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 여행기
굳이 따지자면 벌써 10년차 블로거다.
블로그 자체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개설했지만,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리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생 때였다. 교환학생을 떠날 무렵, 먼저 다녀와 본 친구에게 “조언해 줄 만한 팁 있어?” 하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꼭 일기를 쓰도록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블로그에 꼬박꼬박 교환학생 일기를 썼고, 그 때의 습관이 남아서 최근까지도 블로그에 여행 일지를 올리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영상으로 넘어왔다. 신혼여행 때 면세로 구입한 고프로가 계기가 되었다. 일단 샀으니 신혼여행지에서 열심히 찍고봤는데, 그 때 찍은 영상을 한참 후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진과 글로 남기는 여행 기록과는 결이 달랐다. 사소한 기억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코로나가 끝난 후, 이탈리아나 일본 여행을 가서도 사진보다는 영상 위주로 기록을 남겨두려고 했다. 최근에 대만의 가오슝을 여행하면서도 역시 사진보다는 동영상 촬영을 많이 했다.
물론 사진과 글로 된 포스팅은 여전히 엄청난 장점이 있다. 우선 열람이 간편하고 검색도 가능한데다, 당시의 생각과 느낀점까지 자세하게 적어둘 수 있다. 게다가 글에는 ‘영상 편집’이라는 난관이 없다. 영상은 사진 몇 장만 수정하면 되는 포스팅과는 차원이 다르다. 타인의 얼굴이나 차량 번호판처럼 민감한 요소를 영상 편집기로 하나하나 가려줘야 하는데, 이게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전문 유튜버라면 스토리의 기승전결이나 화면 전환, 배경 음악까지 챙겨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혼자서만 간직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면 영상이란 굉장히 간편한 기록 방식이 된다. 조회수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면야, 애초에 촬영부터 컷당 2~3초로 짧게 찍어버리고 나중에 이들을 통으로 이어붙이면 그만이다. 원본 영상들을 하나하나 돌려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자를까?’ 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런 초간단 방식이라면 하루종일 찍은 영상을 다 합해도 10~20분 안쪽으로 브이로그 한 편이 나왔다. 게다가 영상에는 음성도 들어가니, 당시에 느꼈던 감상을 따로 글이나 말을 추가해서 기록해 줄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 부수적인 이점도 있는데, 예를 들면 딱히 찍으려고 찍은 게 아닌 사소한 몸짓마저도 생생하게 촬영되고, 아침에 들었던 새들의 지저귐이나 지하철의 안내 방송처럼 작은 소리까지 모두 담겨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예 여행지에서 영상 만드는 일이 익숙해졌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집에 와서 편집하는 게 아니라, 호텔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며 3분 만에 브이로그 한 편을 뚝딱 만드는 셈이었다. 가오슝 여행을 하면서도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서 영상부터 만들고 봤다.
마치 쌀을 씻어서 밥솥 취사 버튼을 눌러 놓듯이, 먼저 그 날 찍은 동영상들을 하나로 뭉쳐서 인코딩을 걸어어둔 채로 양치질을 한다. 그렇게 3분이면 영상 하나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유튜브에 ‘링크 공개’로 업로드를 시키고 이번에는 샤워를 한다. 돌아와 보면 업로드는 물론이고 화질 조정까지 모두 끝나 있다.
그런 다음, 나중에 알아보기 쉽게 썸네일과 제목만 잘 만들어주면 완성이었다. 제목을 지을 때는 ‘가오슝 Day 2’처럼 머릿말을 잡아주고, 여행 일자와 방문지들을 조로록 적어주었다. 두아 호텔 조식, 영국 대사관, 하이즈빙 빙수, 치진 섬 자전거 투어, ……. 이런 식으로 단어 위주로 그 날 일정을 나열했다.
영상은 이튿날 아침에 양가 부모님께도 URL로 공유해 드렸다. 예전 같았으면 카카오톡으로 ‘사진 묶어보내기’를 하면서 하나하나 보내드렸을 텐데, 그보다 더 생생한 방식으로 ‘저희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는 셈이었다. 하루는 친정 엄마도 이렇게 얘기했다.
“여행 간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영상을 보니까 너희가 뭘 먹고 어딜 놀러갔는지 너무 잘 알게 되더라. 딱히 뭐 했냐고 물어볼 게 없어.”
아마도 나중에는 이렇게 만든 여행 영상들을 꺼내보며 추억팔이를 하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그 때 여행은 어땠더라?’ 하고 궁금해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순간에 영상이 ‘짠!’ 하고 나타나서, 과거로부터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와주는 것이다.
재료만 고르면 즉석에서 바로 구워주었던 치진 섬의 철판구이 집, 자전거를 타고 이틀 연속으로 돌아다녔던 기억, 심지어는 ‘내가 30대 초반에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아주 개인적이고 새삼스러운 감상까지 모두 돌이켜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