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Apr 15. 2024

어쩌다 엄마가 되었다

0개월 13일

산후조리원의 새벽 2시. 잠이 안 온다.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할 일이 생기는 것만큼이나 슬프고 속상한 일도 없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있으니, 바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할 일이 ‘매일’ 생기는 것이다. 내가 아이의 보호자로서 서툴게 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비참한 기분이 들고, 이 속상한 마음은 산후우울증 예방에 좋다는 비타민D를 2000IU씩 먹어도 달랠 길이 없다.

임신출산을 직접 겪기 전에는 모든 게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 뿐이었다. 나는 남들이 하는대로 임신출산육아를 계획했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나마 임신과 관련해서는 조산 위기에 처하면서 교과서를 찾아다 읽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자료 얻을 곳이 맘카페와 블로그가 대부분이라니…….



그 와중에 내가 정말 간과한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출산을 하면 그 날부터 육아가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출산을 하면 아이는 그 날부터 인생 1일차가 시작이고, 나와 남편은 분만 직후부터 한 아이의 보호자가 된다.

정말 당연한 일인데 나는 마음 한 켠으로는 ‘닥치면 하게 되어 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을 무의식중에 품고 있었다. 출산은 병원에서 의료진이 알아서 2박 3일을 가이드해 줄 것이고, 육아는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를 통해서 한 달 동안 연착륙을 하게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릇 무슨 일이건 그게 중요한 일이라면 남의 손에 떠맡기면 안 되는 법이다. 하물며 인테리어 공사마저 업체에 일임하고 손 놓아 버리면 망하기 십상이라 요즘에는 하나하나 다 챙기는 게 트렌드다. 그런데 집도 아니고 ‘아이’와 관련된 일인데, 그걸 의료진과 돌봄 서비스에 모조리 맡겨 버린다? 안 될 일이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오고 나서,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육아와 신생아 관련 영상들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신생아 케어하는 법을 찾아봤다. 그러다 알고리즘이 자연스럽게 ‘삐뽀삐뽀 119’로 나를 이끌었다.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어서 나는 또 조심스레 영상을 하나하나 눌러봤다.

신생아와 관련해서 내가 궁금했던 부분들을 다루는 영상들이 많았다. 심지어 ‘신생아’라고 플레이리스트로 따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밥 먹을 때마다 그냥 틀어놓고 팟캐스트처럼 무지성으로 청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4시간 모자동실’의 개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카톡방 친구들에게도 이 얘기를 했는데, 나만 이게 가혹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24시간 모자동실’은, 정말 당연하지만 간과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사실과 맞닿아 있었다. 바로 인간은 포유류이고, 포유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임신과 출산부터가 인간은 포유류라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었다. 조류였다면 알을 낳아 품었을 텐데, 사람은 포유류니까 새끼를 배었다가 낳아서 젖을 먹이며 육아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포유류로서 ‘포유’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두혼동이라느니, 그런 말들을 들어는 봤지만, 모유가 좋다는 말은 옛날 사람들이 고리짝에 분유 성분이 볼품없을 때의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는 그저 ‘편리하게 분유 먹여야지 뭐’ 하고 생각했다.



모유와 분유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때, 모유수유를 하면 밤에 남편과 교대로 수유를 할 수도 없고, 아이를 항시 먹여야 하니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고, 밖에서 모유가 줄줄 새면 난처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 들어와서 뒤늦게 여러 자료들을 보며, ‘어째서 아이의 건강은 장단점으로 거론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유가 좋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그게 정확히 얼마나, 어떻게 좋은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소아과에서 의학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했을 테니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찾을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서칭을 할 수 있을 텐데, 출산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산삼이 몸에 좋다더라’ 하는 정도의 얘기인 줄 알았다.

자연히 나는 모유가 질병에 걸릴 확률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통계 등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특히나 그 수치가 ‘확률을 3% 줄였어요!’ 정도였다면 무슨 그런 걸 가지고 호들갑인가 싶었을 텐데, 15~20% 하는 식으로 결과가 나오다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보통 5%만 차이가 나도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다닐텐데, 이렇게 대단한 비교결과를 나는 대체 왜 풍문으로조차 듣지 못했지? 심지어 분유 통에도 ‘아기에게는 모유가 최고의 음식입니다’ 하는 식의 문구도 적혀 있다고 한다.



그 결과 나는 지금 유두혼동을 심하게 겪는 아이를 데리고 모유수유를 하려고 조리원의 2주차를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제 아이는 모유를 먹을 때는 젖병 젖꼭지와 흡사하게 만들어진 보조기가 없으면 아예 젖을 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요즘에는 보조기가 있으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걸 매번 열탕소독하고 또 준비물로 구비하느라 제때제때 아이에게 편리하게 젖을 주지 못할 일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보다도 가장 스트레스 받는 점은 바로 ‘보충수유’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직접수유로 하겠다고 아이를 굶겨버리면 큰일이라, 지금 와서는 분유로 필요한 부족분을 채워줘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얼마나 줘야 할까? 또, 언제 줘야 할까? 너무 많이 줘서 모유수유를 더 어렵게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모유수유는 아이가 빨기 어려워서 빨다가 잠드는 일이 태반인데, 자칫하면 대부분을 분유만 먹게 되지 않을까?

게다가 처음부터 모유‘만’ 먹였다거나 아니면 분유든 모유든 내가 직접 매번 먹였다면 간격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지금쯤 감을 잡았을 텐데, 이제 와서는 도저히 모르겠다. 방금도 아이가 분유로 보충수유를 하고 한 번 게워내서 얼러주다가 또 게워내길래 배고파 할 것 같아서 신생아실로 직행했었다. 나 스스로도 엄청 지친 상태라, 이대로라면 아이를 안으려다가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도 있었다.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있는 아이를 신생아실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데, 밥 주는 일부터 울 때 달래주는 것까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속만 타들어갔다. 데리고 방으로 돌아온대도 내가 제대로 케어해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집에 가면 이제 어찌해야 하나 막막한 마음이 더해졌다. 오늘 거의 하루종일 데리고 있었으니 분유 80ml 먹고 게워내는 모습을 본 것인데, 내가 보지 못하는 동안 신생아실에서는 대체 몇 번을 게워냈던 걸까. 혹시 신생아실에서 과식을 했을까? 일지에 식사량과 대소변, 체중까지 꼬박꼬박 기록관리가 되고 있으니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가 아이의 평소 모습대로 정상이고, 어느 정도부터 걱정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 그것도 몰랐다.

아마 이 막막함은 퇴소하기 전까지 계속되겠지? 그럼 결국 답은 조기퇴소 뿐인가. 하지만 그게 과연 ‘정답’일지는 정말 자신이 없다.



잠이 오지 않을 게 분명해서, 방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신생아실로 내려갔다. 아이를 데리고 방에 좀 있으면서 블로그를 쓰면 차라리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너무 하루종일 아이를 데리고 있었더니 탈진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선생님 품에 안겨서 점차 잠이 들고 있었다. 만약 그 때 잠이 들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또 무거운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면서 펑펑 울었을 텐데, 그 모습을 보니 좀 편안해졌다. 아니, 낮에는 계속 자다가 왜 한밤중에 눈을 떠서 ‘내가 아이랑 놀아주지 못했어!’ 하고 죄책감을 갖게 하는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는, 복도에서 문득 이렇게 되뇌며 방으로 들어섰다. ‘남들도 다 어찌저찌 헤쳐나간다는데, 왜 지랄이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지는 않겠지, 그저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키워보려고 하면 그것으로 괜찮겠지. 게다가 나는 회음부 염증이 너무 심해서 앉아 있지도 못했으니, 모유수유를 처음부터 계획했었더라도 많은 게 틀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더 속상했을 지도.



주위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는다. 아침에 조리원장님은 ‘산모님은 아이를 이 세상에 나게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더할 수 없이 엄청 큰 일을 해 준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시아버지께서는 사진으로 보는 아이 표정이 편안하다고, 진짜진짜 잘하고 있는 것 같으며 아이는 어느 정도 저절로 크는 것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신생아실 선생님들께서는 산모님 하루종일 데리고 계셨으니 좀 쉬시라고, 그리고 이제 막 엄마가 된 산모님이랑 선생님들이랑 아이 어르고 달래는 것도 그렇고 케어 실력이 똑같으면 어떻게 돈 받고 이 일을 하겠느냐고 얘기하셨다.

최선을 다하되, 어느 정도는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아이를 키워야지……. 불량 엄마인가 싶으면서도, 노심초사하는 여린 엄마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리원에 왔으면 조리를 해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