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6일
얼마 전, 회사 동기가 놀러왔다.
백일이 조금 지난 아기를 데리고 혼자 차를 몰아서 찾아왔다. 내 눈에는 너무도 대단해 보였다. 나는 이제 9개월이 넘은 아기를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단 한 번도 홀로 그렇게 아이를 태우고 운전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아기는 둘째치고 나부터가 임신 이후로 차를 몬 적이 없었다. 이제는 누가 나한테 ‘브레이크가 오른쪽이잖아?’라고 능청스럽게 말한다면, 상대방보다는 나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할 것만 같다.
그 언니는 임신했을 때도 한 번 놀러온 적이 있었다. 내게는 그 때가 엊그제 같기만 했다. 동기 언니가 놀러오기 전에,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출생일 디데이를 보고 나서야 현실을 납득했다. 정말 백일이 지났구나. 그래도 언니가 센스 있게 출생일 디데이를 프사에 걸어두어서 다행이다……. 아무튼 역시 남의 애는 빨리 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언니와 아기가 놀러오니, 백일 아기가 자아내는 풍경에 옛날 생각이 났다. 아기는 바운서에 앉혀두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금의 루나는 바운서에 앉혀두면 거기서 뒤집으려고 바로 오징어를 굽는다. 그렇기에 이제 바운서는 촉감놀이 대상으로 전락했고, 온 집안이 아가의 탐사 지역으로 변신했다.
- - -
동기 언니도 그렇고, 회사 동료들은 다들 1년 아니면 그 이하로 육아휴직을 썼거나 혹은 쓸 예정이었다. 문득 나는 어떻게 할 지 다시금 고민이 됐다. 내년 초면 육아휴직 기간인 1년이 끝나니, 그 전까지는 가타부타 결정을 해야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1년만 써야 하려나? 하지만 돌이 지나면 그렇게 아프다던데. ‘돌치레’라는 말은 특정 병명을 이르는 용어이기도 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지인들의 아기가 돌을 기점으로 자주 아팠다. 그럴 때 내가 복직을 한 상태라면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끙끙 앓거나 혹은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조퇴를 하거나 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어찌됐든 나는 가시방석 위에서 근무를 하게 될 터였다.
동료들의 흔한 조기복직 이유 중에는 ‘집에서 육아만 하려니 심심해서’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그 이유로 심심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간다면, 나는 굳이 회사 일 말고도 다른 것들로 바쁘게 지낼 자신만큼은 100% 있었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코딩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추려내는 게 문제였다.
이런 나로서는 의문이었다. 다들 왜 심심할까. 회사 다니는 게 제1의 취미가 될 정도로 좋은 걸까? 물론 취미로는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회사 일이 아니라면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하다니. 당연히 나도 월급이야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내일 마이너스 통장을 하나 더 뚫어야 할 정도로 아주 위태로운 지경은 아니니까……라고 하면 너무 나이브하려나?
- - -
동기 언니 외에도, 신기할 만큼 올해 들어 내 주위에는 출산을 한 지인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도 이제 태어난 지 몇 달이 채 안 된 아기 엄마들이 있었다.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를 거쳐서, 이제 다들 육아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이었다. 어쩐지 동지애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 친구들도 내가 겪은 감정들을 비슷하게 겪을까? 부디 피할 수 있는 시행착오는 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한 친구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게다가 무려 이번에 둘째까지 들어섰다고 했다! 놀라웠다. 나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육아를 하는데도 때때로 힘에 부친데, 어떻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 둘을 돌볼 결심을 했을까? 심지어 그 친구는 첫째를 가급적 두 돌까지는 어린이집 안 보내고 집에서 돌보려고 한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어’라고 하겠지만, 그 때는 다들 20대에 아이를 낳았겠지…….
아무튼 그런 대단한 친구를 포함해, 두 명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러 시청역으로 갔다. 사회인이 된 우리는 이제 학교 앞 분식집이나 등촌 샤브 칼국수가 아니라 명동의 크리스탈 제이드에 가서 플렉스를 했다. 처음에는 면이나 밥 종류로 세 개를 시키고, 요리류 한두 개를 추가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자유부인들은 너무도 신이 났고, 여의도에서 온 미혼 친구까지 그 텐션에 휘말리게 하여 인원수보다 많은 요리류로 주문을 도배했다.
- - -
점심을 먹고 나서는 덕수궁 근처 카페에 가서 또 플렉스를 했다.
케이크 세 개에 커피 세 잔. 누가 봤으면 허기만 간단히 때우고 온 사람들처럼 보였겠지……. 그리고 우리는 근황 토크를 하며, 서로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소의 고민거리 하나를 털어놓았다.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일을 사랑하는 것 같아. 심지어 얼마 전에 읽은 <나는 워킹맘입니다>에서마저 작가가 자기는 일을 사랑한다고 했어. 여기 있는 너희도 변호사랑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자기 분야에 열심이고…….”
그러나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저기 근데 나도 일을 사랑하지는 않아”라고. 그냥 일하다가 빵꾸내는 게 두려워서 열심히 할 뿐, 그리고 돈이 필요하니까 직장에 나갈 뿐이라고. 그 얘기를 듣자, 어쩌면 <나는 워킹맘입니다>의 작가도 단지 본인의 책을 동료와 상사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일을 사랑한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고민이 해결됐다. 우리는 다른 평범한 주제들로 대화를 이어갔다. 최근에 ㅇㅇ선녀라는 분이 그렇게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같이 점 보러 가지 않을래? 왜, 궁금한 거 있어? 그냥,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고 어떤 삶을 살게 될 지 궁금해서. 만약에 지금 다니는 직장 계속 다니라고 하면 ‘넵 알겠습니다’ 하고 따를까 싶기도 하고. 아니야, 아무리 점괘를 보고 그래도 결국에는 너 하고 싶은대로 하게 돼있어. 그래? 그럼 그냥 가지 말까…….
- - -
육아일기라고 적는 이야기들이라고는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이런 기록을 남겨두어야 나중에 이맘때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읽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때 엄마는 이렇게 지냈구나, 하고 말이다.
또 한 가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적어보자면, 요즘 나는 낮잠을 재워줄 때 코를 킁킁대며 아기 향을 맡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꼭 낮잠 재울 때가 아니라도, 루나랑 같이 지내다 보면 이른바 ‘아기 냄새’가 팡팡 날 때가 있다. 좋은 향이었다. 고소한 냄새? 하지만 고소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밥 짓는 냄새도 고소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그윽하고 향긋하고 보송보송했다. 세탁세제 냄새인가? 옷에 코를 대어봤는데, 세탁세제 냄새가 더 강하게 나면서 아가의 향기가 지워졌다. 세제랑은 또 달랐다.
남편도 그 향이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수리에서 생후 1년간 나는 페로몬 냄새라는 설이 있다고 했다. 페로몬이라니.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내뿜어지는 페로몬일까 상상했다. “나는 아가예요 나를 잘 돌봐주세요” 정도가 아닐까? 아니, 이거 정말 귀여운 메세지잖아…….
게다가 위치는 또 하필 정수리였다. 인간의 진화는 이 냄새가 머리 꼭대기에서 나야 그나마 어른들한테 닿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것도 귀여웠다. 심지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리통에서 풍겨나온다는 점까지, 모든 면에서 너무도 귀여운 향이었다.
- - -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서 이따금 ‘정수리에서 난다고 했지’ 하고 코를 들이대면 또 냄새가 사라져 있었다. 그저 같이 놀다가 이따금 훅 하고 예고 없이 후각을 파고드는 냄새였다.
때로는 재워주다가 나기도 했다. 낮잠을 재울 때마다 아가를 엎드리게 하고 내가 그 위에 뚜껑처럼 엎드려서 살포시 머리와 가슴을 아기의 등과 엉덩이에 맞대는데, 그럴 때 목덜미에서 향이 올라오기도 했다. 친구 중 하나는 그 자세가 개구리같다며 엄청 웃었는데, 어쨌든 나는 그렇게 재움으로써 아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복지를 추가로 누릴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아기 냄새는 생후 1년간 나는 향이라는 말이 떠올라서 아쉬웠다. 냄새도 글이나 그림처럼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살면서 이토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은 맡아 본 적이 없었다. 얼른 아가를 재우고 방을 나가서 집안일을 마저 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은 이 향긋한 냄새를 계속 맡고 싶다고 늘 속삭였다.
- - -
그러다 오늘은 개구리 자세 대신에 옆에 나란히 누워서 손을 잡아주며 밤잠을 재워줬다. 아기 냄새 대신에 따끈한 체온과 아기의 귀여운 얼굴을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남편은 늘 이러다 잠들었지만(‘누워있으면 눈을 감게 되고, 눈을 감으면 잘 수밖에 없다’고 남편은 항변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밤잠을 재워주면서 잠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집안일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루나 재우고 나가서 내일 분유에 타 줄 물도 끓여놔야 하고, 세탁기 끝나면 빨래도 말려야 하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집안일이고 뭐고 다 모르겠고 이 평화와 온기와 귀여움을 다 느끼고 싶었다. 따스하고 조그마한 손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손이 너무 작은 탓에, 손은 물론이고 손목까지 내 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충격적일 정도의 미니 사이즈인 작고 귀여운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작은 사람은 내 손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는지 꼭 잡고 잠이 들어 있었다. 이런 내가 뭐라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믿고 의탁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고마워졌다.
낮에 함께 지내는 동안, 아가는 나를 보기만 해도 웃었다. 곁에 다가가면 안기려고 몸을 돌려서 팔을 뻗고, 제 손으로 상자에서 공이라도 하나 꺼내면 마치 ‘엄마 내 활약 봤어요?’라는 듯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부모로서의 준비가 안 되어있는 나였는데, 그에 비해서 너무나도 예쁘고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주고 있는 아가였다.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잠든 아가의 손을 잡고 이 작은 평화를 잠시 누리는 것, 지금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 고작 집안일 따위에 쫓겨서 이 시간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런 마음에 육퇴 후에도 이렇게 글로 써서 남기고 있다. 오래도록 간직해야지.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Raul An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