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 6일
베이비빌리 앱을 가끔 들어가 본다.
나는 예정일이 2024년 3월이라, 3월 베동(베이비빌리 동기) 커뮤니티 게시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 하면서 사나 구경을 좀 했다.
살이 쪄서 고민이다, 너무 많이 먹는다, 등등……. 휴우, 나도 그런 고민이 최대의 고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동화 중에 사과나무던가, 하는 게 나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무에는 행복의 과일들이 열려 있는데, 여기에자신의 불행을 가져가면 나무에 열린 행복 하나와 맞바꿔 올 수 있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행복 또는 누군가가 놓고 간 불행 중에서 자기보다 덜한 불행을 맞바꿔 가져갔다. 그런데 나중에는 가봤더니 딱히 맞바꿔 올 만큼 덜한 불행 따위 없어서 그냥 터덜터덜 돌아오게 되었다더라는 이야기였다. 임산부로서 나는 지금 어떤 사과들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일단 나는 자궁경부 길이가 짧고 수축도 아예 없는 편이 아니어서 맨날 누워서 지낸다. 그 와중에 오늘따라 비염이 더 세게 와서 입을 벌려 숨을 쉬었다. 고양이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너무 아프면 개구호흡을 한다던데, 사람도 별반 다를 것 없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샤워를 할 때는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분주하고, 화장실을 갈 때조차 ‘복압이 높아지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한다. 콧물 때문에 재채기가 나면 ‘기침이 경부 길이에 정말 안 좋다’라시던 의사 선생님 얘기가 떠오르고 (그래서 임산부는 고열/기침의 감기에 걸리면 위험하다고 한다), 비염 고치겠다며 코세척을 하다가 배가 뭉치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스트레스다.
그 와중에 사소한 집안일 하나하나까지 친정 엄마와 남편에게 부탁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속상해지기도 했다. 물을 가져다 달라, 설거지를 부탁한다, 립밤 좀 가져다 달라…….
그러니까 임산부가 겪을 수 있는 난관들 중에서, 내게 해당되는 항목들은 이런 것 같다.
- 임신성 비염
- 변비
- 설사
- 좀 많이 짧은 자궁경부 (자궁경부무력증)
- 자궁 수축
한 두 가지‘만’ 있었다면 견딜만 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예를 들어서 자궁경부가 짧아도 변비가 없으면 잘 먹고 잘 지낼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 혹은, 비염만 없었더라도 편안하게 숨 쉬면서 누워있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다른 임산부들이 겪는 증상들 중에서 내가 안 겪고 있는 증상들도 분명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 입덧: 샤워하다가도 토하거나, 출산 때까지 약 먹는 사람들도 있다.
- 임신성 당뇨: 누워 있으려면 인슐린 주사로 때워야 한다.
- 임신성 고혈압: 단백뇨까지 나오면 임신중독증 혹은 전자간증이라고도 하는데, 갑자기 발생하고 원인도 모르며, 이 때는 당장 출산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한다.
- 임신성 빈혈
- 소양증: 가려움이 심하면 사람 미친다고 한다.
- 사마귀, 쥐젖, 부유두: 쥐젖 같은 경우에는 피부 트러블이 얼굴과 상반신을 덮는다.
- 양수 파수: 새고 있는 것을 내가 눈치 못 챈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일단 양수가 터지면 감염 위험 때문에 즉시 병원에 가서 항생제부터 맞아야 한다고 한다.
- 부종: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퉁퉁 붓는다.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서 압박스타킹을 꼭 신어야 한다고 한다.
- 우울증: 호르몬 때문에 그냥 눈물이 난다고도 한다.
- 급격한 체중 증가, 튼살: 단숨에 10kg 이상씩 찌기도 한다.
- 역아: 맥수술 했는데 역아라서 자궁경부를 발로 누르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 돌발성 난청: 대체 임산부의 증상은 어디까지일까?
- 면역력 저하로 걸리는 질환: 호흡기는 독감, 코로나가 대표적이고, 그 외에 급성 위염, 결막염, 대상포진 등이 있다.
- 부비동염: 비염이 심해지면 축농증이 온다.
- 요실금
- 전치태반: 태반 위치가 자궁에 랜덤으로 생기는데, 재수 없으면 자궁경부 쪽에 생겨서 출혈부터 조산과 난산까지 온갖 문제를 일으킨다.
- 다태아: 원해서 쌍둥이를 가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다태아면 그 자체로 고위험산모가 된다.
- 출혈: 전치태반 같은 경우에도 출혈이 일어나지만, 그냥 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손목/발목/골반 통증
- 두통
- 구토
그 밖에 이런 어려움들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교통사고
- 무심한 남편
- 친정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 (거리가 멀다거나)
- 이상한 시댁
- 이상한 지인들 (악담과 조롱으로 사람 속을 긁는다고……)
타인의 불행을 보며 위안 삼으면 못쓴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나 정도면 견딜 수 있는 고통(?)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솔솔 든다.
어쨌든 나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고, 이러나 저러나 30주차는 넘겼으니까……. 작년에 괌으로 태교여행 갔다가 28주에 조기진통 와서 출산하신 분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정도의 돌발상황을 겪는 경우도 세상에 있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그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서 ‘아이가 예정일보다 일찍 나왔나 보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28주차의 조산이면 아이와 산모의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