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개월 6일
조산 위기를 극복하고, ‘무통 먼저 꽂고 촉진제 쓰기’라는 엄청난 무통천국에 성공한 이후!
조리원 생활 4일차 밤. 그런데 오늘따라 심란하다.
낮에는 회진 오신 소아과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심잡음이 전혀 안 들린다는 정말 좋은 소식을 들었다.
산부인과에서는 처음에는 심잡음이 심란하고 퇴원 즈음에는 다소 호전되었으나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서 초음파를 보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대학병원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이 조그만 몸에 얼마나 부담이 될까?
다행히 회진으로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아서 남편도 나도 마음을 놓았다. 덤으로, 호흡도 이상 없고 눈도 하나도 안 부었다고 (=궁금한거 다 물어봄) 말씀 주셨다.
산후조리원 원장 선생님이 중간에서 나의 심정을 이해하신다는 제스쳐를 취해 주셨다. 아이 건강이 조금이라도 걱정되면 엄마는 눈물 또륵 흘리게 되는 법이라고. 그 얘기를 듣고 괜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는데, 신생아실 문 앞에서 울어버리면 케어해주시는 선생님들과 원장선생님과 소아과선생님까지 모두 비상사태가 되실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비상사태가 되잖아...?!
2시 반쯤에 에스테틱을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엎어 누워서 종아리부터 허벅지, 등 순서로 꾹꾹 눌러주셨다. 그런데 오른쪽 엉덩이를 꾹 누르셨을 때 “으악!” 소리가 나게 아팠다. 엉덩이가 눌리면서 회음부 쪽이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회음부 통증이 있어서....”
“앗 이거 아프세요?”
“네, 염증이 있는지 외래를 보러 갈까 고민 중이에요.” “보통 다른 산모님들은 이 정도로는 안 아프신데.... 병원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들은 안 아프다는데 나는 아프다는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게다가 어젯밤에 인터넷 찾아보다가 누군가가 ‘아프면 참지 말고 외래 꼭 보세요!!!’라며 단단히 권고한 후기를 봤던 것도 떠올랐다.
온라인 출생신고를 위한 정보동의 사인도 할 겸, 4시 반쯤 외래를 보러 갔다. 주치의 선생님은 오프셔서 대표원장님께 진료를 받았다.
“아이고~ 엄청 부었네!”
“으억! (=소독중) 보통 남들도 이렇게 붓나요?”
“아니요~”
“으억! (=질정투입)”
“여기는 안아프고, 이쪽이 아프죠?”
“으억! 네....”
사진을 보니, 절개된 회음부를 따라 종기같은 게 부어올라 있었다. 난 그게 치질인가 싶어서 연고도 샀었는데, 치질도 아니고 연고로도 될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항생제와 타이레놀 등을 처방 받아서 조리원으로 돌아왔다.
모자동실 시간을 어찌해야 할 지 걱정이었다.
아이가 침대에서 용쓰기를 몇 번 하다가 분유를 게워냈다. 사레라도 들릴까, 소화가 잘 안되는 건가, 걱정이 돼서 아이를 내내 서서 안아주었다.
그러다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잠에서 깬 아이는, ‘아? 그러고보니 배고픈 것 같네’ 하는 듯 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슬슬 울어 보채기 시작하기에 다급하게 마저 기저귀를 채워주고, 도넛방석에 앉아 젖병을 물려주었다.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고맙고 기특했다. 배고팠구나 싶었다.
그런데 회음부가 너무너무 아팠다. 다리 한 쪽을 아기침대 아래쪽 받침에 올리고 체중을 지탱했다. 그래도, 이렇게 잘 먹는데 고맙고, 젖병 물리는 얼마 안 되는 시간만큼이라도 버텨줘야 하지 않나 싶었다.
다시 아이를 어깨에 기대도록 안아서 트림을 시켜주었다. 트림을 잘 해주는 아이가 또 고맙고 기특했다. 하지먼 축축해진 생리대에 자꾸만 닿는 회음부는 여전히 따끔거렸다 (말이 ‘따끔’이지, 작열감이었다). 습기와 압력이 염증을 악화시키는 두 가지 요인인데, 그걸 둘 다 견디고 있으려니 난감하고 아팠다.
조금 더 그러고 있다가, 모자동실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신생아실에 연락해서 아이를 데려가시도록 했다.
유축도 할 겸, 심란한 마음을 잊어보려고 호두과자를 꺼내 먹으며 책을 읽었다.
초유를 들고 신생아실로 내려갔다. 아이는 자기 자리가
아니라 다이(?)에 올려져 있었다. 기저귀를 갈거나 할 때 선생님들이 쓰시는 공간이었다.
신생아실에 혼자 누워서 바둥바둥대던 아이를 보고 눈물이 났다. 꾹 참았지만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니 “히잉...” 하고 울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게 복압에 영향을 줬는지 요의가 살짝 느껴져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오늘 외래에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나는 방광 기능도 약해져서, 엊그제는 조리원 방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소변을 지렸었다. 요실금 수준이 아니었던 충격적인 이벤트를 엘리베이터에서 또 겪을 수는 없었다.
(* 분만할 때 산도가 많이 찢기는 경우, 회음부가 팅팅 붓고 방광이 많이 눌릴 수 있다고 한다)
신생아 시기,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기저귀 한 번이라도 더 갈아주면서 케어도 능숙해지고 싶은데. 그래서 내가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은데, 몸도 숙련도도 따라주지 않아서 너무 속상했다.
저 착한 아이가 괜히 나에게 와서 고생을 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너무 간 생각이잖아?). 차라리 있는대로 성질 부리는 아이라면 요구를 들어주다가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 상태가 될 텐데, 자기 아빠를 닮아서인지 순해서, 웬만하면 울기 전에 다른 신호들을 먼저 충분히 보낸다거나 불편해도 “낑...” 한 번 하고 말거나 했다. 아까 안아줄 때도 콩 했는데 그것도 “끙...” 하고 말았고, 그 일도 자꾸 생각나서 미안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미숙하고 환자 상태일 때 아이의 모든 요구사항을 전문적으로 케어해주기 위해서 거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온 건데. 워스트 케이스는 ‘내가 그냥 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며 아이도 고생시키고 본인 건강 회복도 더디게 만드는 경우일 텐데, 나는 그런 테크를 탄 것도 아니면서 속상해 했다.
최상의 선택을 했다면 어느 정도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도 있는데, 어떤 일들은 이성으로 통제되지 못하는 것도 있는가 싶다. 또 진짜 객관적으로 보자면, 지구상의 많은 부모 중에서 아이 굶기지 않고, 분쟁지역도 아닌 OECD 국가의 수도에 살고, 심지어 서울 역세권 30평대 아파트 자가 보유한 부모한테서 태어날 확률은 정말 낮을 텐데 (...이것도 너무 간 생각인걸?).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서글퍼할 시간 있으면, 비타민D 주문하고 유튜브로 육아 영상이랑 기분전환할 베이킹 영상이나 한번 더 봐야지. 울어제끼는 건 정말 요만큼도 인생에 도움이 안 되니까. 조산 위기를 극복하고, ‘무통 먼저 꽂고 촉진제 쓰기’라는 엄청난 무통천국에 성공한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