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 17일
오늘은 아주아주 힘든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이었다. 남편도 집에 같이 있었다. 아침에는 아가와 함께 구리에 있는 빵집도 다녀왔다. 점심에는 왕십리에 있는 식당에 남편이랑 단둘이 다녀오기로 했다. 미리 친정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서 한 3시간 정도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좋은 일들과 좋은 스케줄들이 많이 예정된 날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짜증과 불만과 답답함이 아침부터 가득했다. 애꿎은 남편만 엄청나게 닦달을 당했다. 그렇잖아도 어젯밤에 아이는 평소보다 훨씬 많이 깨곤 했다. 다른 집 아이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집 아가는 매번 소리를 지르면서 깨어난다. 거실에서 웹소설을 보다가 비명을 듣고는 놀라서 몸이 움찔하기도 했다. 그런 아가를 매번 달래준 것은 남편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이래저래 핀잔을 들었다. 외출할 때 필요하니까 이거 챙겨, 저거 챙겨, 식탁 정리해줘, 등등. 그래도 한마디 뾰로통하게 내뱉지도 않고 묵묵히 모두 들어주었다.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나는 정말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집안일과 육아는 원래 팀플로 함께 해야 하는 일인데, 오늘따라 남편에게 둘 다 챙기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다 빈틈이 생기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지를 못했다.
대체 나는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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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요 며칠 부쩍 짜증이 늘었다.
어린이집 때문일까? 어린이집에 가면서 아이의 하루 패턴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전까지는 오전 10:30에 한 번, 오후 4:00쯤에 한 번 낮잠을 잤다. 보통 아침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깨어나곤 했으니, 전반적으로 3.5~4시간 정도 깨어있다가 낮잠으로 원기를 충전하고 다시 일어나는 식이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하루에 낮잠을 딱 한 번만 재웠다. 0세반 스케줄이 그랬다. 아니, 1세반도 아니고 0세반인데, 낮잠을 하루에 한 번만? 그것도 오전도 아니고 낮 12시 반부터 2시간 정도가 낮잠 시간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애들은 6시간 동안 깨어있다가 잠들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0세를 꽉 채운 만12개월인 루나가 요즘 3~4시간 깨어있다가 잠들곤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개월수가 적은 아가들에게는 너무도 무리한 일정이었다.
물론 알고보니 어린이집에서의 ‘0세’는, 현재 기준으로 0세인 아이들이 아니라 그저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3월 입학하는 아이들 중에서는,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가장 늦게 태어난 아이가 작년 12월생이니 최소 만4개월 정도는 되는 셈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어린이집 0세반에 갔더니, 6명 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가 만8개월이었다. 만10개월도 어린 편이었고, 나머지는 대체로 11~13개월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낮잠 횟수가 하루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어드는 것은 만15개월 무렵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니 15개월이 안 되는 아이들에게 ‘단체생활이니까’를 이유로 오전에 대여섯 시간씩 깨어있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었다. 어른이야 이미 성장을 넘어서 노화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니 수면 시간이 좀 부족해도 버틸만 하겠지만, 한창 폭발적인 성장기를 거치고 있는 아기들에게 일괄적인 생활패턴을 강제한다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최근 일주일 간은 아이가 그런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생활 패턴이 들이닥치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 나 되게 졸린데, 여기는 너무 시끌시끌하고, 다들 아무도 안 자고, 엄마는 나를 재우려고 하지도 않고……’ 하는 식으로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제대로 잠도 못 잔 아이에게 평상시 짜증이 늘어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수도 있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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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놀잠을 만들어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막상 어린이집의 스케줄은 그야말로 ‘먹잠놀’이었다.
아기들은 먹놀잠이 중요하다고 신생아 때부터 들어왔다. 일단 잘 먹어야 배부르니까 잘 논다. 그리고 활기차게 잘 놀면 피곤해지니까 푹 잔다. 푹 자고 일어나면 체력을 회복했으니 밥도 잘 먹는다. 반대로, 푹 잠을 못 잔 아기들은 여전히 피곤하니까 밥도 잘 못 먹는다. 밥을 제대로 못 먹으면 배도 고프고 짜증도 나니까 놀기도 잘 못 논다. 그러다 피곤하면 자야 하는데, 배도 좀 허전한 것 같고 기분도 나쁘니 잠도 잘 못 자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런데 어린이집 스케줄은 점심식사 직후에 조금 놀게 하다가 재우는 식이었다. 의문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짜여 있는 걸까? 분명 전문가들이 만들어서 국공립 어린이집들에 뿌린 스케줄표일 텐데. 아니 일단, 점심 먹이고 재워버리면 소화도 잘 안 되지 않을까……?
그래도 단체생활이었다. 내 아이만 어떻게 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는 아이가 너무 졸려하면 따로 이불 펴서 재워주기도 한다고 얘기해주셨다. 그렇지만 실제로 가 본 어린이집은, 구석에 이불 편다고 해서 곤히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어른으로 치면, 백화점 한복판에 매트리스 깔아놓고 ‘졸리면 여기서 좀 주무시겠어요……?’ 하는 셈이었다. 수면실이 따로 있다고 언뜻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 곳은 좀 다르려나…….
하지만 어쨌든 단체생활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도 그랬고, 주위의 아기 키우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아이가 적응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얘기만 들었다. 예전에는 그 ‘적응한다’는 말이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는 일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집에서 지낼 때와는 다른 생활패턴에 아기의 하루를 맞추는 것을 포함하는 말이었다.
4시간 놀다가 자고 일어나서 밥 먹던 아이에게, 5시간 놀게 하다가 ‘밥 좀 먹어봐’ 하고 점심까지 먹인 후에야 재우기를 몇날 며칠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서서히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고……. 어쩌면 그건 아이가 적응했다기보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아이가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루나만 해도 지금 만12개월인데, 3개월 후면 만15개월이 되니까 그 때쯤이면 하루 낮잠 1회만으로도 충분히 체력이 커버할 수 있는 몸으로 성장하게 된다. ‘세 달이 지났더니 적응했어’가 아니라, ‘이제 15개월이 된 덕분에 낮잠 1회 일정도 괜찮게 됐어’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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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엄마들이랑 얘기를 나눴다.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랑 30분 동안 떨어져보는 날이었다. 엄마들은 30분 동안 근처에 머물다가 시간 딱 맞춰서 문앞에 모여 다함께 들어와달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바쁜 일 없는 사람들은 나까지 다섯 명. “저는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올까 하는데……”가 신호탄이 되어서, 다함께 카페로 향했다.
알고보니 낮잠을 한 번 밖에 안 자는 친구는 이 반에서 딱 한 명 뿐이었다. 10개월인 친구는 세 번도 잤다. 그 아가는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적응기간에는 아침 9시에 한숨 조금 자고 왔다. 그래도 아침에 만나면 조금 졸려보이는 표정이었다. 다들 낮잠 스케줄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고, 다니다 보면 적응하겠거니 할 뿐이었다.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복직을 앞둔 분들이셨다. 4월이나 5월 복직이 많았고, 한 명은 10월 복직이셔서 조금 여유가 있다고 하셨다. 올 한 해 2년차 육아휴직을 쓰면서 복직을 내년으로 미룬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근처에 친정도 시댁도 안 계셔서 아이를 어린이집 정규 하원시간인 4시 무렵에 데리러 갈 사람이 없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케이스에서는 연장보육을 신청하게 되는데, 그러면 아이는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린이집에서 지내다가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와야 했다. 둘 다 야근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아이가 부디 적응을 잘 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도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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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평상시에 짜증을 내고 울며 보챌 때마다 스스로 자문했다.
‘내가 어린이집을 보내서 그런가?’
육아휴직을 2년까지 쓸 수 있는데도 가정보육을 하지 않는다는 게, 아이에게 크게 잘못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스멀스멀 들었다. 남들은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법정 1년까지만 쓸 수 있게 해주니 그렇다고 쳐도, ‘너는’ 그렇지 않잖아? 선택권이 있었잖아. 아이를 네가 돌봐줄 수도 있었는데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잖아.
어린이집에 가면 많이 아프대.
어린이집 가면 애기가 낯설고 엄마랑 떨어져 있어서 많이 울기도 한대.
적어도 세 돌까지는 엄마가 돌봐주는 게 가장 좋대.
어린이집 교사가 쓴 글을 봤는데, 아무리 전문가들이 보육해준다고 해도 집에서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게 제일 좋대.
어린이집 밥은 무염 안한대. 소금이랑 좀 쓰기는 한대.
…….
그런 걱정들은 비난의 화살이 되어서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아이는 아마 앞으로 아플 건데, 그건 너 때문에 아픈 것일 수도 있어.’ ‘엄마 찾는 애를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갔으면서, 마음 편하게 네 할 일 하고 다니게 되던?’ ‘가장 언어도 사회성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인데, 교사랑 1:3으로 지내는 어린이집에 그냥 보내놔도 돼?’
집에서 키웠으면 아이 몸과 체력에 맞게 하루를 보내게 할 수 있었을 텐데. 10시 반쯤에 푹 재운 다음 점심을 먹이고, 오후에 졸려하면 다시 재워주고 할 수 있을 텐데. 엄마랑도 하루종일 붙어있으니까 덜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적지 않았을까? 그러면 이렇게까지 짜증을 내거나 칭얼댈 일이 없지 않았을까?
결국 나 때문에 애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걸까? 아이는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성질을 부리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 엄마한테 이렇듯 티를 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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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만12개월에서 13개월 무렵에는 아기들이 짜증 대마왕이 되는 시기인 것 같았다.
엊그제 놀러간 동료네 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힘들다는 ‘애개육아’를 하면서도 ‘할 만 한데?’라고 여기는, 멘탈이 보통내기가 아닌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마저 13개월 때 제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인터넷에서도 간증들이 넘쳐났다. 심지어는 ‘안아병’이라는 것도 있단다. 툭하면 안아달라고 떼쓰는 병이었다. 듣자마자 ‘이거 우리 루나 얘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나는 요즘 조금씩 말귀를 알아듣는다. 그래서 때때로 “기차 보러 갈까?”라는 식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면 잠시 ‘기차가 뭐더라?’ 하는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제 기억났다는 듯이 나한테 기어온다. 아니, 기차(=지상철) 보러 가려면 베란다 창문으로 본인이 기어가야지, 왜 나한테 오시나요…….
그러면서 앉아있는 내 허벅지를 계단삼아 밟고 올라오며 멱살을 잡는다. 안아달라는 뜻이다. 알지만 모른 척해본다. 결국 아이는 칭얼댄다. ‘안아달라니까 왜 가만히 앉아 있어?’ 그래, 본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겠지. 마지못해 안아올리면 창문을 향해 포인팅을 한다. ‘저기로 가 줘!’ 나는 아기의 이동수단이다.
그 밖에도 아이는 내게 바라는 게 많은 모양이었다. 혼자 잘 놀길래, 일어나서 울타리를 넘어 설거지를 하러 가면 날 보고 운다. ‘왜 가? 날 두고 어디 가? 옆에 있어줘야지…….’ 모서리 보호대 스펀지라도 붙이려고 가만히 서 있으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운다. 얼굴은 벌개지고 눈물이 도록도록 흐른다. ‘안아줘. 놀아줘. 아니, 왜 안 놀아줘? 너무 서운해. 답답해. 왜 알아듣지 못하는 거야?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거야? 그러지 말고 나를 좀 대해줘.’
혼자 이것저것 뽀시락대면서 잘 놀다가 갑자기 옆으로 돌아서더니, 나한테 칭얼대며 눈물을 뚝뚝 흘릴 때도 종종 있다. 아무런 전조증상도 없이 말이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어디 아픈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까 뭘 잘못 먹였나? 과식을 시켰나? 배가 아픈가? 로션 발라줄 때 다리를 잘못 잡아서 고관절이 틀어졌나(진짜 이런 별의별 생각을 한다)? 기저귀 갈아주다가 발목을 삐끗하게 했나? 몇 달 전에 문틀 모서리에 옆머리를 쿵 찧었는데, 그 통증이 아직도 남았나? 아니면 응가를 못해서 속이 불편한가? 아니 근데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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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해도 그랬다.
오전에 아이랑 카페에 가려고 차를 탔다. 아이는 뒤보기 카시트에 태워주었다. 머리 양옆의 헤드레스트 중에 왼쪽의 판때기가 접혀있기도 했고, 아이 몸이 너무 밑으로 내려온 것 같기도 해서 자세를 고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살짝 몸을 들어올렸을 뿐인데 갑자기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눈물까지 뚝뚝 흘려가며 울었다. 아니 대체 왜? 그전까지 아이는 창 밖을 얌전히 구경하고 있었기에, 맹세코 어떤 전조증상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12개월 아기 카시트 자세 고쳐주다가 우는 이유’를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검색하지 않아도 그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 따위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별의별 이유로 울겠지. 어쩌면 단순히 ‘난 가만히 창밖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왜 건드려!’일 수도 있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어쩌다보니 애를 받쳐들다가 꼬추를 건드려서’로 결론짓기로 했다. 분명 안 건드린 것 같으니까 억울했지만, 이 정도의 억울함은 난감함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값으로는 무척 쌌다.
차에서도, 집에 와서도, 아이는 시시때때로 울었다. 졸리면 자면 될텐데 차에서 아이는 눈을 비비다가 종종 찡얼댔다. 집에서는 별의별 이유로 울고 보챘다. 잘 재워주려고 아기띠를 했더니, 잠들려다 말고 손을 아기띠에서 쏙 빼내어 천장의 스프링클러를 가리키기를 반복했다. 무려 15분 동안이나! 이제 체중도 10kg에 육박하면서!
기저귀 갈고 바지 갈아입힌다고 짜증내기도 했다. 잠 덜 깼다고 울기도 했다. 옆에 앉아가지고 안 놀아준다고 칭얼대기도 했다. 밥 먹다가도 짜증을 냈다. 받아먹기만 하는 게 지루했나? 아니면 물이나 왕창 마시고 싶어서? 실리콘 물컵을 트립트랩 트레이에 내려치고 싶어서? 손가락 빨다가 손톱으로 입천장을 긁어서? 혹시, 그만 먹고 싶어서? 그런데 그만 주면 또 성질낼 거잖아. 대체 왜? 그런데 막상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엄청 쪼잔한 고자질쟁이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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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는 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만 같아졌다.
짜증나면 짜증내고, 피곤하면 박박 성질내고. 잠이 오면 잠이 온다고, 피곤한데 잠이 안 오면 또 그건 그것대로 거슬린다며 성을 내고……. 생판 남이었으면, 하다못해 매일 보는 회사 동료 중에 그런 성격파탄자(!)가 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부리는 성질머리에는 무시로 일관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또 푸닥거리 하는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기가 울면 조금 말이 달랐다. 진짜로 뭔가 불편하거나 불만사항이 있어서 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어딘가 아플 수도 있었다.
애 우는 것은 어느 정도 냅둬도 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목청껏 앙앙 울고 있는 작은 아기를 한참 내버려두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리고 혹여 울음을 무시했다가 내가 어떤 시그널을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도 외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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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정적으로 진이 빠지는 와중에도 집안일은 쌓여갔다. 아니, 정확히는 ‘쌓여 있는’ 집안일 위에 추가로 계속해서 뭐가 더 쌓였다.
아이가 냉장고에서 떨어뜨린 자석들, 주워야 했다. 바닥에 흩뿌려놓은 텀블러 홀더, 저것도 주워야 했다. 소파에 겹겹이 쌓인 옷가지, 치워야겠지. 아기 먹을 밥, 밥솥에 미리 쪄두든 재가열을 시키든 해야겠지. 식탁 의자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겉옷과 가방, 제자리에 갖다둬야겠지.
만약 집안일 한두 가지를 미룬다면 뭐가 어디서 빠그러져서 다 밀릴지 알 수 없었다. 식탁 정리는 귀찮은데 좀 나중에 하면 안되려나? 밥풀이랑 소고기 굴러다니는 것들 일일이 물티슈로 닦아내고 하기 번거로운데……. 물론 미루는 건 마음대로지만 그 후의 파급효과도 떠안아야 했다. 식탁 정리를 미루면 설거지가 밀리고, 설거지가 밀리면 다 돌리는 데에 1시간 걸리는 식기세척기 완료시각이 밀리고, 식세기가 밀리면 흡착볼이 없으니 저녁에 이유식을 못 담고, 이유식을 저녁에 못 담으면 밤늦게 준비하든 아니면 내일 아침에 부리나케 챙기든 해야 하고……. 그리고 그 와중에 빨대 설거지까지 밀리면 내일 아침은 고사하고 이따가 막수도 못 준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계속 쌓여가거나 혹은 쌓인 채로 놓여있는 집안일들이 마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 할거야?’라는 듯한 표정으로. 매트에 굴러다니는 기저귀도 치워야 하지만, 저것 하나 치운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끝이 없는 굴레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만 심신이 지쳐서 저녁 무렵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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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잘못되면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아이가 짜증을 내면 그것은 자기 몸 편하자고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한 내 탓 같았다. 분명 어린이집 보내기 전에도 그날 그날 아이는 기분파처럼 갑자기 짜증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랬던 기억은 약간 희미해지고 긴가민가해졌다. 뭐가 어쨌든 내가 이 작은 아기를 어린이집의 단체생활 스케줄에 끼워맞추려고 했던 탓에 애만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식탁이 어질러진 그대로면, 집에서 육아랑 집안일밖에 안하면서 애가 운다고 식탁 정리도 안 한 내가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닌지 싶어졌다. 친정 어머니께서 도와주러 오시면,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 고생시키는 나쁜 딸처럼 느껴졌다. 주말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카페를 다녀올까 생각이 들면, 남편도 평일에 회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힘들텐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런 네가 뭐가 잘났냐고, 고작 이 정도로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식으로 못된 말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 비난의 말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친정 어머니께서 아이를 봐 주시는 동안 남편과 함께 식당도 다녀오고 꽤 괜찮은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그런데도 마음은 이따금 답답했다. 한가롭게 즐기고 있는 이 순간이 어쩐지 현실도피처럼만 느껴졌다.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귀국하는 장거리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다. 지금 이렇게 맛있는 것 먹고, 청계천도 산책해보고 그러면 무엇 하나? 어차피 집에 가면, 월요일이 오면, 또 반복되는 일상이 돌아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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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무룩해져서 저녁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남편이 깨끗하게 씻겨서 막수를 주고 있었다. 이제 돌이 지났으니 아이는 젖병 대신 빨대컵을 양손으로 꼭 쥐고 쪽쪽 빨아마셨다. 분유도 멸균우유로 바꾸면 좋으련만, 지난번에 멸균우유를 줘봤더니 그 유명한 ‘오렌지주스 짤’처럼 입에 담긴 우유를 주르륵 흘려버렸다. 애매하게 찡그린 표정도 가관이었다. 마치 아래쪽에 ‘대체 이건 무슨 맛?!’이라는 자막이 뜬 것 같았다.
아이는 분유를 마시면서 흡족한지 배시시 웃었다. 하루종일 성질을 있는대로 부려놨으면서, 배시시? 나는 이 작은 돌아기의 반복된 짜증에 갑갑해져서 시무룩해 있건만, 정작 본인은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기분 좋아져 웃고 있다니. 보조개까지 만들어가며 눈을 휘어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나의 굳은 표정도 사르르 풀려서 실소가 나와버렸다.
‘그래, 너는 아직 모든 면에서 미숙해서 그러겠지. 감정적으로도 미숙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능력에서도 미숙하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게 너무나도 많겠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온전한 친절로써 누군가를 대한 적이 없었다. 내가 뭘 해준다고 해서 돌아오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뭘 빚져서 은혜라도 갚고자 뭔가를 대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호의 그 자체로 이루어진 100%의 친절이었다. ‘작고 귀엽지만 미숙한 아기니까’, 그런 식으로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법을 찾아서 잘해주고자 신경을 쓸 뿐이었다.
이런 생소한 경험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값지고 귀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다. 루나는 나중에 이 글을 보면서 뭐라고 생각할까?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키워주다니, 하고 고마워하기는 하려나. 아무튼 당장 내일은 짜증 좀 덜 냈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