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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Nov 10. 2024

Ch.08 체스 챔피언 엔젤리카 (1)

젤라또 가게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잠시 쉬었더니 체력이 거의 다 찼다. 포만감은 그보다 덜 찼지만 그래도 꽤 봐줄 만 하다. 아마 체력이랑 포만감은 시스템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중에 잠을 자든지 식사를 제대로 하든지 해야 다 찰 것 같다.

여독이 쌓이는 걸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내가 시간만 때우다가 하루가 지나면, 멜리사는 체스 챔피언십 경기를 혼자 보러 가게 되는 걸까? 아니면 시간이랑은 상관없이 그냥 아무때나 체스 챔피언십 경기장을 찾아가면 멜리사를 만나게 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뜻밖의 손님이 등장하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멜리사]

여어~ 다들 당 충전을 하고 계셨구만?


[도로시]

상단주님?!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멜리사]

그거야 다 방법이 있지~

장학증서 결제내역이라든지, 여기저기 심어둔 내 정보망이라든지. 후후~


[제이크]

흐음, 왠지 스토킹을 당하는 기분인데.


멜리사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등장한다고? 내가 이상한 동상 위에 올라가 있거나 했다면, 그랬어도 그 근처에 나타났으려나?

아무튼 신선하네. 어디에 있든지 전개되는 스토리라니.


[멜리사]

에엥 스토킹이라니, 길드원끼리 섭하게~

그런데 힐러님, 아직 정식 길드로 등록하지는 않았나봐?


[엘레나]

정식 길드요?


[멜리사]

아주 옛날에는 너도나도 길드라고 만들면 그만이었지만, 요즘에는 정식 등록을 해야 길드로 인정을 받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길드용 물건이나 건물의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단 말이지. 바로 그 통신구처럼.


[엘레나]

아, 그런가요?


[멜리사]

그럼그럼. 통신구 연락이 안 되길래 따로 알아보고 쫓아왔는걸~

내일은 중앙청에 가서 길드 등록부터 해 봐. 지금은 체스 챔피언십을 보러 가야 하니까, 따라와~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멜리사다. 그런 으리으리한 대상단의 상단주로는, 글쎄, 호탕해서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 철없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멜리사를 따라가다 보니, 화려한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 진입


~ 오페라 극장 ~


[도로시]

굉장히 화려한 곳이네요…….


[제이크]

대리석 조각상도 하나하나 대단한데?


[멜리사]

황성의 대표 오페라극장이니까.

가자, 자리는 위쪽이야.


간단한 대화가 끝나고, 다시 멜리사를 따라간다.

계단으로 연결되는 위층에는 둥근 호를 그리는 복도가 길게 이어진다. 둥근 호의 안쪽으로는 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려 있다. 멜리사가 그 중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보니 널찍한 박스석이다.


[멜리사]

어서 와! 자리가 좀 애매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단체로 같이 관람하는 맛이 있단 말이지.


[엘레나]

제가 보기에는 특등석인걸요?


[멜리사]

으음 으음, 모르는 말씀! 사실 제일 직관하기 좋은 건 맨 앞자리나 아니면 정면 저 위쪽이야. 소리도 잘 들리고, 정면이라 무대 보기에도 편하니까. 나중에 음악 들으러 올 때는 웬만하면 정면 쪽에 앉아. 그 자리들이 소리가 좋아.

오늘은 체스 대회니까, 이따가 저 무대 뒤쪽에 대형 스크린으로 체스판을 볼 수 있어서 괜찮아.


[엘레나]

하지만 엄청 비싸겠죠?


[멜리사]

당연하지~ 돈이 좋다는 게 다 이런 거 아니겠어? 후후.


[제이크]

천사님, 아직 돈이 걱정이야? 내가 다 알아서 구해줄 수 있는데~


[도로시]

화폐위조는 안 돼.


[제이크]

그럼 몰래 빌리는 건?


[도로시]

몰래라니? 그건 갈취지!!!


[멜리사]

오늘도 힐러님네 길드는 혈기왕성하네~

어랏, 이제 무대 커튼 열린다! 체스 선수들이 입장할 거야.


무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서서히 올라간다.

무대 중앙의 의자에는 선수 두 명이 앉아 있고, 그들 사이에 체스판 하나가 놓여 있다.


[멜리사]

자, 여기 속삭임 사탕이야.


[도로시]

속삭임 사탕? 산산조각 나 있는 걸요.


[멜리사]

후훗, 이 몸이 미리 한 알을 적당히 조각내어 두었지! 쪼개서 먹으면 같이 먹은 사람들끼리는 입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거든.

체스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니까,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면 곤란해.


~ 속삭임사탕(조각) ~

나누어 먹으면 서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기한 사탕.

[ > 사용 ]


[멜리사]

어때? 들려?


[제이크]

오, 이건 신기한데?


[멜리사]

자, 그러면 간단히 소개를 해 줄게.

저 건너편에 푸른 휘장으로 둘러진 박스석 보이지? 저기 앉아서 부채나 흔들고 있는 사람이 사파이어 상단의 상단주야.


[엘레나]

경쟁 상단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이시네요.


[멜리사]

보이는대로 묘사한 지극히 객관적인 설명일 뿐인걸?

그리고 무대에서 붉은 깃발 쪽이 우리 훌륭한 루비 상단의 엔젤리카 자리야. 푸른 깃발은 사파이어 상단의 다니엘라 선수 쪽이고.


멜리사의 설명을 따라서 화면의 카메라가 무대와 상대 상단주의 자리를 비춘다. 역시 게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같다…….

무대에는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이 걸려 있다. 붉은 깃발에는 날개와 별 모양이 그려져 있다. 장학증서의 진위여부를 검증할 때 나타났던 안개의 모양과 동일하다. 멜리사네 대표 선수라는 엔젤리카는 머리색이 독특해서 눈에 띈다. 금발에 연두색이 섞여 있다.

푸른 깃발에는 월계수와 유니콘이 그려져 있다. 앳된 얼굴을 한 선수가 파란색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있다. 엥? 어디서 봤던 것도 같은데…….


[멜리사]

오늘은 우리 상단이 대회에 진출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결승전에 올라간 역사적인 순간이야.


[엘레나]

음, 그런데 저 선수…….


[멜리사]

후후, 엄청 어린 편 같지?

저 쪽의 다니엘라는 16살 때 혜성처럼 체스 씬에 나타나서는, 챔피언 자리를 5년 연속 지켜오고 있는 실력파 선수야. 아주 탐나는 인재지만, 이미 경쟁자가 낚아채갔으니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사파이어 상단의 아성이 무너질 거다, 그게 중요하다 이 말이지!


[엘레나]

아뇨, 그게 아니라, 저 파란 머리칼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멜리사]

아앗, 이제 시작한다!


술렁이던 관객석이 일순간 조용해지고, 경기가 시작된다.

체스판 위로 양측 선수의 말이 신중하게 교차한다. 화면이 객석과 무대와 체스판을 오가며 전환되고, 시간이 갈수록 멜리사의 엔젤리카 선수가 말을 하나씩 잃어간다.


[도로시]

으앙, 퀸이 먹혀버렸잖아?

내가 보고 있으면 지는 것 같아서 더는 못 보겠어…….


[제이크]

그렇게 난간 뒤에 고개 푹 숙이고 숨어봤자 아무 상관없을 텐데?

게다가 이미 루비 상단이 이긴 것 같은걸.


제이크의 말대로, 몇 차례의 움직임이 오간 후에 사파이어 상단의 선수가 한숨을 푹 쉰다. 그러더니 본인의 킹을 옆으로 툭 쳐서 쓰러뜨린다.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멜리사]

예스! 승리야, 승리! 아아, 이럴 줄 알았다고! 엔젤리카 최고!!!


양 선수가 악수를 나누고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든다. 엔젤리카 선수는 멜리사 쪽을 올려다보며 눈을 찡긋하고 손으로 브이를 그린다.


[도로시]

이…… 이겼다구?! 분명 퀸까지 잃었는데?


[제이크]

퀸을 넘겨도 이기는 수였으니까.


[멜리사]

여어, 사파이어! 메롱이다, 메에롱!


[엘레나]

상단주님, 저쪽 박스석에서도 여기가 다 보이는 걸요……?


[멜리사]

아아, 내가 좀 너무했나? 그래도 기분이 완전 좋은 걸!?


[제이크]

이럴 때 보면, 도로시보다도 상단주님이 더 꼬마 마녀님 같단 말이지.


[멜리사]

크으, 기분 최고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다들 한잔하러 가자구! 근사한 와인바를 예약해 두었으니까.

이길 걸 내가 다~ 예상했다 이 말이지! 엔젤리카하고 합류하기로 얘기해 뒀어~


그러고는 박스석을 나서는 멜리사.

멜리사를 따라 오페라 극장을 나서니, 어느새 거리에는 밤이 내려앉아 있다. 델피온 황성의 밤은 나리엔 마을과는 다르게 여전히 다소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일단 길거리에 사람들도 더 많고, 나리엔 마을에서는 못 보던 마차들도 활발하게 돌아다닌다.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RPG 게임의 재미 중 하나지만, 이런 식으로 약간 가이드 같은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은 또 색다르다. 진짜 친구들이랑 다니는 느낌? 나는 멜리사를 따라다니고, 그런 나를 도로시와 제이크가 졸졸 따라온다.

어느덧 어떤 레스토랑 앞에 도착하고, 멜리사가 멈춰선다.


[멜리사]

여기야. 루비 레드 레스토랑!


> 진입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느낌의 레스토랑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레스토랑 내부의 천장과 벽면에는 약간 색이 바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조명이 비추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배경음도 시끌벅적한 거리가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들릴 법한 소리들로 바뀐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 이런 데서 먹으면 뭐든 맛있을 것 같다.

다시 스토리가 전개된다.


[엘레나]

밖에서 보니까 옆 건물은 와이너리 같았는데.

와이너리에 레스토랑이 붙어 있군요?


[멜리사]

응! 아무래도 ‘산지직송’이 제일 맛있잖아? 이런 데에 다이닝 바를 차리지 않으면 완전 손해지~


[도로시]

우와, 분위기 정말 좋다.......


[제이크]

손님도 많네. 다들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지?


[지배인]

오랜만에 뵙네요, 상단주님.


[멜리사]

오랜만에 보니까 더 반갑네! 여전히 성업 중이구만~

하여간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틀림 없으니까. 으흠!


[지배인]

하하, 모두 덕분이죠.

안쪽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두 분도 방금 오셨습니다.


[멜리사]

그래, 그래.

여어~ 엔젤리카! 루시!


[엔젤리카]

상단주님! 이제 오셨군요.


안내 받은 자리에는 체스 챔피언이 된 엔젤리카가 멜리사의 수행 비서 루시와 함께 앉아서 이 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테이블에는 와인 두 잔이 채워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둘은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멜리사]

자,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이 쪽은 맹활약을 보여준 오늘의 주인공, 엔젤리카!

엔젤리카, 이 쪽은 엘레나 길드! 최강 힐러님께서 길드 마스터를 맡고 계신, 아주 흥미로운 길드지.


[엔젤리카]

만나서 반가워요. 엔젤리카라고 해요.


[엘레나]

안녕하세요. 길드 마스터를 맡고 있는 엘레나라고 합니다. 참고로 최강 힐러……까지는 아니에요.

이 쪽은 저희 길드원들, 차례로 도로시와 제이크예요.


[도로시]

안녕하세요! 도로시라고 해요.

막판 뒤집기, 정말 멋졌어요!


[제이크]

음? 꼬마 마녀님은 마지막에 눈 감고 있었잖아?


[도로시]

아 정말, 제이크......!


도로시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제이크를 노려본다.


[멜리사]

자자, 배고프니까 싸우기 전에 음식부터 주문하자고. 다들 식사는 뭘로 하겠어?


~ ‘물’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

> 스파클링 물

  미네랄 물

[ 다음 ]


~ ‘전채’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

> 모짜렐라 샐러드

  세 가지 맛의 브루스게타 (토마토, 바질, 캐비어)

[ 이전 ] [ 다음 ]


아니,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다 주문을 한다고?


~ ‘첫 번째 요리’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

> 트러플 까르보나라 파스타

  토마토 라구 파스타

[ 이전 ] [ 다음 ]


~ ‘두 번째 요리’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

  구운 닭고기

  구운 돼지고기 등심

> 소고기 티본 스테이크

[ 이전 ] [ 다음 ]


~ ‘음료’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

> 샴페인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오렌지 주스

[ 이전 ] [ 확인 ]


[지배인]

메뉴 확인 드리겠습니다.

물은 ‘스파클링 물’로 준비해 드리고, 전채는 ‘모짜렐라 샐러드’, 첫 번째 요리는 ‘트러플 까르보나라 파스타’, 두 번째 요리는 ‘소고기 티본 스테이크’, 음료는 ‘샴페인’ 맞으시죠?


[엘레나]

네, 맞아요.


[지배인]

확인 감사합니다. 순서대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이 물러나자, 도로시가 쭈뼛거리며 엔젤리카에게 말을 건다.


[도로시]

저, 사실은……. 퀸이 먹혔을 때부터는 경기를 못 봤어요. 괜히 도로시가 봐서 지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무서웠거든요.


[멜리사]

뭐? 크하핫, 꼬마 마법사님은 정말 꼬마 같은 면이 있구나!


[도로시]

상단주님까지! 그치만 그만큼 진심이었다구요.


[제이크]

흐음. 그렇지만 사실 퀸을 넘긴 것, 일부러였죠?


[도로시]

일부러……?


[엔젤리카]

후후, 눈치 채셨군요.


[제이크]

몇 수 전부터, 반드시 퀸이 먹히는 흐름으로 가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챔피언님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다음 수로 이어가시더군요. 심지어 몇 초를 망설일지까지 모두 계산된 것처럼 보였어요.


[엔젤리카]

아, 그것까지는 들킬 줄 몰랐는데. 굉장히 예리하시군요?

상단주님도 아셨나요?


[멜리사]

그럼, 당연하지! 장사로 먹고 살려면 그 정도 예리함은 기본으로 탑재되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도로시]

네에? 다들 알고 있었어……?!


[엘레나]

아니, 단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비상할 뿐이야…….


모두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입맛을 돋구어주는 전채가 나온다. 엘레나의 몫으로는 내가 고른 모짜렐라 샐러드가 식탁에 차려진다.

한 입 베어물더니, 엘레나의 감상이 뜬다.


[엘레나]

(재료의 향이 하나하나 살아 있으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신선하고 조화로운 맛이야…….)


[멜리사]

흐응, 그런데 힐러님.

우리의 장학생은 오늘 분위기가 조금 다른걸?


[엘레나]

네?


[멜리사]

답지 않게 존댓말을 하다니, 이상하지 않아?

평소 같았으면 처음 만나는 상대한테도 대뜸 아무렇게나 말을 건네곤 하는데. 누구한테 조종 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도로시]

아아, 그거라면 제가 교육을 단단히 해 두었죠!


[엘레나]

교육을 했어? 언제?


[도로시]

엘레나가 델피온 황성 구경하고 있을 때!

‘제이크가 가게에서 주문이라도 할 때 무례하게 굴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엘레나가 구경에 열중하는 사이에 단단히 일러 두었지~


[엘레나]

아, 아하하……. 그랬구나. 잘했어, 도로시.


빈 와인잔이 각자의 앞에 세팅된다. 톡 치면 부러질 듯 목이 가느다란 모습이, 딱 봐도 값비싸 보이는 제품 같다.

저마다 주문한 음료가 잔에 서빙되고, 엘레나도 멜리사를 따라서 와인잔을 들고 샴페인을 한 모금 음미한다.


[엘레나]

(역시 전채만큼이나 이 쪽도 향이 좋다…….)


[제이크]

그런데 상단주님, 아까 5년 만에 챔피언 자리를 찾았다고 했지?

상단주님 성격 치고는 오래 걸렸는걸. 의외랄까.


[멜리사]

에잉,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 있는 법이야.

상단이 체스 판에 뛰어들기 시작한 게 5년 전이고, 이번에 첫 도전장을 내민 거니까?


[엘레나]

네? 그럼, 첫 시합에서 챔피언을 따낸 거예요?


[멜리사]

으흠 으흠, 그렇고말고! 나는 지는 싸움에는 걸지 않으니까. 무르익어서 이제 먹을 때가 됐다 싶으면 그 때 한 방으로 승부하는 거지!


[제이크]

그걸 생각하면 굉장한 속도네. 5년 전에는 선수조차 없었다는 얘기잖아?

도대체 엔젤리카는 어디서 빼 온 선수야?


[멜리사]

빼왔다니, 섭하게~ 내가 그렇게 보여?


[엘레나]

으음, 상단주님의 행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멜리사가 체스 챔피언 이야기를 자랑하던 중에, 첫 번째 음식인 트러플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나온다.

포크에 돌돌 감아서 한 입 먹어보는 엘레나. 역시 이번에도 감상을 전한다. 게임 개발자가 배고플 때 시나리오를 작성했나?


[엘레나]

(딱 알맞게 잘 익은 파스타 면이 쫄깃하면서도 통통한 식감을 선사한다. 소스가 면과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울린다.)


[엔젤리카]

하하, 저를 어디에서 빼왔는지를 물으시다니 재밌네요.

그렇지만 체스가 5년 전이 처음이었던 건 저도 상단주님이랑 마찬가지였답니다.


[도로시]

네에? 그럼 5년 전에 루비 상단이 체스에 손을 댔을 때, 그 때 엔젤리카님도 체스가 처음이셨던 건가요?


[엔젤리카]

네, 원래는 외판원 일을 했어요.


[도로시]

외판원이요? 체스와 관련된 뭔가를 파셨던 거예요?


[엔젤리카]

아뇨, 전혀 달랐어요. 화장수를 팔았거든요.

피부를 윤기 나게 만들어 준다는 화장수였는데, 사실 그건 거의 거짓말이나 다름 없었고 말이죠. 실은 꽃향기가 나는 물에 가까웠지만 화장수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일단 팔고 봐야 했으니 미사여구가 필요했고, 저는 돈을 벌어야 했으니 미사여구를 대신 뿌려주는 사람으로 일할 필요가 있었어요.

참 지긋지긋했지만 저는 남들처럼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남들처럼 견디면서 사는 게 당연한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도로시]

그럼, 체스는 취미로 하셨던 건가요?


[엔젤리카]

취미도 아니었어요. 체스를 두려면 상대가 필요한데, 저는 주위에 체스 하는 친구도 딱히 없었고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다가 서른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마차 사고를 당했고, 결국 두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손쓸 도리가 없었거든요.


[도로시]

앗, 그런…….


그제서야 카메라가 엔젤리카의 하반신을 비춘다.

그녀의 다리는 담요로 덮여 있어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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