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Oct 08. 2023

런던의 새해에는 불꽃놀이를

날씨가 추워지는 걸 보니, 곧 있으면 새해겠다.


런던에 있을 때는 새해맞이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었다. 어디로 가서 카운트다운을 할까?


솔직히 크리스마스보다 새해를 맞을 때 더 궁리가 필요했다. 크리스마스는 고민할 게 없었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아무도 가게를 열지 않았다. 한국의 설날 혹은 추석 당일 같은 존재였다.


한 술 더 떠서 크리스마스에는 교통편까지 제한적으로 운영됐다. 공공 자전거 1년권을 끊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데도 가지 못할 뻔 했다. 비가 종종 내렸지만 덕분에 자전거 타고 뽈뽈대며 돌아다니다가 귀가할 수 있었다.



런던의 크리스마스 시즌. 거의 유령도시 수준이었다.



반면에 새해는 좀 달랐다. 한국은 오히려 신정에 좀 차분하고 크리스마스 때 명동이고 어디고 복작복작한 것 같은데. 런던에서는 다들 ‘어디서 새해맞이 할까!’ 하고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교환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인생 대부분의 연고가 한국에 있었다. 가족도 한국에, 중고딩 때 친구들도 한국에. 그래서 교환학생 같이 온 본교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새해 넘어갈 때, 뭐 할 거야?”

“우리 불꽃놀이 보러 가려구!”

“불꽃놀이?”

“응. 새해 맞이 카운트다운 하면서 불꽃놀이 한대. 런던 아이(London Eye) 근처에서 한다는데, 같이 갈래?“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공장소에서의 대규모 불꽃놀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서울세계불꽃축제’의 인파가 떠올랐다. 여의도에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 속에서,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 틈에 끼어서 흘러가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축제였다. 오죽하면 근처 지하철 역은 폐쇄까지 했을 정도였다.


아쉽지만 런던에서 그 인파를 뚫고 다닐 자신은 없어서 그냥 혼자 있기로 했다.




새해 전날이 다가왔다.


점심에는 일본인 친구와 독일인 친구까지 셋이 모여서 밥을 해 먹었다. 둘 다 아일랜드 음악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독일인 친구는 바이올린을 켰는데, 친척 결혼식 때 축주를 했을 정도로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한편 일본인 친구는 나랑 같은 은색 플룻을 불어서 내적 친밀감마저 드는 친구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둘은 같은 플랫에서 살고 있었다.


일본인 친구는 스튜를, 나는 오일 파스타를 했고, 독일인 친구는 크리스마스 빵을 가져왔다. 세 명 모두 ‘음, 3인분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서 그런지 점심 치고 양이 많아서 배불렀다.


“에밀리, 저녁에는 뭐 해?”

“글쎄, 불꽃놀이 한다는데 좀 사람 많을 것 같기도 하구.”

“우리 이따가 플랫에서 저녁 먹고 프림로즈 힐(Primrose Hill) 갈 건데. 같이 가자!”


프림로즈 힐? 거기가 어디지?


갑작스러운 제안에 내가 망설이자, 독일인 친구가 씩 웃으면서 ‘여어 친구, 같이 가자구’ 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남의 플랫에서 열리는 저녁 파티에 난입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해서 합류하기로 했다.



맛있고 배불렀던 새해 전 날 점심



플랫 주방에 들어갔더니 다른 일본인 친구들도 모여 있었다. 일본인 친구가 말하기를, 새해를 맞아서 친구들이 놀러 왔다고 했다.


“안녕!”

“안녕.”

“얘들아, 여기는 에밀리야. 그리고 에밀리, 이 쪽은 누구누구고, …….”


남자애들도 여자애들도 있었다. 다들 친해 보였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처음 만나는 나에게도 스스럼 없이 살갑게 대해 주었다.


우리는 일단 엔젤 스테이션 (Angel Station) 근처의 세인즈베리(Sainsbury)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새해에 나베를 끓여 먹는다고 했다. 의외로 마트에서는 배추 같은 동양스러운 식재료도 꽤 팔고 있었다.


그 밖에 내 나름대로도 이것저것 사고 독일인 친구가 만들 커스타드 재료까지 담았더니 짐이 엄청 많아졌다. 과연 오늘 다 먹을 수 있을까? 어깨에 짊어진 마트 비닐봉지가 무거워서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일본인 친구가 잠깐 어디를 들렀다 오는 사이, 우리는 먼저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일러 주고 가기는 했지만 다들 어딘가 서툴렀다.


“이거 이렇게 자르면 되나?”

“배추는 지금 넣으면 되는 거야?”

“물이 아직 안 끓는데.”

“불쌍한 소세지라도 좀 구해주자.”


내가 한국인이어서 일본식 나베를 끓이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인가 싶었는데, 다들 나베는 평소에 안 해 먹었나 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 친구가 돌아와서 요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베가 생각보다 양이 엄청 많았다. 국물만 잔뜩이고 건더기는 별로 없어 보였는데도 배가 엄청 불렀다. 그런데도 맛있어서 계속 손이 갔다. 어쩜 이렇게 간도 딱 맞고 국물도 개운할 수 있지? 후식으로는 독일인 친구가 점심 때 가져왔다가 남았던 크리스마스 빵을 커스타드에 찍어 먹었다.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이 빵을 먹어.”


건포도 같은 속재료가 이것저것 들어간 독특한 빵이었다. 커스타드도 부드럽고 달콤해서 둘을 같이 먹으니 후식으로 제격이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일본식 전골과 독일식 크리스마스 빵. 빵은 각자 컵에 커스타드를 덜어서 찍어 먹었다.



우리는 엄청 배가 불러져서 드디어 식사를 마치고, 프림로즈 힐을 가기로 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장소였는데, 런던 아이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그 곳에서도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 어떻게 가야 해?”

“버스 타고 가면 금방이야. 이따가 만나서 같이 가자!”


버스는 프림로즈 힐 입구까지 가지는 않고, 캠던 타운(Camden Town)에서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날은 어두웠고 벌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유명한 런던 아이로만 몰릴 줄 알았는데, 어떻게들 알고 여기 다 모였는지 궁금했다.


“시간도 남았으니까 캠던 타운 구경이나 좀 할까?”

“그래, 저기 마침 시샤 가게도 있네.“


시샤?


물담배?


나는 비흡연자였지만 시샤는 궁금했다. 그래도 흡연은 조금 꺼림칙했다. 내가 갈등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독일인 친구가 말했다.


“시샤는 그냥 입에 머금고 내뱉어도 돼. 재미로 해 보는 거지~”


시샤 가게는 처음이었는데,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둘러앉아서 중동 풍의 유리병을 가운데 두고 긴 호스를 입에 물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우리도 테이블을 잡고 메뉴에서 시샤 종류를 골라 주문했다. 직원이 호스가 여러 개 달린 유리병 두어 개를 가져와서 탁자 위에 놓았다.


친구가 이야기 해 준 대로 호스 하나를 입에 물고 연기를 뻐끔거렸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은 완전히 폐 속 깊이 들이마시는 듯 했는데, 우리 쪽은 다들 뻐끔뻐끔만 하고 있었다. 액체가 담긴 커다란 유리병도 신기했고, 이국적인 시샤 카페에서 물담배를 피우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샤를 피우던 친구들과 가게 천장의 이국적인 조명 장식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지자, 우리는 시샤 가게를 나와서 프림로즈 힐로 향했다. 캠든 타운은 원래도 아티스틱하고 자유분방한 동네라고 들었는데, 유명세에 걸맞게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겨왔다. 창고 같은 공간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번쩍번쩍한 조명 아래 클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와중에 한 켠에서는 플리마켓처럼 구제 옷을 팔고 있기도 했다.


덕분에 프림로즈 힐 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분명 날은 어두컴컴했는데 행인도 엄청 많았고 여기저기 조명 불빛이 비추어와서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프림로즈 힐은 ‘힐(Hill)’이라는 이름처럼 야트막한 언덕배기였다. 한국의 언덕은 이름만 언덕이고 실제로는 ’산‘인 경우가 많은데, 영국은 언덕이라면 진짜 언덕인 모양이었다. ’이거 좀 올라간다고 해서 불꽃놀이가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적당히 올라왔다 싶은 지점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다른 사람들도 언덕 저 멀리를 내려다보며 저마다 2012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스피커를 가져와서 음악을 틀었고, 또 어떤 이들은 잔까지 들고 와서 와인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 야외에서 스탠딩 피크닉이라니 낭만적이었다. 개중에는 풍등을 띄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풍등을 띄우던 사람들



12시 정각이 되자, 멀리서 불꽃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예상보다도 불꽃놀이가 가깝게 보여서 신기했다.


“해피 뉴 이어!”

“런던, 가즈아! (Go, London!)”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로 새해 인사를 건넸다.


“일본어로는 ‘신넨 오메데토오-’라고 해.“

“신넨 오메데토오~”

“한국어로는 뭐라고 해?”

“음, 그게…….”


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가르쳐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워낙에 표현이 길어서 어려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3분할을 해서 알려주었지만 그래도 결국 길었다.


런던이라 늘 비가 내려서 그런지, 프림로즈 힐은 땅이 질척했다. 다행히 나는 웬일인지 그 날 따라 고무 장화를 신고 가서 타격이 없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운동화가 온통 진흙으로 흠뻑 물들어 버렸다. 우리는 서로 진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기념이랍시고 사진으로 남겼다. 여행 가서 고생했던 기억은 사진이 되면 모두 추억으로 변신하는 법이었다.



진흙 투성이가 된 신발과 신년을 맞아 무료로 개방된 교통편



다음 날에는 런던 아이에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친구들과 서로 새해 전 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했다.


“나는 프림로즈 힐 가서 불꽃놀이 봤어. 거기도 사람 엄청 많더라.”

“야, 잘했다. 런던 아이 갔더니 사람 너무 많아가지고, 그 근처도 못 가서 다리 주위를 서성였어.”

“그 정도로 많았어?”

“어우, 말도 마. 핸드폰도 안 터져서 도중에 서로 어딨는지 찾으려고 애먹었어. 그래도 불꽃놀이는 예쁘긴 진짜 예쁘더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연락해서, 새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언덕 올라가서 불꽃놀이 봤다고 했더니 부모님께서는 ‘잘했다’며 얘기하셨다. 딸이 타지에서 홀로 쓸쓸히 새해를 맞으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하셨나 보다.


이제 곧 있으면 또 다른 새해다. 그 때 쯤이면 나는 지난 한 해를 마음 편하게 보내 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뭔가를 달성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급급했다기 보다는, ‘나답게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잘 지냈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난 해를 돌이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