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분리수유와 티딩러스크와 도시락

11개월 17일

by 구의동 에밀리

아이의 간식 시간이 일상에 젖어들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간식’이 필요했다.

일전에 잠깐 핑거푸드로 이유식을 줘보기도 했었고, 그 후로 11개월인 지금까지도 이유식은 집에서 만들어 먹이고 있는 터였다. 간식도 떡뻥을 사기 보다는 직접 뭔가 만들어서 주고 싶었다. 떡뻥은 쌀뻥튀기라서 딱히 건강에 유익할 것도 없을뿐더러 입안에 욱여넣어진 채로 침 때문에 녹으면 질식 위험도 있다고 해서 좀 무서웠다.

티딩러스크와 분유빵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 분유빵은 이미 만들어봤으니 남은 것은 티딩러스크의 도전이었다. 레시피를 보니 밀가루 반죽을 ‘손에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적절한 점도로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니 손에 질척질척 묻어났다. 밀가루를 아무리 넣어봐도 그랬다. 아니, 이거 정말 언젠가는 손에 안 묻어날 수 있는 건가?

예전 같았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구워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얌전히 레시피를 따르기로 했다. 그래, 반죽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밀가루를 조금씩 넣어가며 치댔더니 결국에는 진짜로 손에 안 묻어나는 상태가 찾아왔다. 그러고 나서 막대기 모양으로 빚는데, 그제야 왜 ‘손에 묻어나지 않는’ 상태가 필요한지 깨달았다. 어차피 질척질척 손에 묻어버리면 성형을 할 수도 없었기 떄문이었다.

카페에 티딩러스크와 분유빵 두 개, 그리고 분유를 챙겨서, 남편과 아가와 함께 갔다. 분유빵은 잘 먹었는데 티딩러스크는 ‘켁!’ 하면서 뭔가 좀 힘들어했다. 알고보니 티딩러스크를 끝에서부터 갉아먹는 게 아니라 앞니로 중간 부분을 갉다 보니 큰 덩어리가 녹아 떨어진 것이었다. 그 뭉텅이를 아무 것도 모르고 자꾸 삼키려고 하니까 아가는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오고 있었다.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어서 덩어리를 빼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티딩러스크도 질식 위험이 있다고 했다. 애초에 일반적인 말랑한 빵이 아니라서, 개껌처럼 아가가 녹여가며 20분은 때울 수 있는 일종의 ‘단단한 건빵’ 같은 아이템이었다. 아니, 이런 위험한 걸 핑거푸드 레시피북에 올려두어도 되나? 그렇지만 아기들은 본인이 적응해서 끝에서부터 갉아먹기도 하고, 너무 녹기 전에 새걸로 교체해줘도 된다는 말들도 있었다.

그렇게 티딩러스크 첫날에는 분유빵만으로 간식을 대신했다. 분유는 미리 75도에 맞춰서 태워갔더니, 카페에서 줄 때 쯤에는 적당히 식어 있었다. 겨울이라 날이 추워서 천기저귀로 분유병을 둘둘 감싸서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다음에는 시간 때우기가 필요할 때만 티딩 러스크를 주고, 나머지는 분유빵이든 뭐든 다른 간식과 함께 살짝 높은 온도의 분유를 준비해 가면 되겠군…….

아무튼 성공적이었다. 남편도 나도 아기도, 셋 다 즐거운 간식시간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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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집에서 간식을 줄 때는 자기주도 이유식 앞치마를 둘러주고서 핑거푸드를 주곤 했다.

평소에 이유식을 줄 때는 그냥 타이니 트윙클에서 나오는 일반 앞치마를 둘러줬었다. 하지만 아기가 스스로 분유빵 같은 음식을 집어먹을 때는 온몸에 간식이 묻었다. 손으로 잡고 먹다가, 뭉개져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가 식탁에서 구르다 아기 팔에 깔리기도 했다. 손바닥에 있는 걸 먹으려고 손을 쫙 펼치다가 손끝이 콧구멍을 찌르기도 하고, 먹다가 눈이 간질간질하면 눈도 한 번 비벼주다가 이마랑 앞머리에 음식이 묻기도 했다.

다행히 집에 예전에 사 두었던 자기주도 이유식 앞치마가 있었다. 미술 가운처럼 긴팔로 되어있어서 아기 옷이 거의 철벽방어 되는 아이템이었다. 그걸 썼더니 마음이 훨씬 편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옷에 덕지덕지 묻고 바지에까지 떨어지는 음식물을 치울 생각에 ‘샤워를 시켜야 하나’ 하고 고민했으리라. 그러면 간식 시간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와서 매번 직접 먹게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자기주도 이유식 앞치마는 스케이트 보호대같은 게 아닐까……. 몇 년 전에 롱보드 스케이트를 타곤 했는데, 그 때 헬멧은 물론이고 무릎과 팔꿈치며 손바닥에까지 보호대를 잔뜩 찼었다. 그러자 초반에 헬멧만 썼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안도감이 찾아왔다. 더 이상 넘어져도 손바닥이 잔뜩 까지거나 무릎이 깨지거나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육아는 템빨이라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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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빵 다음으로는 가장 만들기 쉬운 ‘감자 치즈볼’을 만들어줬다.

그냥 감자 한두 알을 쪄서 치즈랑 섞어 빚으면 끝이었다. 다행히 아가도 잘 먹었다. 설날에는 젖병 대신 빨대컵을 스스로 잡고 마시는 데에도 성공했다. 젖병만 갖다놨더니, 간식을 먹다가 고개만 뺴꼼 내밀고 젖꼭지를 쫍쫍 빨길래 ‘목마르구나’ 싶어서 빨대컵을 줬었다. 이전까지는 빨대를 물어뜯기만 했는데 그 날로 바로 성공해서 신기했다.

그래도 만11개월에 빨대컵 성공이라니,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했다. 설거지 하기 귀찮아서 일반 컵으로만 주구장창 시도했던 탓이었다. 그렇지만 빨대를 쓰더라도 어쨌든 간식 먹다가 스스로 음료도 마시고 하니까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설연휴 동안에는 드디어 남편과 ‘교대 없는 저녁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저녁을 교대로 먹으면서 아가를 돌봐야 했는데 이제는 아가에게 간식을 주고 어른도 밥을 같이 먹는 일이 가능해졌다.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니 진짜 가족 같은 기분이 나서 더욱 즐거웠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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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가 끝나고, 혼자 집에서 아가를 보다가 카페로 간식 타임을 가지러 갔다.

아침에 루나를 데리고 2시간 정도 놀다가 슬슬 짐을 챙겼다. 겨울 추위에 분유가 쉽사리 식길래 보온보냉 가방을 구매했더니, 이게 도시락 가방처럼 되어서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했다. 분유, 간식, 숟가락, 그리고 간식 줄 때 바로 사용할 손수건 같은 것들을 하나의 가방에 넣어가면, 카페에서도 요것만 쏙 꺼내 쓰고 집에 와서도 이 가방만 탈탈 털어서 설거지를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아가와 함께 카페를 갔는데, 의도치 않고 애착형성 실험을 하고 말았다.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잠깐 세워두고서, 서울페이가 되는지 알아보려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데 직원분께서 주문을 받으려고 기다리시길래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결제까지 하고 왔더니, 그 사이에 아가가 유모차 방풍커버 안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아가 입장에서는 엄마가 사라져서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니 엄청 불안했을지도……. 요즘 심리학 책을 밀리의서재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아기들의 애착유형을 테스트한 실험이 떠올랐다. 먼저 방에 아가와 엄마를 데려다 두고, 낯선 사람을 등장시킨다. 엄마가 아이를 낯선 사람이랑 단둘이 놔두고 방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온다. 제대로 애착이 형성된 아가라면, 낯선 사람과 남겨졌을 때 불안해서 엉엉 울다가도 엄마가 돌아오면 금방 울음을 멈춘다.

루나는 방풍커버에서 손님들만 쳐다보며 엉엉 울다가, 엄마 품에 안겨서 금방 울음을 멈추었다. 애착은 잘 형성되어 있군……. 그래도 미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간식 주려고 카페 왔다가 울리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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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는 분유와 분유빵이 있다면, 어른에게는 커피가 있었다.

아가와 카페에서 가지는 오전 간식 타임에 점차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 날 아침에도 카페를 가고 있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어떤 사람이 커피 한 잔을 들고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카페 테이크아웃 종이컵의 따뜻한 촉감이 기억났고, ‘나도 저렇게 커피 한 잔 들고서 사무실로 출근하던 시간을 좋아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회사 가기 시러!’ 하는 것은 ‘학교 가기 시러……’와는 차원이 달랐었다. 학교는 어쨌든 뭔가를 배우러 가는 곳이고, 뭔가를 제대로 못하거나 미루거나 한다고 해서 세간의 질타(!)를 받거나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회사는 돈을 벌러 가는 곳인데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곳이니까, 본인 컨디션이라든지 기분과는 무관하게 매일 최선을 다해서 지내야 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말 회사를 ‘단 한톨도 좋아하지 않았나?’ 하고 되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자율보다 타율이 지배적인 근무시간이더라도, 방학 없는 직장인의 생활이라 해도, 재택 없는 9-6 그 이상의 반복적인 하루하루라 해도, 그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 다소 있었다. 출근길 커피잔의 따뜻한 질감이 떠올랐을 때 마음이 포근해졌던 것을 보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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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아가에게 핑거푸드를 주고서 스스로 먹게끔 하려 하지만, 때로는 간식을 그냥 스푼으로 떠서 주기도 했다.

아기에게 간식을 주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알아보니까 간식이라고 해서 어른처럼 달콤한 케이크라든지 그런 걸 아기에게 주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평소에 밥 먹을 때 먹던 당근이나 단호박 같은 걸 주는 게 아기에게는 간식이었다. 아직 위가 조그마해서 한 번에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양이 적으니까, 정규 식사 사이사이에 ‘조각밥’처럼 영양가 있는 식품과 함께 수유로 지방을 섭취시키는 것이 아기의 간식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핑거푸드 대신 바로한끼에 20g 짜리 큐브를 담아 데워줬다. 양배추, 당근, 배추, 이런 것들을 데워줬는데 어른 입장에서는 딱히 맛있는 디저트거리가 이닌데도 아가는 웃으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뒤처리하기 귀찮다든지, 카페에 데려가서 먹인다든지 할 때는 큐브를 택했다. 젖병도 돌 쯤 떼면 좋다고는 하지만, 손톱 깎아줄 때는 젖병 물려주는 일만큼 아이를 얌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그냥 빨대컵 대신 젖병에 담아서 분유를 줬다.

일상의 스케줄에 간식 시간이 찾아왔더니 아이도 나도 하루를 조금 더 다채롭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7시, 11시, 3시, 7시에만 밥(또는 막수)을 먹이면 그 사이사이에 너무 긴 공백이 생겼었는데 반가운 일이었다. 저녁도 예전에는 그냥 후루룩 혼자 마셨는데, 아이에게 간식을 쥐여주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니 행복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아이를 재울 때였다. 아이는 스르르 잠들었고 내 눈앞에는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이 대빵만하게 놓여 있었다. 조그마한 입은 살짝 벌려져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를 재워놓고 책을 읽으러 방을 나설 법한 시간이었다. 한동안 재미있는 책을 찾지 못해서 우울했는데,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소설을 발견해서 행복한 독서 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도 귀엽게 잠들어 있었다. 꼭 나가야 하나?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까 아가는 잠들기 전에 엄마랑 같이 노닥거리고 싶어했기에 그렇게 놔두었다. ‘놀지 말고 바로 잠들지 않으면 발생하는 문제’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나가면 독서는 물론이고 설거지와 빨래같은 집안일도 바로바로 할 수 있겠지만, 작고 소중한 아가를 바라보며 살짝 잠들었다 깬대도 큰 문제는 없었다.

행복하게 보낸 하루를 떠올리며, 아이 곁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Imad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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