠해지고 다음에 움직이기 시작할 때 눌러야 되나?’
그 와중에 배도 간간히 뭉쳤다. 자궁 수축이 있을 때마다 긴장이 됐다. 경부 길이가 짧더라도 수축만 없으면 괜찮다는 말도 있던데. 배가 뭉칠 때마다 ‘이러다 입원하게 되면 어떡하지’, ‘뜻밖에 오늘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하게 되려나?’ 하고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리클라이너 소파도 편하고 내 주위를 벽처럼 둘러싼 커튼도 아늑한 기분이 들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나도 아이도 같이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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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 검사가 끝난 다음에는 대기실에 잠시 머물다가 진료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수축이 좀 있긴 하네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여기 크게 한 번이 있고, 작거나 길게 있는 수축이 간헐적으로 있고요. 그런데 규칙적으로 있지는 않아요.”
다행이다. 이 시기에 어느 정도의 배뭉침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들었는데, 이상이 있는 정도는 아닌가 보다.
“아기는 주수대로 잘 크고 있구요. 일부 이제 주수보다 1~2주 정도 빠른 것도 있긴 한데, 몸무게는 평균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초음파 사진도……. 허허, 발가락이네요.”
진지하게 의사 선생님과 머리 둘레나 몸무게 등을 같이 보고 있다가, 발바닥이 떡하니 찍힌 사진이 등장했다. 종종 이런 귀여운 에피소드도 생기는 게 산부인과의 특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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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 길이가 1cm 미만이라서 자칫하면 입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교수님께서는 2주 후에 다시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의 목표는 ‘3주 플러스 알파’를 버티는 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원래 다니시던 병원 가셔서 분만하셔도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32주니까, +3주면 35주였다. SC산부인과에서도 “아마 교수님께서 36주까지 봐주시고 그 다음에 다시 전원을 말씀하실 거예요”라고 하셨는데, 딱 그 정도 기간이었다.
”만약 다음 진료 전에, 5~10분 간격의 규칙적인 수축이나 출혈, 양수 터짐, 이 세 가지 중 하나의 이벤트가 생기면 오세요.”
“그런데 교수님, 이번에 0.9cm이고 일주일 사이에 0.4cm가 없어졌으니까……. 2주 후면 빵이 되지 않나요?”
“하하……. 그럼 1.5주 후에 보실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교수님이었어도 딱히 뭘 하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다. 30주도 넘었겠다, 이제 애가 나오면 낳는 거지 뭐.
인터넷에 보니까 20주 대에 이미 경부 길이가 1cm가 되었거나 자궁문이 열린(!) 케이스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베이비빌리 2024년 3월 베동 모임에는 이미 29주차에 아이를 낳은(!!!) 분도 계시고.
그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비교적 안정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것(=눕눕)을 하면서 긍정적으로(=지금을 즐기며)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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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는 또 누워있었다. 청소도 빨래도 밥도 친정 엄마가 다 해 주셨다. 점심 밥을 먹자마자 양치질을 하고 또 누웠다.
오늘은 낮잠을 1시간 반정도 잤다. 밤잠이 줄고 낮잠이 늘어나는 건 나중에 신생아 케어를 위해 몸이 먼저 적응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제 침대맡에는 손만 뻗으면 태블릿이든 게임 컨트롤러든 다 잡을 수 있도록 모든 세팅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 침대 생활에는 어느 정도 루틴까지 생겼다. 점심 먹고 나면 좀 누워 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고, 그러다 네다섯 시가 되면 간식 시간이었다. 저녁은 남편 오면 같이 먹어야 하니까, 간식으로 조금 버텨 둔다.
그래도 예전에 다이어트 했을 때 칼로리 비교했던 기억을 되살려서, 최대한 빵이나 과자 종류는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똑같이 100g을 먹는다고 하면 과자나 빵류가 지방 함유량이 높기 때문에 훨씬 칼로리가 높았다. 안 그래도 움직임이 없는데 칼로리라도 낮은 음식을 먹어야지.
평소에 하루 7,000 걸음 정도 걸었던 사람이 갑자기 700 걸음씩 걸으니까 아이폰도 놀랐나 보다. 푸시 알림이 와서 봤더니, 최근 걸음 수 추세가 달라졌다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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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빨래 부터 시작해서 상 차리고 치우는 것까지 친정 엄마와 남편이 다 해주고, 오로지 하는 일이란 누워서 뒹굴뒹굴 하는 것뿐이라니.
어쩌면 이런 생활, 나쁘지 않은 지도……?
게다가 한두 달 있으면 신생아 케어에 진을 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터넷에서 경산모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을 즐겨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길어야 3주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곧이구나. 호덜덜!
# 최근의 길이 변화
12/2 (26주 5일): 2.4cm
12/13 (28주 2일): 2.5cm (2.4~2.6cm)
12/20 (29주 2일): 2.0cm (최소 1.7cm)
12/29 (30주 4일): 1.3cm (1.03~1.53cm)
12/31 (30주 6일): 1.7cm
1/4 (31주 3일): 1.2cm (1.3~1.7cm)
1/5 (31주 4일): 1.27cm1/12 (32주 4일): 0.9cm (0.8~1.3cm) –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