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분리수유와 간식과 분유빵

11개월 17일

by 구의동 에밀리

바야흐로 마의 10개월이었다.

우선은 ‘갸’ 사운드가 추가되었다. 옹알이가 ‘엄멈머……’ 하는 식으로 바뀐 이후, ‘엄마!’ 하고 분명하게 발음하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일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갸’ 사운드가 추가되어서 이따금 아이는 ‘갸갸갸’를 하고 다녔다.

잡고 서기도 시작했고, 금방 걸음마까지 진화했다. 백일 무렵에 뒤집었다거나 만6개월부터 잡고 섰다는 아가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우리 루나는 언제 그렇게 되려나’ 하고 무심하게 흘려보내곤 했다. ‘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걷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성인들 중에 본인이 언제 뒤집었고 언제 걸음마를 시작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대근육 발달이 빠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될 일이라면 마음 놓고 있는 편이 심리적으로도 이득이었다.

책 읽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기 손 크기로 아주 작게 만들어진 블록책이 집에 있었다. ‘블루래빗 인지블록’이라고 하는 책이었다. 이전까지는 약간 딸랑이처럼 잡고 흔들거나 치발기처럼 자꾸만 입으로 가져가는 식으로 가지고 놀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블록책을 손에 쥐고 한 장씩 넘겨가며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일반 보드북도 원래는 내가 책을 잡아줘야만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본인이 책을 잡고서 중앙을 쪼개는 데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책장도 뭉텅뭉텅이 아니라 한 장씩 넘기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도형 맞추기를 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국민 문짝’이라는 별명을 가진 ‘뽀로로 뮤직하우스’를 당근으로 가져왔었다. 부속품 중 하나인 ‘도형 맞추기 집’이 없는 상태였어서, 얼마 전에 고객센터에 따로 연락해서 택배로 받았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 별 모양의 블록을 지붕 구멍에 끼워넣는 장난감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이리저리 끼워맞춰보다가 세모를 세모에 넣고 별을 별에 넣는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외쳤다.

“루나가 도형 맞췄어!”

그래도 여전히 꼬꼬맘은 패대기를 쳤다. 아니, 따라다니라고 산 건데 자꾸 패대기를 치다니……. 아이가 땅바닥에 굴릴 때마다 노래가 리셋되는 걸 봐서는 이미 회로가 조금 맛이 간 것 같았다. 그래도 머리통에 양말을 두 겹 씌워줬다. 늦었지만 완전히 운명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마룻바닥도 좀 보호해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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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월에도 각종 혁명들이 찾아왔다.

신체적으로는 윗니의 앞니 양옆쪽이 나기 시작했다. 11개월 1일에 발견한 모습이었다. 하얗게 잇몸 밑에서 뭔가가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걸음마는 이제 본인이 보행기를 알아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원래는 2단 빨래통을 부여잡고 밀기 시작했는데, 어른 키보다 큰 빨래통에 바퀴가 달려있는 형태였어서 어찌나 불안했는지……. 부랴부랴 ‘클래식 붕붕카’라고 하는 보행기를 구매했다. 주로 손잡이를 잡고 앞니로 갈갈 갉다가 한 걸음씩 떼어보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혁명적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혼자 놔두면 상체만 앞으로 주욱 미끄러지기 때문에 어른이 꼭 붙어있어줘야 했다.

호명반응과 포인팅도 시작되었다. 이름을 부르면 확률적으로 돌아봤다. 드디어 언어의 뜻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했다. 말이 통하다니! 그러니까, 정말로 ‘말’이 통하다니!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드디어 본인이 루나라는 사실을 알아챈거야?”라는 귀여운 표현을 건네주었다.

포인팅은 처음에는 포인팅인 줄 알기 어려웠다. 아이는 잘 놀다가 문득 뭔가를 향해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햇빛이 강할 때 손으로 가리면서 하늘을 응시하는 듯한 그런 포즈였다. 대체 이게 뭘까 싶었다. 대상도 상황도 늘 달랐다. 책장을 향해 손바닥을 쫘악, 오르골을 향해 손바닥을, 또 어떤 때는 모빌을 향해……. 그렇게 사흘 정도 손바닥을 펼치더니, 하루아침에 손바닥 대신 검지를 사용해서 사물을 가리켰다. 세상에, 포인팅이었구나!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분리수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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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유를 내도록 안하고 지내왔다.

솔직히 그러고 사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하지만 그냥 되는대로 지냈다. 듣기로는 한 끼 식사량인 70~100g 이상을 먹기 시작하면 분리수유를 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아기들은 위의 용량이 적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므로, 이유식을 먹고 나서 2시간 정도 소화시킬 텀을 준 다음에 수유를 해야 충분한 양의 젖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몇 번 시도는 해봤다. 그러나 대부분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대성통곡의 내용을 해석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아니 나 이제 분유 먹어야 하는데 왜 안 주는거야! 배고파! 이유식만 먹어서는 양도 안 차고, 분유를 먹고 싶다구!’

그렇게 아이는 150g의 이유식과 함께 120ml 정도의 분유를 붙여서 먹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분리수유가 필수적이라거나 ‘안 하면 진짜 큰일납니다’ 하는 철칙은 아니라는 말에 위안을 찾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분리수유를 고민할 즈음에 아이를 낮잠 재우다가 ‘가장 나쁜 정치’에 대한 생각도 들었기에 더더욱 현상유지 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했다.

아기 낮잠 재우는데 ‘가장 나쁜 정치’가 웬말이냐 하면……. 원래는 낮잠을 3시쯤 재우려고 했는데, 그 날 따라 어쩐지 안아 재우지 않고 눕혀서 알아서 잠들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서 나만 30분 동안 까무룩 자다 깨다 하면서 내버려두다가 결국 안아서 재워주는 엔딩을 맞았다. 아기띠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오늘 아가가 엄마 품에서 자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젯밤에는 기특하게도 15분 정도 혼자 잠투정 하다가 잠들었는데, 내가 괜히 낮잠까지 강행했나 하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말이다.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싸우는 정치라더니, 어쩌면 가장 나쁜 육아도 아이와 싸우는 육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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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유식 양을 보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졌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어른이 먹어도 이 정도 양이면 배부르겠다고 하셨고,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러다 설연휴 첫날인 1월 25일 토요일에 분리수유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평소 아이와 지내다 보면, 아이가 과식을 하고 있다는 촉이 종종 왔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분유를 마시고 나서 행복해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밥 먹고 나면 놀이 매트에 앉아서 멍을 때리곤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으어 배부르다…… 뭐 하지 이제……’라고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리고 이제는 급기야 시시때때로 헛구역질까지 했기 때문에 진짜 분리수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분리수유를 하면서 간식도 같이 챙겨주기로 했다. 삐뽀삐뽀 119 유튜브를 봐도, <잘 자고 잘 먹는 아기의 시간표> 책을 봐도, ‘이유식을 먹고 나서 2시간 정도 후에 20g 정도(아기 주먹 크기)의 간식과 함께 수유한다’는 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아이주도 이유식 유아식 매뉴얼> 책을 펼쳤다. 이유식 재료 조합을 궁리하는 데에도 참고하기 좋지만, 아무래도 핑거푸드를 만들 때 가장 유용한 책이었다.

그렇게 첫 간식으로 분유빵을 줬는데, 아이가 하이체어에 앉아서 분유빵을 데구르르 굴렸다. 공 굴리듯이 탁 치면서 말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절망!’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이제 어쩌지, 역시 9개월쯤부터 핑거푸드로 이유식을 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이가 잘 집어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끝까지 냠냠 야무지게도 먹었다. 손바닥 안에 있는 것까지 싹싹 긁어가며 말이다. 아주 예전에 핑거푸드를 줬을 때는 주먹 안에 음식이 갇혀서 나올 줄을 몰랐는데, 그새 아이가 또 자랐나 보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먹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다행히도 아이는 첫 분리수유의 날에 잘 따라와줬다. 하루종일 까르르 웃고, 막수 먹기 직전에도 까르르 웃다가 젖병을 물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나도 행복해서 육퇴 후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분리수유, 정말 하길 잘했다. 뭐가 어쨌든 마음이 일단 편안했다. 애가 운다고 해서,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안하고 미루면 마음이 계속 불편한 법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직감은 대체로 맞기 때문에 결국에는 실제로 문제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아이는 이유식 먹고 나서 분유를 바로 안 주니까 울긴 울었다. 하지만 전날 밤에 ‘울어도 어쩔 수 없어!’ 하고 단단히 결심을 한 터였다. 그래서 아이가 울 때마다 남편을 동원하여 아이를 거울 앞에 데리고 가서 마구 놀아주며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렇게 몇 번 반복했더니 아이는 분유 없는 이유식에 점차 익숙해져갔다.

그래도, 하면 되는 것을. 이리도 쉬운 것을……!

나는 조금 용기를 얻었고, 새로 찾아온 간식 시간이 일상에 스며들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Colin Maynard (자세히 보면 음식이 아니라 블록을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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