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야, 우린 집으로 가자

11개월 2일

by 구의동 에밀리

꿈을 꿨다.

귀여운 새끼 돼지들이 많았다. 어디서 키우는 돼지들이었다. 가축용도 아니고, 그냥 코끼리 보호 센터 같은 느낌으로 자유롭게 다들 크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 돼지들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특정 시간대에는 사람 아이로 변했다가,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끼 돼지로 변하는 것이었다. 낮에는 사람, 밤에는 돼지, 그런 규칙도 없었다. 그저 주기적으로 변할 뿐이었다.

그 중 한 아이를 내가 품에 안고 있었다. 아이는 루나가 입는 수면조끼를 입고 있었다. 루나가 태어날 때 회사 선배 한 분이 선물해 주신 조끼였다. 배 부분에는 용띠 아기를 위해 새끼 용이 수놓아져 있어서 무척 귀여웠다.

자세히 보니 아이는 수면조끼만 닮은 게 아니라 그냥 ‘루나’였다. 다만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신생아 티를 갓 벗어난 때의 모습인지, 수면조끼가 몹시 헐렁하게 컸다.

다시 사람 아이들이 새끼 돼지로 변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걸 무시한 채, 루나를 품에 안고 걸었다. 어쨌든 루나는 돼지로 변할 필요가 없었고,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리고 아기에게 속삭였다.

“루나야, 우린 집으로 가자.”

루나는 아기 특유의,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헤 벌린 모습이 마치 ‘뭐라고 하는 거지?’라는 듯해 보였다. 강보에 싸여 있으면서, 이토록 심각한 표정이라니(어느새 수면조끼에 강보까지 싸였나보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그저 ‘이렇게 작았던가?’ 하고 의아해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보에 싸여있던 것은 신생아 시절 뿐이었는데, 루나도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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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꿈을 꿨더니, 하루종일 아이가 몹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이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낼 때도 꿈 생각이 자꾸만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평소와 같이 꼬물거리며 자기 할 일을 했다. 책을 읽기도 했고 — 정확히는 책을 읽으라고 엄마에게 던진 다음에 책장을 휙휙 넘기는 것이었지만 — 장난감 선반에 매달려서 이것저것 집어다가 떨어뜨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너무도 꼭 껴안고 싶었다. 그래서 몇 번은 놀이의 흐름이랑 상관없이 껴안아줬다. 그랬더니 아이는 나를 팔로 밀어내며 벗어나려고 했다. 눈으로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좇으면서 말이다. 떼잉, 협조 안 되는 녀석 같으니…….

아주 예전에,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2주 동안은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며 신생아실에 아이를 맡기곤 했다. 그 때는 내가 아기를 돌볼 능력도 자격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몹시 무기력해지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얼마 후에는 전혀 다른 꿈들을 꾸게 되어 마음이 한결 나아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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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꿈 속에서 나는 산후조리원 같은 곳에 가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꿈 속이라 이상함을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실제 내가 갔던 조리원과는 모든 면에서 영 딴판이었다. 일단 상담실의 벽지부터가 엄청 올드한 느낌의, 약간 지방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에서 쓸 것 같은 꽃무늬 벽지였다.

상담실장님은 보름이 아니라 3주 정도를 권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라면 솔깃했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꿈 속의 나는, 상담실장님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자리를 뜰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두 번째 꿈에서는 루나를 데리고 사진관을 갔다. 아마 백일이라든지 그런 걸 기념해서 사진 촬영을 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촬영이 끝난 다음, 사진관 직원분들께서 하룻밤 정도는 아이를 맡아주실 수도 있다고 얘기하셨다. 모자동실이 버거워서 신생아실에 아이를 맡기곤 했던 예전의 나라면 “넵!” 하고 받아들일 제안이었지만, 꿈 속의 나는 “그냥 집에 데려갈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에 꾼 꿈에서 나는, 애초에 다른 곳에 있던 루나를 아예 집으로 데려가버렸다. 그러면서도 전혀 불안하지도 않았고,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비로소 내가 아이의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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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젯밤에 아이 곁에서 잠들었고, 또 아이가 나름 푹 잤기 때문에 그런 편안한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싱글 침대 옆에는 예전에 범퍼침대에 쓰던 신생아용 매트리스가 깔려 있는데, 여기에 남편이나 내가 불침번처럼 누워서 잔다. 매트리스 자체는 범퍼침대 사이즈라 성인에게 작았지만, 범퍼 없이 바닥에 깔아놓고 베개로 총길이를 연장(?)하면 편하게 누울 수 있었다. 원래는 놀이매트로 쓰려고 했건만 이런 식으로 쓸 줄은 몰랐다.

이제 11개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통잠은 어쩌다가 한 번씩 있는 일이었고, 대체로 아이는 한두 번씩은 깨서 울었다. 이따금 울려보려고도 했지만, 요새는 특히 이앓이 때문에 울어서 안쓰러워가지고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윗니 중에 앞니의 양옆 치아가 하얗게 올라오고 있어서 헷갈릴 일도 없었다. 분리수면을 하려고 슈퍼 싱글 침대를 들여줬는데, 결국 ‘부모들이’ 분리되는 수면을 하고 있다니…….

그러다 어제는 어쩐지 내가 자청해서 아이 침대 옆에 누워 자고 싶었다. 일단은 너무 피곤해서 스마트폰 따위에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고 바로 취침을 하고 싶었다. 아이 방은 그러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괜히 스마트폰 같은 걸 만지작거리거나 혹은 뒤척뒤척대다가 쓸데없는 소음을 만들면 아이가 깨기 때문에, 그 방에서는 그저 정자세로 누워서 호흡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유난히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왠지 모르게 곁에 가서 자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 방에 누워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슈퍼 싱글이 아니라 패밀리 침대를 들였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패밀리 침대에도 아이와 어른 사이에 반투명한 가드를 칠 수 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아이를 자다가 깔아뭉개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하지만 어쨌든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분리수면을 어떤 방식으로든 하기는 해야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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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날 밤에도 아이는 새벽 4시 반쯤에 엉엉 서럽게 울면서 깼다.

이앓이였을까? 아니면 악몽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이앓이보다는 악몽의 비중이 더 크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인 내가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살짝 미안하기도 하고,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깼는데 아무도 달래줄 사람이 없을 때의 두려움 또한 너무도 잘 알았기에 바로 안아서 달래주었다.

아이는 희미하게 빛나는 노란 수면등과 침대 곁에 달아준 곰돌이 모빌을 번갈아 보면서, 품에 안겨 점차 울음을 그쳤다. 그대로 엎드리게 해서 눕혀줬더니 의외로 바로 잠을 청했다. 그 모습이 기특했다. 오늘도 통잠은 아니어서 나의 통잠도 함께 날아갔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무척 양호했다.

새벽 6시에 애플워치 알람이 진동해서 눈을 떴다.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일어나서 샤워를 할까? 아니면 이대로 조금만 더 잘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헤, 헤, 헤” 하고 웃었다. 잠꼬대였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엄마랑 뽀로로 문짝으로 까꿍놀이를 하고 있나? 아니면 오븐 손잡이에 걸어둔 헹주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서 흔들고 있나?

아무튼 너무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Alexander 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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