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 8일
꿈에 학교 선배가 나왔다.
몇 년 전에 이직 소식을 들었던 선배였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취직을 했었고, 그래서 종종 연락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학창시절 관계들이 그렇듯이 그 선배와도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꿈 속에서 선배는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전환해서 나름 해당 분야에서 업력을 꽤 쌓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듣자하니 관련된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다녀온 모양이었다. 하긴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던 게 한참 전의 일이었으니 그 사이에 학위 하나를 더 땄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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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저녁에 아기 놀이 매트를 정리하면서 그 꿈이 떠올랐다.
선배도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아기 사진만 올리는 걸 봐서, 일보다는 육아에 더 관심이 집중된 것 같기는 했다. 아닌가?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애 사진만 올라오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선배나 나나, 일상이 육아로 푹 젖어버렸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산후우울증에 빠지기에는 출산으로부터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요 며칠 동안 비타민D 복용을 빼먹었는데, 정말 비타민D 부족이 우울감과 수면 장애를 가져오는 건가?
아니면 내일 아가와 함께 하루종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도 되고 걱정도 되는 탓에 이런 막막한 감정이 드는 걸까? 확실히 요즘 들어서 어린이집을 보낼 일에 갈등을 겪고 있기는 했다. ‘돌이 지나면 어린이집을 보내자. 대신에 돌까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정보육을 충실히 하자.’ 이런 다짐을 하고 지금껏 아가를 보살폈는데, 막상 3월 입학이 다가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서 엄마 없이 두리번거리며 ‘뭐 하지……’ 하고 있으면 어쩌지? 나는 그 조그만 아이가 앉아있는 뒤통수가 떠올라서 마음이 미어졌다. 친구들이랑 지내다가 잘못해서 장난감에 어디를 맞는다거나, 아니면 선생님이 다른 아가를 돌보는 사이에 뭔가를 잡고 서다가 뒤로 확 자빠져버리면 어쩌지?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하루종일 엄마랑 같이 지내면서 단어도 배우고, 교감도 하고, 사물과 사건들에 대해서도 배우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이런 인풋이 갑자기 0에 가깝도록 줄어버릴 텐데…….
알고 있었다. 아가가 세 돌, 적어도 두 돌이 될 때까지는 가정보육이 최고라는 사실을. 어쩐지 오답을, 오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 손으로 고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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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어린이집에 아가를 맡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집안일이라든지 노래를 듣는다든지, 그런 일들은 틈틈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속적인 시간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배운다든지, 일을 한다든지, 취향을 계발한다든지, 그런 모든 것들을 박탈당하는 시간이 바로 육아의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듯, 육아 중의 쉬는 시간은 ‘대기 상태의 휴식’이라던 말이 딱 적절한 표현이었다.
지금껏 나는 ‘여성도 배워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자아실현을 꿈꿔야 한다’라고 교육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과 대척점에 있는 형태는 바로 전업주부였다. 육아와 가사만으로 구성된 노동에 온 시간과 평생을 바치는 삶으로 그려지는 인생이었다. 나는 육아가 뭐고 가사가 뭔지를 피부로 깨닫기도 전에 그 두 가지를 최대한 삶에서 밀어내고자 노력해야 바람직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삶에서는 육아와 가사가 반드시 따라왔다. 물론 돈으로 밀어내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육아는 베이비시터를 쓰고, 가사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입주 시터 한 명 월급에는 몇 백 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6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몇 년에 걸쳐서 그만한 돈을 흔쾌히 매달 지불할 만큼 여유로울 사람들이 과연 흔할까…….
결국 둘 중 하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아실현 따위와 어느 정도 타협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아이를 낳지 않고 딩크나 독신으로 살아갈 것인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에 다소 무관심해지는 이유에는 이러한 상황적인 배경도 있지 않을까? 자아실현과의 타협이라는 게 말이 좋아서 타협이지, 결국 꿈을 포기한다는 말을 잘 에둘러 표현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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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고민이고, 집안일은 해야 했다.
우선은 멍하니 앉아있을 게 아니라, 놀이 매트 정리를 마저 해야 했다. 아이는 오늘, 이제 다다음달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촌 형아와 함께 놀이 매트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 흔적으로 매트 구석구석에 공이며 작은 장난감과 인형들이 널려 있었다.
장난감들이야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되었지만, 문제는 책이었다. 만11개월인 루나는 요즘 책을 정말 좋아했다. 좋아한 지는 꽤 되었는데, 요즘에는 특히 나만 보면 책을 읽어달라고 집어던졌다. 언젠가는 ‘해주세요……’ 하고 공손하게 요청하는 방법을 알려줘야겠지만, 우선은 타인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받는 상호작용부터 배우면 되겠거니 하고 읽어주곤 한다.
그런데 읽어도 너무 많이 읽어서 탈이었다. 책은 놀이 매트 한켠에 스무 권 정도가 있었고, 서재에도 루나를 위해 책장 맨 아래칸을 할애해서 이삼십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그런데 아기들 책은 어른 책처럼 얇은 종이로 만들었다가는 손을 베이기 십상이니 두꺼운 보드북 형태로 제작되었고, 자연히 한 권당 기껏해야 열 몇 장이 전부였으므로 다 읽는 데에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장난감은 뒷전이고 책만 엄청 읽으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그리고 책이 책등이 보이게끔 꽂혀 있어서 아이가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3단짜리 낮은 전면 책장을 구입해 열 권 남짓한 책들만 선별해서 꽂아뒀는데, 맙소사 아이의 앉은키로는 3단은커녕 2단에 있는 책들마저도 앉은 채로 빼낼 수가 없었다. 결국 2단 이상의 책들은 한 권 읽으려면 몸을 일으켜 선 다음에 잡아 빼내고, 읽으려면 다시 영차영차 앉고…… 하는 식이 되어버려서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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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그냥 원상복구를 하기로 했다.
예전처럼 교구장 맨 아래칸에 간이 책꽂이와 함께 책들을 책등이 보이게 꽂았다. 그리고 전면책장에는 부피가 큰 사운드북 위주로 꽂되, 모서리가 둥글둥글해서 혹여나 아이가 떨어뜨리면서 발등을 찧더라도 상처가 나지 않을 책들을 꽂아두었다.
이제 다시 거실에는 놀이 매트 한 켠에 스무 권 가량의 책들이 늘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을 한 권 한 권 빼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책들을 함께 읽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미처 몰랐지만, 아이 뿐만이 아니라 나도 책 읽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쭉쭉쭉>이라는 책에서는 맨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 아가와 함께 엄마와 아빠가 다같이 등장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아이가 웃었다. 등장인물이 총출동해서 바글바글한 분위기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자기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이유는 정확히 몰라도, 책을 내려다보며 소리도 내지 않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도 값졌다.
<털이 하얀 북극곰>이라는 책에서는, 앞쪽에 엄마 북극곰이 아기곰을 간질이는 장면에서 나도 아이를 꼭 간지럽혀주었는데 그 때마다 아이가 웃곤 했다. <바다의 왕 상어>에서는 각각의 상어마다 목소리를 성우처럼 다르게 바꾸어서 읽어주었더니 아이가 ‘귀상어’가 나올 때마다 나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그런 추억들이 가득 들어있는 책읽기 시간인데, 그걸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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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다 보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식의 조언들이 참으로 많았다.
잘 때는 수면교육을 하고 분리수면을 해야 한댔다. 스스로 잠드는 것은 독립심을 키우는 첫 번째 단계이고, 분리수면을 하지 않으면 아기가 ‘엥’ 소리만 내도 엄마아빠가 살피러 가기 때문에 오히려 수면 사이클에도 방해가 되고 양육자들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또한 침대는 반드시 아이 것을 분리해야 혹여라도 어른이 뒤척이다가 깔아뭉개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책은 전면책장을 두어야 좋고, 너무 많은 책을 잔뜩 주면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책등보다 책표지를 봐야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 쉽기 때문에 전면책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육아를 한답시고 너무 전집같이 산더미같은 책을 사오면, 아이가 흥미로운 책들에 관심이 쏠려서 오히려 일상 속에서 세상을 배워가는 데에는 시간을 덜 쓰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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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11개월의 아가를 키우면서 이제서야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부모가 키우고 싶은대로 키우는 것’이야말로 거의 정답에 가까운 육아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편하게 키우고 싶으면 편하게 키우고,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었다.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너무 일일이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제가 생겼다. 편하게 키워야 할 팔자의 사람들이 마음 불편하게 살아가거나, 혹은 애지중지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을 잔뜩 안고 아이를 키우게 된다거나 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마는 것이었다.
수면교육은 물론 일리가 있지만, 나는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꿈을 많이 꾸면 악몽도 많이 꾸는 법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뭔가에 쫓기거나 시달리거나 심지어는 가위에 눌리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그러니 나의 보조개를 닮은 내 아이가 꿈버릇(?)은 안 닮았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고, 아이가 자다가 자지러지게 울면서 깨면 당연히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책도 역시 누군가의 가정에서는 전면책장과 소량의 책들이 잘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재가 미어터져서 전자책 단말기를 사용하는 이런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라면, 진작에 자기만의 작은 서재가 필요하고 엄마와 함께 한참 동안 책을 읽으며 즐거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지만, 각자에게 맞는 정답을 구해서 즐겁게 지내면 그것이 정답이었다. 거실 한쪽에 다시 자리잡은 아이의 책장을 보며, 오늘 저녁에 한 가지 소소한 정답을 찾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답투성이 육아를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스스로 맞는 답을 차근차근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어젯밤의 꿈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꿈에 나왔던 그 선배의 모습은, 오답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반어적으로 표현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의 육아가 오답투성이가 아니었다면, 그렇다면 내 삶 또한 적어도 오답투성이는 아니지 않을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Brina B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