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주 1일
글을 쓰는 지금은 오전 9시.
아침 먹고 와서 침대에 다시 누워있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 먹은 다음에 누워서 스트레칭도 하고, 이불도 진작에 개서 샤워 준비하러 갈 텐데. 오늘은 왠지 포근한 이불에서 좀 더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또 신기한 게, 어제는 분명히 새벽 2시 반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엄청 졸리지는 않다.
# 한밤의 응급실행
지난주 화요일에 산부인과 진료를 보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1.5주 후에 다시 검진을 받되 그 전에 다음 3가지 중 하나가 해당되면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 10분 간격의 규칙적인 배뭉침
- 출혈
- 양수 터짐
원래 진짜 진통으로 가려면 5분 간격이 정의상으로는 맞지만, 나는 자궁경부 길이가 1cm 미만으로 짧기 때문에 진행이 빠를 수 있어서 10분으로 여유롭게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집에 누워 지내면서 자궁 수축이 있을 때마다 앱에 기록을 했다. ‘순산해요’라는 전용 앱이 있었지만, 최근 3건 정도 기록 밖에 볼 수가 없어서 ‘베이비타임’이라는 앱을 대신 사용했다. 원래는 아기 키울 때 수유 패턴 같은 걸 파악하기 위해서 쓰는 앱인데, 이러나 저러나 뭔가를 시간과 함께 기록하는 차원에서는 편했다.
그렇게 기록을 시작해보니, 평소에는 아무리 자궁 수축이 있다고 해도 조금 기다리면 30분에서 40분 정도 간격으로 다시 늘어나는 패턴을 보였다. 그래서 늘 ‘에이 뭐야, 가진통이네’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부터는 10분 내외 간격으로 몇 시간이 이어졌다.
그 상태로 밤 열 시가 넘도록 배뭉침이 이어지다 보니, 이대로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집에서 걱정만 하고 있기보다는 병원에 다녀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원이 무서워서 자체 판단 하에(?) 버티고 있지 말고, 의사 선생님 말씀을 고분고분히 듣자는 생각도 들었다. 가진통인가 하고 집에 있다가 진진통이었으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옆에 나란히 누워서 같이 걱정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출산 가방 캐리어를 차에 싣고 응급실을 향했다.
# 응급실은 처음이에요
평소 다니던 건대 병원을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그런데 건대 병원 응급실은 그 커다란 병원 건물 어디에 있을지 감이 안 잡혔다. 게다가 여느 때 같았으면 병원 정문으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을 텐데, 응급실은 한참 멀리 동떨어져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응급실은 진짜 눈에 잘 들어오게 표시되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안내 표지가 있었고, 간판도 큼지막하게 새빨간 글씨로 적혀 있었다. 심지어 문 앞에는 앰뷸런스가 불을 반짝이고 있었으니, 여기까지 와서 응급실을 헷갈릴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평소에 응급실 진상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어서 그런지, 들어가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진짜진짜 긴급한 상황일 때만 출입해야 민폐가 아닐 것 같은 분위기이면 어쩌지? 들어가보면 막 다들 피를 철철 쏟고 있는데 나만 멀쩡해 보이는 거 아니야……? 하지만 역시 들어가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어서 어기적 어기적 들어갔다.
예상과는 다르게, 막상 들어가보니 응급실의 첫인상은 일반 병원과 비슷했다. 접수와 수납을 위한 데스크가 대기실과 함께 보였다.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우선은 데스크에 가서 접수를 하고, 보호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서 제출했다. 그리고 환자는 팔에 이름과 바코드가 적힌 띠를 두르고, 보호자는 ‘보호자’라고 적힌 목걸이를 걸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보호자는 교대는 안 되세요.”
알고 보니 보호자는 한 명만 출입이 가능했다. 하긴 너도나도 보호자라고 우르르 몰려들면 안 그래도 정신없는 응급실이 북새통이 되겠지. 그러나 그 때 마침 소식을 들은 엄마 아빠도 병원으로 오고 계시는 중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막상 도착하시더라도 얼굴도 못 보고 가실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로 그랬다.)
우선은 환자 분류처라고 되어 있는 방으로 이동하면 된다고 담당자분께서 말씀하셨다. 가 보니, 혈압과 체온, 임신 주수 같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 예진하는 성격의 장소였다. 아마 여기에서 이 환자를 어느 과로 분류할 지 등을 결정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환자 분류처에서 주신 손바닥만 한 표지판을 받아들고 관찰실로 이동했다. 표지판에는 관찰실의 몇 번 침대로 이동하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어서 길을 헤매거나 잊어버릴 염려가 없었다.
# 옷부터 갈아입기
관찰실에는 이동식 침대가 쪼르륵 놓여 있었다.
1, 2, 3번 관찰실이 있었는데, ‘실’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각 관찰실은 칸막이로 나뉜 방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천장 낮은 체육관을 문도 없이 가벽으로 대강 구역만 구분해 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공간에 침대들이 연이어 놓여 있었는데, 침대와 침대 사이 간격은 두 사람이 쪼그려 앉으면 딱 맞붙을 만큼 좁았다.
“환자복으로 먼저 갈아 갈아입고 계세요. 혹시 모르니 보호자께서는 밖에서 커튼 좀 잡아주시구요.”
침대마다 상단에 커튼을 빙 둘러서 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원래는 이 쪽 침대에 누워 있어도 남의 침대들이 훤히 다 보이는 개방된 구조였는데, 커튼을 쳤더니 방처럼 느껴져서 조금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 기본 검사와 처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말씀대로 처음에는 기본 검사가 진행됐다. 응급실에 오면 무조건 기본 검사부터 받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딱 봐서 수액 일단 맞아 보고 자궁 수축이 잡혔다 싶으면 귀가하는 시스템일 줄 알았다. 예전에 산부인과 갔을 때의 일만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피부터 뽑고 보는 응급실 시스템에 ‘헉 이렇게 본격적인 건가!’하고 당황했다.
분명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워낙 정신 없이 지나가서 몇 개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 본다.
문진 - 명찰에 ‘수련생’(이었던가?)이라고 적힌 선생님이 오셔서 몇 가지 사항을 물어보셨다. 그 때는 한밤중이었기에, 역시 의사가 되려면 밤 늦게까지 고생해야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임신 몇 주차 며칠인지, 평소 먹는 약이나 앓고 있는 질환은 없는지, 10분 간격의 배뭉침은 몇 시쯤부터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 묻고 가셨다.
채혈 -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오른팔에 바늘을 꽂고 채혈을 시작하셨다. 나는 바늘이 무서워서 유튜브로 강아지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의아했다.
링겔 - 알고 보니 채혈을 한 다음에 바로 링겔 바늘까지 꽂으시느라 시간이 걸렸던 것이었다. 강아지 영상을 다 보고 나서 팔뚝을 보니, 수액과 연결된 바늘이 꽂혀 있었다.
소변줄 - 이건 산부인과라서 한 건가 싶긴 한데, 검사를 위해 방광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라며 소변줄을 꽂으셨다. 실제로는 한 10초 있다가 바로 빼서 그다지 오래 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분만실 들어가면 출산 직전에 소변줄을 꽂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뭔가 본격적인 느낌이 들어서 조금 무서웠다. 물론 불편하고 까끌까끌한 기분은 들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엑스레이 - 이건 산부인과 검사까지 모두 끝난 다음에 받았다. 몰랐는데 관찰실의 침대는 모두 이동식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링렐 꽂은 나를 침대째로 엑스레이 촬영실까지 돌돌 밀어서 이동시키셨고, 누운 상태 그대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천장이 계속 바뀌어서 솔직히 재미있었다. 아픈 것도 없었고.
산부인과 선생님들께서는, 어차피 내가 막달 검사가 안 되어 있던 차였는데 이번에 채혈부터 시작해서 막달 검사를 다 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씀 주셨다.
# 산부인과 검사
기본 검사가 끝난 다음에는 산부인과 검사가 진행되었다. 산부인과 검사는 원피스 모양의 환자복을 입고 하의까지 다 벗은 다음에 커튼을 친 상태로 진행을 했다.
다음은 산부인과 검사로 받은 내용들.
NST - 나는 자궁 수축이 걱정돼서 왔기 때문에 태동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응급실에 누워 있으니 배뭉침이 잘 오지 않았다. 컴퓨터 고장나서 수리 받으러 가면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까? 어쩌면 수액을 맞기 시작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고 선생님들께서 얘기하셨다. 그래도 강도 70 정도의 수축이 두세번 정도는 잡혔다.
질경 - 나는 자궁경부 길이도 짧고 다른 검사도 해야 했기 때문에 질경을 삽입해서 검사해야 한다고 하셨다. 정확히 무슨 검사를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질경 사용은 진짜 진짜 아팠다. 이날 받았던 검사들 중에 제일 아팠다. 고개를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불편할 수 있다”라고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내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불편할 수 있다, 불편할 수 있다아~ 하면서 말이다.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커튼 뒤에 있었던 남편이 이 때 좀 울컥했다고 했다. 어찌나 아팠는지, 검사가 끝나고 나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덜덜 떨렸다.
내진 - 이번에도 역시, ‘자궁경부 길이가 짧기 때문에 이게 진통으로 이어지는 과정인지 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내진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평소에 워낙 ‘공포의 내진’이라는 단어를 들어왔기 때문에 긴장했다. 분명 엄청나게 아프겠지! 하지만 의외로 나는 질경이 훨씬 아팠고 내진은 몹시 불편한 느낌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손가락으로 질 내부를 마구 휘젓는 기분이었다. 겁을 너무 많이 먹고 있어서 오히려 통증이 생각보다 덜 느껴진 걸까? 지금은 자궁문이 손가락 하나 정도(1cm쯤) 열려 있는 상태고, 실제로 출산을 하려면 10cm까지 열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질식 초음파 - 경부 길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초음파를 진행하셨다. 응급실의 관찰실이란 참 신기했다. 커튼을 치면 방이 되고, 태동 검사기나 초음파 기계를 끌고 오면 산부인과가 되었다. 어쨌든 나는 초음파를 진행하면서 배가 뭉쳤을 때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봐야 했는데, 막상 초음파 검사를 할 때는 아무리 기다려도 배가 안 뭉쳤다.
복식 초음파 - 태아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 복식 초음파도 진행하셨다.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긴 했는데, 어쨌든 2,400g 정도 된다고 하셨다.
생각보다 검사들이 본격적이었고 특히 어떤 검사는 되게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분만을 할까 하던 나 자신이 겁도 모르고 나댄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소변줄 꽂고 질경 아픈 것만으로도 ‘헉!’ 하는데, 항생제 바늘 꽂고 배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어찌 참을꼬? (하지만 놀랍게도 나의 출산은 무통천국이었다.)
# 수액 맞고 귀가
평소에 나를 진찰해 주셨던 교수님께서는 오늘 부재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른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오늘의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다음에 내가 입원을 할지 아니면 집에 가서 경과를 관찰할지 결정하실 거라고 의사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셨다.
“입원하시는 게 편하시겠어요, 아니면 퇴원하시는 게 좋으신가요?”
“퇴원해서 집에서 볼래요. 물론 입원해야 한다고 하시면 입원해야겠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병원에 와서 링겔을 꽂고 환자복인 상태로 형광등 불빛 아래 다른 환자들과 누워있으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동안 입원 대신에 집에서 누워서 지낼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자궁 수축도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당장 진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퇴원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수액 더 맞고 가셔도 되시구요.”
“아 네, 그럼 마저 맞고 갈게요.”
“1시간 정도 더 맞으시겠어요?”
“남은 걸 다 맞으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아 그건 8시간짜리라……ㅎ”
“엇 그러면 30분만 더 맞고 갈게요.”
아무래도 수액을 맞으면 하루 이틀 정도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좀 더 받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때가 벌써 밤 12시 넘었던 시점이어서 1시간이나 더 맞고 가기에는 마음이 부담되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부모님께는 남편이 따로 연락을 넣어 드렸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한달음에 와 주시니까 되게 감사하네.”
“그러게. 근데 나도 만약에 딸이 응급실 갔다면 그랬을까?”
“그랬겠지, 아마도.”
# 건강에 유의하자
집에 돌아왔더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만약 계속 집에만 있었더라면 진짜로 뜬눈으로 밤을 세웠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둘 다 응급실의 다른 환자분들 이야기를 얼핏 들으면서 평소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이 안 좋아진 분도 계셨고, 단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폐렴이나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도 계셨다. “검사 결과 봤는데 염증이 너무 심하세요. 입원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통증도 엄청 심하셨을 것 같구요”라고 하시던 어떤 의사 선생님 말씀이 귀에 맴돌았다.
그나저나 다른 산모들은 이 과정을 다 거쳤단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피 검사에, 링겔 바늘에, 내진에, 질경 삽입에……. 이렇게 아프고 두려운 과정 일 줄이야. 심지어 나는 예행 연습 정도로 밖에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참, 비용은 28만원 정도가 나왔다. 아마 기본 검사 항목들도 많고, 수액도 맞고 해서 이 정도 금액이 나온 게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뻑하면 응급실 가는 진상들이 그렇게 많다고 뉴스에서 들었는데, 다들 돈이 남아 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