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Oct 09. 2023

런던에서 현지 가이드가 된 사연

경복궁을 다녀온 날, 가이드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추석 연휴라서 경복궁이 무료 개방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 보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고궁을 찾았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도 상당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꿈이 뭐였는지 얘기해 줬나?”

“아니.”

“스스로를 펀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산을 확보한 다음, 외국인 대상으로 여유롭게 고궁 투어 가이드를 하는 게 꿈이었어.”

“오, 원대한데…….”

“하지만 ‘충분한 자산을 확보’하는 단계에서 일찍이 틀어졌지.”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바로 ‘아르바이트’였다. 외국에서 돈을 쓰고만 사는 소비적인 삶을 벗어나고 싶었다. 현지에서 돈을 벌고, 그러면서 현지 사람들 사이에 더 스며들고 싶었다. 그래야 비로소 관광객 혹은 단순한 학생에서 벗어나 진정한 외국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넷 후기를 보면 남들은 잘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 같았다. 특히 어떤 대학원생은 블로그에 스타벅스 아르바이트 했던 경험을 올려두었는데, 알고 보니 평소 학교 가는 길에 있던 스타벅스였다. 카페 앞 공원에 간디 동상이 있다고 하니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 스타벅스 앞을 지나갈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알아보니, 한국인은 한국인이 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잡는 게 비교적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에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CV를 여기저기 뿌려가며 일자리를 찾아봤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작은 도시락 가게에 면접을 갔다.


“예전에 다른 알바 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그렇군요…….”


사장님은 푸근하면서도 똑부러질 것 같은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한산한 시간이었는데도 이따금 손님들이 들락거리면서 도시락을 사갔다. 그 모습을 보며 ‘과연 내가 바쁜 피크타임에 거스름돈이나마 잘 셀 수 있을까? 다들 영어로 이야기하는데?’ 하는 걱정이 슬며시 들었다.


자신감 없는 속마음이 태도로 드러났는지, 사장님은 별다른 쓴소리도 없이 무난하게 인터뷰를 끝내셨다. 마치 본인 딸을 보는 것 같다고, 저녁은 먹었냐며 손에 불닭 도시락 한 박스를 들려 주셨다. 공짜 저녁이 생겼는데도, 그 봉지를 들고 집에 가는 내 모습이 왠지 싱숭생숭하게 느껴졌다.



도시락집 사장님이 들려주셨던 저녁.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었는데, 맛있기는 되게 맛있었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아서 결국에는 거의 잊고 지내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생처럼 1~2년 간 눌러 앉으며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않는 이상, 9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데에 꼭 돈벌이가 필요하지는 않긴 했다 (물론 기숙사비가 비싸긴 했다). 교환학생은 각 대학에서 신청자를 받아서 서로 학생을 교환하는 방식이었지만, 여전히 학비는 각자가 본교에 기존 등록금 액수만큼을 낼 뿐이지 상대측 학교에 등록금을 내는 방식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런던처럼 학비가 비싼 대학교의 학생들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내게는 이득인 제도여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학교 수업을 듣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는 평범한 교환학생의 일상으로 되돌아 갔다.



친구랑 카페 갔다가 멋진 차를 발견하고 찍은 사진. 이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무시했었는데, 나중에야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였을까?' 하고 후회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는 파리로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났다. 기숙사에서 걸어가면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기차역이 있었는데, 마침 여기가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었기에 100% 활용을 해 보고 싶었다.


테마는 나름 ‘여자 혼자 떠나는 파리 나들이’로 정했다. 1박2일 짜리 짧은 여행이었기에 별다른 준비 없이 ‘어디 갈까?’ 정도만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플랫에 사는 한국인 언니가 내게 “프랑스어 할 줄 알아?”라고 물으며, “모른다면 그래도 ‘sortie’가 ‘출구’라는 뜻 정도는 알아두면 편할 거야”라는 팁을 주었다. 처음에는 ‘아 그렇구나’ 싶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괜히 불안해졌다.


‘파리는 영국보다도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프랑스어 하나도 모르는 내가 혼자 가도 괜찮을까?’

‘아무리 1박2일이라고 해도 어디가 어딘지조차 모르는걸. 완전 허탕치면 어쩌지?’



플랫메이트 언니가 'sortie'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던 저녁. 후식으로 쇼트브레드를 얻어 먹었다.



다급하게 프랑스 파리의 가이드 투어를 알아봤다. 너무 비싸거나 패키지스러운 투어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찾은 게 ‘마이리얼트립’의 파리 자전거 투어였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현지 가이드로 등록해서 투어를 제공해 주는 플랫폼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직 런던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자전거는 어렸을 때 많이 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내가 언제 또 자전거를 타보겠나 싶은 생각에 냉큼 예약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투어 진행해 드릴 가이드 ○○○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파리 자전거 투어를 제공하는 가이드는 현지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이었다. 나는 프랑스어도 할 줄 모르는데 이 분은 파리의 유명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니 굉장해 보였다. 게다가 가이드 투어를 하면서 돈도 벌고. 내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완전 멋진 여성 롤모델이었다.


"자전거는 탈 줄 아시죠?"

"네."

"그럼 우선은 공공 자전거 대여부터 갈게요."


그 당시는 2012년이라 한국에 따릉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공공 자전거를 대여하는 경험도 그 날이 거의 처음이었다. 



파리 자전거 일일권. 나중에 파리 갔을 때도 혼자서 또 끊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 자전거 실력은 알고 보니 형편없었다. 조금 페달을 밟으려고 하면 자꾸만 옆으로 기울었다. 


'이상하다, 어렸을 때는 잘만 타고 다녔는데?'


가이드 분도 이 상태로 바로 도로에 데려갔다가는 사고로 직결되기 십상이라고 판단하셨나 보다. 나를 널따란 광장으로 데려가서는 "몇 번만 연습해 보고 갈게요"라고 하셨다. 


다행히 조금 타 봤더니 예전 가락이 기억에서 돌아왔다. 사람은 위기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아마 그 때의 나는 '이대로 자전거 투어 비용을 날릴 수는 없어'라는 위기감에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것 같다. 


물론 한참 후에 돌이켜 보니 그 때는 내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기어가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조작에 서툴다 보니 기어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거나 혹은 기어 자체가 고장난 자전거였지 않았나 싶다. 언덕배기를 올라가려고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바퀴가 다소 헛도는 듯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투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고풍스러운 유럽의 도시 한복판을 자전거로 달리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루브르 앞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듣고, 또 조금 더 가다가 센 강의 어느 다리 앞에 멈춰서 이야기를 듣고. 저녁 무렵에 시작되었던 만큼 날이 곧장 어두워졌는데, 아르누보 양식의 가로등이 비추는 파리의 거리는 한낮에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모습을 자아냈다. 



파리의 센 강에서 가이드 분이 찍어주신 사진



그 때의 기억은 런던에 돌아오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겼다. 게다가 파리의 멋진 유학생 언니를 보고 나니, 마치 워너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더 이상 뚜벅이로 런던을 샅샅이 돌아보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나는 런던에서 자전거 투어 가이드가 되어 보자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마이리얼트립'에서는 아직 런던에서 자전거 투어 가이드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상도의에도 어긋나지 않겠구나 하며 마음이 놓였다. (참고로 파리 투어는 10월 말에 받고, 가이드 등록은 자전거와 런던에 익숙해진 12월 쯤에야 해서 시간 간극이 있긴 했다.)


현지인 가이드가 된다면 돈을 받고 가이드 투어를 제공한다는 말이 될 텐데, 속 빈 강정으로서 남의 등처먹는 가이드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은 다른 사람들이 런던에서 가이드 투어할 때 어떻게 진행하는지 한 번 눈여겨 보기로 했다. 예전에 에딘버러(Edinburgh)에서 무료 워킹 투어를 받았던 게 떠올라서 런던에도 비슷한 게 없는지 찾아봤다. 


당연히 이 큰 도시에는 그런 투어가 아주 많았고 나는 그 중 하나를 골라 잡으면 될 뿐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선택한 워킹 투어는 중심 관광지 쪽에서 시작했다. 걸으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아주 넓은 지역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빅 벤 같은 주요 건물들은 충분히 구경할 수 있게끔 효율적으로 동선이 짜여 있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짜 봤던 자전거 투어 경로. 이후에도 몇 차례 수정했다.



투어 가이드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단순히 역사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해당 장소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버킹엄 궁전을 지나갈 때는 어떤 난입자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버킹엄 궁전도 내부에 공원이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열려 있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날 정신 나간 몇 명이 모여서는 '야, 버킹엄 들어가서 공원 바베큐 파티하자'라며 담장을 넘었대요. 물론 그들은 야영을 하다가 보안팀에 걸렸지만 어쨌든 그런 해괴한 사건도 있었답니다." (실화였을까?)


남의 투어를 들으면서 내 투어를 준비한다니, 왠지 산업 스파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베낄 마음은 없었기에 주의 깊게 투어를 지켜봤다. 그러자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음 재밌네' 하며 친구들이랑 떠들고 따라다니던 투어랑은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나중에 동선은 효율적으로 짤 수 있도록 궁리를 좀 해야겠는걸', '어느 장소에서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이면 좋을까?' 등등, 고민할 거리가 많았다. 



투어 상품 기획할 때 사전 답사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들



무언가에 대해 가장 잘 알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된다는 말이 있다. 런던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되겠다고 마음 먹기 전까지는 나도 그저 흔한 '관광객 1'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단 가이드가 되겠다는 결심이 섰더니 런던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런던의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한 책도 사서 읽고, 평소에는 그저 또 하나의 조형물이겠거니 싶었던 동상도 인터넷에서 의미와 유래를 검색했다. 


지도에도 열심히 표시하고 대본도 준비하다 보니 얼추 가이드 투어 상품이 완성되었다. '마이리얼트립'에 파트너(가이드를 파트너라고 표현했다)로 등록 신청을 하자, 조만간 곧 화상 면접을 위한 안내가 갈 예정이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마이리얼트립의 현재 홈페이지 모습. 예전에는 로고도 지금처럼 꼬불꼬불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화상 면접과 관련된 추가적인 일정 안내는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역시 아르바이트처럼 이번에도 또 떨어진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회사에 문의 메일을 넣었더니, 죄송하다며 확인하고 알려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런데도 추가 안내가 오지 않아서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내가 그냥 파트너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띠용? 아직 화상 면접도 보지 않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그 업체는 2012년에 창립되었다고 한다. 내가 가이드로 뛰겠다고 나섰던 때가 2012년이었으니, 이 모든 과정들이 나도 처음이고 그 쪽도 처음이었기에 서로 서툴렀던 모양이다. 아무쪼록 나는 파트너로 등록이 되었고, 이제 내 뜻대로 가이드 투어 상품을 올리고 손님을 받을 수 있으니 불만은 전혀 없었다. 불만이라니, 오히려 땡큐지. 솔직히 빈틈을 노려서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간 기분도 들긴 했다.



투어 손님들이랑 갔던 카페. 아마 나한테 한 잔 사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면서 용돈벌이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런던 공부를 확실히 하게 되니, 꾸준히만 한다면 웬만한 한식당 아르바이트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것을' 하는 마음 정도가 있었다. 그랬다면 고작 서너 번이 아니라 더 많이 투어를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오랜 기간 런던을 속속들이 알아보고, 돈도 더 벌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작은 액수라지만, 투어를 마치고 나서 마트를 다녀오는 날에는 지출에 대해 적절한 방어를 한 기분이 들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달콤하고 식감이 퐁실퐁실해서 좋아했던 웨이트로즈(Waitrose)의 초코무스. 내돈내산이라는 기분으로 먹으면 더 맛있었다.



물론 금액으로만 따지자면 용돈벌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액수였다. 그렇지만 타지에 나가서 '내도록 돈만 축내고 오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 속으로 작은 자신감이 생겼었다. 앞으로는 여행을 갈 때마다 버스킹을 잠깐씩 해서 한 끼 식사 값이라도 벌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은 돈을 걱정 없이 펑펑 쓰고 사는 삶을 동경하는데, 나는 왜인지 스스로 언제든 돈을 벌 수 있는 생활력에 더 마음이 동한다. 세상에는 돈을 '쓰기만' 하는 팔자와 '벌기만' 하는 팔자가 있다더니, 나는 결국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인 걸까?


그런데도 여전히 '이것도 저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으로 봐서는, 역시 사람 팔자는 어딘가 타고나는 게 있는가 보다. 

이전 11화 런던의 새해에는 불꽃놀이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