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 참에 비상탈출!
나는 ‘나’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고, 그대로 아래로 내다 꽂았다. 그렇지만 그 역시 내 몸뚱이를 아무렇게나 붙잡고 끌어당겼다. 어쩔 수 없이 뒤엉켜서 계단 반 층을 굴러 내려갔다. 등이며 팔이며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머리채를 놓지 않아서 손등이 계단 모서리 금속에 찍혀 찢어지고 피가 났다.
층계참까지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바닥에 드러누워진 그가 미처 일어나기 전에, 가까스로 고지를 점했다. 손에 쥔 머리채를 그대로 계단 모서리에 처박았다. 늙은 나 역시 만만찮았다. 그런 와중에도 팔을 힘껏 뻗어서 내 목을 찾아 조르려고 했으니 말이다. 미래에서 온 나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왼손을 목 쪽으로 옮겼고, 나는 안간힘을 쓰며 나의 목을 내리눌러 졸랐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오른손으로 나의 뒤통수를 계단 모서리로 꾹 꾹 찍어 누르며 외쳤다.
“나는, 내가, 살아낼거야!”
50대의 나의 눈을 봤다. 목이 졸려져서 희번득거리는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몸부림, 이 표정, 이 모든 서글픈 아우성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50대의 나는 이토록 목이 졸려질 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잘못 살아온 걸까. 끄억 끄억 거리며 비명에 다다르지 못한 신음에는, 자신이 살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처절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바둥거리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 나는 도대체 어째서 죽을 때의 비명마저도 제대로 외치지 못한 채 숨이 끊어져가고 있었나.
늙은 나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 목에서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땀이 범벅이 된 채로 숨을 헐떡였다. 맥박이 머리에서 뛰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두근,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시체의 목에 걸린 임시 출입증을 빼냈다. 그리고는 우두커니 서서, 시체가 된 나를 바라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시체는 차츰 푸석푸석한 회색으로 변해갔다. 살갗도, 계단에 흘린 피도, 재가 되고 있었다. 시체와 시체의 옷가지들이 연기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시체가 사라진 자리에 공책과 필기구가 덩그러니 남았다. 그 옆에 놓인 영수증 한 장이 처량했다.
미래의 내가 남기고 간 유품들을 주워서 계단을 내려갔다. 타박, 타박, 타박. 어느새 남은 건 한 층뿐 이었다.
나는 비상구를 나섰다. 드디어, 아무도 없이 홀로 내던져진 하늘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