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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Apr 19. 2024

포유류지만 모유수유는 어려워

0개월 21일

모유수유를 계속해야 할 지 고민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직접 해 봐야 아는 일들이 있다. 실제로 하지 않고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려운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모유수유를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수유의 세계가 완모(완전히 모유만 준다), 완분 (완전히 분유만!), 혼합(모유+분유)으로 나뉜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어려운 점들을 한 번 적어본다. 




1. 아이가 거부한다

아이가 젖을 잘 찾지 못할 때가 많았고, 어쩌다 입에 물었다가도 퉤 뱉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신생아라 잘 물지 못하므로 어른이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이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고 뒷덜미를 잡아다 힘으로 가져다 대어야 했다. 그러면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이딴거 자꾸 주지 말고, 분유를 달라고!!!”라는 듯이……. 누가 옆에서 도와줘도 쉽지 않은데, 엄마 혼자 해야 할 때는 어휴. 대체 영장류가 어떻게 멸종을 면했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2. 보조기를 사용해도 어렵다

유두 모양이 직수에 어렵거나 하면 보조 도구를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이들 쓰는 보조 도구들조차 단점이 있다. 메델라 유두보호기는 팔랑거려서 잘 떨어지고, 나는 이걸 써도 아이가 잘 물어주지 않아서 효용이 없었다. 쭈쭈베이비는 아이가 잘 물어주긴 했는데, 대신에 이건 ‘보호기’가 아니라서 유두가 부황 뜨듯이 너무 아파져서 중간중간 압력을 없애줘야 했다. 그 때마다 아이가 공기 반, 모유 반을 먹는 것 같아서 트림 시킬 때 신경을 많이 썼다.


3. 유두가 아플 수 있다

아이가 젖을 잘못 물거나, 너무 오랫동안 물거나, 수유 자세가 안 좋거나 하면 유두에 상처가 나고 아플 수 있다. 아무리 유두가 회복력이 빠른 부위라고는 해도 상처가 30분만에 낫지는 않는다. 이가 나기 시작하면 깨물릴 수도 있다. 나는 아직도 직수가 서툴러서, 모유를 줄 때마다 ‘아플 지도 몰라’ 하고 마음을 졸였다.


4. 양이 부족하면 분유로 보충해줘야 한다

모유 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젖동냥을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분유로 양을 보충해준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가 배를 곯고 성장곡선에 맞게 체중이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분유로 얼마를 보충해주어야 하는지는 평소 아이 상태를 봐 가면서 감으로 정해야 한다. 먹여봤는데 많이 게워내거나 배앓이를 하면 양을 줄어야 하고, 금방 배고프다며 입맛을 다시고 울어제낀다거나 체중이 정상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양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먹이기 전까지는 적정량인지를 알 수 없다. 일단 먹여보자는 주의는 아이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방법 같아서 무척 불안했고,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떤 때는 아이가 모유를 잘 먹어준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평소보다 더 졸면서 먹은 것 같기도 한데, 그 때마다 ‘지난번에는 40ml를 보충해줬지만 오늘은 잘 먹은 것 같으니 20ml만 줘 볼까’ 하고 계산하는 것도 일이다. 


5.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유수유는 보통 한 쪽 가슴당 15분 정도씩 양쪽 젖을 물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번 모유수유를 할 때마다 30분이 걸린다. 반면에 분유는 5분이면 먹는 게 끝난다. 혼합수유를 하는 경우라면 직수와 분유의 시간이 모두 소요된다. 하루에 아이는 8~10회 정도 먹으니, 모유수유를 하면 30분 * 10회 = 300분, 그러니까 총 5시간 정도가 더 걸린다. 아기 엄마가 하루 5시간을 덜 자야 하는 셈이다. 


6. 수유 텀이 짧다.

모유는 소화가 잘 된다. 그래서 신생아 때는 모유는 1~2시간, 분유는 3~4시간 간격으로 먹게 된다. 분유 한 번 먹고 아이가 포만감을 느낄 때, 모유는 두 번을 먹어야 비슷한 포만감이 지속된다. 게다가 아이가 빠는 힘과 먹는 양에 따라서 수유 텀은 더 짧아질 수도 있고, 어떤 때는 2시간, 어떤 때는 30분, 이런 식으로 들쭉날쭉해질 수도 있다. 


7.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모유 수유는 엄마만 젖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아이를 대신 봐줄 수 없다. 이따금 분유를 먹인다거나 밤에만 분유를 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분유를 먹여버릇 하면 유두혼동이 오거나 젖양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8. 목과 어깨 통증

모유는 고개를 숙여서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 하지만 신생아는 목은 물론이고 몸을 전반적으로 잘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수유쿠션 위에서 아이의 자세를 잡아주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게 된다. 이러다가 목디스크가 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물론 모든 일은 한 두 달 정도 고생해서 익숙해진다면야 괜찮아지겠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최소 1~2개월을 매일매일 그것도 대략 3시간마다 계속 반복해야 한다니. 그마저도 1~2개월이면 된다는 보장도 없고. 


9. 유축은 지옥이다

아이에게 엄마 젖을 직접 물려서 수유하는 것을 직수(=직접수유)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도 젖을 안 문다고 하면 유축기를 사용해서 젖을 짜내고 젖병에 담아 먹이는 방법이 있는데, 이걸 유축수유라고 한다. 젖소한테서 우유를 짜내어 우유팩에 담아 먹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지만 유축수유는 20~30분을 유축기를 가슴에 대고 처량하게 젖을 짜내어야 하고, 유축에 필요한 깔대기며 젖병 설거지가 추가되는 데다, 분유처럼 물에 타서 끝이 아니고 냉장/냉동 모유를 중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맘카페를 가보면 다들 유축은 정말정말 비추천한다. 


10. 얼마를 먹었는지 모른다

젖병에 ml 단위로 타서 먹이는 분유와는 달리, 모유는 아기가 얼마를 빨아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배가 ‘고파서’ 우는지, ‘아파서’ 우는지도 분간하기가 더 어렵고, 지금 적정량을 먹이고 있는지도 체중 증가 추이를 보면서 가늠하는 수밖에 없다. 배고파할 때마다 주라고도 하던데, 아이는 3주차만 되어도 배고픔/기저귀/잠투정 말고 다른 이유들로도 울기 때문에 이게 배고파서 우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11. 마음이 힘들다

수유할 때마다 아이를 울린다. 아이가 젖을 잘 물어주고 빠는 힘도 괜찮다면 해당되지 않겠지만, 나는 무는 것부터가 안 되다 보니 아이에게 물리려다가 아이도 짜증나고 힘들어서 매번 울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이 고생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과연 이게 아이에게 좋은 일일까’ 같은 부정적이고 막연한 생각들이 든다. 3시간마다의 수유 시간이 행복하지가 않으니 마음이 하루종일 너무 힘들었다. 


12. 깨워가면서 먹여야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는 몰라도, 아기는 모유를 먹을 때 졸도록 되어 있다……. 분유 먹을 때보다 60배가 힘들어서 지치는데다 모유에는 호르몬 영향도 있어서 잠이 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잘 빨다가도 점점 눈이 감기고 빠는 힘도 약해지면 깨워가면서 먹여야 한다. 귓바퀴도 만지고, 손바닥 발바닥도 지압하고, 몸을 끌어당겼다가 탁 놓기도 하고, 유두를 빼냈다가 다시 먹이기도 하고, 기저귀도 한 번 확인해주고, 옆에 뉘였다가 다시 데려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13. 육아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모유수유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유텀도 짧고, 물리는 수고도 많이 들고, 남이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나는 기저귀도 목욕도 거의 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는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의문이었다. 생각해보니 모유수유를 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랬던 것 같다. 수유할 때마다 아이랑 씨름을 해야 하고, 유두혼란인 아이를 보며 낙담하고, 그 와중에 보충수유용 젖병과 분유까지 타이밍 재서 챙겨야 하니....


14. 작업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맨투맨 티를 입고서 둘둘 말아올려 수유하려고 했다. 하지만 옷이 너무 두꺼워서 아이를 내려다보거나 아이를 옷이 덮지 않도록 하는 일이 어려웠다. 결국에는 수유복을 두어 벌 더 샀다. 집에 있을 때는 맨날 수유복 몇 벌만 돌려가며 입고 지낸다. 옷도 마음대로 못 입는 기분이다.


15. 산후우울증이 심해졌다

여기 적은 모든 것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산후우울증은 특히 나에게 더 개인적으로 심하게 온 것 같다. 원래 모유수유를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돼서 행복해야 한다는데, 나는 유두혼란이 온 아이와 씨름을 해가며 매일 몇 번씩이고 실패의 경험을 겪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었다. 

왜 진작에 공부를 안해서 48시간 이내에 젖을 물리지 못했을까, 괜히 유도분만을 해서 회음부가 더 찢어져 수유를 어렵게 한 게 아닐까, 정말로 1~2개월 고생하면 잘 물릴 수 있을까, 젖양을 늘리기 위해 새벽수유와 유축과 젖병훈련을 계속해여 하는 걸까. 

모유수유를 생각할 때면 행복보다는 자책과 자괴감과 피로에 휩싸였다. 솔직히 모유수유가 지금 육아 스트레스의 80%를 차지하는 것 같다. 산후우울증 지가테스트를 해봤더니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라고 떠사, 이 때문만에라도 단유를 해야하지 않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직접 모유수유를 해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어려운 요소가 많은 줄은 몰랐다. ‘완모’ 하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것도 아리송했다. 모유를 먹일지 분유를 먹일지는 단순히 점심으로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고르는 것과 비슷한 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100일까지 혼합수유에서 완모로 서서히 눈물겹게 대장정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 중에는 완모를 하려고 하다가 이제 포기하고 단유를 생각하는 친구도 있고, 혼합을 하려다가 한 달 만에 때려치우고 분유만 먹이는 친구도 있다. 애초에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난 퇴소하면 완분 해야지’ 하고 마음 먹은 친구도 있었다. 모유수유는 나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후에는 친정 엄마가 사다준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었다. 케이크 먹으면 기분 좋아질 것 같아서 사오셨다고 했다. 마침 나는 모유수유로 기분이 울적했기 때문에 케이크를 먹었다. 


그러다 밤 9시쯤, ‘도저히 안 되겠으니 역시 분유만 먹일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또 울었다. 그 때 보조기를 붙이고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었는데, ‘만약 내일부터 단유를 한다면 지금 먹이는 모유가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는 아이가 아무 것도 모른 채 귀엽게 웅크리고서 열심히 빠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서러움, 왜 나는 안될까 하는 억울함, ‘단유하면 어쨌든 분명 후회할 텐데 괜찮겠어?’라는 의문까지, 모든 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완분을 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어떻게 보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대강 앞으로 20년은 더 해야 하는 초장기 프로젝트라는 답이 돌아왔다. 먹이는 음식도 모유 vs 분유 뿐만이 아니라, 이유식부터 시작해서 등교하기 전에 아침밥으로 뭘 먹일지까지 고민할 것들이 한참 기다리고 있다. 하물며 음식마저도 고민할 게 많은데, 육아에서 챙겨야 할 게 음식 뿐이랴. 


육아는 정말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뜻한 바의 50~80%만 채워도 만족하면서 웃을 줄 알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줬다면 그걸로 나는 소임을 다 했다며 당당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육아가 아닐까 싶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Dave Clubb

+) 표지사진처럼 세상 편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다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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