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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Oct 13. 2024

두근두근 설연휴

36주 5일

이제는 0.3cm의 자궁경부로 버티고 있다. 


별일은 없지만 그 자체가 별일인 임산부 일기! 오늘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적어본다.


# 병원 전원

2/2 금요일에 건대병원을 마지막으로 가고, 2/8 목요일에 SC제일산부인과를 갔다. 일주일 텀으로 가도 좋았겠지만, 2/9 금요일부터는 나흘간 설 연휴이기 때문에 그 전에 방문했다.


건대병원에서도, 제일에서도, 자궁경부 길이는 3~4mm 정도로 측정됐다. 정말로, 센티미터 아니고 밀리미터. 내진하면 아마 자궁문도 2cm 정도 열려있을 테지만, 건드리진 않을거라고 하셨다. 


제일산부인과 선생님께서는 건대병원에서 돌아온 나를 되게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제 36주인데다 아이도 2.5kg 이상 나가고 하니,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태어나더라도 크게 이상이 없을 수 있고, 만약 숨쉬기를 어려워하더라도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바로 이송해서 조치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37주부터가 조산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 일주일만 더 잘 버텨보자고 하셨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아과 쪽에서는 최근에 지침이 바뀌어서 이제 38주부터를 정상분만아로 보는 것 같았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는 분들께서 혹여 37주만 알고 지나가실까 걱정되어 참고차 적어둔다.)


# 태동

35주차부터는 자궁이 비좁아져서 태동이 줄어든다고들 하는데, 루나(태명)는 늘 잘 논다. 놀다가 자다가를 하루종일 반복한다. 


활발할 때는 다리를 쭉쭉 뻗는 것 같다. 그러면 배에 발 같은 게 볼록하고 솟아난다. 그럴 때는 남편을 불러서 “여기 발 있어” 하고 만져보게 한다. 사람 발이 고양이 솜방망이만큼 작다!


엄청 활기차지 않을 때도 꼼지락 꾸물럭 하는 게 종종 느껴진다. 대체 뭘 하는 걸까 궁금하다. 분명 움직이기는 하는데. 아마 초음파로 봤던 것처럼 입을 오물거린다거나 (늘 오물거린다), 아니면 호흡운동 하느라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게 아닐까?


# 배뭉침

배가 뭉치면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그게 좀 걱정이 된다. 단단하게 뭉칠 때마다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진다. 


옆으로만 누워 있는다고 바로 풀어지지도 않고, 물을 하마처럼 마셔댄다고 배가 안 뭉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휴식을 취하세요’라는 기본강령(?)을 최선을 다해 따를 뿐이다.


분명한 건, 속이 불편하면 배가 더 자주 뭉친다는 점이었다. 변비든 가스차는 증상이든, 속이 안 좋으면 배가 자주 뭉쳤다. 그런데 임산부라서 소화불량이 기본값이라 해결에 한계가 좀 있다.


단백질도 먹어야 하고 과당도 조심해야 하니, 삼시세끼를 사과 바나나 양배추‘만’ 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변비에 좋다는 푸룬이나 유산균은 조금만 많이 먹으면 오히려 설사로 이어졌다. 


물 많이 마시래서 많이 마시기는 하는데, 가끔은 그냥 내 몸 어딘가에 수액 바늘이 상시로 꽂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 마시려고 일어나기도 힘들고, 방광이 눌려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는데 그걸 참으면 또 배가 뭉친다. 


# 물 마시기

요즘에는 세 가지 물을 돌려가며 마신다. 


특히 어제 그제는 토레타를 많이 마셨다. 저칼로리라면서 한 병에 당류가 20g이나 들이부어진 게 무척 가증스럽다(?). 하지만 전해질 없이 물만 마시면 화장실을 더 들락거린다고 하니까 이온음료를 종종 찾는데, 당이 더 적다는 파워에이드는 마시다가 자칫 흘리면 침대가 파래질까봐 무섭다.


그래도 당분이 좀 무서우니까 대체재로는 보리차를 많이 마신다. 성인 여성 하루 권장 당분이 20~40g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러면 토레타 두 통만 마셔도 끝장이었다! 보리차는 페트 음료나 ‘남편의 특제 보리차’를 마시는데, 따뜻한 물에 우려낸 보리차를 정수에 섞어 주는 특제 보리차가 미지근하고 맛있어서 잘 마신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을 때는 역시 정수를 300~500ml씩 퍼다가 곁에 두고 마신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수시로 마실텐데, 침대에 누운데다가 배에 힘주면 곤란한 신세라 일어날 때마다 조금 난감하다. 그래도 20~30분마다, 혹은 갈증난다 싶을 때마다 일어나서 마시려고 한다. 특히 ‘갈증이 나면 이미 수분부족 상태’라는 말을 들어서, 웬만하면 바로 바로 마시려고 노력 중이다.


# 하고픈 것들

출산 전까지 와식생활을 유지하느라, 지금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나중에 출산하고 나면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을 해봐야지. 물론 아이 돌보느라 그 자체만으로도 수면부족이겠지만.


- 요리자격증: 이제 한동안 집에서 밥 할 일이 많을 텐데,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따면 기본기를 다지기 좋을 것 같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편집 시점에서는, 이유식 죽이나 직접 만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책 출간: 옆으로 눕고 하느라, 원고는 거의 다 썼는데 출판을 못하고 있는 에세이가 있다. 이 정도면 산후조리원에서 노트북 두드리며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것도 편집 시점에서의 이야기인데, 돌이켜보면 산후조리원에서는 회음부가 너무 부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출산 직후 한 달 정도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몸 상태 회복과 아이 돌보는 기본기를 다지는 데에 집중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애 보는 것은 조리원과 산후도우미 서비스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지 않을까 하고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3~5년간 입주 시터 이모님 쓰면서 지낼 게 아니라면 아이 기저귀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목욕이랑 어르고 달래고 하는 것까지 하루라도 빨리 배워놓는 게 속 편한 방법이었다.)


- 외식: 블로그를 보면 식당 리뷰가 많다. 브런치 레스토랑도 있고, 등등. 근데 오늘따라 소녀방앗간 같은 한식당이 가고 싶네?


- 카페: 와식생활 시작한 이후로 카페에서 커피 마신 적이 없다. 음료에 케이크 한 조각을 곁들이면 좋겠다. 음료는 라떼가 좋으려나? 재작년쯤에 투썸플레이스에서 조각케이크 여러 개를 샌드위치와 함께 그 자리에서 먹어치운 일이 생각난다. 그야말로 폭풍 다이어트의 굉장한 치팅데이였다. 직원분께서 ‘다 드시고 가시는 것 맞나요? 포장 아니시구요……?’라고 재차 물으셨던 기억이 난다.


- 운동: 체중은 별로 안 쪘는데, 몸이 안 좋아진 게 느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벅지가 아프다. 요가 같은 걸 하면서 근력을 다시 키우고 싶다. 등산도 번쩍번쩍 하고픈데, 그 정도는 무리겠지?


- 여행: 해외여행 말고, 근교 어디 한적한 데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오고 싶다. 종종 구리 쪽에서 초코 쉐이크나 한식 한 상 같은 걸 먹곤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이런걸 하고 싶은데 못해서 너무 속상해!’ 하는 마음은 들지 않고 있다. 그냥 ‘어 뭐 그러면 좋겠네~’ 하는 정도?


요즘에는 게임하고 책 읽는 게 대부분이다. 특히 게임은 그 동안 노가다라고 싫어하던 아이템 파밍과 캐릭터 육성에까지 재미를 들려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틴을 챙겼는데, 밤에 태동이며 소화불량 때문에 수면시간부터가 내 맘대로 되질 않아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낮에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밤에 잠 안 오면 아이 발 톡톡 쳐보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보내고 있다.


# 애지중지

이벤트 없이 임신기간이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조산을 막으려고 온갖 애를 썼다 보니, 벌써부터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든다. 불면 날아갈까. 이렇게까지 지키려고 했는데 아프면 어쩌나…….


그러다 오늘 설날을 맞이해서 시댁에 전화를 드렸을 때, 시아버님께서 “엄청난 놈이 나올려고 엄마 고생시키나 보다~”라고 해주신 한마디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 삼신할머니

요즘은 매일 밤 삼신할머니께 감사드리면서 잠이 든다. 아이에게 하루치의 건강을 더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그러면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고, 다음 날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진다.


나와 아이가 모두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든다. 경부 길이 1cm 미만으로 지금 몇 주를 버티는 걸까. 생각해보면 기적이다.설 연휴만 잘 버텨보자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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