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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Oct 11. 2024

매일이 예정일인 사람

34주 6일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 지 가끔 고민이 된다.


그래도 이제는 나름 하루 루틴도 만들어 놓고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양치질 한 다음에 누워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다 샤워를 하고 다시 누워서 이것저것 하다가 점심을 먹는다.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일본어 공부나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이런 것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작년 초에 100일 동안 크로키를 연습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옆으로 누워서 일본어 교재 필기도 하고 있으니까, 대충 슥삭슥삭 그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앞으로 이런 여유가 언제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아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뭇거려진다. 크로키도 100일 동안 내리 그렸으니까 그나마 손에 익었고, 또 그 설정된 기간을 완주하겠다는 목표치도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한 달 동안 꾸준히 하겠다는 식의 목표를 가지기는 사실 좀 어렵다. 조산 위험이 있다 보니, 언제 출산할 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30 주차 때부터도 ‘이번주에 갑자기 병원행을 할 수도 있으니까 출산 가방을 미리 싸야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지금 34주차까지 이어져 왔다. 그래서 출산 가방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남편이 차곡차곡 챙겨준 상태로 거실에 놓여있다.


- - -


뭘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기간을 정해놓고 챌린지처럼 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그러기가 참 쉽지 않다. ‘한 달 동안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가 사흘 만에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미리부터 든다. 웹소설이라도 연재하려고 손을 댔다가 바로 다음날 이벤트가 생겨서 연재가 끊어질 수도 있고. 


그러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가 떠올랐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 그러고보니 왜 하필 나무를 심겠다고 했을까? 그것도 수많은 나무 중에 사과나무를? 사과를 좋아했나……?지구의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오늘도 내일도 계속 잘 지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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