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루나와 마법의 돌, 그리고 어린이집 적응기간

12개월 21일

by 구의동 에밀리

지난주 금요일은 루나가 어린이집에 간 지 딱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루나는 그 한 주 동안, 어린이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1시간 정도 지내다 오기를 사흘간 반복했다.


첫날인 화요일에는 입장과 동시에 울어제꼈다. 루나 입장에서는 완전히 낯선 환경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한 반에 애들이 루나까지 여섯 명이었으니, 어린이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래저래 난리통이었다. 애들은 울지, 엄마들이랑 선생님들이 다같이 한 반에 있으니 와글와글 시끄럽지.


그렇게 첫날 루나는 앉아있는 엄마 품에 안긴 채로 구석탱이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비로소 교구장으로 손을 뻗었다. ‘이제 저거 궁금해졌어’라는 듯한 손짓이었다. 아이는 교구장에서 이런저런 장난감들얼 꺼내어 가지고 놀았다. 버스 장난감도 있고, 딸랑딸랑 소리 나는 폭신한 공도 있었다.


기저귀도 갈아주었는데,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가져갈 겸 루나를 저쪽 반대편으로 데려갔다가 거기서도 좀 놀게 했다. 다행히 루나는 그 쪽의 교구장에서도 이런저런 장난감들과 책들을 꺼내어 놀았다.


그래도 10시 반에 보통 자던 아이였기에, 11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정말 5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어쨌든 어린이집에서 왕창 울기도 했고 낯선 환경을 탐색하느라 진이 빠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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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인 수요일은 조금 수월했다.


루나도 어린이집이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지, 들어서자마자 우는 사태는 이제 없었다. 어쩌면 유모차 대신 아기띠를 하고 가서 더 포근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첫날의 유모차 등원은 여러모로 난감했다. 일단은 유모차를 바깥에 세울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유모차들 틈바구니에서 낑낑대며 아이를 한 팔에 들고 짐을 챙기는데, 그 날 따라 눈이 펑펑 내려서 아이와 함께 함박눈을 뒤집어썼다.


첫날에는 한참을 엄마 곁에서만 놀았는데, 둘째날이라고 그래도 몇 발자국 떨어져서도 잠시 놀다가 돌아오고 그랬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노나 보니, 애들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엄마 품에서 안 떨어지는 애도 있고, 자기 혼자 어린이집을 탐험하느라 엄마는 저쪽 구석에서 다른 애기랑 놀아주는 애도 있었다.


이 날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사 왔다. 어쩐지 아이 뿐만 아니라 나도 기가 빨렸다. 첫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샐러드로는 어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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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인 목요일은 완전 수월했다.


이제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나도 감이 좀 잡혔다. 첫 등원 전까지 불안만 가득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였다.


그전까지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집에서도 어른 눈이랑 입을 손가락으로 찌르는데, 가서 다른 애를 찌르거나 아니면 본인이 찔려오면 어쩌지?’, ‘어린이집 가면 맨날 아프다던데 가자마자 감기 얻어오면 어쩌지?’, ‘나 혼자 얘를 보는 것도 어려운데 선생님 두 분이서 여섯 명을 어떻게 케어하시지?’ 하는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 보니 애들은 대체로 각자 자기 장난감을 입으로 오물거리는 데에 심취했고, 기침 하는 애도 하나 없었으며, 가구 모서리마다 둘러진 실리콘 보호대에서조차 선생님들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결 마음이 놓였더니 어린이집 가는 길이 기다려졌다. 일단 어린이집에 가면 아이가 이것저것 새로운 장난감들을 탐색하느라 열심이었기에 따로 내가 놀아줄 게 별로 없었다. 나도 다른 집 애들 구경하고, 다른 엄마들이나 선생님들과 얘기도 가끔 나눴다. 그러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다행히 아이는 아침에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고, 그 덕분에 비교적 좋은 컨디션으로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다른 애 엄마랑 까꿍놀이를 하기도 하고, 이전까지는 선생님을 피하기만 하더니 오늘은 잠시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와서는 역시나 아기띠에서 바로 잠들었다. 나도 첫날과는 달리 짐도 옷차림도 가벼웠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잠시 재워주고 바로 침대에 눕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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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인 금요일은 첫 분리 시도의 날이었다.


일단 짐이 좀 가벼워서 좋았다. 기저귀나 물티슈, 여벌옷 같은 것들은 첫날 아이 사물함에 가져다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리바리 싸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 오늘은 아이가 엄마랑 떨어져 있는 동안 물을 마시게 해 줄 수도 있으니 물통 하나만 챙겨오라고 하셔서 가방에 넣어갔다. 아참, 로션이랑 이름 스티커랑 재직증명서 같은 것들도 챙겼구나. 짐이 아주 없지는 않았네.


아무튼 문제는 짐이 아니라 아이 컨디션이었다. 아이는 역시나 오전 10시 반에 낮잠 모드로 들어갈 태세였다. 마음 같아서는 어린이집 가기 전에 한숨 자면 좋겠건만, 어디 아기가 뜻대로 되던가? 아기띠로 둥가둥가 하면서 재우려고 하면, 필시 바동거리면서 내 가슴팍을 그 조그만 두 손으로 밀쳐가며 짜증을 낼 것이 분명했다.


‘아니, 졸리지도 않은데 좀 내보내달라고!’


그런 아이를 어린이집 적응기간의 등원시각인 오전 10시에 맞춰 데려가려니 씁쓸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있던 5분 정도는 옆에 앉아서 장난감도 꺼내어 놀고 그랬다. 그러나 역시나 분리의 순간이 오자 오열을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엄마들에게 밖에서 30분 정도 머물다가 딱 10시 35분에 맞춰서 우르르 들어와달라고 말씀하셨다.


“따로따로 오시면, 나중에 오시는 어머님 아기가 불안해하거든요.”


엄마들은 지시대로 하나둘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 어떤 아기도 울지 않았다. 아니, 왜 안 울지? 엄마가 퇴장하고 있는데, 어째서? 나는 한편으로는 의아해하며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루나도 안 울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다녀올게. 알았지?”


아니나 다를까, 루나는 그 순간부터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오열했다. 그리고 엄마들과 함께 근처 카페에 머물고 있던 30분 동안 계속 울었다고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다. 어쩐지 돌아왔을 때 루나 혼자 선생님한테 안겨서 으허엉, 으허엉 하면서 울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왜 다른 애들은 안 울었을까? 나는 그것이 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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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주 월요일에는 다행히 10분, 15분 정도만 울고 나머지 시간에는 선생님과 잘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희망을 가져서, 화요일에는 좀 더 나아지겠거니 하고 기대하며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저귀를 갈다가 어쩌다보니 루나가 앞으로 쿵 하는 바람에 엉엉 울었다. 자세히 보니 입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본인은 넘어진 직후 그 순간만 잠깐 울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베란다 밖 구경도 하고 괜찮았는데, 내가 안 괜찮았다.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 루나 엄마인데요. 등원 준비하다가 다쳐가지고……. 네네, 그래도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몰라서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네네. 감사합니다.”


부리나케 달려간 소아과에서는 다행히 아무 이상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다만 루나는 안그래도 몇 번씩 아픈 주사를 맞은 그 진료실에 들어가서, 주사를 놓았던 그 장본인(=의사 선생님)이 강압적으로(=본인 관점) 입안을 들춰보고 하는 것이 몹시 싫었기에 왕창 울었다. 뭐, 왕창 울면 입은 쫙 벌리니까 윗니 보기에는 수월했던 것 같기는 하다만.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어린이집에서 전화를 주셨다.


“병원은 잘 다녀오셨어요? 엄청 놀라셨겠어요……. 저희 오늘은, 이제 아이들이 뭔지 알기 시작해서 좀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내일도 1시간 말고 30분만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구나. 너무 운다고 퇴소권유라도 받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제 다른 애들도 운다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루나가 평소에도 눈치가 엄청 빠른 편이었으니, ‘단지 눈치가 빨라서’ 남들보다 일찍 울었던 것이었으리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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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루나는 화요일을 건너뛰고 수요일에 다시 어린이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딱 택배 기사님과 맞물려서 한 5~10분 정도 늦어버렸다. 도착했더니 다른 엄마들은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다른 애기들 동요하니까 루나 오면 따로 받으러 나오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담임 선생님께서 나오셨다. 루나는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머리 위에 대빵만한 느낌표 하나가 떠 있는 게 다 보였다. 아기띠를 슬슬 풀자, 벌써 알아채고 바싹 안겨오며 폭풍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우는 루나를 선생님께 맡기고, 엄마들과 함께 근처 카페에 머물다가 돌아왔다.


다행히 루나는 문 앞에서만 왕창 울고, 들어가서는 천장에 매달린 풍선도 되게 좋아하면서 잘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거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래도 막판에는 다른 아기들이 울기 시작해서 루나도 동요한 탓에 울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1등으로 많이 울기는 했나 보다. 이번에도 가 보니 담임 선생님한테는 저 혼자 안겨서 울고 있었다. 선즙필승을 벌써부터 배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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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땠는지와는 무관하게, 화요일과 수요일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지냈다.


아이는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었다. 오랜만에 단골 카페 ‘스킵’에 가서 아이스 라떼와 바스크 치즈 케이크도 먹었다. 아이는 티딩 러스크를 먹으면서 사장님과 손님을 보며 웃었고, 덕분에 함께 즐거운 카페 나들이를 다녀왔다. 집에서는 이따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나한테 서둘러 기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너무도 귀여웠다.


심지어 그 사이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소아과 의사들이 만든 콘텐츠들에서도 그렇고 ‘돌 이후’가 여기저기서 자꾸 언급되곤 하더더니, 돌은 그야말로 마법 같았다.


한 번은 아무 것도 잡지 않고 5초 동안 서 있기도 했다. 세상에,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뭔가를 잡고 있지 않으면 마치 나뭇가지 세워놓은 것처럼 곧바로 기우뚱 쓰러질 태세였는데 말이다.


장난감 자동차를 앞뒤로 밀면서 놀기도 했다. 팡팡 내리치는 것도 아니고, 놀이법대로 놀다니! 어린이집에서 배운 기술인가? 본인도 신기한지, 앞으로 죽죽 밀면서 매트를 두어 바퀴 돌기도 했다.


손잡이를 잡으면 앞으로 상체만 쭉 밀려나가던 보행기도, 이제는 본인이 알아서 잡고 일어나 쭉쭉 밀고 나갔다. 그 밖에도 하이체어에 앉히고 빨대컵에 분유를 담아주면, 한 손으로는 물고 있던 쪽쪽이를 빼고 다른 한 손으로 빨대컵 손잡이를 잡아 들기도 했다. 그 모습에는 친정 어머니께서도 감탄했다.


“오. 사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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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은 너무도 힘들었다. 아무래도 어제와 그제는 태풍의 눈이었나 보다.


아이는 쉽사리 짜증을 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낮잠 타이밍을 놓쳐서 체력이 바닥나 있는 상태였다. ‘블로그 포스팅 하나만 올리고 살그머니 같이 자러 들어가야지’ 하고 있는데 아이가 깼었다. 어째서 나는 만12개월 아가도 아닌데 아이와 함께 낮잠1회를 하지 않는 이상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 아가야 너는 낮잠을 실컷 잤으면서 왜 이리 짜증을 내는 거니?


“루나야, 이럴수록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어.”


그렇게 스스로 농을 던지면서, 지친 심신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적막을 가리기 위해 라디오도 틀었다. 열두시에 하는 주현영님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활기가 넘쳤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두시탈출 컬투쇼를 들어야 하므로 더 귀했다. 컬투쇼는 물론 유쾌하지만, 안그래도 말귀 어두운 내게 그 분들의 딕션은 조금 어려웠다.


자급자족의 농담과 일부러 들여온 활기찬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굉장히 지쳐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린이집에서 오늘 루나는 거의 30분 내내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이 어린 것을 꼭 보내야 하니?”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만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애써 그 질문만큼은 상상속에서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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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저히 집에서는 어떻게 방법이 없어 보여서 일단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하지? 카페로 갈까? 미세먼지는 ‘매우 나쁨’이었다. 유모차 방풍커버의 지퍼는 여며놨으면서, 마스크는 외출 준비를 서두르다 생략해버렸다. 그래도 이런 공기에 아이를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으니, 유모차째로 들어갈 수 있는 카페가 어디어디였는지 생각해봤다.


다행히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받은 스타벅스 쿠폰이 있었다. 루나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아기용품 등을 이것저것 물려줬더니 고맙다고 선물해줬었다.


덕분에 카페라떼를 마시고 돌아왔다. 카페에서 아이는 기분이 무척 좋아져서 티딩 러스크를 열심히 녹여먹고, 돌아오는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아직 3시밖에 안됐는데. 평소에 집에서였다면 4시 반은 되어야 잠들었는데. 짜증의 원인 중에는 피곤함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든 아이가 탄 유모차를 슬슬 밀면서 집으로 가는 걸음은 최대한 느리고 최대한 좁은 보폭이었다. 이 여유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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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서는 이번에야말로 나도 같이 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이가 잠시 유모차에서 자는 사이, 손도 씻고 에어컨과 백색소음기도 틀어놓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이를 옮겨서 침대에 같이 누웠다.


아이는 살짝 깼는지, 엎드린 채로 내 손을 꼭 잡고는 땡그란 눈으로 내 얼굴을 계속 쳐다봤다. 그 모습을 나는 실눈을 뜨고 경계했다……. 그러다 아이는 눈을 감았고, 다시 떴고, 이윽고 다시 잠에 빠졌다. 나는 아이와 함께 그렇게 5시까지 두 시간동안 낮잠을 잤다. 중간중간 아이는 깨어서 앞으로도 한두 발짝 기어갔다가, 자세도 바꿨다가, 하면서도 곁에 잠든 제 엄마를 보고는 다시 잠들었다.


그 와중에 꿈도 꿨다. 나도 아이를 따라서 깨었다 잠들었다 한 탓에 꿈도 여러 개를 꿨다. 마지막 꿈에서는 꿈속에서도 아이랑 싱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아이는 내 머리맡에서 범퍼 가드를 잡고 서더니, 범퍼 가드를 넘어서 어른 침대로 넘어갔다.


마지막 꿈에서 깼을 때, 아이는 얌전히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꿈이 참 헷갈리게 만들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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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두 시간을 푹 자서 그런지, 아이 컨디션이 낮보다 훨씬 좋았다.


아이 저녁밥은 핑거푸드 위주로 준비했다. 무와 밥을 섞어서 무밥으로 만든 것만 내가 떠먹여주고, 나머지는 브로콜리 스틱과 동그랑땡이라 아이가 알아서 집어먹었다. 입에 욱여넣어가며 먹는 모습이 몹시 걱정스러웠지만 희한하게 잘 먹었다. 먹다가 종종 웃기도 했다.


손을 닦아주고, 아이와 잠깐 놀아주다가, 응가도 닦아주고, 설거지를 하러 갔다.


“루나야, 엄마 설거지 좀 하고 올게.”


아이가 식기세척기로 다가오면 위험하기에, 놀이 울타리 문은 닫아두었다. 한동안 잘 놀고 있나 싶더니, 아이는 울타리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얼굴은 시뻘겋고, 꺼이꺼이. 그래도 울든 말든 설거지거리를 다 식기세척기에 부었다. 밀려있던 빨대까지 다 설거지했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달래지도 않고 너무 매정하다’라며 타박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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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달래고는 싶지만, 그러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달랬다가 내려놓으면 울고, 또 달랬다가 내려놓으면 울고. 그러면 주구장창 달래고만 있어야 하고 설거지는 포기해야 한다. 오늘 낮이 그랬다. 그런데 그 기분이 무척 별로였다. 우울하고 갑갑했다. 설거지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다니. 그렇게 내 주변은 밀리고 실패하고 포기한 일들로 가득 쌓여간다.


듣자하니, 인생에 대해 본인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겪어보니 그 반대도 성립했다. ‘고작 설거지’가 아니라, ‘설거지조차’였다. 설거지조차 내 맘대로 못하다니, 참 우울하구나…….


그래도 애가 울든 말든 일단 내가 해야 할 ‘작고 사소한’ 설거지를 했더니, 그 후의 감정은 속시원했다. 눈물을 또록또록 흘리면서 통곡하던 아이는 내가 안아주자 폭 안겨왔다. 그렇게 같이 베란다 창밖을 구경했다. 다행히 아이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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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아이 아빠가 퇴근하고 왔더니, 아이는 나랑 서재에서 우쿨렐레를 치며 놀다가 쪼르르 뛰어나가며(=엄청 빨리 기어가며) 좋아했다. 그래도 엄마가 최고인지, 목욕하고 막수까지 마친 다음에는 내게만 안겨있겠다고 난리였다.


그렇게 찰떡처럼 안겨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자니 몸과 마음의 온기에 행복해졌다. 양팔로 아이 엉덩이를 받치고, 아이가 내게 폭 기대 안겨 있어서 딱히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닌가? 원래 10키로짜리 물체를 들고 있으면 힘들어야 하는데, 내가 3.3키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강해진 건가? 아무튼 목덜미가 아이 뒤통수에 딱 붙어있어서 서로 땀이 차고 있다는 점만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먼저 아이를 낳아 기른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돌 전까지는 그냥 ‘생명체’로만 여겨지다가(‘생물’이라는 표현을 쓰는 친구도 있었다) 돌 이후부터는 인간으로서 교감하는 기분이었다는 감상이 많았다. 막연히 상상만 하던 그 이야기를 직접 겪어보니 그 경험의 온기는 생각보다 더 따스했다.


“이제 내가 루나 볼게. 가서 좀 쉬어요.”


남편이 아이를 받아갈 때까지, 그대로 아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 이 행복이 오늘치 봉급이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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