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를 먹다가 생각이 났다.
런던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스위스인 친구가 있었다. 한국인이었지만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나와는 반대로, 그 친구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모국어였지만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쓸 수 있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한국어와 영어라는 공통점으로 뻗어나가다 보니 친한 무리가 생겼다. 한 친구는 런던으로 유학을 온 한국인 이었는데, 알고 보니 서울에서도 나랑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또 엄마 쪽이 한국인인 프랑스인 친구도 있었는데, 외할머니께서 "식기세척기는 믿을 수가 없어서 못 쓴다"고 하셨단 이야기를 듣고 틀림없는 한국계라고 생각했다. 남편(그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던가?)이 한국인이었던 친구도 있었고, 브루나이에서 온 친구도 있었……. 잠깐, 브루나이에서 온 친구는 어쩌다가 친해졌더라?
아무튼 우리는 서로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도서관이나 카페도 가면서 잘 지냈다. 어느 날은 스위스인 친구가 "설날 때 부모님 댁에 다녀올 건데, 같이 갈래?"하고 초대를 해주었다. 마침 방학이었던 우리는 캐리어를 챙겨서 공항을 향했다.
기차도 잘 타고, 공항도 잘 도착했는데, 수하물 검색대에서 프랑스인 친구의 짐가방이 걸렸다. 버터 나이프인지 아니면 잭 나이프인지 하여튼 칼 한 자루가 캐리어 앞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나 이런 거 넣은 적 없는데."
하지만 가련한 캐리어는 추가 탐색을 면치 못했다. 캐리어에는 아직 뜯지도 않은 고추장 한 통이 들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이건 액체가 아니라 페이스트인데요!"라며 항변해봤지만, 무뚝뚝한 표정의 검역관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스위스 로잔(Lausanne)에 도착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서울의 빌딩숲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친구네 부모님은 무척 자상하셨고, 거실에는 난로가 있어서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겨울의 한기를 데웠다.
당연히 스위스에는 설을 쇠는 풍습이 없겠지만, 우리는 설날이라는 이유로 한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재료는 근처 마트에서 샀다. 한인마트에서 고추장을 살 때는 이게 스위스에서 이렇게까지 비쌀 줄 몰랐어서, 그제야 수하물 검색대 사건이 사무치게 아쉬웠다. 불고깃감으로 고기를 살 때는 친구네 아버지께서 "얇게 썰어주세요. 아니요, 그것보다 더 얇게"라며 거듭 요청하셨는데, 정육점 주인은 귀찮아하기는 커녕 "호오, 이렇게까지 얇게 써는 방식도 있군요"라며 무척 흥미로워하셨다.
스스로 나름 요리는 못한다고 자부했지만(?), 친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손을 놀린 덕분에 하루만에 떡국, 숙주나물, 시금치나물, 호박전, 불고기를 다 만들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초코 케이크를 한 조각씩 먹었다. 스위스에서는 꼭 후식으로 초콜릿을 먹는다고 했다.
친구네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먹여주고 재워주시면서 알뜰살뜰 챙겨주셨다. 어느 아침에는 친구가, "울아빠가 우리의 먹성에 감탄했어(My father was impressed about how much we eat)"라고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아침에 친구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치즈 토스트가 너무 맛있어서 몇 장을 홀린 듯이 먹었던 게 떠올랐다. 스위스에서 유명하다는 '그뤼에르 치즈'를 올려서 전자레인지에 데운 간단한 레시피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식빵에 치즈 올려 데워 먹었더니 그 맛이 전혀 아니어서 실망했다.
마지막 날에는 내가 런던이 아닌 파리로 곧장 가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떠나야 했다. 그런데 친구의 온가족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배웅을 해주셨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과자며 뭐며 간식을 손에 잔뜩 쥐여 주셨다. 친구 아버지께서는 나를 기차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셨고, 내가 타야 하는 열차칸까지 찾아주셨다.
그 후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추운 날이면 가끔씩 그 때가 기억났다. 늘 눈이 내려서 하얗던 마을, 친구 어머니께서 사 주셨던 초코 라떼, 치즈 퐁듀를 먹으면서 "알맹이 빠뜨리면 그 사람이 진실게임 걸리는 거야" 라며 놀았던 저녁, 그리고 분명 간이 딱 맞지 않았을 텐데도 "난 한식이 좋더라.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기분이야"라고 이야기해 주셨던 친구 아버지의 말씀까지.
나는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친구는 유럽에 남아 있었다. 한 번은 '한국 과자나 책을 소포로 부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부치지는 못하고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 친구에게 잘 지내냐고 연락을 해봤지만, 그 때는 이미 한국에 와 있다고 해서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에 강남역에서 닭갈비를 먹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나는 친구한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이 받기만 하고 돌아온 기분이 계속 든다. 특히, 왠지 나물 맛이 조금 밍밍해서 참기름을 열심히 뿌려봤지만 소용 없었던 일이 자꾸 생각났다. 참기름이 아니라 간장이나 소금을 쳤어야 했는데 그 때는 그 사실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 기껏 한식 대접한다고 했는데 싱거운 나물을 만들고, 이날 이때껏 한국 과자도 한 박스 안 부쳤다니.
언제 다음에 만나면, 그 때는 정말 밥이라도 한 번 제대로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