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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향수

Salesman’s Perfume

by 구의동 에밀리

무신경한 사람들이 툭툭 털은 옷 먼지에 목이 매웠다.


사람을 마주할수록 사람이 싫어졌다. 퇴근 후에 보는 사람들은 그러나 아직도 출근 상태였다. 회사 문을 나서서 처음 본 사람은 옷 가게 점원이었는데, 그는 왠지 피팅룸에 들어간 내 면전에다가 커튼을 팽개치듯 확 닫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 마주친 건 계산대 직원이었다. 그는 교환이나 환불 조건에 대해 분명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듣는 내내 자리를 어서 뜨고 싶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가게를 나서자 강남역에는 사람이 물결처럼 많아서,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뭉텅이로 보였다. 팔로 제치고 어깨로 밀쳐서 앞질러 가고 싶은 물체가 사람이란 사실은 끔찍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잠재우려, 지하철 타고 가는 동안은 내도록 스마트폰이나 봤다.


역에 도착해서 집으로 걸어가다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구의공원’. 나는 그 이름을 좋아했다. 왠지 구의동 주민들만 와서 한 바퀴 돌거나 혹은 저녁 먹고 간단히 배드민턴을 치고있을 것 같았다.


글쎄, 강 건너에서부터 한결같이 ‘집에 가야 해’를 되뇌면서 왔기 때문인지? 돌이켜보면 전혀 방해될 걸림돌 하나 없었는데도 고민했다. 집으로 곧장 갈까, 아니면 공원을 한 번 돌까. 산책로에서 벌레가 묻을 지도 몰라, 풀섶 거미줄이 붙으면 어쩌지, 등등 방금 지어낸 걱정들이 그 때만큼은 생생한 미래처럼 느껴졌다.


막상 걸어보니 산책로는 아무 일 없이 잔잔했다. 공원을 빙 돌아 난 런닝 트랙으로 여자 서너 명이 추리닝 차림을 한 채 걸었다. 붉은 우레탄이 뽀송뽀송했다.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는 이 밤이 생경했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짜증 내는 사람도, 짜증을 받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별 말 없이 혹은 작은 수다를 곁들여가며 저녁 공기를 마셨다.


지압로가 보였다. 통나무와 작은 돌멩이가 얌전히 깔려 있었다. 걸었다. 아마 일 이 년 전에 마지막으로 밟았던 것 같다. 이 동네에 살게된 지 어느 새 다섯 해를 넘기고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돌들을 밟아갔다.


앙증맞은 갈색 푸들은 주인을 따라 쫑쫑 걸었다. 집 바깥 세상이라고 해 봤자 이 공원인데 무슨 신기할 게 있다고,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다. 트랙을 따라 심겨진 키 작은 식물들 사이로 조명들이 나지막하게 드문드문 빛났다. 커플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뭔가를 나눠 먹었다. 혼자 걷는 사람들, 공원을 가로질러 집에 가는 양복쟁이도 있었다.


밤 공기를 타고 갈치 구이 냄새가 실려 왔다. 구수하고 약간 비릿했다. 어떤 저녁 식탁을 떠올렸다. 불편한 사람도, 어색한 대화도 없는 저녁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원 옆에 담을 따라 포장마차들이 번호를 매겨가며 길게 늘어서 있던 게 기억났다. 닭꼬치 냄새도 살짝 흘러왔다. 길거리에서 파는 꼬치구이에는 반드시 윤기가 흐르는 갈색 양념이 발라져 있어야 했다. 그래야 양념을 옷이나 신발에 안 흘리고 먹는 엉거주춤한포즈도 같이 연상될 수 있었다.


구름 없이 별과 달이 머리 높이 걸린 밤이었다. 공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거리에는 가로등조차 노란 불빛으로 아늑했다. 서늘한 가을 밤공기에 머리칼이 가볍게 흩날렸다. 귀 뒤로 살짝 넘기는 손가락의 감각조차 적당했다. ‘시의 거리’에는 주민들 보라고 시 몇 편이 벽돌 담을 따라 간간이 걸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새로 산 세 벌 옷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어쩌면 모든 게 완벽한 이유는 내가 곧 죽을 운명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사치도 가난도 없이 꼭 알맞은 정도로 평온하게 세상이 나를 감싸 줄 리가 없을 것만 같았다. 터무니 없지만 한편으로는 설득될 수도 있을 법해서 불길한 예언이, 선선한 바람과 아무리 봐도 고즈넉한 동네 모습에 비추어져 슬펐다.


다행히 아파트 입구에 이르러 노란 가로등 불빛들이 끝났고, 슬픈 기분도 달아났다. 그러나 왠지 오늘 마신 밤공기와 공원에서 맡았던 생선 구이 냄새를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출근 지하철에서 남의 향수 냄새들에 코가 맵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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