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주 2일
임신과 출산이 이렇게 다이나믹한 줄은 몰랐다.
우선은 임신부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다행히 나는 운 좋게도 피해갔지만,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이 주위에만 해도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난임치료라는 것이 그냥 약 좀 먹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사를 수시로 놓아대고 병원에 가서 몹시 아픈 치료들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오히려 예전에는 ‘혼전임신’ 이라거나 ‘완벽한 피임 방법은 없다’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기에 임신이 그렇게 ‘흔하게’ 어려운 일이란 점이 더욱 놀라웠다.
어쩌면 그것은 난임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은 그 슬픔을 속으로 삭히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역시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나 보다.
그런데 고생 끝에 아이가 생겼다고 해도, 그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인터넷이든 지인을 통해서든 실제 경험담들을 알게 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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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회사에서만 해도 유사산휴가라든지 난임휴직 같은 제도를 쓰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얼마나 슬프고 힘든 일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임신 과정을 겪게 되니 비로소 그 감정의 깊이를 가늠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열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고,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이 친구구나’ 하며 경탄하고, 잘 있는지 불안했던 마음이 태아의 심장 소리만 들어도 한결 편안해지던 경험들. 아이가 태어난 후의 미래를 그리면서 육아용품을 구매하고, 아기 방을 꾸미고, 직장과 커리어를 정리하던 시간들.
그 모든 게 물거품처럼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몇 날 며칠을 울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의 장미꽃에 대해 이야기한 말은 진실이었다. 어린왕자에게 장미꽃이 특별히 소중했던 이유는 그가 바로 그 장미꽃에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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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보니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하게 되는데, 특히 임신 출산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찾아보곤 한다.
카페 글도 보지만, 보통은 블로그에서 ‘찐 경험담’들을 많이 눈팅한다. 아무리 백과사전이든 의학 관련 포스팅을 본다고 해도, 누군가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만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양수가 터졌을 때의 증상과 대처법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어떤 분이 화장실 바닥에 흘렀던 양수 사진을 찍어서 포스팅을 올려 주셨는데, 그걸 보고 나니 확실히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네쌍둥이를 임신한 분이었다. 세쌍둥이도 드문데 네쌍둥이라니? 나는 그분의 임신과 출산 경험기가 궁금해서 포스팅을 하나하나 차례로 넘겨봤다.
내가 맨 처음으로 봤었던 양수 관련 포스팅은 네 명의 아이들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아이의 양수가 터진 날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태아가 네 명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다행히 양수가 새는 증상은 차차 잦아들어서 나중에는 출산까지 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수가 터졌던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그 후로 그 분은 굉장히 슬퍼하셨고,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한 포스팅은 댓글창마저 닫아 두셨다. 얼마나 상심이 크면 위로의 말을 들을 힘도 없었을지 상상해보니 나도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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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임신과 출산 관련된 블로그 포스팅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임신과 관련된 포스팅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려고 하는 착한 마음씨의 분들이 많이 올렸고, 아이를 기다리는 기쁘고 설렌 마음이 담겨 있는 글들이 많았다.
그만큼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의 포스팅이었기에 더 조마조마했다.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만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이 블로그, 제발 무탈하게 해피엔딩으로 해주세요’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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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나 스스로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이따금 들었다. 회사 동기 언니가 ‘인터넷 너무 찾아 보지 마. 걱정만 늘어남!ㅋㅋ’이라고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진짜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고 후회를 해서 후회할 일이 없어지면, 걱정도 후회도 할 일이 없겠네.’ 평소에도 지론으로 삼고 있는 말이지만, 임신기간을 거치면서 특히나 더 자주 곱씹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루하루 착실히 해나가면서 지내야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편안하게 건강을 챙기고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들과 이토록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나의 여건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힘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따뜻한 분들의 말들을 떠올리면서.이 포스팅을 쓰면서도 엄청 꼬물꼬물거린다. 이 자식, 내가 이렇게 노심초사하면서 품었다는 걸 알까? 아무튼 잘 버텨보자 루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