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 5일
경부 길이가 하루하루 착실히 줄어들고 있다. 가장 최근 쟀던 게 나흘 전이었고, 그 때는 0.5cm로 짧아져 있었다.
32주차 말에는 0.9cm, 34주차 초에는 0.5cm라니! 이 페이스라면 다다음주에는 0cm가 되어있을 것 같다. 혹은 힘이라도 들어가서 경부가 수축되면 그 전에 0cm를 찍을 지도……?
# 수축검사
32주차 때 병원 방문 시에는 NST(자궁 수축 및 태동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수축이 좀 있긴 하네요”라고는 하셨지만, 입원까지는 하지 않았다. 초음파를 봐주시던 선생님께 슬쩍 여쭤봤더니, “음 그런데 병원 입원하셔도 ‘더’ 누워있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를 게 없긴 해서요”라고 얘기하셨다. 듣자마자 바로 납득되어버렸다.
이전에도 인터넷에서 의학 논문까지 찾아보곤 했는데, 34주차 병원 방문 후에는 산부인과 교과서도 뒤적이면서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했다. ‘내가 진짜 입원 안 해도 되는 걸까?’와 ‘입원하면 근데 뭐가 낫지?’ 하는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덕분에 몇 가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 수액과 수축방지제
우선은 전해질 수액을 맞으면 자궁 수축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영구적인 게 아니라 24~48시간 정도 효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대학병원 전에 다니던 일반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수액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수액 맞은 직후에는 괜찮았어도 다음날이 되니 평소처럼 배뭉침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의 침상 안정과 수분 보충으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전해질 수액으로도 자궁 수축이 사그라들지 않으면 수축방지제를 놓는다. 이것도 수액처럼 똑똑 흘려넣는 방식인데, 자궁 수축을 유발하는 옥시토신과 반대 작용을 하는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원리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라보파와 트랙토실이 주로 사용되고, 어떤 분은 24주차에 심한 자궁 수축이 와서 진진통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엄청 맞았다는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셨었다.
# 진진통과 가진통
진진통이라는 말에는 가진통이라는 용어가 따라다녔다. 가진통이든 진진통이든 둘 다 자궁이 수축하는 것을 말하는데, 배뭉침이 곧 자궁 수축의 증상이었다. 아기를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자궁이 쥐어짜기 때문이었다. 풍선을 손으로 꽉 누르면 공기가 ‘날 제발 밖으로 내보내줘!’라는 듯이 풍선이 잔뜩 팽팽해지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배가 좀 뭉쳤다가 풀어졌다가 하면서 불규칙적이라면 출산 연습과도 같은 가진통이고, 그렇지 않고 10~5분 정도로 규칙적으로 발생하면서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 진짜 출산으로 이어지는 진진통이었다.
그럼 가진통이라고 해서 방심해도 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자궁 수축 자체가 자궁경부를 더 짧아지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긴 풍선도 자꾸 눌러대면 점점 더 풍선이 약해지면서 터지기 쉬워지겠지. 그래서인지 자궁경부 길이가 짧은 분들은 병원이나 의사 선생님에 따라서 ‘일단 입원과 수축방지제 처방!’을 하시기도 하는 것 같았다.
# 34주차의 나는?
알아보니 조산의 기준은 37주차 이전의 출산이었다. 그러니 임신 34주차인 나로서는 적어도 3주 이상은 악으로 깡으로 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약을 먹든 수액을 맞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찾아보니, 어쨌든 34주에 출생한다면 37주 이후에 출생하는 아이들이랑 생존률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정말 그게 맞다면, 일찍 출산하게 되더라도 ‘휴 이제 조산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되겠군!’이라며 산모의 정신건강을 챙겼다 셈 칠 수도 있지 않을까? 뇌피셜이지만 말이다. (의료인들이 들으면 지금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
# 경부 길이? 자궁 수축?
블로그와 카페 후기들을 찾아보니, 28주에 응급제왕으로 태어나도 인큐베이터에서 잘 크는 친구가 있는 반면, 38주에 태어나도 폐성숙이 덜 되어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25주차 정도만 넘어가면 참 그때부터는 복불복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지금 나와 비슷한 30주차 이후 주수의 임신부 커뮤니티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현재의 주수부터는 경부 길이는 크게 의미 없고 자궁 수축 있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아예 길이 자체를 (재 달라고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는 했다. 경부 길이가 몇 cm이건 간에, 자궁 수축이 규칙적으로 와서 진짜 진통으로 이어지면 출산이고, 그게 아니면 출산이 아닌 거고. 모로 가나 조산으로만 연결되지 않으면 되니까.
# 비나이다
얼마전부터는 모든 것을 삼신할머니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가 언제 어떻게 태어날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은 삼신할머니께서 알아서 정해주시고,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은 병원에서 잘 처리해 주시겠지. 수액이 필요하면 바늘을 꽂고, 수술이 필요하면 수술을 하겠거니.
그래서 오늘도 배가 뭉칠 때마다 어플에 기록만 해 두고, 평상시에는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면서 수시로 물을 마셔주기만 했다.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활발한 장 운동 정도……?
그런데 이대로 자궁경부가 0cm로 사라져버리고 자궁문이 많이 열려버리는 상태에서 여전히 진진통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며칠 전에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이 정도면 진통이 올 수도 있는데 안 오네요~”라고 하셨던 게 생각난다. 그러면 그냥 아이가 스르륵 나오기 시작하는 건가? 진통도 없이, 마치 거북알 아이스크림처럼? 그런 건 정말 들어본 적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