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놓인 우쿨렐레를 보며 고민했다.
우쿨렐레를 연습할까? 아니면 그냥 손에 익은 플룻을 연주할까? 하지만 기타는 손끝이 아파 못 치더라도 우쿨렐레를 잘 쳐야 노래할 때 반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참 고민 끝에 역시 우쿨렐레로 손이 간다. 마음 속으로는 기타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다.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재미있게 연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런던에서는 열 몇 개의 동아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에는 음악 동아리로 정착했다. 원래는 예전부터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가고 싶어했다. <노다메 칸타빌레>처럼 다같이 모여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게 멋지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아즈(SOAS) 대학교에는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없었다. 사물놀이, 아프리칸, 기타 등등 별의별 음악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러던 중, 동아리 소개 팜플렛 맨 첫 장에 적힌 동아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Ceilidh’라는 동아리였다.
‘어떻게 읽는 거지? 씨일리?’
뭘 하는 동아리인지는 몰라도 소개글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떤 악기든 환영합니다”
“오디션 없어요”
악기 무관, 오디션 없음! 플룻을 배우기는 했지만 학생 때 레슨 받았던 게 전부였고 그 이후로는 정말 아주 가끔 생각날 때 연주한 게 다였다.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있었다 해도 입단 신청서를 내기가 망설여질 만한 실력이었다. 들어간다고 해도 맨날 혼자 음을 틀릴 게 뻔했다. 눈치만 보다가 슬그머니 탈퇴 엔딩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 '씨일리'건 뭐건, 여기야말로 내가 갈 곳이었다.
한국으로부터 본가에 잠들어 있던 플룻을 공수 받았다.
첫 모임을 나가는 길에는 플룻 케이스를 그대로 짊어메고 갈 지 잠깐 고민했다. 런던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핸드폰 보면서 길 가다가는, 반드시 2인조 자전거 소매치기가 나타나서 낚아채간다는 게 정설이었다. 누군가가 내 플룻을 훔쳐가면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배낭에 케이스를 넣었다. '누가 봐도 악기 케이스'인 가방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것이야말로 초특급 간지인데 아쉬웠다.
모임은 학교 본관의 G층이었다. 희한하게 영국에서는 한국의 1층을 G층(Ground Floor)이라고 불렀다. 강당인지 교실인지 헷갈리는 크기의 공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 'Ceilidh'는 '케일리'라고 읽었다. 처음 보는 단어였는데, 너무 실수하기 전에 발음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이래서 인터넷으로만 예습을 하면 한계가 있다. 집에서 미리 찾아보긴 했는데, '영국 북부의 음악'이라는 정도만 파악하고 어떻게 발음하는지까지는 미처 몰랐었다.
딱 봐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케일리 동아리의 리더 격이었다. 수염이 하얗게 세고 주름살이 진 얼굴이었다. 그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긴 했다. 대학교 동아리에 몇 학번 위 선배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리더로 있다니. 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옆에는 딱 봐도 착해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다. 리더는 할아버지였지만 이 친구가 회장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뉴페이스인 내게 그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안녕."
"만나서 반가워. 넌 평소에 무슨 악기 연주했어?"
'평소에' 연주라니, 뜨끔했다. 그 때 내 플룻의 상태는 완전히 녹슬어 있었다. '연습을 안 해서 실력이 녹슬었다' 하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은색 플룻이……. 그러니까, 나만 그렇게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썩어' 있었다.
"나는……. 플룻! 연주해."
"실버 플룻 연주자구나! 멋져."
"여기는 스코틀랜드 음악을 연주해?"
"아니, 아일랜드 음악이야."
"아앗 그렇구나……. 아일랜드 음악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괜찮을까?"
"당연하지! 너도 곧 즐기게 될 걸? (You'll just enjoy it.)"
그리고는 다들 둥그렇게 앉아서 연주를 준비했다. 나는 악보가 없어서 옆자리의 다른 친구 악보를 같이 봤다. 아까의 그 '할아버지 리더'가 원의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여기 오늘 처음 오신 분 들도 계시고 할 텐데. 너무 '악보의 음을 틀리지 말아야지' 하고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귀로 듣고 배우면 됩니다."
틀려도 된다고?
지금의 실력으로, 게다가 생판 낯선 악보를 초견으로 도전하자니 안 틀릴 리 없다고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대놓고 '틀려도 된다'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연주가 시작되자, 온갖 악기들이 자기만의 음색으로 같은 곡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기타, 바이올린, 리코더 등 정말 다양한 악기가 총출동했다. 그 덕분에 음 몇 개 틀린다고 해서 티가 확 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며 연주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동아리 연습에 몇 번 참여했다.
때로는 학생회관 1층 펍 같은 데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 때는 다들 맥주를 하나씩 손에 들고 연주를 했다. 평소에 기타를 가져와서 치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벤조를 들고 와서 맥주를 마시며 줄을 튕겼다. 벤조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현을 튕긴다는 공통점만 있다면 그 어떤 발현악기든 문제 없다는 듯한 모습이 부러웠다.
한편 플룻은 현악기와는 다르게, 불다 보면 악기 내부에 침이 이슬처럼 맺혀서 사용 후에 바로바로 닦아줘야 했다. 맥주 한 잔 걸치면서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이 낭만적으로 보였지만, '침에 알콜과 탄산이 섞여도 괜찮나?' 하고 망설여졌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그런 건 크게 상관 없지'라는 호탕한 마음으로 맥주를 마셨다. 학교 음악 시간과 콩쿨 대회처럼 고상하고 규율로 빡빡한 음악과는 안녕이었다. 음이 좀 틀리든 말든, 인생 살면서 즐길 수 있는 악기 하나 끼고 갈 수 있느냐는 사실이 이제 더 중요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보름달 케일리(Full Moon Ceilidh)' 공연을 했다. 공연 날에는 공간도 좀 넓은 장소로 확보하고 연주자들을 위한 마이크도 몇 대 설치했었다. 게다가 다들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놀러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할아버지 리더'가 마이크를 들고, 모여 있던 청중들에게 이야기했다.
"여러분, 저희는 소아즈 케일리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렇게 행사를 하는데, 오늘은 밖에 구름이 꼈네요. 그래도 확실히 보름달이 뜨긴 떴습니다."
그리고 그는 관객들에게 '아이리시 지그(Irish gig)' 춤을 가르쳐줬고, 케일리 밴드가 음악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은 한 켠에 몰려서 곡을 연주했고, '놀러온 사람'들은 중앙에서 원을 만들고 춤을 췄다. 수련회 때 했던 '둥글게둥글게',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같은 느낌이었다. 대신에 배경음악은 아일랜드 음악이었다. '찌기지기짠짠' 하는 현악기의 소리와 빠른 템포가 특징이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영국 북쪽 탄광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때로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 누군가가 준비해 온 해기스를 먹었다. 영국의 전통 순대같은 음식이라고 가이드북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맛은 순대와 전혀 달랐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순대라기 보다는 '순대 속'같은 느낌? 게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좀 퍽퍽하기도 했다. 순대인줄 알고 먹었는데 간 같았달까…….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누가 '아일랜드 친구의 순대국밥 후기'라며 올렸던 글을 봤었다. 단지 조상을 잘못 만난 죄로 맛대가리 없는 '블랙 푸딩(해기스와 유사한 음식)'만 먹고 살아왔다는 한탄이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오묘한 맛이기는 했다. 순대를 먼저 상상하고 먹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보름달 케일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정말로 하늘에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마침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는 독일인 친구가 있어서 함께 가는 중이었다.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보름달 봤으니까 '보름달 케일리' 안 잊어버리겠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의외로 그 보름달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보름달 케일리라는 게 있었다' 라는 사실과 그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만 기억 속에 남았다.
음악을 즐기던 낭만적인 사람들 덕분에 나도 뭔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