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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Oct 15. 2024

이제 걸어다니시면 됩니다

37주 4일

이게 얼마만의 카페 외출일까?


글을 쓰는 지금은 집 근처 카페에 케이크와 커피를 즐기러 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 종종 혼자서라도 왔던 카페였다.


야호, 드디어 키보드로 쓴다! 음성인식 안녕! 그 동안 고마웠지만 불편했어!


# 37주차, 정기검진

목요일인 어제는 평소 다니던 분만 병원에 다녀왔다. 지난주에 왔을 때는 일주일만 더 버티자고 하셨으니, 우선은 목표 달성인 셈이었다.


“36주에 태어나도 큰 지장은 없지만, 의학적으로 37주부터가 정상 분만이니 다음주까지만 버텨보아요.”


30주차가 되기 전부터 조마조마해왔기 때문에 36주차에도 ‘내가 과연 일주일을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특히 주말이나 밤에는 더 걱정되었다. 아무리 무슨 일 생기면 휴일이든 밤중이든 병원 오시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모든 병원 직원이 정상 근무하고 있지 않은 시간대에 이벤트가 터지면 나부터가 당황할 것 같았다. 

‘이 정도 배뭉침으로 남편을 깨워서 병원 분만실에 방문하는 게 맞을까?’ 하고 고민할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편집 시점인 지금, 이 글을 읽으실 독자분들 중 초산이신 분들을 위해서 분만실 얘기를 살짝 덧붙여본다. ‘이벤트 있으시면 아무때나 오세요’라는 말은 진짜였다. 출산하고 입원실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지켜보니, 입원실에는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야간근무를 돌아가며 보셨다. 그래서 밤중에도 진통제를 놓거나 수액을 교체하는 등 산모를 케어하는 일이 끊김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분만실은 입원실이랑 약간 세트 느낌이어서 간호사 선생님들은 언제나 병원에 계셨다. 그리고 양수가 터지거나 한대도 곧장 의사 선생님이 보시는 게 아니었다. 그래봤자 아기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자궁문이 열리려면 기본 몇 시간은 더 걸리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은 한참 뒤였다. 그 전까지는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수액을 놓거나 일차적인 상태 파악 등을 해주시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걱정이라면 ‘혹시 무슨 일 생겨서 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오실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면 어쩌죠……’라고 여쭤볼 수 있는데, 나는 여쭤봤더니 대표 원장 선생님께서는 여차하면 한달음에 오실 거라고 하셨다. 병원 옥탑방에라도 살고 계신 걸까? 아무튼 걱정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28주라든지 할 때는 정말 어떻게 또 하루하루를 버티나 걱정이었다. 임신 전에 회사 다니면서는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은 금방 지나가네’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는데, 집에서 눕눕생활로 버티고 있는 것도 지나고 나니 비슷한 기분이었다. 28주가 29주가 되고, 29주가 30주가 되고……. 그러다 이제는 혹여 아이가 나오더라도 크게 걱정할 시기는 지났다니, 이 정도면 버틸만한 하루하루였다. 


# 자연진통 vs 유도분만 vs 제왕절개

어제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음주(38주차)에 유도분만을 잡으시겠어요?” 하고 물어보셨다. 


요즘에는 다들 선택제왕을 많이 해서 날짜도 본인 스케줄에 맞게 지정하고 굳이 자연분만의 산통을 겪지 않는다고 들었다. 최악의 케이스인 ‘진통 다 겪고 응급제왕해서 수술 회복까지 겪기’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굉장해 보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해보려고 했다. 제왕절개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빨라서, 출산하고 몇 시간만 있으면 밥에 미역국을 와구와구 먹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수술이 아니니까 근막이며 장기를 갈가리 찢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아 보였다. 아무리 무턱대고 북 찢는 게 아니라고 해도, 칼자국이 나면 장기와 근육이 제 기능을 찾을 때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다 며칠 간은 장기가 쏟아질 것처럼(!) 아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출산의 고통이란 뭘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다. 어린이였을 때 엄마에게 “언젠가 감옥에 한 번 다녀와보는 것도 경험이 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가, “그런 경험은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아무튼 살면서 많이 들어본 출산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서 정면돌파를 한 번 시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좀 있다. 물론 무통주사며 진통제며 갖은 방법을 동원할 셈이지만, 그래도 살면서 출산이란 여러 번 있는 게 아니니까 이 기회(?)를 날리기에는 아쉬웠다. 하지만 과연 진진통을 겪고 나서도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편집 시점인 지금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자연분만 시 순산 가능성은 보통 친정 어머니를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속설이라기에는 내 주변 지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거의 다 맞아 떨어져서, 정말로 자연분만을 할까말까 고민이라면 친정 어머니께 “나 낳을 때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어머니께서 무통 주사가 엄청 잘 들어서 별로 안 아팠다고 하셨는데, 나도 무통 주사가 완전히 잘 들어서 진짜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출산의 고통’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것인가 싶기도 한데, 이 또한 인생 살면서 굳이 할 필요 없는 경험일지도……? 아무튼 막상 출산 전날이나 당일 쯤에는 ‘출산하고 그 날 저녁에 미역국을 먹고 싶다’라는 마음이 정말 간절해졌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고 싶어서 자연분만을 진행한 느낌이 있는데, 진짜 그 미역국은 엄청 맛있어서 싹싹 다 먹었다. 요즘에는 제왕절개가 아무리 대중적이라고는 해도 역시 피부부터 시작해서 많은 장기를 찢는 대수술인 것은 여전하기 때문에, 만약 내 지인이 묻는다면 나는 일단 자연분만을 고려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 38주차, 유도분만?

그래도 유도분만은 좀 아리송했다. 


원래 자연분만이라고 하면,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자궁수축이 유발되어 진통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도분만은 옥시토신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약물을 정맥 주사로 놓음으로써 출산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즉 자연진통은 자연스럽게 몸에서 옥시토신이 나오는 것이고, 유도분만은 옥시토신을 외부에서 주사해주는 차이만 있는 것이므로 둘 다 성공확률 등은 비슷하다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설명해 주셨다. 그러니까 어렵기 마련이고, 따라서 유도분만을 한대서 출산이 더 힘들어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하지만 임신에서 작용하는 호르몬만 해도 엄청 많은데, 출산에서는 옥시토신 딱 하나만 바라봐도 정말 괜찮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도분만은 보통 39~40주차 이후에 실시하고, 아이를 빨리 출산시켜야 하는 의학적 필요가 있을 때 시행한다는 말이 많았다. 너무 오랫동안 뱃속에 있으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과숙아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실시하고, 혹은 주수와는 상관없이 뱃속에서 성장이 지연되고 있다면 차라리 출산을 하고서적절한 영양을 공급해 주기 위해 유도분만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주가 38주차라, 위에서 얘기한 ‘39~40주차’에 다다르지 않았으니 아직 준비가 덜 되었고 시기적으로도 이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궁경부가 0cm에 수렴해서 없으나 마나 한 길이인데다, 어제 내진으로는 자궁문도 1~2cm 열린 상태라고는 말씀해 주셨다. 회사 동료 중에서는 자연분만을 하려다가 자궁경부 길이가 여전히 4cm에 문도 안 열리기에 바로 제왕절개로 선회한 케이스도 있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나는 자궁만 좀 수축시켜주면 문이 열리고 출산으로 이어지기에 적절한 상황인 것도 같았다. 자궁경부가 충분히 숙화되지 않으면 유도분만이 실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야 이 생각이 들어서 의사 선생님께 구체적으로 여쭤보지 못한 게 아쉽다. 유도분만을 38주차에 말씀주신 이유가 혹시 저의 이러한 상태에 근거한 것이었을까요, 선생님……?


# 이제 걸어다니시면 됩니다

아무튼 병원에서 바로 결정을 하지 못했어서, 그럼 우선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검진(내진……)을 해보고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다. 


그 전까지 나는 하루 3~4시간 운동을 하자는 숙제를 받았다. 과격한 유산소 운동 같은 게 아니라, 설설 걸어다니고 괜찮으면 짐볼도 타보는 정도의 운동을 말씀하셨다. 그래야 아이가 잘 내려오고 자연진통을 이끌어내기 좋다고 하셨다. 


병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 20시간 누워있기를 목표로 눕눕생활을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180도 바뀌어서 살짝 어벙벙했다. 지금까지 하지 말라고 한 일들을 이제는 최선을 다해서 해야 했다. 일어서서 걸어다니기, 스쿼트같은 자세로 아이를 아래로 내려오게 하기, 등등. 


저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묶여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마법이 ‘샤악’ 하고 걷히는 것 같았다. 

회사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주말에 꼭 남편이랑 외식을 하라고 했다. 셋 다 아이 엄마들인데 그 중 특히 두 명은 작년에 아이가 태어나서 이제 뒤집기를 시작하는 아기들의 육아맘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두고 어디 고기 구워 먹으러 다녀오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고. 


간밤에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새벽 2시 넘게까지 뒤척였다. 그 때는 이러다 진통 걸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속이 안 좋아서 그랬던 게 큰 것 같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서 다시 눕지 않았다. 차라리 소파에 앉아 있든가 했다. 


시간이 널널했기에, 요가매트를 돌돌 풀어서 앱을 켰다. 그리고 몇 달째 쉬었던 요가를 천천히 따라했다. 엎드리는 자세는 배가 눌리니까 아직도 할 수가 없지만, 다리를 쭉쭉 뻗고 몸을 이리저리 틀어보는 것만으로도 엄청 개운했다. 이런 감각을 내가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요가 앱이 영어로 자세 안내가 나와서, 듣다 보니 해외 여행으로 이국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마구 생겼다. 예를 들면 예전에 웨딩 스냅 찍으러 갔던 포르투갈이라든지……. 세상에는 아직도 뭔가 재밌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다들 건강이 최고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 카페 타임

요가를 하고 나서는 블로그에 기록했던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꺼냈다. 카페에 가서 케이크에 커피 한 잔 하면 좋겠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따가 카페에 가 볼까나? 몇 달째 카페인을 안 먹었으니 커피 대신 홍차를 마실까, 소화불량이 걱정되니 큰 치즈케이크보다 작은 쿠키 한 조각만 먹을까, 하는 행복한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다음주면 진짜 출산을 해서 그 다음부터는 카페고 뭐고 못 돌아다닐 처지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그냥 먹고 싶은 최후의(?) 디저트를 먹자고 마음을 다졌다. 


요즘은 바깥 외출하기에는 좀 추우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백화점을 돌아다녀봐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했다. 머릿속에 잠실 롯데와 그 근처 카페 같은 곳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곳은 임신하기 전에도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지는 공간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 싶어서 집 근처 카페 로 향했다. 어제 내진 이후로 나오고 있는 내진혈도 신경 쓰였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길을 나섰는데, 세상에 이렇게 카페가 멀었던가 싶었다. 어기적어기적 뒤뚱뒤뚱, 엄청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니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파왔다. 그래도 겸사겸사 많이 걸으면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생각과, 진짜 오랜만에 산책해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은 좋았다. 감회가 새롭다는 게 이런 걸까?

눕눕을 시작했던 게 2023년 12월 말이었으니까 한창 추운 겨울이었는데. 이듬해 2월 중순에 바깥으로 나와보니 벌써 날도 좀 풀리면서 봄이 오고 있었다. 건강하게 만나자, 루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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