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기
카진호라는 피자 가게에서였다.
남편과 점심 먹을 만한 식당을 찾으러 가이드북을 뒤적였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카진호’, 한자 뜻풀이를 해보자면 ‘꽃 사람 봉우리’라고 읽히는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경치가 좋고 음식도 맛있는지, 아주 극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우리는 ‘가는 길이 어렵긴 하지만’이라는 구글 리뷰를 다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 결과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경로만 따라가다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여, 여기로 가는 게 맞아?”
“우리 지금 같은 골목을 두 번째 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기분 탓이 아니지?”
그러던 끝에 드디어 제대로 길도 찾았고, 방향도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도로는 산골짜기의 좁은 골목길이었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모리셔스의 도로 상태가 떠올랐다. 그 동네도 걸핏하면 산자락을 따라서 1차선 도로가 나 있었다. 비탈길인데다 심지어 일방통행도 아니어서, 반대편에서 부주의한 운전자가 쌩하니 달려오면 그대로 즉사 코스가 될 길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좁아터진 갓길로 살살 차량을 밀어넣으며 희한하리만치 잘 살아남고 쭉쭉 드라이브를 했다.
산길을 따라 오르고 나니, 뜻밖에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주차된 차도 꽤 많았다. 웨이팅 줄도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길었다. 우리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카페 벤치에 마련된 오셀로를 가지고 놀았다.
어렸을 때 동생과 대련하며 갈고 닦은 실력으로 남편을 연이어 이겨먹었다. 그런데 세 판 연속으로 이길 위기에 처하자 살짝 불안했다. 맛있는 피자를 먹으러 왔다가, 고작 오셀로 때문에 배우자를 빈정 상하게 하면 어쩌지? 물론 남편은 속이 넓은 사람이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불안했는데, 다행히 때마침 우리 차례가 와서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듣던 대로 피자는 맛있었고 경치는 끝내줬다. 왜 가게 이름에 ‘봉우리 봉’ 자가 들어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올라오는 길은 비록 험준했지만, 그만큼 가게는 산 아래로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고 있었다. 쫄깃한 도우에 신선한 치즈를 듬뿍 얹은 명물 피자, 게다가 눈앞에는 활짝 펼쳐진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 가이드북과 구글 리뷰 양쪽에서 극찬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피자를 먹으면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음, 맛있다!” 혹은 “정말 맛있어!”를 연발하는 일 외에는, 그저 남편과 수다를 떨면서 고소한 도우를 씹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물었다.
“무슨 생각해?”
“으음, 그러니까. 여기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왔잖아?”
“그렇지?”
“그런데 오늘 일정을 생각해 보니까, 아침에 조식 먹고, 카페 갔다가, 점심 이렇게 먹고, 이따가 다시 어디 카페를 가고, 또 저녁을 먹고……. 그러다가 결국 밤이 되면 ‘으아 너무 배불러~’ 하고 침대에 눕지도 못할 테고. 그래서 ‘아 나는 정녕 먹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에 남편이 웃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일반적인 여행 일정인데, 그게 자연스럽게 ‘과식 연대기’로 이어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먹는 일을 제외하고서 평범한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여행은 뭐가 있을까?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서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고 인근의 가 볼 만한 장소를 검색해봤다.
카페와 식당을 빼면 남는 장소는 관광 명소들이었다. 커다란 돌이 신기한 모양으로 포개져 있는 어느 산자락, 한국의 민속촌처럼 꾸며 놓은 테마 파크, 유유자적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커다란 공원. 그런데 차를 타고 근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는 조건에, 내일이면 후덥지근하고 비가 내릴 수 있다는 날씨 예보까지 고려하면 딱히 갈 수 있는 장소가 마땅히 없었다. 심지어 민속촌 같은 곳들은 구글 리뷰에서 온통 ‘애들 있으면 갈만함’이라는 미심쩍은 단서를 달고 있었다.
내일은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고 있자니, 웨딩 스냅 사진을 찍으러 포르투갈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트립 어드바이저’라는 여행 앱을 아주 잘 사용했다.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평점 4.5 이상인 식당이나 카페는 대체로 일단 믿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앱의 여러 메뉴 중에는 ‘액티비티’ 코너도 있었다. 가이드 투어가 대부분이었지만 때때로 정말 이색 체험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포르투갈 가정식 만들기’ 같은 요리 프로그램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감정은 ‘나도 만들고 싶어!’라는 느낌의 흥미라기 보다는, ‘여기까지 와서 요리 만드느라 하루 반나절을 쓴다고?’ 하는 생경함에 가까웠다.
그 때는 그렇게 여겼건만, 오키나와에 와서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여행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여행이 반드시 ‘먹고 먹고 또 먹고’의 연속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이국 땅에 와서 요리를 한다거나 공예품을 만든다거나 하면서 한동안 시간을 쓰는 일도 어떻게 보면 뜻깊은 추억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제과제빵 따위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지만, 현지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정통 포르투갈식 에그 타르트를 만들어 보는 시간은 분명 특별하지 않을까? 굳이 비교하자면, 관광객들 우르르 몰려가는 소위 유명 맛집에 덩달아 줄을 서는 것보다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키나와의 한 민속촌에서 제공한다는 ‘산신 배우기’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산신은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인데, 겉모습만 보면 한국의 아쟁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일단 그 곳까지는 차를 좀 몰아야 했고, 장소가 민속촌이니만큼 입장권부터 구매해야 했다. 게다가 악기 배우는 데에 2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악기 연주에 딱히 취미가 없는 남편에게는 속상한 시간 낭비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만 하다가 남편 기분은 하나도 배려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찜찜한 마음을 기념품으로 가져가겠지?
돌고 돌아서 결국 쇼핑과 외식이라는 대표적인 콘텐츠로 회귀해서 가이드북을 다시 뒤적였다. 다행히 내년이면 아이가 태어날 테니까 육아용품을 구하러 발품을 팔아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도 앞으로의 여행은 왠지 먹기만 하는 식도락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희미한 예감이 든다. 역시 여행도 많이 다녀봐야만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는 걸까?
(표지 사진: Unsplash의 Kelvin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