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애기엄마가 된 어느 아침에 대하여

8개월 19일

by 구의동 에밀리

그러고 보니 서른 넷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네다섯 살 많으니, 내일모레면 마흔이었다. 내 나이가 아니라 남편 나이라고 해서 너무 반올림을 해버렸나? 그 와중에 네 살도 아니고 네다섯 살 많다는 것은, 남편이 빠른 년생이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나이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 빠른 년생이라니.


그런 남편과, 아침에 깜짝볼 하나 때문에 언쟁이 있었다. 예전에 장난감 도서관에서 깜짝볼을 빌려온 적이 있었다. 지름 한 30cm 정도 될까 하는 플라스틱 공인데, 실은 그 안에 오뚝이 모터 같은 게 있어서 계속 매트를 굴러다니는 일종의 놀이 로봇이다.


깜짝볼을 빌려왔을 당시와는 다르게, 이제는 아이가 배밀이의 선수가 되었으니 웬만큼 잘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엊그제 남편을 통해 당근으로 5,000원에 하나를 구해왔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배터리가 닳아서 그런지 작동이 시원찮았는데, 배터리를 교체하려고 나사를 풀어봤더니 십자 나사 한 쪽이 다 닳아서 뚜껑을 열 수가 없었다.


“수동이든 자동이든 십자 드라이버 집에 있는 걸로 다 돌려봤는데, 돌릴수록 나사만 더 마모되더라구.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아침에 그렇게 말했더니, 남편은 이렇게 답했다.


“손 바꾸면 되지 않을까?”


“손을 바꾼다구?”


아이가 A의 품에서 울다가도 B의 품으로 넘어가면 종종 울음을 그칠 때가 있었는데, 그 현상을 가리켜서 우리는 ‘손바꾸면 괜찮을 수 있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그 원리를 십자 나사 푸는 데에 적용한다니, 남편의 의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아침 일과를 얼추 마무리하고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거실 바닥에 드라이버와 깜짝볼이 놓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십자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 나사는 더 닳았고 말이다.


“또 드라이버를 쓰면 어떻게 해. 나사가 더 닳아버렸잖아.”


“아니, 나는 내가 해 보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난 분명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는걸.”


“그리고 내가 ‘손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했는데, 하지 말라고도 안했잖아? 다음부터는 명확하게 좀 얘기해줘.”


“내가 이유까지 설명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더 명확하게 얘기를 해야 해?”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한 건데,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좀 그래…….”


나는 이 때까지도 내가 왜 이토록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회사에서 말이야. 신입사원이 들어왔어. 그래서 신입사원한테, 지금 이슈가 하나 있는데, A라는 방법을 쓰면 B라는 문제가 발생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어. 그런데 신입사원이 ‘제가 해보면 될 것 같은데요’라고 하고는, 하지 말라고 했던 A라는 방법을 시도하고 B라는 문제가 또 발생했어. 그랬는데 되려 ‘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얘기를 하셨어야죠’라고 하면 화가 나, 안 나?”


- - -


그런 아침을 겪었더니 기분전환이 필요해져서, 요즘 핫한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를 무한 반복으로 재생했다.


노래 덕분인지 기분이 조금 나아졌고(남편은 여전한 것 같았지만), 아이와 함께 평소처럼 카페를 다녀왔다. 귀갓길에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아파트 사시는 이웃분을 만났다. 아이 등원을 시켜주고 오시는 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밤에 루나가 1시간마다 깨서 울었던 얘기가 나왔다.


“그래도 남편은 코 골면서 잘 자더라구요. 저랑 같이 안방에 있었는데, 저만 두 시간 동안 뜬눈으로 홈캠을 봤어요.”


“아휴, 원래 남자들이 진짜 아무 것도 몰라요. 저희 남편은 애가 밤에 열이 난다고 했더니 선풍기를 가져다가 틀어줬더라구요.”


“선풍기를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뭐하는 거냐고, 당장 끄라고 하고서 해열제를 먹였어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아침의 깜짝볼 이야기를 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안그래도 방금 ‘코 골면서 자는 남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는데, 이 이상 이미지를 하락시키면 좀 미안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신에 평범한 감상을 말했다.


“어째서 모든 남편들은 각자의 집에서 혼이 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이렇게 지면에 공공연하게 털어놓아버렸으니, 이 쪽이 더 심하려나? (다행히 사전에 양해는 구했다)


- - -


아침에 들른 카페는 오늘도 디저트39. 아이는 이번에도 귀여움을 잔뜩 받고 왔다.


평소에는 점주님께서 계셨는데 오늘은 매니저님이 가게를 보고 계셨다. 나는 사람 나이를 예측하는 데에는 정말 젬병이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나보다는 어려보이는 분이었다.


“강아지보다 귀여워요……. 제가 강아지를 키우거든요.”


“아 정말요?”


“네, 그런데 아기를 좋아해서, 아기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아직 결혼도 안했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그 분 말씀으로는, 결혼이 요원해져서 이제는 점점 강아지랑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인상도 좋아 보이시고 이렇게 일찍 여는 카페에서 일하실 정도라면 성실한 분인 것도 같았다. 내게 여자친구 없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면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니, 오지랖도 유분수지. 아무튼 왜 이런 분에게 결혼이 요원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늦가을의 아침 햇살이 옆으로 길게 내리쬐었다.


평소에는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일어나던 아이가 오늘따라 7시가 거의 다 되어서 일어났다. 그랬더니 카페에 갔다가 집에 오는 시점도 평소보다 비교적 늦었다. 11월 중순의 이 무렵 아침 햇살은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비추어왔다. 잘하면, 아니 잘못하면, 유모차 차양의 옆 틈새로 아이에게 햇빛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마침 강변역 위로 지상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햇빛을 받은 차체는 노랗고 부옇게 빛나서, 어쩐지 희망적인 애니메이션의 일상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저 지하철을 타고서, 즐거운 출근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한 명 쯤은 말이야. 역시 그런 출근길은 상상 속의 환상 정도로 불가능한 존재이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 학창시절 잘 지냈던 친구들, 등등. 똑똑하고 유쾌한 그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일한다면, 꽤 즐겁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한 명 한 명을 떠올려서 상상해볼수록, 답은 ‘그럴 것 같은데……?’였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일까? 역시 회사라는 형태가 되면, 어느 정도 서로에게든 구조에 대해서든 불만이 쌓이게 되려나? 하지만 역시나 머릿속에 떠오른 이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최소한, 명조체 12 포인트의 워드 파일로 된 보고서라든지, 혹은 ‘사내 정치’스러운 일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 - -


혼자만의 생각에 푹 잠겨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생이 우르르 함께 건넜다. 아마 구남초등학교에서 구의 공원으로 생태학습이라도 가는 거려나? 몇몇은 길을 건너다가 흘끗 뒤를 돌아보고는 유모차 안의 아가를 보고 말없이 손을 흔들어주고 갔다. 그 모습이 몽글몽글하고 따뜻했다.


그 중 한 명, 안경 낀 남학생이 유모차 쪽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엇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누구더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봤던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하여간 나는 사람 나이를 가늠한다든지 이름을 기억한다든지, 얼굴 인식과 관련된 기능은 죄다 젬병이었다.


누군지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아도, 그 정다운 인사의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받았다. 그러고 나서 길을 마저 걷는데, 어쩌면 내가 건넨 인삿말은 그 친구에게 낯선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은 보통 초등학생의 인사에 “그래 안녕” 하고 답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때의 다짐으로 인해 꿋꿋이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어떤 신사분께서, 꼬꼬마였던 내게 “안녕하세요” 하고 목례를 건네셨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 아파트에서 그 분이 유일한 어른으로 보였고, 이 다음에 크면 나도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안녕하세요”로 상대를 맞이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해버렸다.


게다가 나는 상대방의 나이를 정말 잘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이 방식에는 굉장한 이점이 있었다. 만약 초등학생에게는 “안녕”이라고 인사해야 한다면, 중학생에게도 “안녕”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럼 고등학생까지도 어쨌든 학생이니까 “안녕”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대학생은? 대학생은 어엿한 성인이니까, 성인 대 성인으로서의 예를 갖춰야 하려나? 그럼, 아저씨인지 고등학생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우에는……?


이러나 저러나 나는 누구에게든지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할 운명이었다.


- - -


정말, 그러고 보면 서른 넷이었다.


나는 어느덧, 이웃집 아이들로부터 인사를 받게 되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되어 있었다. 아직 그래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스스로를 “아줌마한테~”라고 칭하게 될 지도 모른다. 커리어를 고민하던 스물 여덟이었던 게 엊그제 같고, 아직도 나의 고민은 끝나지가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 있었을까?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유모차를 미는 사람의 그림자가 무척 평범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림자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무척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회사를 휴직하고,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구나. 어쩌면 이토록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깨닫게 될 운명이었던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전문성도 없고, 할 줄 안다고 자부할 만한 것도 없지만, 어찌저찌 직장 다니면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그런 이웃집 아주머니.


어쩐지 내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다시 떠오르면서, 나와 같이 친구로 지내기에는 너무도 대단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별 볼 일 없는 나를 친구로 두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내가 그들과 일하고 싶어했던 것처럼, 그들도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할까?


- - -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 같았다.


한 두 해 전이었던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아무튼 38살까지 50억을 비축하겠다는 목표를 아무렇게나 세웠었다. 목표라기보다는 꿈이라고 해야 더 어울려 보이는 수치였다. 어쨌든 이런 장대한 목표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계산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세워야 제맛이었으니까. 지금은 그게 나와 남편의 부부합산 자산을 기준으로 잡았던가 아니면 개인 자산 기준으로 잡았던가 하는 부분마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희미해진 목표치였다.


50억은 무슨. 귀가하고 돌아와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괜히 나의 평범함이 자각되면서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그러면서 아침에 남편과 깜짝볼 나사 하나 때문에 투닥거린 게 떠올랐다. 그게 뭐라고. 오천 원 주고 산 중고 장난감 하나가 뭐라고,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나. 그리고 내가 뭐라고, 그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따졌던가.


그런데 이런 나의 평범함을, 이제는 아이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될까봐 더욱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에는 많이들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나는 딱히 영유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나부터가 영유 같은 것 다니지 않고 외고에 들어가기도 했고(역시 자만이 제일 무섭다), 진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외국으로 뜨든지 아니면 집에서 부모가 영어로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일반 어린이집과 일반 유치원을 보내고, 학교도 굳이 사립을 찾아가기보다는 공립학교를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하게 키우려고 너무 애쓰지 않고, 평범하게 키워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찾아내고 스스로 자기를 특별하게 가꿔내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였으므로, 그 부분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감정 때문에 결국 나도 트렌드에 합류해서 영유라든지 그런 값비싼 사교육을 찾게 되려나? 몹시 부끄럽게도, 내 소중한 아이가 나로부터 나 자신의 평범함을 물려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 - -


낮잠에 든 아가를 바라보며, 건넬만 한 속엣말을 골랐다. 아가야, 나는, 나는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부정적인 말을 건네고 싶지는 않았다. 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란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란 모두 변변찮을 뿐이라는 식의 말을 건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특출나고 빛나는 것들을 하나씩 골라보았다. 어쩌면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다듬어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과 함께.


있잖아, 아가야. 너는 엄마처럼 재주가 무척 많은 사람이 될 거야. 왜냐하면 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보통이 아니었거든. 수영은 물론 바다수영까지 할 정도로 잘 하게 될 거고. 기본적으로 예체능은 문제 없을 테야. 네 엄마는 크로키도 하고, 만화도 그렸어.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입상도 했단다? 서재에는 리코더랑 피아노부터 우쿨렐레랑 플룻까지 악기도 다양하게 있지. 요즘 세상에 우리집 서재만큼 책 많고 악기 많은 집은 흔치 않은데, 너는 아마 책과 악기를 숨쉬듯 접하게 될 거야.


…… 그리고 기타 등등.


하나하나 꼽아보았더니, 이렇게나 물려줄 것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기술들을 모두 전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내 어깨 위에 올라서고,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지금껏 경쟁에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바둥거려왔는데, 누군가에게 뒤처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감정이란 낯설고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후의 일은 역시 아가의 몫이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 지금이야, 귀여운 뒤통수로 ‘저는 일단 머리숱을 물려받았어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Krišjānis Kazaks


그러고 보니 서른 넷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네다섯 살 많으니, 내일모레면 마흔이었다. 내 나이가 아니라 남편 나이라고 해서 너무 반올림을 해버렸나? 그 와중에 네 살도 아니고 네다섯 살 많다는 것은, 남편이 빠른 년생이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나이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 빠른 년생이라니.


그런 남편과, 아침에 깜짝볼 하나 때문에 언쟁이 있었다. 예전에 장난감 도서관에서 깜짝볼을 빌려온 적이 있었다. 지름 한 30cm 정도 될까 하는 플라스틱 공인데, 실은 그 안에 오뚝이 모터 같은 게 있어서 계속 매트를 굴러다니는 일종의 놀이 로봇이다.


깜짝볼을 빌려왔을 당시와는 다르게, 이제는 아이가 배밀이의 선수가 되었으니 웬만큼 잘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엊그제 남편을 통해 당근으로 5,000원에 하나를 구해왔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배터리가 닳아서 그런지 작동이 시원찮았는데, 배터리를 교체하려고 나사를 풀어봤더니 십자 나사 한 쪽이 다 닳아서 뚜껑을 열 수가 없었다.


“수동이든 자동이든 십자 드라이버 집에 있는 걸로 다 돌려봤는데, 돌릴수록 나사만 더 마모되더라구.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아침에 그렇게 말했더니, 남편은 이렇게 답했다.


“손 바꾸면 되지 않을까?”


“손을 바꾼다구?”


아이가 A의 품에서 울다가도 B의 품으로 넘어가면 종종 울음을 그칠 때가 있었는데, 그 현상을 가리켜서 우리는 ‘손바꾸면 괜찮을 수 있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그 원리를 십자 나사 푸는 데에 적용한다니, 남편의 의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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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과를 얼추 마무리하고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거실 바닥에 드라이버와 깜짝볼이 놓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십자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 나사는 더 닳았고 말이다.


“또 드라이버를 쓰면 어떻게 해. 나사가 더 닳아버렸잖아.”


“아니, 나는 내가 해 보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난 분명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는걸.”


“그리고 내가 ‘손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했는데, 하지 말라고도 안했잖아? 다음부터는 명확하게 좀 얘기해줘.”


“내가 이유까지 설명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더 명확하게 얘기를 해야 해?”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한 건데,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좀 그래…….”


나는 이 때까지도 내가 왜 이토록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회사에서 말이야. 신입사원이 들어왔어. 그래서 신입사원한테, 지금 이슈가 하나 있는데, A라는 방법을 쓰면 B라는 문제가 발생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어. 그런데 신입사원이 ‘제가 해보면 될 것 같은데요’라고 하고는, 하지 말라고 했던 A라는 방법을 시도하고 B라는 문제가 또 발생했어. 그랬는데 되려 ‘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얘기를 하셨어야죠’라고 하면 화가 나,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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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침을 겪었더니 기분전환이 필요해져서, 요즘 핫한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를 무한 반복으로 재생했다.


노래 덕분인지 기분이 조금 나아졌고(남편은 여전한 것 같았지만), 아이와 함께 평소처럼 카페를 다녀왔다. 귀갓길에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아파트 사시는 이웃분을 만났다. 아이 등원을 시켜주고 오시는 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밤에 루나가 1시간마다 깨서 울었던 얘기가 나왔다.


“그래도 남편은 코 골면서 잘 자더라구요. 저랑 같이 안방에 있었는데, 저만 두 시간 동안 뜬눈으로 홈캠을 봤어요.”


“아휴, 원래 남자들이 진짜 아무 것도 몰라요. 저희 남편은 애가 밤에 열이 난다고 했더니 선풍기를 가져다가 틀어줬더라구요.”


“선풍기를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뭐하는 거냐고, 당장 끄라고 하고서 해열제를 먹였어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아침의 깜짝볼 이야기를 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안그래도 방금 ‘코 골면서 자는 남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는데, 이 이상 이미지를 하락시키면 좀 미안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신에 평범한 감상을 말했다.


“어째서 모든 남편들은 각자의 집에서 혼이 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이렇게 지면에 공공연하게 털어놓아버렸으니, 이 쪽이 더 심하려나? (다행히 사전에 양해는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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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들른 카페는 오늘도 디저트39. 아이는 이번에도 귀여움을 잔뜩 받고 왔다.


평소에는 점주님께서 계셨는데 오늘은 매니저님이 가게를 보고 계셨다. 나는 사람 나이를 예측하는 데에는 정말 젬병이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나보다는 어려보이는 분이었다.


“강아지보다 귀여워요……. 제가 강아지를 키우거든요.”


“아 정말요?”


“네, 그런데 아기를 좋아해서, 아기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아직 결혼도 안했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그 분 말씀으로는, 결혼이 요원해져서 이제는 점점 강아지랑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인상도 좋아 보이시고 이렇게 일찍 여는 카페에서 일하실 정도라면 성실한 분인 것도 같았다. 내게 여자친구 없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면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니, 오지랖도 유분수지. 아무튼 왜 이런 분에게 결혼이 요원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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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늦가을의 아침 햇살이 옆으로 길게 내리쬐었다.


평소에는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일어나던 아이가 오늘따라 7시가 거의 다 되어서 일어났다. 그랬더니 카페에 갔다가 집에 오는 시점도 평소보다 비교적 늦었다. 11월 중순의 이 무렵 아침 햇살은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비추어왔다. 잘하면, 아니 잘못하면, 유모차 차양의 옆 틈새로 아이에게 햇빛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마침 강변역 위로 지상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햇빛을 받은 차체는 노랗고 부옇게 빛나서, 어쩐지 희망적인 애니메이션의 일상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저 지하철을 타고서, 즐거운 출근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한 명 쯤은 말이야. 역시 그런 출근길은 상상 속의 환상 정도로 불가능한 존재이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 학창시절 잘 지냈던 친구들, 등등. 똑똑하고 유쾌한 그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일한다면, 꽤 즐겁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한 명 한 명을 떠올려서 상상해볼수록, 답은 ‘그럴 것 같은데……?’였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일까? 역시 회사라는 형태가 되면, 어느 정도 서로에게든 구조에 대해서든 불만이 쌓이게 되려나? 하지만 역시나 머릿속에 떠오른 이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최소한, 명조체 12 포인트의 워드 파일로 된 보고서라든지, 혹은 ‘사내 정치’스러운 일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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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생각에 푹 잠겨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생이 우르르 함께 건넜다. 아마 구남초등학교에서 구의 공원으로 생태학습이라도 가는 거려나? 몇몇은 길을 건너다가 흘끗 뒤를 돌아보고는 유모차 안의 아가를 보고 말없이 손을 흔들어주고 갔다. 그 모습이 몽글몽글하고 따뜻했다.


그 중 한 명, 안경 낀 남학생이 유모차 쪽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엇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누구더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봤던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하여간 나는 사람 나이를 가늠한다든지 이름을 기억한다든지, 얼굴 인식과 관련된 기능은 죄다 젬병이었다.


누군지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아도, 그 정다운 인사의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받았다. 그러고 나서 길을 마저 걷는데, 어쩌면 내가 건넨 인삿말은 그 친구에게 낯선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은 보통 초등학생의 인사에 “그래 안녕” 하고 답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때의 다짐으로 인해 꿋꿋이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어떤 신사분께서, 꼬꼬마였던 내게 “안녕하세요” 하고 목례를 건네셨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 아파트에서 그 분이 유일한 어른으로 보였고, 이 다음에 크면 나도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안녕하세요”로 상대를 맞이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해버렸다.


게다가 나는 상대방의 나이를 정말 잘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이 방식에는 굉장한 이점이 있었다. 만약 초등학생에게는 “안녕”이라고 인사해야 한다면, 중학생에게도 “안녕”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럼 고등학생까지도 어쨌든 학생이니까 “안녕”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대학생은? 대학생은 어엿한 성인이니까, 성인 대 성인으로서의 예를 갖춰야 하려나? 그럼, 아저씨인지 고등학생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우에는……?


이러나 저러나 나는 누구에게든지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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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러고 보면 서른 넷이었다.


나는 어느덧, 이웃집 아이들로부터 인사를 받게 되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되어 있었다. 아직 그래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스스로를 “아줌마한테~”라고 칭하게 될 지도 모른다. 커리어를 고민하던 스물 여덟이었던 게 엊그제 같고, 아직도 나의 고민은 끝나지가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 있었을까?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유모차를 미는 사람의 그림자가 무척 평범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림자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무척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회사를 휴직하고,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구나. 어쩌면 이토록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깨닫게 될 운명이었던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전문성도 없고, 할 줄 안다고 자부할 만한 것도 없지만, 어찌저찌 직장 다니면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그런 이웃집 아주머니.


어쩐지 내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다시 떠오르면서, 나와 같이 친구로 지내기에는 너무도 대단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별 볼 일 없는 나를 친구로 두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내가 그들과 일하고 싶어했던 것처럼, 그들도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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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 같았다.


한 두 해 전이었던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아무튼 38살까지 50억을 비축하겠다는 목표를 아무렇게나 세웠었다. 목표라기보다는 꿈이라고 해야 더 어울려 보이는 수치였다. 어쨌든 이런 장대한 목표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계산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세워야 제맛이었으니까. 지금은 그게 나와 남편의 부부합산 자산을 기준으로 잡았던가 아니면 개인 자산 기준으로 잡았던가 하는 부분마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희미해진 목표치였다.


50억은 무슨. 귀가하고 돌아와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괜히 나의 평범함이 자각되면서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그러면서 아침에 남편과 깜짝볼 나사 하나 때문에 투닥거린 게 떠올랐다. 그게 뭐라고. 오천 원 주고 산 중고 장난감 하나가 뭐라고,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나. 그리고 내가 뭐라고, 그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따졌던가.


그런데 이런 나의 평범함을, 이제는 아이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될까봐 더욱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에는 많이들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나는 딱히 영유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나부터가 영유 같은 것 다니지 않고 외고에 들어가기도 했고(역시 자만이 제일 무섭다), 진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외국으로 뜨든지 아니면 집에서 부모가 영어로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일반 어린이집과 일반 유치원을 보내고, 학교도 굳이 사립을 찾아가기보다는 공립학교를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하게 키우려고 너무 애쓰지 않고, 평범하게 키워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찾아내고 스스로 자기를 특별하게 가꿔내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였으므로, 그 부분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감정 때문에 결국 나도 트렌드에 합류해서 영유라든지 그런 값비싼 사교육을 찾게 되려나? 몹시 부끄럽게도, 내 소중한 아이가 나로부터 나 자신의 평범함을 물려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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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에 든 아가를 바라보며, 건넬만 한 속엣말을 골랐다. 아가야, 나는, 나는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부정적인 말을 건네고 싶지는 않았다. 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란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란 모두 변변찮을 뿐이라는 식의 말을 건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특출나고 빛나는 것들을 하나씩 골라보았다. 어쩌면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다듬어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과 함께.


있잖아, 아가야. 너는 엄마처럼 재주가 무척 많은 사람이 될 거야. 왜냐하면 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보통이 아니었거든. 수영은 물론 바다수영까지 할 정도로 잘 하게 될 거고. 기본적으로 예체능은 문제 없을 테야. 네 엄마는 크로키도 하고, 만화도 그렸어.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입상도 했단다? 서재에는 리코더랑 피아노부터 우쿨렐레랑 플룻까지 악기도 다양하게 있지. 요즘 세상에 우리집 서재만큼 책 많고 악기 많은 집은 흔치 않은데, 너는 아마 책과 악기를 숨쉬듯 접하게 될 거야.


…… 그리고 기타 등등.


하나하나 꼽아보았더니, 이렇게나 물려줄 것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기술들을 모두 전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내 어깨 위에 올라서고,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지금껏 경쟁에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바둥거려왔는데, 누군가에게 뒤처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감정이란 낯설고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후의 일은 역시 아가의 몫이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 지금이야, 귀여운 뒤통수로 ‘저는 일단 머리숱을 물려받았어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Krišjānis Kaz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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