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18일
어제 저녁에는 코딩 공부를 하러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몇 주 전부터 코딩을 다시 손에 잡기 시작했다. 플러터로 간단한 모바일 앱을 만드는 유튜브 강의였다. 하지만 갑자기 공부를 재개한다고 해서 잘 될 리가 없었다. 버그만 고치다가 시간이 다 갔다. 재생목록만 놓고 보면 금방 끝날 강의였는데, 아직도 제1강에서 여러가지 버그를 맞닥뜨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서야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 예컨대 gradle이 대체 무엇인지 등을 배우고 있다.
버그 잡다가 시간을 다 보내다 보니,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마음도 솔직히 조금 들었다. 그래도 나중에 진짜 각 잡고 코딩 공부를 한다면, 사전에 이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미리 겪어놓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봤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의 그 ‘각 잡고 공부하는 시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했을 때가 되어서야 초반에 허둥거리다가 세월 다 보내겠지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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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다가오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돌까지는 무조건 가정보육을 하겠다는 각오(?)로 육아에 임해왔다. 지인 중에는 4개월이라든지 6개월이라든지, 아무튼 돌 전에 어린이집을 보낸 엄마들도 꽤 있었다. 출산하기 전에 회사 선배들이 얼핏 ‘그냥 얼집은 빨리 보내~ 막 3개월 이런 때 보내도 돼’라고 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입소 첫날부터 하루종일 맡기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30분 이런 식으로 엄마랑 같이 있다가 오면서 서서히 적응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이다.
그래서 출산할 때만 해도, 여차하면 나도 그냥 빨리 어린이집을 보내고 내 여유시간을 가지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아보니, 아기는 너무도 아기아기했다. 만4개월이면 갓 백일 넘은 때인데, 돌이켜보면 그 무렵 루나는 아직 뒤집기도 못 하는 시기였다. 누워서 팔다리를 바동거리는 게 고작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긴다니. 나는 어쩐지 소심해서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너무 아기처럼 보이는 것은 만10개월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이제 막 주위 사물들을 잡고 서는 데에 재미를 들렸다. 최근 침대 협탁과 복도의 콘솔은 암벽등반할 때 쓰는 돌처럼 손잡이와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다. 친정 아버지께서 선물해 주셨던 오디오 세트도 아이의 ‘잡고 서기’ 지지대가 되었다. ‘앉기’는 아직 어려워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앉고, 말은 ‘엄마’가 전부다. 그것도 의미를 담은 엄마라기 보다는, ‘피곤해’, ‘배고파’, ‘심심해’, ‘지루해졌어’, ‘기저귀 갈기 싫어’ 등이 전부 “엄마”로 나올 뿐이다.
그런 아이를 기관에 맡기자니, 상상만 해도 마음이 심란해졌다. 아이와 함께 놀다 보면 더 그랬다. 마치 아이가 그 순진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엄마 내가 귀찮고 번거롭나요……?’라고 묻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정말 아니야. 그런 건 정말 아니야…….
그리고 그럴수록 고민이 더해졌다. 과연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까지 가지고자 하는 시간적 여유라든지 나의 일이라든지, 그런 게 정말 그만 한 가치가 있나? 물론 나는 코딩도 그렇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인생을 육아와 가사에 올인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가 마음에 걸린다고 해서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아이에게 털어넣는다면 나중에 남는 것은 ‘널 위해 희생했는데’라는 비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가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리고 밥은? 집에서는 엄마가 딱 붙어서 한술 두술 밥이랑 반찬이랑 떠주면서 먹는데, 가서는 그냥 다 섞어서 죽을 먹을까? 그리고 지금은 집에서 같이 지내니까 낮잠이며 놀이 시간이며 다 아이 컨디션에 맞춰서 지내고 있는데, 어린이집 가면 본인 컨디션이랑 상관 없이 시간표대로 지내야 해서 힘들어하면 어쩌지? 게다가 어린이집 가면 첫 1년은 진짜 많이 아프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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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을 생각하다가, 문득 어린이집 선생님들처럼 앞치마를 두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아이가 요즘 들어서 게우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다. 아니,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의 없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살짝 게우는 일이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 되었다. 예전에는 맨날 게워서 손수건을 하루종일 썼는데, 이제는 침 닦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 그러니 게우는 것 때문이라면 앞치마를 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앞치마에 달려 있는 주머니! 나는 그 주머니가 탐이 났다. 아마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핸드폰이나 손수건 같은 것들을 앞치마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슥 꺼내서 쓰시지 않을까?
부엌에서 앞치마를 찾아볼까 하다가, 왠지 다리가 가려져 걸리적거릴 것 같아서 대신에 조끼를 찾았다. 최근에 산 후리스 조끼에 주머니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왼쪽 주머니에는 물티슈와 손수건을,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에는 스마트폰을 넣었다.
과연 어떨까 기대하면서 조끼를 입은 채 아이를 돌봤는데, 세상에 너무 편했다! 그 동안에는 아이가 잡고 서는 상자나 서랍, 혹은 입을 갖다대며 침을 묻히는 거울 같은 집안 물건들에 쌓인 먼지가 눈에 거슬리곤 했다. 그 때마다 마음 불편하게 ‘저걸 제지해야 하는데……’ 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냥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바로 꺼내어 닦으면 그만이었다. 손수건으로 침도 바로바로 닦아주고, 스마트폰으로 중간중간 쇼핑이나 메모도 할 수 있으니 편리했다.
역시 뭐든지 ‘전문 기관’의 모습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도움이 되었다. 산후조리원의 신생아실에서 기저귀와 손수건을 산처럼 쌓아놓고 편하게 쓰는 모습도 내게 큰 깨달음을 줬는데, 앞으로는 어린이집을 종종 벤치마킹 해봐야겠다.
그래도 후리스 조끼는 너무 더웠다. 쿠팡에서 ‘작업 조끼’를 검색해서 메쉬 소재를 주문했다. 아마 공사 현장 근로자 패션이 될 테지만, 집에서만 입고 다니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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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만11개월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이는, 책과 집안 탐험에 빠져 있다.
정확히는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책꽂이에서 뽑고 책장을 넘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책을 물리적으로만 대하지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책을 뽑으면, 내가 있는 쪽으로 툭 던져놓고 자리를 딱 잡아 앉는다. 마치 ‘읽어줘’라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면 내가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는 책장을 몹시 빠르게 넘기기 때문에 제대로 읽지 못하고 슥슥 넘어가곤 한다. 제대로 읽을 때는 대부분 아이가 아닌 내가 책장을 넘길 때 뿐이었다. 그럴 때 아이는 자기 발을 조물락거리면서 경청하곤 해서 정말 귀여웠다.
책을 읽을만큼 읽었다면, 뽀로로 문짝으로 까꿍놀이를 하거나 집안 탐사로 넘어갔다. 예전에는 장난감들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장난감이 아니라 집안 물건들이 주된 놀이 대상이 되었다. 안방에 들어가면 서랍에서 내 스타킹과 속바지 같은 것들을 꺼내면서 놀았다. 나는 옆에 앉아서 그것들을 선입선출 식으로 개키며 즐겁게 지켜보았다. 좀 번거롭기는 해도, 아이가 엄마 속바지 같은 것을 들고서 치어리더처럼 붕붕 흔들며 노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그럴 때면 꼭 나를 돌아보며, ‘엄마 이것 좀 봐요 진짜 엄청나죠!’ 하는 듯이 입까지 헤 벌리고 있어서 더 귀여웠다.
그래도 집안 탐사가 예전보다 훨씬 많이 진척되어서, 아이가 때때로 지루해하는 것도 같았다. ‘으앙 여기도 저기도 다 본 것들 뿐이야!’ 하는 느낌이었다. 이를 어쩌나 하다가, 집안 곳곳에 장난감을 숨겨두었다. 스타킹 넣어둔 서랍 옆칸에는 아기체육관 키보드와 라마즈 애벌레를 넣어두고, 협탁 위에는 비지보드를 올려두고, 가장 구석진 옷장의 앞에는 피셔프라이스 장난감 하나를 갖다놓고…….
덕분에 아이는 종종 집안을 돌아다니며 보물찾기를 했다. 라마즈 애벌레 같은 장난감도 알집매트에 떡하니 놓아두면 눈길조차 안 줬을텐데, 서랍에 숨겨뒀더니 발견했을 때 엄청 흥미롭게 만지작거리면서 놀았다. 특히 당근으로 산 블루래빗 인지블록 세트는 서재의 택배상자 위에 올려두고 요긴하게 쓰고 있다. 아이 입장에서도, 상자를 잡고 섰을 때 그냥 밋밋한 상자 뚜껑만 보이는 것보다는 알록달록한 블록들이 ‘날 잡아봐~’ 하고 기다리고 있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아이는 여전히 배밀이로만 집안을 쓸고 다닌다. 분명 네발기기를 할 줄은 아는 것 같은데……. 아니, 이따금 몇 번 목격하기도 했다. 배밀이가 더 편한 걸까? 하긴, 나도 네발로 기어서 쫓아다니면 무릎이 아프기는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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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종일 잘 놀았는데, 저녁에 갑자기 토를 했다.
저녁 6시쯤이었다. 요즘은 이유식과 분유를 아침 7시, 오전 11시, 오후 3시에 먹고, 막수를 저녁 7시에 마신 다음 잠자리에 드는 게 보통의 패턴이 되었다. 물론 오전 11시가 이유식이 낮 12시로 밀린다든지, 오후 3시가 아니라 오후 4시 반에 밥을 먹는다든지 하면서 바뀌기도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요즘에는 이유식을 보통 오전 6시 반, 낮 12시, 오후 4시에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늘은 오후 3시에 밥을 먹었다. 맨날 먹던 밥과 반찬들이었다. 3배죽에 소고기, 토마토, 브로콜리를 곁들였다. 후식으로는 블루베리 바나나 매쉬를 줬다. 그런데 블루베리의 껍질이 문제였을까? 아이는 저녁에 잘 놀다가, 앉은 채로 ‘푹’ 하고 토를 했다. 그 때가 저녁 6시였으니 마지막 이유식을 먹고 3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토사물에는 블루베리 껍질이 많이 보였다. 역시 블루베리였나? 블루베리만큼은 비교적 최근에, 그러니까 처음 먹인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음식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레르기 증상도 안 보였는데……. 아니면 가지고 놀도록 사과 한 알을 준 게 문제였을까? 씻어서 준 사과의 겉면에는 아주 조그만 잇자국들이 보였다. ‘이것 조금 갉아먹었다고 탈이 날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세면대에 데려가서 씻겼다. 아이는 자기도 놀랬는지 엉엉 울었는데, 그래도 달래주니 비교적 금방 멈추었다. 눈물 방울이 눈가에 맺힌 아이를 기저귀만 채운 채 품에 안고, 세면대에서 손발과 입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거실로 돌아와서 아이를 바운서에 앉혀두고 알집매트를 물티슈와 소독 스프레이로 닦았다.
정리를 마치고 바운서로 다가가니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반갑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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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나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마트를 데려갔다.
마침 남편 퇴근시간과 겹쳐서, 마트에서 남편과 간단한 쇼핑을 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 목욕도 남편이 시켜주어서 그 동안에 나는 집안을 정리하고 내일치 이유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힘들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문득 문득 저릿했다. 아이가 토했을 때를 떠올릴 때마다 물리적으로 아파왔다. 아빠랑 목욕을 하러 들어간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도 그랬고, 그 후에 얌전히 막수를 먹고 있는 아이를 볼 때도 그랬다. 이토록 소박한 일상에, 밝고 무해한 웃음을 한가득 짓는 아이라니.
그나마 남편이 와서 다행이었다. 맨날 혼자서만 아이를 하루종일 데리고 있으면, 나 정도의 연약한 마음으로는 불안에 떨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블루베리를 처음 먹였던 날도 몹시 긴장했었다. 콩알만큼 한 입을 먹이고 나서, 온 신경이 아이의 신체 반응을 잡아내려고 곤두섰다. 이유식을 먹일 때 기침이라도 하면, 머릿속으로 하임리히법을 반복 재생시키면서 ‘지금 해야 하나?’를 판단하기 위해 곧바로 긴장 모드가 되곤 했다.
마트에서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돌아다니며 든 생각은, 이 아이가 정말로 하나도 안 아프고, 하나도 괴롭지 않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물론 그건 욕심이었다. 그런 인생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어쩌다가 한 번 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선득한데, 어린이집 보내면서 감기 걸리거나 열 나거나 하면, 장염이라도 걸리면, 그러면 난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할까.
에휴, 모르겠다. 맨날 울겠지…….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Juan Encal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