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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Oct 08. 2024

산부인과 교과서를 읽은 사연

34주 2일

어제 다시 병원을 다녀왔다. 


자궁경부 길이는 착실하게 산술적으로 줄어 들어 있었다. 지지난주에 갔을 때는 0.9cm였는데 이번에 다시 재니 0.5cm 가 되어 있었다. 


“허허, 0.9cm로 잘 버티고 계시네요.”


그래도 34 주차에 접어 들어서 조금은 마음이 덜 불안하긴 하지만, 완전히 걱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이제부터는 자궁 수축, 그러니까 진통이 오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10분 간격의 진통이 1시간 동안 계속 이어지면 응급실로 오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원래 진진통은 5분 간격의 수축이 이어지는 것인데, 지금은 길이가 짧으니까 여유롭게 10분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5분 간격의 수축이라…! 다행히 그 전날 산부인과 교과서(!)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어서 이해가 쏙 됐다. 


# 임신 관련 의료 정보는 어디에

임신을 겪으면서 느꼈던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의료 지식이 파편화된 상태로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아직까지도 위험 요소가 많은 분야인데, 그에 비해 관련 정보가 체계적으로 공유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기껏해야 찾을 수 있는 책은, 그 유명한 <임신 출산 대백과>라거나 아니면 과학 잡지 기자가 쓴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라는 책 정도였다. (물론 둘 다 읽어 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아무래도 의료 정보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같았다. 맛집 정보는 인터넷에 정말 많지만, 맛집이 아닌 의학 정보 같은 것을 평소처럼 블로그에서 검색하기란 신뢰도의 측면에서도 다소 난감하다.


게다가 다들 인생에서 한두 번 정도 밖에 겪지 못하는 이벤트이다 보니 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심지어 그조차도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벤트이고, 그 모든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겪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듯 임신과 출산을 통해 겪을 수 있는 이벤트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어떻게 개인들이 후기 위주로 작성한 블로그나 카페 글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 어떤 정보가 맞는 걸까?

개인마다 겪은 바가 워낙 달라서인지,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는 임산부가 모여 있는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서로 댓글들로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공유하는데, 그 내용조차도 상반될 때가 있었다. 


무엇이 맞는지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더 검색해 보곤 했지만, 그러다가 의사분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는 대체 그 중에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예를 들어서 자궁경부 길이가 조산과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어떤 연구 결과에서는 그렇다고 하고 또 어떤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궁 수축이 중요하지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대체 다들 의대에서 어떻게 교육을 받기에 의사들끼리도 말이 다를 수 있는 것일까? 너무도 의아해진 나머지, 산부인과 기초 교과서를 찾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니까 시간도 많고. 찾아보니 마침 전자책으로도 나온 게 있어서 태블릿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누워서 책을 읽으려면 종이책을 한참 동안 들고 있기에는 무리라, 옆으로 돌아누운 채로 독서대에 태블릿 올려놓고 읽어야 편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읽었던 교과서는 2019년도에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나온 <산부인과학 지침과 개요 4판>이었다.


# 이런 분들에게 추천!

솔직히 나부터도 대학교 교재를 내 손으로 산 건 처음이라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대학생일 때도 학교에서 사라고 하는 교과서조차 중고로 사서 중고로 되팔았다. 심지어 팔 때는 천원씩 더 붙여서 팔았고 말이다.


그래도 임신을 겪으면서 도대체 무슨 정보가 맞는지 너무 혼란스러워서 걱정인 분들에게는 추천해 주고 싶다. 아무래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교과서에 나와있는 설명을 한번 읽고 나면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들, 임신 과정에서 아무 이벤트도 없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앞으로 어떤 일들을 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걸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감을 잡기 좋을 것 같다.


# 메모한 내용들

책을 읽다가 형광펜을 치거나 메모를 한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만큼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도 많이 찾았고, 흥미로운(?) 혹은 여전히 의문이 들거나 하는 부분도 종종 있었다. 


다음은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내용의 일부! 산부인과 교과서를 읽으면 어떤 점들을 알 수 있을지 궁금한 분들은 이 메모들을 보고 대강 감을 잡아보실 수도 있을 것 같다.


- 임신은 정말 착상부터 시작해서 랜덤 확률에 의존하는 부분이 너무 큰 것 같다……. (자궁외임신에 대한 내용을 읽고)


- 조기 진통은 34 주차를 기준으로 하는구나. 내가 지금 딱 34 주차니까……. 간당간당한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기 진통의 치료지침을 읽고)


- 조산기가 있는 사람들은 34 주차까지 버티는 것을 목표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태어나도 살릴 수 있는 확률이 생각보다 되게 높았다. 그래도 건강하게 태어나면 좋으니까. (34주에 출생한 경우 37주 이후에 태어난 경우와 생존률 차이가 1% 이내라는 내용을 읽고)


- 침상 안정이든 맥도날드 수술이든 조산을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두 방법을 제일 많이 쓰는 것 같다. 뭔가 또 이유가 있겠지. (조산의 예방 방법 중 침상안정과 예방적 자궁경부원형 결찰술에 대한 내용을 읽고)


- 조산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폐성숙 주사를 놓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걸 왜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추가적으로, 조기 진통이 왔을 때 왜 임신부에게 바늘을 꽂아놓고 수액부터 투여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태아 폐성숙을 위한 스테로이드 치료를 읽고)


# 읽을만한 부분들

아무래도 산부인과학 교과서이다 보니 내용이 좀 방대했다. 특히 그 중에서 일부는 딱히 관심이 없는 분야도 많이 있었다. 청소년의 성의 발달이라든지……. 


대강 봤을 때 뒤의 절반 정도는 그다지 임신과 출산을 겪는 분들이 관심있어 할 부분은 아닌 것 같았고, 전반부에서 읽을 만한 부분만 목차 기준으로 뽑아서 한 번 추려봤다.


<Part 1 기초산부인과학>

Chapter 01 해부학


<Part 2 일반부인과학>

Chapter 05 유산 (……을 ‘하지 않을 방법’에 대해 알 수 있다. 최소 몇 주차까지 버틴다거나.)

Chapter 12 성매개병과 요로감염: 4. 질염, 5. 자궁경부염



<Part 3 산과학>

Chapter 15 모체의 변화 (전반적으로 신체 변화에 대해 알기 좋음)

Chapter 16 산전관리

Chapter 17 정상 분만진통 및 분만 (진통의 양상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본인에게 진통이 왔을 때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지 미리 알아둘 수 있다. 예를 들면 몇 시간이 걸리는지 등이 적혀 있다.)

Chapter 18 비정상 분만진통과 유도분만 (미리 읽어 두면 출산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유사시에 본인이 어떤 처치를 받게 될지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Chapter 20 수술적 산과

Chapter 21 산과마취

Chapter 22 산후관리: 3. 모유수유

Chapter 23 산전 태아 안녕평가: 4. 비수축검사

Chapter 24 분만 중 태아 건강평가

Chapter 25 조산 (자궁경부 길이가 짧은 사람 등, 조산기 때문에 걱정인 사람들은 제일 읽어 보고 싶을 만한 부분.)

Chapter 28 양수량의 이상: 1. 양수량의 조절과 측정방법

Chapter 30 태아 및 신생아 질환: I. 조산 태아 및 신생아 질환 (조산이 걱정인 사람들은 주차별로 또는 아이의 체중에 따라서 어떤 질환에 대비해야 할 지 미리 알아 둘 수 있다. 예후가 어떠한지에 대한 통계도 같이 있어서 걱정을 조금 덜 수도 있다.)

Chapter 31 산과적 출혈

Chapter 32 임신 중 고혈압: 2. 전자간증, 3. 자간증 (굉장히 위험한 질환이기 때문에, 이 질환이 무엇인지 그리고 증상은 어떤지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Chapter 33 임신과 당뇨: 3. 임신성 당뇨병

Chapter 34 임신과 동반된 내·외과 질환: III. 간 및 위장관 질환 (본인이 해당하는 질환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고, 해당하지 않는 질환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안도 할 수도 있다.)Chapter 35 산과 의료윤리: 3. 의사-환자관계에서의 일반적 윤리 (이걸 읽고 나면 의사 선생님께 조금 더 당당하게 궁금한 것들을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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