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연말연시와 이토록 귀하고 슬픈 육아

10개월 13일

by 구의동 에밀리

사실 얼마 전에 브런치 공모전에 또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엄청 많은 브런치북을 투고했다. 브런치 메인에 심심찮게 걸려있는 브런치북도 수두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낙담했다.

어쨌든 혼자서라도 출판을 하긴 할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쓴 육아일기를 브런치북으로도 낸 것이었는데,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 이를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공모전에 떨어진 이상 독립출판만이 답이었다. 편집도 검수도 인쇄도, 채널관리와 마케팅과 모든 것을 혼자 다 해야 하리라는 부담감에 숨이 턱 막혔다.

게다가 기존에 쓰던 POD 업체는 단가를 무지막지하게 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13,500원인데, 변방의 구의동에 사는 무명씨의 에세이가 18,000원에 팔릴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수상작들을 훑어봤다. 대체 어떻게 해야 당선이 되는지 궁금했다. 일단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고딩엄빠의 이야기가 첫 작품이었다. 아, 이건 나도 본 적이 있었다. 인생이 무슨 소설 같았다. 좋아요와 댓글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렇구나. 이 정도의 파급력과 흡인력을 인증하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었구나. 어쩌면 평가자들은 엑셀로 좋아요와 댓글, 구독자 수부터 상위권 필터링을 한 다음에 추려진 작품들만 검토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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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렸다.

10시쯤 이른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러 아기 방에 들어갔다. 아가는 싱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싱글 침대에 들어가서 같이 잘까? 아니면 그 옆에 놓인 매트리스 토퍼에 누울까? 한편으로는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토퍼에 누울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아가를 바라보면서 잠들면 행복할 것 같았다.

하이가드를 넘어서 살금살금 침대에 들어가 아이 곁에 누웠다. 헤 벌어진 입에 쪽쪽이가 걸쳐 있었다. 치워줬더니 다행히 깨지는 않고 입맛만 몇 번 다시고 말았다. 조그마한 입은 여전히 작게 헤 벌어져 있었다. 새근새근 숨쉬며 잠든 아가를 바라봤다.

나는 어쩐지 아가로부터 위로받았다. 혼자가 아닌 기분이었다. 토퍼에 혼자 누워 있었다면 땅굴 파고 들어갔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가도 금방 깨어서 방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엄마 뭐해요 웃어봐요 나 지금 즐거운데~” 하는 듯한 해맑은 표정이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일어난 건강한 아가가 눈앞에서 날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쓸데없이 축 처져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그래, 만약 복직이라도 일찍 했다면 지금 이 시간에 나는 회사에서 닦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실은 집에서 아가랑 뒹굴거리고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행복하고 느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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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전에는 아침에 평소처럼 아이를 데리고 카페를 나섰었다. 로봇청소기를 한 번 돌리려면 일단 나가서 집을 비워놓는 게 편하기도 하고, 싱숭생숭함에 좀 걷고 싶었다.

어쩌면 이 싱숭생숭한 마음은 1년여에 걸친 가정보육에서도 조금 기인했을지 몰랐다. 물론 엄마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일이었다. 애착형성, 정서적 안정, 위생, 안전, 전염병 예방, 아이에 대한 깊은 이해, 모든 면에서 장점이 엄청난 양육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집에서 빈둥거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이는 요즘 배밀이를 넘어서 잡고 서기에 돌입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집안일을 이것저것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책장이며 교구장을 잡고 섰다. 다행히 대체로 안전하게 다시 앉곤 했지만 때때로 균형을 잃고 와장창 넘어지기도 했다. 주위에 딱딱하거나 톡 튀어나온 형태의 장난감이라도 널부러져 있으면 머리를 찧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 무렵의 아기가 넘어지는 것은 삼신할머니께서 다 받아주신다고 친구가 얘기해줬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키가 아직 어른 무릎 높이 정도이다 보니, 설령 넘어지더라도 머리통이 거의 땅바닥 근처에서 낙하를 시작하는 셈이었다. 반면에 나는 키가 160cm 정도니까 만약 넘어질 경우 1.6m 높이에서 머리통이 떨어지는 것이니, 나랑 아이는 넘어졌을 때 부상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늘 아이 근처에 머무르며 지켜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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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이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아이는 ‘저건 뭐지 만지고 싶다!’ 하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다 보면 흐름이 자주 끊겨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겨우 두 문장 읽고 있으면 아이가 어느새 책장을 잡고 서 있었다. 그러면 여차할 때 받쳐줄 수 있도록 책을 덮고 가서 대기했다. 그러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두 문장을 읽고 있으면, 이번에는 뽀로로 국민 문짝을 질질 밀며 잡고 선다.

잡고 설 때마다 가서 대기 타는 것도 뭣하지만, 살짝 떨어져 있더라도 그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역할 정도는 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툭툭 끊어지는 흐름과 함께 겨우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대체 내가 방금 무엇을 읽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머리 쓰지 않는 집안일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식탁 정리라든지 빨래 같은 것도 잽싸게 해치우고 금방 아이 곁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요즘에 루나는 울타리 안에만 갇혀있는 것을 몹시 답답하게 여기기 때문에 한 5분에서 10분 정도 놀고 나면 집안 탐사를 시켜줘야 했다. 베이비룸 울타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칭얼대거나 울타리 문을 부여잡고 울다가도, 문을 열자마자 “키익”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나가는 걸 보면, 갇혀있는 걸 답답하게 느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게 집안 탐사가 시작되면 나는 루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녀 모드가 되었다. 아이가 전선을 잡고 콘센트에서 잡아당기려고 하면 제지했다. 책장 아래쪽에 꽂힌 전래동화책을 뽑을 때면, 책 모서리에 다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줬다. 애초에 아이가 아니라 내가 읽으려고 샀던 전래동화 전집이었다. 책 사이즈가 아이 몸에 비해 크기 때문에 자칫하면 책 뽑다가 눈을 찔리기 십상으로 보였고, 하드북이 아닌 종이책이었기 때문에 손을 베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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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한눈을 팔지 못할 이유는 많았다. 바퀴 달린 트롤리에 몸을 지탱하고 잡고 서려고 하질 않나, 자기 몸보다도 큰 플라스틱 빨래통을 위태로운 방식으로 엎지르지 않나, 축축한 자기 앞치마를 휘두르며 놀지를 않나…….

게다가 아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사물을 대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머릿속에서 사고 예방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역부족이었다. 아니, 어째서 손을 냉장고 옆의 먼지구덩이 틈새에 집어넣는 걸까?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유리병은 또 어떻게 찾아내서 손을 뻗는 걸까?

그 탓에 아이를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주면 나는 그야말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아이를 ‘보기만’ 해야 했다. 특히 요즘에는 책 뽑기에 맛을 들여서, 아이가 책 한 권 뽑으면 두 페이지 읽어주고 또 다른 책 뽑으면 또다시 몇 페이지 읽어주는 것의 무한반복까지 더해졌다. 아이는 아이대로 놀고, 나는 또 나대로 놀면 좋으련만.

그럴 때면 <프랑스 아이처럼>에 나온, 어른들이 얘기 나누면서 커피 마시는 동안에 베이비룸 안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노는 아기들의 모습이 종종 떠올랐다. 스스로 잠드는 법,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그만 먹는 연습 등을 육아서들에서는 많이들 권장했다. 하지만 우리 아가는 입면도 혼자서 못하고, 밥도 강아지로 치면 자율배식이 안되고…….

문득 살짝 걱정이 됐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떠먹여주며 키우면,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공부든 진로 탐색이든 새로운 퀘스트(?)들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도 다 자기주도가 아니라 애미주도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해야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자율학습으로 알아서 하고 그러는 게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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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오후에는 프랑스어 유튜브를 틀었다.

7분짜리 영상을 무한반복 시켰다. 기초 프랑스어를 알려주는 영상이었다. 주어에 따른 프랑스어 동사의 형태 변화를 알려줬다. 그렇게 프랑스어 강의를 들으면서 아이와 놀았다. 눈은 어찌할 수 없어도 귀는 뚫려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프랑스어는 단어 끝이 ‘-e’로 끝나든 ’-es’로 끝나든, 아니면 ‘-ez’로 끝나든 하여튼 다 똑같이 발음된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해버렸다. 이런 식이면 일단 동사 형태 변화를 오디오만으로 공부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괜히 울적했다. 이 우울함을 비 갠 후에 구름 걷히듯 말끔히 없애줄 장소가 있을까? 카페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스킵 카페는 갈 수 없었다. 요즘 최애 카페지만 소규모라 유모차를 밖에 세워야 해서 강추위에는 조금 마음을 굳게 먹어야만 했다.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스킵 대신에 카페 이음을 갔다.

이음에는 친절한 사장님과 붙임성 좋은 강아지가 있었다.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자마자 반겨주는 이들이 잔뜩 마중 나온다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 심지어 메뉴에는 초코라떼도 있었다. 요 며칠 고디바 초콜릿처럼 진하고 달콤한 초콜릿이 먹고 싶던 참이었다. 참 단순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는 무릎에 앉혀놓고 놀게 했다. 다른 장난감들을 다 제쳐놓고, 다회용 플라스틱 텀블러의 뚜껑을 좋아했다. 그것만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가만히 보니까 수면조끼의 아래쪽 단추를 안 채워줬다. 가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서 단추를 채워주는데, 뒤쪽 단추를 찾느라고 아이가 내 허벅지에 누운 자세가 되어버렸다. 단추는 채웠으나 그렇게 누워서 바동거리는 게 귀여워서 냅둬보기로 했다. “올라와 봐~” 하고 3초 정도 두었는데, 아직 허리 힘이 부족한지 올라오지 못하고(혹은 ‘않고’?) 바동거리기만 했다. 일으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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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그러나 그냥 보통 날처럼 지냈다. 남편은 자유부인 시간을 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딱히 어디를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이소에 가서 아이 장난감 만들어 줄 재료들만 잔뜩 사 온 게 전부였다. 다이소에서 6만원을 넘게 쓰다니 이례적이었다.

저녁에는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예전에 아이가 백일도 안되었을 무렵, 육아로 힘에 부치고 우울해 할 때 아는 언니가 선물해 줬던 초콜릿이 생각났다. 나중에 찾아보니 한 상자에 가격이 꽤 하는 초콜릿이었다. 언니는 정말 좋은 사림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후 몇 달이 흐르고 나서 내 친구들 몇 명이 출산을 했다. 그러자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 근황이 궁금했다. 잘 지내고 있을까? 남편이랑은 무탈할까? 아기가 너무 울어서 힘들지는 않을까? 밤잠은 어떻게 자고 있을까? 모유 수유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지는 않을까?

특히 최근에는 친한 고등학교 친구 둘이 아기를 낳았다. 한 명은 한 달 전에, 다른 한 명은 보름 전에 출산을 했다. 한 달 전에 출산한 친구는 가끔 육아일기를 올렸다. 블로그 앱을 켤 때마다 그 친구가 포스팅을 올리지는 않았는지 한 번씩 들여다봤다. 초콜릿을 선물하는 마음은 바로 이런 거였던 걸까?

어쩌면 출산한 사람들은 동지애를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위로와 공감의 육아일기가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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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간이 흘러 연말이 되었다.

12월 31일에는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스타벅스를 갔다. 내 앞에는 어떤 여성분이 유모차를 끌고 줄을 서 계셨다. 루나는 내 품에 안겨서 유모차 안의 아기를 빤히 쳐다봤다. 문화센터도, 육아종합지원센터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루나였기에 아마 자기 또래의 아기가 신기했나 보다.

“아기 몇 개월이에요?”

여성분께서 통화를 마치고 내 쪽을 향해 물으셨다.

“이제 10개월이에요.”

“아 정말요? 저희는 6개월이에요.”

어쩐지, 루나랑 비슷해 보이면서도 조금 작아보였는데. 그래도 루나가 같은 또래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즐겁게 느껴졌다.

커피를 받고 나서 루나랑 카페를 한 바퀴 둘러봤다. 자꾸만 만6개월 아기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염치 불구하고 다가가서, “애기 인사시켜도 되나요?” 하고 여쭤봤다. 흔쾌히 자리를 내주셨다. 아기 이름이 뭔가요? 루나예요. 이 친구는 이름이 뭔가요? 아, 건담이(가명)예요. (가명이라고 해서 너무 생각나는대로 막 지었나……?)

몇 마디 나누고 나서, “다음에 또 뵈어요”라는 인삿말을 건네드렸다. 솔직히 요즘에는 출산한 다른 친구들이 구의동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들곤 했기에, 이렇게 육아 동지를 카페에서라도 종종 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으나 조금은 진심을 담은 인사치레…….

그런데 의외로 “어…… 그럼 번호를……?” 하고 말씀하셨다. “앗 잠시만요” 하고서, 유모차 가방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왔다. 블로그 주소와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적힌 명함이었다.

“이건…… 뭔가요?”

“아, 제 명함이에요. 제가 (몹시 영세하지만) 블로그를 하나 하고 있어서…….”

“……엇? 저 블로그 이웃이에요!”

세상에. 그냥 집 근처 스타벅스를 갔다가, 앞에 줄 서 있는 애기 엄마랑 우연히 얘기를 나눴는데 서로가 블로그 이웃이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연예인 보는 기분이에요”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야말로 어버버 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쭤봐놓고, 셀카 화면에 엄마들이 나온다고 그대로 찍는 쪽으로 흘러가게 하질 않나……. “앗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얼굴도 나오게 할까요?”라고 여쭤보면 그만인데, 마치 언어장애(?)가 일시적으로 온 것처럼 말이 안 나왔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에게도 “사진 찍으시겠어요?”라고 물어야 예의일 텐데, 호칭이 아리송해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넘어가버렸다. ‘ㅇㅇ님 핸드폰으로도 찍으시겠어요?’에서 ‘ㅇㅇ’에 들어갈 적절한 단어는? 어머님? 선생님? ‘그 쪽’은 진짜 이상한데.

하여튼 그런 식이었기에, 귀갓길에도 그리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그래도 아무튼 만6개월 아기를 키우고 계시는 구의동(혹은 광장동?) 이웃이라니, 몹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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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홀로 하는 육아의 적적함을 유튜브 재생목록과 라디오로 달래고 있다.

오늘 낮에는 이탈리아어를 가르쳐주는 유튜브 채널의 재생목록을 무한반복시켰다. ‘이탈리아 리까리까’라는 채널이었다. 전문 강사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에 17년째 살며 배운 언어와 문화가 있기에, 이탈리아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고 하셨다. 이렇게 좋은 분이 있을 수가…….

스마트폰 공기계를 유튜브 머신으로 만들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했다. 그리고 집안 여기저기서 대강이나마 들릴 수 있도록 적당히 큰 소리로 틀었다. 다행히 이 쪽은 진짜 강의같은 강의라기 보다는, 내가 바라던 살짝 라디오 느낌 같은 채널이었다.

중간중간 이탈리아 현지 친구들의 발음을 녹음해서 반복적으로 들려주시기도 했다. 잡음이 섞여 들어가서 죄송하다고 하셨지만 사실 나는 그 잡음이 몹시 좋았다. 이탈리아라면 어떤 건물에 들어가 있어도 숨길 수 없는 동네 교회의 종소리, 공원에서 불어오는 것이 분명한 바람 소리……. 게다가 성우들이 아닌 ‘친구들’이 동원되었기에, 때로는 깔깔 웃다가 중간에 빼먹기도 했다. 한낮의 나홀로 육아에는 이런 단비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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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라디오를 들었다.

WBS가 원불교 방송이고, TBS가 교통방송이라는 걸 덕분에 알게 되었다. 무슨 방송이건 간에 나는 노래랑 진행, 대담만 괜찮으면 장땡이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었다.

오늘은 TBS를 듣고 있었는데, 뉴올리언스에서 테러가 있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뉴스도 신문도 따로 챙겨보지 않는 탓에 주로 남편을 통해서 사회 이슈를 접하는 편이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무안공항 사고도 남편이 알려줘서 알았었다.

세상에, 뉴올리언스에서는 새해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구나. 최소 10명 이상이 죽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 쪽에서 있었던 무안공항 사고에서는 179명이나 죽었었다. 뉴올리언스 테러도 끔찍한 일인데, 무안공항 사고로는 18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무안공항 사고가 생각날 때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멍해지곤 했던 게 당연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 사람 생명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은 눈물버튼이 되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 관련 뉴스를 종종 찾아봤다. 일가족 9명이 다 죽어서 강아지만 집을 지키고 있다는 사연이 있었다. 3살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온 부부도 있었다. 자식들 뒷바라지 하고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어머님 한 분도 있었다. 아프지 않은 사연은 하나도 없었다. 뉴스에 올라오지 않은 사연들도 모두 슬플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전부 다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 떼로 처형당한 것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말을 즐겁게 보내고 오려던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던 그 소중한 마음들이 통째로 다 사라졌다. 자식을 잃는 사고라고 해도 마음이 미어질 텐데, 온가족이 죽어버리는 일이 너무도 순식간에, 그것도 한꺼번에 일어나버렸다.

영상 속에서 폭파되는 비행기를 보며 들었던 유일한 생각은, ‘이거 정말 돌릴 수 없는 건가?’였다. 아니, 이렇게 허무하게 사람들 목숨이 사라진다고? 저런 식으로 이 큰 비행기가 폭파된다고? 영화에서 연출된 게 아니라, 진짜로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죽어버린다고? 분명 여기에는 누군가의 실수(혹은 영달을 향한 악질적인 이기주의)가 있었을 텐데, 되돌릴 방법이 정말 없는 건가…….

사고 소식을 들었던 날, 남편은 이따금 관련 뉴스를 찾아보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더 이상 뉴스를 찾아보지 말라고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법이라고.

나야말로 뉴스를 더 찾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슬펐다.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 형제가 타고 있었다는 기사를 읽고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를 잃었다니. 그 집의 세계는 이제 끝났겠구나.

눈물이 자꾸만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서 대체 왜 뉴스를 꾸역꾸역 찾아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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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밤잠을 재워주면서 손을 꼭 잡았다.

아이는 낮 동안에 무척 잘 지냈다. 베이비룸 울타리의 문을 몇 번씩 들락거리면서 온 집안을 탐험하고 다녔다. 친정 아버지께서 선물해 주신 진공관과 그 앞에 놓인 TV를 사다리처럼 짚으며 일어났다 앉았다 연습하기도 했다. 이제 아이는 잡고 서기는 엄청 잘했다. 하지만 앉는 것은 달랐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아가며 살살 앉았다. 남편의 표현대로, ‘엄청 하찮게’ 앉아서 몹시 귀여웠다.

이 집에서 가장 최선을 다해 지내고 있는 사람은 루나였다. 최신 습득 기술이 있으면 그걸 시시때때로 연마했다. 엊그제부터는 발음 가능 목록에 ‘갸갸갸’가 추가되었다. ‘마마마’, ‘파파파(이건 목소리를 안 쓰고 입으로만 낸다)’ 정도가 전부였는데, ‘갸갸갸’를 하고 났더니 이제는 수시로 ‘갸갸갸’다. 책장 넘기기나 노래에 맞춰 파닥거리며 춤추기, 일어섰다가 앉기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반복한다.

하루종일 열심히 지냈으니 밤에는 지칠 만도 했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얌전히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실눈을 뜨고 봤더니 눈은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하지만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며 한숨도 푹푹 쉬고 하는 걸 보면, 본인 나름대로 또 열심히 잠을 청하고는 있었다.

그러다 “우웅……” 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개가 아니라 몸을 틀었다. 원래는 나와 나란히 누워 있었건만, 이제는 가로로 누워버렸다. 그렇게 나와 직각이 되도록 자세를 바꿔서는 정수리를 내 가슴팍에 갖다 대고 잠을 청했다.

어쩐지 그 “우웅” 하는 소리가 내게는 ‘으웅 엄마……’처럼 들렸다. 이렇게 작고 따뜻한 사람이 나를 엄마로 인식하고 온다는 사실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엄마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크고 단단해서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았는데, 이런 내가 이토록 특별하고 귀여운 아이의 엄마라니. 어쩌면 엄마들은 원래 다들 이렇게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아이를 낳음으로써 스스로 엄마가 되어가려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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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든 사고들이 많이 일어난 연말연시였기에, 품 안의 따뜻한 아이를 껴안고 있으려니 눈물이 또로록 흘렀다. 다들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었고, 옹알이와 ‘잡고 서기’부터 시작한 사람들이었고, 또 그런 소중한 가족을 일궈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나는 무슨 특권 같은 것도 없으면서 이렇게 귀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구나. 세상은 참 알 수 없고, 나는 감사한 줄 알고 살아야 하는구나…….

아이는 내 가슴에 머리를 맞대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아마 태아 시절에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지냈던 기억이 있어서, 이렇게 정수리가 어딘가에 닿아 있으면 편안한 걸까? 아이가 나의 심장 박동을 본인 머리통으로 느끼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그리고 그로써 안정을 찾았으리라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다면 아이는 지금 뱃속에서 지내던 시절을 꿈꾸고 있을까? 그게 10개월 전이고 아이는 뱃속에서 열 달을 있었으니, 이 작은 아가의 입장에서는 인생의 절반을 지냈던 평온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와 함께 지내던 눕눕생활이 떠오르며 그 시기가 무척 따스하게 느껴졌다.

출산한 사람들이 종종 하던,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은 아이를 낳은 것’이라는 말. 그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한 인생만을 살고 있었는데, 이제 나로 인하여 두 명의 인생이 살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토록 소중하고 귀한 마음, 너무도 아끼는 나머지 이따금 두려워지고 마는 이와 같은 마음을 나는 지금껏 알지 못했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freest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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