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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Apr 13. 2024

순산했어요

D-Day

나는 조산기 때문에 누워서 막달을 보냈다.


사실 눕눕 생활은 괜찮았지만 아이를 잃을까 걱정된 탓에 매일을 노심초사하며 지내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 38주 2일에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만났다.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을 통해서 38주 2일로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초음파로 본 아이는 2.8kg, 머리 사이즈도 9.2cm 정도라 자연분만하기 어려운 크기도 아니었다.

아침 7시까지 병원에 출산가방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외래는 9시부터 시작이지만 분만실은 24시간이라, 남편이랑 출입문 호출벨을 누르고 들어갔다. 친정 부모님께서 차를 태워다 주셨다.

가족분만실로 들어가서 원피스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남편은 바깥에서 여러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짐을 입원실로 옮겼다. 그 동안 나는 누워서 태동검사기도 부착하고 수액 바늘을 꽂았다.

내진을 해보니 이미 4cm 열려 있다고 하셨다. 수축도 잡히고 있었다. 나는 조산기 때문에 늘 이런 상태로 살고 있었는데, 촉진제 안 넣고도 벌써 자궁문 열리는 게 진행되고 있었다니 남편 말대로 조산 위기가 이 때만큼은 전화위복이었다.



수액을 맞으며 내진을 몇 번 하다가, 9시반에 무통주사를 먼저 놓아주셨다. 10분 후에는 산소마스크를 꼈고, 또 10분 후에는 촉진제 1단계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의사/간호사 선생님들이 다녀가시면서  내진과 수축을 보셨고, 굉장히 스테이블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2단계까지만 넣을거라고 하셨다.

무통빨이 잘 들어서 진통은 못 느꼈다. 하지만 난데없이 허벅지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때때로 발도 차가웠다. 남편이 손을 잡아주고 호흡도 지도해주고, 발도 데워주었다.

11시쯤 내진해보니 8cm 정도 열려 있었다. 이때부터 슬슬 힘주기를 시작했다. 자세도 이리저라 바꿔보고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배를 눌러 도움을 주셨다. 몸에 긴장이 들어가서인지, 갈수록 허벅지 뿐 아니라 이가 딱딱 부딪치며 온몸이 떨렸다. 아프지는 않은데.

상황이 점차 급박해지면서 주치의 선생님이 질 쪽을, 간호사분들이 사방팔방을 맡으시며 힘주기를 했다. 요가도 하고 PT도 받아봤지만, 평생 이렇게 사력을 다해 쉼없이 힘을 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명존쎄’ 수준으로 충격적인 강도의 배누르기가 이어지니, 유튜브에서 배운대로 하복부에만 힘을 줄 수도 없었다. 이대로는 내 심장이나 위장 둘 중 하나는 터질 것 같았다.

“12시 28분.”

“아기 나왔어요.”

아기가 내 배 위로 얹혀졌고, 석션 같은 걸로 아기 입 안의 이물질을 빼주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기가 왜 안 우나요?”



분만실을 왔다갔다 하시던 대표원장님이 아기를 데리고 한켠의 다이(?) 위에 놓고, 커튼 뒤에서 뭔가 처치를 하시는 게 보였다. 석션 소리와 아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소리, 대학병원 구급차에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라도 들려주면 아이가 안정을 찾지 않을까 싶어서, “루나야 엄마야” 하는 말만 반복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건 소용 없으니 그만 얘기하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의료진 모두가, 산모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맡은 할 일을 했다.

“... 켁, 응애....”

그 소리를 기점으로 아이가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의려진은 출동 요청을 취소하고, 이런저런 검사와 처치를 위해서인지 아이를 데려가셨다. 주치의 선생님은 간호사 한 분과 남아서 나의 후처치를 하셨다. 나는 여전히 몸이 덜덜 떨렸지만, 진이 빠지고 무통주사 약기운 때문에 깜빡깜빡 잠이 들었다.

30분쯤 걸려 후처치가 끝났고, 간호사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와주셨다. 연두색 모자를 쓴 뽀송한 아기였다. ‘내가 이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신기함과, 한 명의 사람을 세상으로 초대한 것 같은 기분에 ‘내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 (= 해냈구나 + 저질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질 출혈이 많아서 거즈를 잔뜩 끼고, 수액과 소변줄을 단 채로 휠체어에 앉아 입원실로 이동되었다. 아주 천천히 움직여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했다. 주치의 선생님도 몇 번 다녀가시면서 아이 상태도 건강하다고 체크해 주셨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진통제 주사 등등을 위해 다녀가셨다.

3시에 첫 국밥을 먹고, 5시에 또 저녁을 먹었다. 어찌 그리 배고프던지. 남편이 온갖 수발을 들어주었는데,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며 심적으로 정말 많이 의지가 되었다.

자연분만이라 당장에도 걸을 수는 있지만, 이 몸으로 아이 면회를 갈 자신은 없어서 남편이 아이 면회 두 번을 다녀왔다.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시 봐도 신기하고 귀여웠다. 나오느라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다시 아기 사진을 보는데, 그제서야 모든 게 실감이 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안 울길래 걱정했던 것, 조산기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것, 유도분만이 잘 될까 잔뜩 긴장하며 병원에 왔던 것. 그 모든 일이 잘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어서 펑펑 울었다.

너무 귀엽고, 태어나느라 정말 수고 많았던 나의 아기. 연두색 모자 쓴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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