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몹시 요상한 생일

12개월 24일

by 구의동 에밀리

생일!


그 날이 그 날 같은 육아 중에, 생일이 찾아왔다. 솔직히 생일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다르거나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물건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남편에게서는 돈으로 선물을 받았다. 유일하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외식이었다. 그것도 남편의 아이디어였지만. 아무튼 친정 엄마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이랑 점심을 먹고 오기로 했다. 생일이 다가오면 실감이 날 줄 알았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일요일이 생일이었는데, 토요일에 남편은 일이 바빠서 출근을 했다. 혼자 집에 남아서 아이와 단둘이 있었다. 그 날 아이는 ‘마냥 까르르 노는 모드’가 아니었다. 조금 갑갑했다. 어디로 좀 나가볼까? 고민 끝에 친정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번달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더니, 매주 수요일 오전마다 가던 친정 방문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이가 제 할아버지 얼굴을 까먹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친정에 들어서자마자 울상이 되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여긴 어디? 앗, 현관이 우리집이랑 좀 다른데? 카페도 아니고. 사람들이 실내에 왔다갔다……. 어린이집 같은 덴가? 이 남자 아저씨는 누구지? 으앙!’


그 남자 아저씨는 할아버지란다, 루나야.


다행히 아이는 한 10분 정도 머물다 보니 슬슬 예전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관심있게 가리키곤 하던 시계도 또 가리키기 시작했고, 푸시카를 타고 살살 웃기도 했다.


친정에서는 테이블에 케이크 한 상자를 꺼내두고 계셨다.


“너 온다고 해서 엄마한테 빨리 가서 사 오라고 했어.”


모카 케이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불을 붙이면 연꽃처럼 활짝 펴져서 초가 빙글빙글 돌며 멜로디까지 나오는 신개념 초를 꽂으셨다. 나이에 맞게 숫자 픽도 가져다가 촛불에 손이 데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올려주셨다.


덕분에 생일 전날을 즐겁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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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생일인지 뭔지 판단할 새도 없이,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 6시에 기상했다. 기저귀가 새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온가족은 강제기상을 했다.


점심을 예약한 식당에 가기 전, 최대한 단호박 빵을 만들어두고 싶었다. 그 동안 루나에게 아침마다 양배추 + 단호박 + 닭고기를 더해서 오트밀 쌀죽을 주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모두를 뭉쳐서 핑거푸드로 한 번 만들어줬더니, 아침에 온가족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스틱을 뭉치는 일이 번거로워서 그냥 빵을 만들기로 했고, 마침 양배추도 똑 떨어졌으니 이 때가 기회다 싶었다.


하지만 단호박 빵은 실패했다! 빵이라기보다는 반죽 같은 느낌……. 도저히 아이에게 줄 수는 없어서, 앞으로 일주일간은 이걸 내 아침으로 먹기로 했다. 다행히 반죽을 전부 때려넣지는 않아서, 오후에 남은 절반의 반죽으로 2차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남편이 아이 낮잠을 재우고, 친정 어머니께서 집에 도착하셨다.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함께 차를 몰아 청담으로 향했다.


“오늘 영동대교 북단 쪽에 마라톤이 있대.”


그래서인지 차가 좀 막혔지만, 그래도 식당에 양해를 구한대로 딱 10분 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또각또각, 아주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새삼 낯설었다. 한때는 구두랑 원피스만 입고, 코트에 가죽 핸드백 차림으로 늘 다녔는데. 머리도 평소처럼 질끈 묶지 않고, 반묶음으로 살짝만 묶었다. 작업복처럼 옷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주욱 도열시켜놓은 맨투맨들 대신, 원피스를 입고 명품백을 멘 채로 청담동을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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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생일마다 오는 식당이었다.


‘마제스티 타바론 티 라운지’는 전망이 탁 트인 건물 16층에 자리했다. 일부러 예약해둔 창가 자리에 앉으니, 평소 보지 못하던 경치에 속이 시원했다. 저 멀리에는 재개발을 염원 중인 압구정 현대가 보였고, 아주 멀리에는 도봉산인지 뭔지 굉장히 높은 산이 마치 병풍처럼 실루엣만 드리우고 있었다.


라구 파스타를 먹고, 유자 메로 구이를 기다리면서 창밖을 가만히 구경했다. 여기에는 나를 호출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일단은 언제 울릴지 모르는 아이의 울음 사이렌이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집안일도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치대거나 뭔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구경하기……. 밥값은 비싸지만 구경하는 시간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 어쩐지 사치스럽고도 소박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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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점심을 먹고,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이나 간단하게 먹고 들어갈까 싶어서 한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무슨 아이스크림 선데를 20분이나 걸려서 한 컵을 만드시는지……. 어쩐지 가게에 먼저 와 있던 다른 손님들이 한참을 기다린 눈치였는데, 그 때 알아차리고 재빨리 가게를 나서서 배스킨라빈스나 갔어야 했다.


5분이면 될 줄 알았던 디저트 시간을 그렇게 가게에서 죽치고 앉아있느라 허비하고, 발렛 파킹 맡겨둔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때마침 단체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느라 발렛에 몰려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어떤 은테 안경 아가씨가 발렛 사장님을 붙잡고 뭐라뭐라 묻는 바람에 혼란이 빚어졌다.


그러는 사이 30분이 흘렀다. 대체 우리 차는 언제 나오냐고 물을 때마다 ‘순서대로 나온다’만을 되풀이하던 발렛 사장님께서는, 우리 차 번호를 들으시고는 ‘그런 차가 있었다고……?’ 하는 모드가 되셨다. 그제서야 주차 타워에서 출차를 시키셨고, 돌아오는 대답은 “죄송합니다 오늘 일손이 모자라서” 뿐이었다.


어쩐지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차를 먼저 빼가더니! 하지만 이미 지나간 30분이 화를 낸다고 돌아오지는 않으니, 노발대발하지는 않고 툴툴거리기나 하며 차에 올랐다.


‘두 번 다시 발렛 파킹은 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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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도 액운은 집까지 따라왔다.


안 그래도 주차 때문에 열이 뻗쳐 있었는데, 웬 택시 한 대가 우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선을 몇 개나 가로지르며 위험하게 끼어들었다.


“메가폰이라도 가지고 다녀야겠어. 창문 열고 욕이라도 쏟아야 시원할텐데.”


하지만 말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차내에 메가폰은 없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그리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나 요즘 화가 너무 많나봐. 어쩌지?”

“육아하다 보면 그렇지. 육아는 힘들잖아.”

“그래도……. 예전에는 세탁기에 기저귀가 들어갔어도 그러려니 하고 뒷수습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조그만 일에도 화가 나. 정신 상담이라도 받으러 가야 할까?”


마지막 말에 남편이 웃었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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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들은 집에 갈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와서는 웬일로 출차하는 차와 맞닥뜨렸다. 그 차를 피하느라 남편은 평소보다 좁게 돌았고, 평소같지 않게 바퀴가 턱을 밟아 차체가 덜컹했다.


“오늘 약간 그런 날 아닐까? 바이오리듬에서 아래쪽에 가 있는 날.”

“그거 예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사과학 같은 거라던데.”


차에서 내릴 때는 뭔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무릎에 남편 목도리를 올려둬놓고 까먹었다. 하필이면 발치에 눈 녹은 자국인지 뭔지 모를 물웅덩이가 있었고, 남편 목도리 양쪽 끝이 젖어버렸다. 유사과학도 이 정도면 과학이었다.


“우리, 근처 마트 좀 들렀다 가자.”

“마트?”

“이 정도면 뭔가가 씌인 게 아닐까? 시끌벅적한 데에 들러서 떼놓고 집에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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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는 소박하게 알배기배추 한 통과 예감 과자 한 상자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포스기에 찍힌 가격을 보고, 남편이 물었다.


“앗, 혹시 4,900원 아닌가요? 할인 표시 붙어있던데…….”


포스기에는 5,500원이 찍혀있었다. 600원이 비싸잖아? 설마 하고 다시 가봤더니, 남편 말대로 4,900원이라고 아주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직원분께서는 “잠시만요”라며 저편의 사무실로 가셨다. 그러고는 다른 직원분과 함께 뭔가를 이리저리 처리하시고 다시 계산대 앞으로 오셨는데, 그래도 여전히 포스기에는 5,500원만 찍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번에는 매대에 가서 가격표를 떼내어서 사무실로 향하셨다. 그리고 또 기다림의 시간.


“……우리 또 기다리는 거야?”


아이스크림 집에 이어서, 발렛 파킹에, 이제는 마트 과자까지? 액운이 너무 한꺼번에 몰려든데다가, 심지어 그 액운을 떼내려고 온 마트에서까지 별 희한한 일이 생기다보니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자잘하게 있었던 액운들을 함께 하나하나 읊었다. 택시의 끼어들기, 젖은 목도리, 지하주차장 턱 밟기……. 아마 그 때 계산하던 손님들 중에서 우리만 크게 웃어서, 다른 손님들은 ‘저 쪽에 뭔 우스운 일이 있나보다’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600원을 할인받고, 우리는 집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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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액운은 아직 팔팔했는지, 오전에 만들다 남은 절반의 단호박 반죽까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일주일이 아니라 보름 동안 아침에 저 단호박 빵(일 수 있었던 것)을 먹게 생겼다. 심지어 빵을 만든답시고 설거지거리는 잔뜩 쌓였다.


‘저걸 언제 다 치우지?’ 하고 낙담 중이었는데, 문득 ‘치우면 되지!’ 하는 생각에 몸이 움직였다. 몸이 좀 피곤해도, 만사 제쳐두고 낮잠만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서 접시며 트레이를 잔뜩 치웠다. 식기세척기가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전에 없이 평화롭게 들렸다. 살짝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이 먹일 저녁거리를 밥솥에 담아 보온 모드로 돌려두었다. 아이는 남편과 함께 싱글 침대에서 오후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대로 아이패드와 책을 챙겨서 동네 카페로 향했다. 비록 대부분이 요리 실패와 그 뒤치다꺼리로 점철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전 오후 내도록 집안일을 했으니 생일에 이 정도 휴식은 취해도 좋지 않을까……?


카페로 향하며 생각했다. 케이크를 파는 집으로 갈까? 그래도 생일이니까. 아니, 그냥 제일 가까운 카페로 가자. 오가느라 보낼 시간이 아깝다. 그냥 빨리 가서 최대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러다가 와야지. 그러고보니 어쩐지, 예전에 보내곤 하던 생일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하루였다. 생일이랍시고 잔뜩 대접받고 싶어하거나, 혹은 누군가가 나를 기쁘게 해주기만을 희망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상 속 잔잔한 액운들에 잔뜩 맞서 싸우고 버텨낸 기분이랄까…….


여러모로 몹시 요상한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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