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지도를 펼쳐봤는데, 벌써 반짝이는 화살표가 떠 있다. 여행관광국에서 멀지 않은 곳의 광장 쪽이다. 줌인해서 살펴보니 화살표는 정확히 루비 상단을 가리키고 있다. 정말이지 게임을 쉽고 친절하게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화살표다.
위치는 알겠고, 델피온 황성의 전체적인 모습이 궁금해서 그냥 컨트롤러로 줌인, 줌아웃을 하며 여기저기 살펴본다. 확실히 지금 있는 위치는 정중앙에 가깝다. 큰 광장을 가운데에 두고 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 형태같다.
지도를 닫아도 미니맵이 화면 귀퉁이에 떠 있어서 길찾기가 수월하다.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 실제로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 점이 무척 현실적이다. 요즘에는 아예 오토로 돌려서 퀘스트 지점까지 가도록 하기도 하던데, 그런 기능까지는 안 넣은 모양이다. 이런 면은 꽤 낭만적이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희미한 빛의 고리가 엘레나의 허리를 훌라후프처럼 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뭔가 했는데, 돌아다녀보니까 훌라후프의 화살표 방향이 북쪽을 가리키며 나침반처럼 돌아간다. 길치에게 최적화된 보조장치다. 설정에서 끌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거추장스럽지 않으니 달고 다녀봐야겠다.
가는 도중에 잡화점이 있어서 쇼윈도로 다가가본다. ‘구경하기’로 상호작용이 된다. 한 번 눌러볼까?
> 구경하기
[엘레나]
(귀여워 보이는 곰인형! 하지만 인형 치고는 가격이 조금 비싸 보인다.)
잠깐, 이거 설마……. 가게마다 전부 구경이 되는 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디저트 가게 앞에 서 본다. 세상에, 여기도 ‘구경하기’가 된다.
> 구경하기
[엘레나]
(새하얀 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 장식으로 얹은 딸기도 신선해 보인다.)
어쩌면 이 넓은 황성의 모든 가게에 ‘구경하기’를 집어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까지 게임을 만들 필요가 있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여행하는 기분이 물씬 나서 좋지만,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완전 노가다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델피온 황성을 천천히 산책한다. 골목에는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가득하다. 카페나 식당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처럼 간식거리를 파는 집부터, 주방용품처럼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상점까지 다양하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마다 구경거리로 가득해서 정말 유럽의 어느 거리를 산책하는 듯 하다. 아, 여기는 기념품 가게 같은 곳이다.
> 구경하기
[엘레나]
(용도를 알 수 없는, 고리가 달린 보라색 장식품. “숙면을 돕는 라벤더 향”이라고 적혀 있다.)
구경하며 다니는 골목길은 전부 반들반들한 돌로 잘 포장된 모습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분 좋은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델피온 황성의 풍경은 목가적이었던 나리엔 마을과는 모든 면에서 달라 보인다. 나리엔 마을은 집도 자그마하고 공터도 드문드문 있었는데, 여기는 어디를 둘러봐도 건물들이 기본으로 4~5층은 되는 데다가 그마저도 서로 벽을 맞대고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공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외벽은 대부분 파스텔톤으로, 황토색이나 빛바랜 연분홍 등의 색상이라 서로 어우러지며 도시의 톤을 맞추고 있다. 다들 도로를 향해 세로로 길쭉한 창문들이 달려 있고, 나무로 짠 덧창은 대체로 활짝 열려 있다.
아무래도 여행자도 꽤 많은 모양인지, 식당들은 다들 느긋하게 노천 테이블들을 내밀고 있다. 야외석에 앉은 손님들은 골목을 지나다니는 행인과 한 뼘 정도 간격만을 사이에 두고 있건만, 손님도 행인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 몫의 여유를 즐길 뿐이다.
식당마다 문 앞에는 메뉴판을 ‘A’자 모양의 입간판으로 놓아 두고 있다. 그 중 한 곳에 가서 입간판을 읽어본다.
~ 푸른바다 해산물 식당 ~
염소 치즈를 곁들인 황새치 카르파치오 … 27,000 골드
오테에산 새우 … 8,000 골드
실버 등급 굴 … 8,000 골드
골드 등급 굴 … 9,400 골드
랍스터 링귀니 … 38,000 골드
올리브와 케이퍼를 곁들인 토마토 콩피 … 27,000 골드
구운 감자 … 8,000 골드
초콜릿 케이크 … 9,400 골드
[ > 확인 ]
메뉴가 꽤 길어서, 살짝 스크롤을 내려야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세계의 골드는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 정도에 해당하는 걸까? 메뉴판만 보면 그냥 원화라고 쳐도 얼추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좀 더 플레이를 해봐야 알 것 같다.
메뉴판을 닫자, 도로시가 한 마디 한다.
[도로시]
으음, 맛있어 보이지만 역시 조금 비싼 것 같네…….
상단 지부에서 자금을 넉넉하게 받게 되면 한 번 도전해 볼까?
그렇군. 아직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구나.
이곳저곳 둘러보며 여유롭게 거리를 산책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상단 지부가 나타난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한 규모의 건물이다. 높이도 높이지만, 양 옆으로도 길게 뻗어 있는 형태라 전체적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정면에는 커다란 세 개의 문이 뚫려 있고, 건물 꼭대기에는 천사 형태의 석상 두 개가 좌우로 얹혀 있다.
건물 앞에는 널따란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 바닥은 소용돌이 무늬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세심하게 공들인 품이 난다.
이 정도 사이즈가 지부라니, 대체 이 상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 걸까?
~ 루비 상단 지부(?)를 찾아서 (100%) ~
델피온 황성의 루비 상단 지부를 찾아가자.
Tip. 활성화된 퀘스트는 의뢰자나 목표 장소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된다.
[ > 확인 ]
아직 문 열고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퀘스트 완료 안내창이 뜬다.
그러고 보니 퀘스트창에 이미 팁으로 설명을 해줬구나. 지도에 목적지가 표시된다고……. 습관적으로 그냥 확인 버튼 누르고 껐더니 못 읽었던 모양이다.
[제이크]
휘우~ 으리으리한걸?
[도로시]
이…… 이게, 지부?!
[엘레나]
아무래도 우리, 지부가 아니라 ‘본부’를 찾아온 것 같아…….
[도로시]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으음……. 뭐랄까, 이제 상단주님이 왜 ‘누추한 마차’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엘레나의 말을 끝으로 대화가 종료된다. 뭐야, 여기가 본부였어?
커다란 문 앞의 경비원 두 명에게 다가가서 차례로 말을 걸어본다.
> 마이클
[마이클]
여기가 바로 루비 상단 본부입니다.
> 잭슨
[잭슨]
델피온 황성에는 4대 상단의 본부가 모여 있습죠.
경비원들 이름의 상태가……. 게임 개발사가 작명에서는 갑자기 힘을 뺀 듯한 느낌이다.
일단 이걸로 여기가 본부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덧붙여서, 나머지 3개 대상단의 본부들도 찾아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한다.
우선은 루비 상단부터 들어가봐야겠지.
~ 루비 상단 ~
[엘레나]
안쪽도 엄청 크구나.
내부는 대리석 기둥이 높은 회랑을 곳곳에서 떠받치고 있다. 게다가 벽마다 값비싸 보이는 그림이 덕지덕지 걸려 있다. 무슨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마저 이는 공간이다.
한 직원의 머리 위에 화살표가 반짝이고 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본다.
> 클라라
[엘레나]
안녕하세요.
[클라라]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 장학증서에 대해서...
사용한도에 대해서…
뭔가 재미있는 일 없나요?
[클라라]
장학증서는 상단주님께서 특별히 미래가 촉망되는 인재를 선정하여 제공하는 후원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제이크]
역시 상단주라 그런지 인재 보는 눈은 있군~
[클라라]
장학증서를 받으셨나요? 최근에 한 부 발급되었다는 말씀은 전달받았습니다만.
[엘레나]
벌써 소식이 닿았나요?
[클라라]
상단의 정보망은 바람보다 빠르답니다.
그럼, 장학증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패스를 발급 드리겠습니다.
[엘레나]
패스요……? 저희는 상단 지부…… 으음, 정확히는 본부로 오긴 했지만…… 아무튼, 상단에 가져가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요.
[클라라]
맞습니다, 원래는 돈을 인출하실 수 있는 형태였죠.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단주님께서 갑자기 패스 발급 형태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제이크]
호기심 많은 상단주께서 우리 근황을 앞으로도 쭉 알아보고 싶으셨나 보네~
[엘레나]
근황?
[직원]
어쩌면 그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패스는 사용하는 즉시 상단으로 금액과 간단한 사용내역이 전달되니까요. 한 번 인출하면 그 후의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현금과는 다르게 말이죠.
[엘레나]
그렇군요. 그럼 패스 신청을 할게요.
[직원]
네. 절차에 따라 장학증서 진위검증 후 바로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제이크가 장학증서를 건네자, 직원이 스포이드에 담긴 용액을 증서에 한 방울 떨어뜨린다. 용액이 증서에 닿자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날개와 별 형태가 잠깐 나타나더니 사라진다.
직원이 몇 가지 서류를 뒤적이더니, 바로 패스가 발급된다.
[클라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루비상단 장학패스(제이크) ~
루비상단 인재 후원 프로그램의 패스.
뒷면에는 누군가의 친필이 적혀 있다 - ‘일일한도 : 적당히 쓸 것’
[ > 확인 ]
[제이크]
유후, 이젠 내가 가장 부자인걸?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천사님~
[도로시]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적당히 써야 할 것 같은데……?
[제이크]
그럼 꼬마 마녀님은 빼고~
[도로시]
뭐? 그런 게 어딨어?!
[엘레나]
…… 여행관광국으로 가자.
이제 이 퀘스트는 완료했고, 여행관광국으로 돌아가야겠다.
한 번 와봤던 길을 되짚어 가니, 길 찾기가 수월하다. 몇몇 가게는 벌써 눈에 익어서 동네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 미니맵은 자동으로 정면 방향을 맞춰주며 부지런하게 돌아간다. 게다가 엘레나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나침반 고리 덕분에 길 찾기가 훨씬 쉽다. 어쩌면 난 지금껏 이런 도구를 갈망하고 있었던 걸까?
이번에는 한눈 팔지 않고, 곧장 여행관광국으로 들어간다.
~ 여행관광국 ~
[엘레나]
번호표를 뽑으면 될까?
[앨리슨]
안녕하세요! 여행자패스 신청하셨죠?
마침 손님이 안 계셔서, 이 쪽 창구로 바로 오시면 되세요.
[도로시]
우리 얼굴을 기억하셨나봐! 여행관광국 분들은 다들 친절하신 것 같아.
[앨리슨]
여기, 여행자패스입니다. 델피온 제국 내에서는 웬만한 숙식은 해결하실 수 있고, 도서관이나 마구간 등 일부 장소도 패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엘레나]
그럼 외국에서는 쓸 수 없나요?
[앨리슨]
타국에서도 사용은 가능하십니다만, 제휴된 숙소와 식당이 제한적이라 일부에서만 사용 가능하십니다. 그래서 보통 여행자 분들은 해외에서는 제휴업체를 이용하시거나, 그때 그때 일거리를 찾아서 여행 경비를 충당하시곤 하죠.
[엘레나]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앨리슨]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여행관광국을 찾아주세요.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 정식 여행자의 길 (100%) ~
여행자 패스를 신청하자.
Tip. 퀘스트가 어려울 때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 좋다.
v 여행자 패스 신청하기
v 여행자 패스 수령하기 COMPLETE!
[ > 확인 ]
~ 여행자패스(엘레나) ~
델피온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패스.
소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 > 확인 ]
~ 여행자패스(도로시) ~
델피온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패스.
소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 > 확인 ]
그런데 여행자패스의 획득 뿐 아니라, 갑자기 안내창이 다다다 뜨면서 뭔가를 알린다.
~ 체력/휴식 시스템 활성화 ~
여행 중에 체력 게이지가 떨어지면 회복을 해야 합니다.
체력은 앉거나 누워서 일부 회복할 수 있으며, 숙박을 하면 MAX로 회복됩니다.
[ > 확인 ]
~ 포만감 시스템 활성화 ~
포만감 정도가 떨어지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맛있는 식사를 앞두었을 때는 지나치게 배부른 상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 > 확인 ]
~ 거래 기능 활성화 ~
소지한 재화를 활용하여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재화가 부족하면 구매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 확인 ]
와, 갑자기 이렇게 여러 기능을 활성화하는 건가? 머리 터지겠는데…….
일단 화면을 살펴보니, 구석에 딱 봐도 체력 게이지처럼 보이는 붉은 하트가 생겼다. 아마 이게 까만색이 되거나 하면 체력을 회복해야 하나 보다.
빵이라고 그린 것 같은 갈색 아이콘도 생겼다. 아마 이게 꽉 차면 포만감, 다 떨어지면 완전 배고프다는 것을 나타내나 보다. 후우, 아무튼 플레이하다 보면 감이 잡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디어 돈 표시가 생겼다! 물론 빵 원이지만……. 아마 골드는 이제부터 벌어야 쌓이나 보다. 그 밖에 먹고 자고 하는 건 여행자패스로 가능한 것 같고.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돈을 안 벌고 그냥 여행만 해도 되는 건가?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골드를 ‘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행자패스를 받고 건물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캐릭터 컨트롤이 안 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짙은색 후드를 쓴 사람이 창구 쪽으로 다가온다. 후드 아래로 푸른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얼굴이 눈에 띈다.
[???]
서류는 작성했는데, 여행자패스는 신청하려면 오래 걸리나요?
그는 서류를 제출하고 직원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갑자기 시계를 보고는 허겁지겁 발길을 돌린다.
[엘레나]
(저 사람도 여행자패스를 신청하려는 건가?)
[도로시]
있잖아, 엘레나…….
[엘레나]
응?
[도로시]
우리 이제 뭐라도 먹으러 가자. 아침 먹고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파.
[엘레나]
그러고 보니 나도 슬슬 배고프다. 가자!
~ 델피온 황성 ~
여행관광국 밖으로 나온다. 이제 뭔가를 사 먹을 수도 있다니, 진짜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보니까 길거리에 군것질거리가 가득하다.
벌써 체력 게이지와 배고픔 게이지가 절반으로 깎여 있다. 아니, 아까 분명 꽉 찼었는데? 어디라도 들어가 앉아서, 겸사겸사 뭐라도 먹으며 쉬어야 할 것 같다. 가장 먼저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입간판의 메뉴를 읽어본다.
~ 원조 젤라또 ~
S 사이즈 (2스쿱) … 3,500 골드
M 사이즈 (3스쿱) … 4,700 골드
[ > 확인 ]
이름만큼이나 메뉴도 단촐하다.
일단 들어가 본다.
~ 원조 젤라또 ~
[엘레나]
마침 빈 테이블이 있네. 도로시랑 제이크도 하나씩 사서 같이 먹자.
[도로시]
좋아!
[제이크]
패스가 있으니까 좋네~
[라빈스]
안녕하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 무슨 사이즈를 먹을까? ~
S 사이즈 (2스쿱) … 3,500 골드
> M 사이즈 (3스쿱) … 4,700 골드
[ 확인 ]
~ 무슨 맛을 먹을까? ~
> 피스타치오
헤이즐넛
다크 초코 헤이즐넛
초코칩쿠키
커스타드 초코 케이크
> 초콜릿과 크림
> 체리와 크림
밤
산딸기
레몬
쌀
[ 확인 ]
[라빈스]
감사합니다.
젤라또 가게 직원의 말이 끝나자, 엘레나와 일행들의 손에 각각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들린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젤라또겠지?
그 와중에 직원 이름이 라빈스라니, 정말 대충 짓는군……. 그러면서 이 작은 가게에 대화를 굳이 집어넣고, 또 메뉴도 엄청 세심하게 구성했다. 진짜 내가 먹을 맛을 고르는 것 같아서 고민해버렸다. 피스타치오는 포기할 수 없지만, 크림 맛으로만 두 개를 더 집어넣으면 느끼할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내려놓을 수 없어서 선택했다. 대체 누가 신경 쓴다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빈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반쯤 떨어져 있던 체력과 포만감 게이지가 조금씩 회복된다.
[도로시]
엘레나, 젤라또 맛 어때?
[엘레나]
피스타치오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야.
초콜릿과 크림은 정말 부드럽고.
체리와 크림은…… 생각지 못한 조합인데 달달한 우유 맛이라 맛있어.
지난번에도 생각했지만, 엘레나도 도로시 못지 않게 미식가 여행자 타입인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휴식도 취할 겸 젤라또 가게에 앉아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기분 좋다. 둘러보니 가게에 온 사람들 모두가 느긋해 보인다. 약간 <동물의 숲> 느낌도 나는 것 같다.
그 사이에 도로시는 카운터로 가서 젤라또 한 컵을 더 주문해서 맛있게 먹는다. 여행자패스에는 한도가 없는 건가? 에이, 설마. 있긴 하겠지.
산책도 산책이지만, 무언가를 향해서 급히 움직일 필요 없이 여유로운 것도 즐겁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시간이라니. 게임 속이라지만 왠지 언젠가 지금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하지만 한국인의 피가 나를 재촉한다. 체력이랑 포만감 게이지 다 채우면 체스 챔피언십 경기를 보러 가야 한다고.
Ch.07 여행자는 처음이라
- 끝 -
Ch.07 여행자는 처음이라 (2)
일단 지도를 펼쳐봤는데, 벌써 반짝이는 화살표가 떠 있다. 여행관광국에서 멀지 않은 곳의 광장 쪽이다. 줌인해서 살펴보니 화살표는 정확히 루비 상단을 가리키고 있다. 정말이지 게임을 쉽고 친절하게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화살표다.
위치는 알겠고, 델피온 황성의 전체적인 모습이 궁금해서 그냥 컨트롤러로 줌인, 줌아웃을 하며 여기저기 살펴본다. 확실히 지금 있는 위치는 정중앙에 가깝다. 큰 광장을 가운데에 두고 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 형태같다.
지도를 닫아도 미니맵이 화면 귀퉁이에 떠 있어서 길찾기가 수월하다.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 실제로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 점이 무척 현실적이다. 요즘에는 아예 오토로 돌려서 퀘스트 지점까지 가도록 하기도 하던데, 그런 기능까지는 안 넣은 모양이다. 이런 면은 꽤 낭만적이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희미한 빛의 고리가 엘레나의 허리를 훌라후프처럼 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뭔가 했는데, 돌아다녀보니까 훌라후프의 화살표 방향이 북쪽을 가리키며 나침반처럼 돌아간다. 길치에게 최적화된 보조장치다. 설정에서 끌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거추장스럽지 않으니 달고 다녀봐야겠다.
가는 도중에 잡화점이 있어서 쇼윈도로 다가가본다. ‘구경하기’로 상호작용이 된다. 한 번 눌러볼까?
> 구경하기
[엘레나]
(귀여워 보이는 곰인형! 하지만 인형 치고는 가격이 조금 비싸 보인다.)
잠깐, 이거 설마……. 가게마다 전부 구경이 되는 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디저트 가게 앞에 서 본다. 세상에, 여기도 ‘구경하기’가 된다.
> 구경하기
[엘레나]
(새하얀 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 장식으로 얹은 딸기도 신선해 보인다.)
어쩌면 이 넓은 황성의 모든 가게에 ‘구경하기’를 집어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까지 게임을 만들 필요가 있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여행하는 기분이 물씬 나서 좋지만,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완전 노가다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델피온 황성을 천천히 산책한다. 골목에는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가득하다. 카페나 식당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처럼 간식거리를 파는 집부터, 주방용품처럼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상점까지 다양하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마다 구경거리로 가득해서 정말 유럽의 어느 거리를 산책하는 듯 하다. 아, 여기는 기념품 가게 같은 곳이다.
> 구경하기
[엘레나]
(용도를 알 수 없는, 고리가 달린 보라색 장식품. “숙면을 돕는 라벤더 향”이라고 적혀 있다.)
구경하며 다니는 골목길은 전부 반들반들한 돌로 잘 포장된 모습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분 좋은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델피온 황성의 풍경은 목가적이었던 나리엔 마을과는 모든 면에서 달라 보인다. 나리엔 마을은 집도 자그마하고 공터도 드문드문 있었는데, 여기는 어디를 둘러봐도 건물들이 기본으로 4~5층은 되는 데다가 그마저도 서로 벽을 맞대고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공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외벽은 대부분 파스텔톤으로, 황토색이나 빛바랜 연분홍 등의 색상이라 서로 어우러지며 도시의 톤을 맞추고 있다. 다들 도로를 향해 세로로 길쭉한 창문들이 달려 있고, 나무로 짠 덧창은 대체로 활짝 열려 있다.
아무래도 여행자도 꽤 많은 모양인지, 식당들은 다들 느긋하게 노천 테이블들을 내밀고 있다. 야외석에 앉은 손님들은 골목을 지나다니는 행인과 한 뼘 정도 간격만을 사이에 두고 있건만, 손님도 행인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 몫의 여유를 즐길 뿐이다.
식당마다 문 앞에는 메뉴판을 ‘A’자 모양의 입간판으로 놓아 두고 있다. 그 중 한 곳에 가서 입간판을 읽어본다.
~ 푸른바다 해산물 식당 ~
염소 치즈를 곁들인 황새치 카르파치오 … 27,000 골드
오테에산 새우 … 8,000 골드
실버 등급 굴 … 8,000 골드
골드 등급 굴 … 9,400 골드
랍스터 링귀니 … 38,000 골드
올리브와 케이퍼를 곁들인 토마토 콩피 … 27,000 골드
구운 감자 … 8,000 골드
초콜릿 케이크 … 9,400 골드
[ > 확인 ]
메뉴가 꽤 길어서, 살짝 스크롤을 내려야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세계의 골드는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 정도에 해당하는 걸까? 메뉴판만 보면 그냥 원화라고 쳐도 얼추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좀 더 플레이를 해봐야 알 것 같다.
메뉴판을 닫자, 도로시가 한 마디 한다.
[도로시]
으음, 맛있어 보이지만 역시 조금 비싼 것 같네…….
상단 지부에서 자금을 넉넉하게 받게 되면 한 번 도전해 볼까?
그렇군. 아직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구나.
이곳저곳 둘러보며 여유롭게 거리를 산책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상단 지부가 나타난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한 규모의 건물이다. 높이도 높이지만, 양 옆으로도 길게 뻗어 있는 형태라 전체적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정면에는 커다란 세 개의 문이 뚫려 있고, 건물 꼭대기에는 천사 형태의 석상 두 개가 좌우로 얹혀 있다.
건물 앞에는 널따란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 바닥은 소용돌이 무늬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세심하게 공들인 품이 난다.
이 정도 사이즈가 지부라니, 대체 이 상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 걸까?
~ 루비 상단 지부(?)를 찾아서 (100%) ~
델피온 황성의 루비 상단 지부를 찾아가자.
Tip. 활성화된 퀘스트는 의뢰자나 목표 장소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된다.
[ > 확인 ]
아직 문 열고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퀘스트 완료 안내창이 뜬다.
그러고 보니 퀘스트창에 이미 팁으로 설명을 해줬구나. 지도에 목적지가 표시된다고……. 습관적으로 그냥 확인 버튼 누르고 껐더니 못 읽었던 모양이다.
[제이크]
휘우~ 으리으리한걸?
[도로시]
이…… 이게, 지부?!
[엘레나]
아무래도 우리, 지부가 아니라 ‘본부’를 찾아온 것 같아…….
[도로시]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으음……. 뭐랄까, 이제 상단주님이 왜 ‘누추한 마차’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엘레나의 말을 끝으로 대화가 종료된다. 뭐야, 여기가 본부였어?
커다란 문 앞의 경비원 두 명에게 다가가서 차례로 말을 걸어본다.
> 마이클
[마이클]
여기가 바로 루비 상단 본부입니다.
> 잭슨
[잭슨]
델피온 황성에는 4대 상단의 본부가 모여 있습죠.
경비원들 이름의 상태가……. 게임 개발사가 작명에서는 갑자기 힘을 뺀 듯한 느낌이다.
일단 이걸로 여기가 본부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덧붙여서, 나머지 3개 대상단의 본부들도 찾아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한다.
우선은 루비 상단부터 들어가봐야겠지.
~ 루비 상단 ~
[엘레나]
안쪽도 엄청 크구나.
내부는 대리석 기둥이 높은 회랑을 곳곳에서 떠받치고 있다. 게다가 벽마다 값비싸 보이는 그림이 덕지덕지 걸려 있다. 무슨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마저 이는 공간이다.
한 직원의 머리 위에 화살표가 반짝이고 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본다.
> 클라라
[엘레나]
안녕하세요.
[클라라]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 장학증서에 대해서...
사용한도에 대해서…
뭔가 재미있는 일 없나요?
[클라라]
장학증서는 상단주님께서 특별히 미래가 촉망되는 인재를 선정하여 제공하는 후원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제이크]
역시 상단주라 그런지 인재 보는 눈은 있군~
[클라라]
장학증서를 받으셨나요? 최근에 한 부 발급되었다는 말씀은 전달받았습니다만.
[엘레나]
벌써 소식이 닿았나요?
[클라라]
상단의 정보망은 바람보다 빠르답니다.
그럼, 장학증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패스를 발급 드리겠습니다.
[엘레나]
패스요……? 저희는 상단 지부…… 으음, 정확히는 본부로 오긴 했지만…… 아무튼, 상단에 가져가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요.
[클라라]
맞습니다, 원래는 돈을 인출하실 수 있는 형태였죠.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단주님께서 갑자기 패스 발급 형태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제이크]
호기심 많은 상단주께서 우리 근황을 앞으로도 쭉 알아보고 싶으셨나 보네~
[엘레나]
근황?
[직원]
어쩌면 그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패스는 사용하는 즉시 상단으로 금액과 간단한 사용내역이 전달되니까요. 한 번 인출하면 그 후의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현금과는 다르게 말이죠.
[엘레나]
그렇군요. 그럼 패스 신청을 할게요.
[직원]
네. 절차에 따라 장학증서 진위검증 후 바로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제이크가 장학증서를 건네자, 직원이 스포이드에 담긴 용액을 증서에 한 방울 떨어뜨린다. 용액이 증서에 닿자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날개와 별 형태가 잠깐 나타나더니 사라진다.
직원이 몇 가지 서류를 뒤적이더니, 바로 패스가 발급된다.
[클라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루비상단 장학패스(제이크) ~
루비상단 인재 후원 프로그램의 패스.
뒷면에는 누군가의 친필이 적혀 있다 - ‘일일한도 : 적당히 쓸 것’
[ > 확인 ]
[제이크]
유후, 이젠 내가 가장 부자인걸?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천사님~
[도로시]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적당히 써야 할 것 같은데……?
[제이크]
그럼 꼬마 마녀님은 빼고~
[도로시]
뭐? 그런 게 어딨어?!
[엘레나]
…… 여행관광국으로 가자.
이제 이 퀘스트는 완료했고, 여행관광국으로 돌아가야겠다.
한 번 와봤던 길을 되짚어 가니, 길 찾기가 수월하다. 몇몇 가게는 벌써 눈에 익어서 동네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 미니맵은 자동으로 정면 방향을 맞춰주며 부지런하게 돌아간다. 게다가 엘레나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나침반 고리 덕분에 길 찾기가 훨씬 쉽다. 어쩌면 난 지금껏 이런 도구를 갈망하고 있었던 걸까?
이번에는 한눈 팔지 않고, 곧장 여행관광국으로 들어간다.
~ 여행관광국 ~
[엘레나]
번호표를 뽑으면 될까?
[앨리슨]
안녕하세요! 여행자패스 신청하셨죠?
마침 손님이 안 계셔서, 이 쪽 창구로 바로 오시면 되세요.
[도로시]
우리 얼굴을 기억하셨나봐! 여행관광국 분들은 다들 친절하신 것 같아.
[앨리슨]
여기, 여행자패스입니다. 델피온 제국 내에서는 웬만한 숙식은 해결하실 수 있고, 도서관이나 마구간 등 일부 장소도 패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엘레나]
그럼 외국에서는 쓸 수 없나요?
[앨리슨]
타국에서도 사용은 가능하십니다만, 제휴된 숙소와 식당이 제한적이라 일부에서만 사용 가능하십니다. 그래서 보통 여행자 분들은 해외에서는 제휴업체를 이용하시거나, 그때 그때 일거리를 찾아서 여행 경비를 충당하시곤 하죠.
[엘레나]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앨리슨]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여행관광국을 찾아주세요.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 정식 여행자의 길 (100%) ~
여행자 패스를 신청하자.
Tip. 퀘스트가 어려울 때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 좋다.
v 여행자 패스 신청하기
v 여행자 패스 수령하기 COMPLETE!
[ > 확인 ]
~ 여행자패스(엘레나) ~
델피온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패스.
소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 > 확인 ]
~ 여행자패스(도로시) ~
델피온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패스.
소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 > 확인 ]
그런데 여행자패스의 획득 뿐 아니라, 갑자기 안내창이 다다다 뜨면서 뭔가를 알린다.
~ 체력/휴식 시스템 활성화 ~
여행 중에 체력 게이지가 떨어지면 회복을 해야 합니다.
체력은 앉거나 누워서 일부 회복할 수 있으며, 숙박을 하면 MAX로 회복됩니다.
[ > 확인 ]
~ 포만감 시스템 활성화 ~
포만감 정도가 떨어지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맛있는 식사를 앞두었을 때는 지나치게 배부른 상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 > 확인 ]
~ 거래 기능 활성화 ~
소지한 재화를 활용하여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재화가 부족하면 구매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 확인 ]
와, 갑자기 이렇게 여러 기능을 활성화하는 건가? 머리 터지겠는데…….
일단 화면을 살펴보니, 구석에 딱 봐도 체력 게이지처럼 보이는 붉은 하트가 생겼다. 아마 이게 까만색이 되거나 하면 체력을 회복해야 하나 보다.
빵이라고 그린 것 같은 갈색 아이콘도 생겼다. 아마 이게 꽉 차면 포만감, 다 떨어지면 완전 배고프다는 것을 나타내나 보다. 후우, 아무튼 플레이하다 보면 감이 잡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디어 돈 표시가 생겼다! 물론 빵 원이지만……. 아마 골드는 이제부터 벌어야 쌓이나 보다. 그 밖에 먹고 자고 하는 건 여행자패스로 가능한 것 같고.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돈을 안 벌고 그냥 여행만 해도 되는 건가?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골드를 ‘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행자패스를 받고 건물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캐릭터 컨트롤이 안 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짙은색 후드를 쓴 사람이 창구 쪽으로 다가온다. 후드 아래로 푸른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얼굴이 눈에 띈다.
[???]
서류는 작성했는데, 여행자패스는 신청하려면 오래 걸리나요?
그는 서류를 제출하고 직원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갑자기 시계를 보고는 허겁지겁 발길을 돌린다.
[엘레나]
(저 사람도 여행자패스를 신청하려는 건가?)
[도로시]
있잖아, 엘레나…….
[엘레나]
응?
[도로시]
우리 이제 뭐라도 먹으러 가자. 아침 먹고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파.
[엘레나]
그러고 보니 나도 슬슬 배고프다. 가자!
~ 델피온 황성 ~
여행관광국 밖으로 나온다. 이제 뭔가를 사 먹을 수도 있다니, 진짜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보니까 길거리에 군것질거리가 가득하다.
벌써 체력 게이지와 배고픔 게이지가 절반으로 깎여 있다. 아니, 아까 분명 꽉 찼었는데? 어디라도 들어가 앉아서, 겸사겸사 뭐라도 먹으며 쉬어야 할 것 같다. 가장 먼저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입간판의 메뉴를 읽어본다.
~ 원조 젤라또 ~
S 사이즈 (2스쿱) … 3,500 골드
M 사이즈 (3스쿱) … 4,700 골드
[ > 확인 ]
이름만큼이나 메뉴도 단촐하다.
일단 들어가 본다.
~ 원조 젤라또 ~
[엘레나]
마침 빈 테이블이 있네. 도로시랑 제이크도 하나씩 사서 같이 먹자.
[도로시]
좋아!
[제이크]
패스가 있으니까 좋네~
[라빈스]
안녕하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 무슨 사이즈를 먹을까? ~
S 사이즈 (2스쿱) … 3,500 골드
> M 사이즈 (3스쿱) … 4,700 골드
[ 확인 ]
~ 무슨 맛을 먹을까? ~
> 피스타치오
헤이즐넛
다크 초코 헤이즐넛
초코칩쿠키
커스타드 초코 케이크
> 초콜릿과 크림
> 체리와 크림
밤
산딸기
레몬
쌀
[ 확인 ]
[라빈스]
감사합니다.
젤라또 가게 직원의 말이 끝나자, 엘레나와 일행들의 손에 각각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들린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젤라또겠지?
그 와중에 직원 이름이 라빈스라니, 정말 대충 짓는군……. 그러면서 이 작은 가게에 대화를 굳이 집어넣고, 또 메뉴도 엄청 세심하게 구성했다. 진짜 내가 먹을 맛을 고르는 것 같아서 고민해버렸다. 피스타치오는 포기할 수 없지만, 크림 맛으로만 두 개를 더 집어넣으면 느끼할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내려놓을 수 없어서 선택했다. 대체 누가 신경 쓴다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빈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반쯤 떨어져 있던 체력과 포만감 게이지가 조금씩 회복된다.
[도로시]
엘레나, 젤라또 맛 어때?
[엘레나]
피스타치오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야.
초콜릿과 크림은 정말 부드럽고.
체리와 크림은…… 생각지 못한 조합인데 달달한 우유 맛이라 맛있어.
지난번에도 생각했지만, 엘레나도 도로시 못지 않게 미식가 여행자 타입인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휴식도 취할 겸 젤라또 가게에 앉아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기분 좋다. 둘러보니 가게에 온 사람들 모두가 느긋해 보인다. 약간 <동물의 숲> 느낌도 나는 것 같다.
그 사이에 도로시는 카운터로 가서 젤라또 한 컵을 더 주문해서 맛있게 먹는다. 여행자패스에는 한도가 없는 건가? 에이, 설마. 있긴 하겠지.
산책도 산책이지만, 무언가를 향해서 급히 움직일 필요 없이 여유로운 것도 즐겁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시간이라니. 게임 속이라지만 왠지 언젠가 지금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하지만 한국인의 피가 나를 재촉한다. 체력이랑 포만감 게이지 다 채우면 체스 챔피언십 경기를 보러 가야 한다고.
Ch.07 여행자는 처음이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