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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Apr 21. 2024

모유수유도 산모님 뜻대로

0개월 25일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2주째 받고 있다. 이 서비스를 쓰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첫 날이었다. 산후도우미의 정규 근무시간은 9시부터인데, 8시에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1시간 동안은 내가 아이를 맡아야 했다. 아이가 생각보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기에 기저귀라도 확인해볼까 하고 머리를 들어주었는데, 아뿔싸 목 뒷덜미부터 역류방지쿠션 커버까지가 흥건했다. 아마 밤새 분유를 좀 게워냈는데 그걸 모르고 내버려둔 모양이었다. 

옷을 바꿔줘야지, 하고 기저귀갈이대 위에 아이를 올렸더니, 기저귀도 소변으로 젖어 있었다. 그제서야 아이는 잠에서 깨서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뭐부터 해야 하지?’ 하고 당황했다. 새 옷도 가져와야 하고, 아이를 물로 대강이나마 씻겨줘야 할 것 같은데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그 때 산후도우미 선생님께서 오셨다. 8시 30분이었으니 30분 정도 일찍 오셨다. 들어오시자마자 귀에는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셨을 테고, “안녕하세요~” 이후로는 “절대 아이를 기저귀 갈이대처럼 높은 곳에 두고 자리를 뜨지 마세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리고는 바로 화장실로 아이를 데려가서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얼러 주셨다. 모든 일이 착착착 능숙하게 이어졌다. 

집에 혼자 남겨져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나에게 관리사님은 정말 구세주 같았다. 산후조리원에서 하루 절반은 모자동실을 하면서 지냈으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산후조리원 2주 쓸 돈으로 산후도우미에 몰빵을 했어야 했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랬다면 ‘집에 가서 아이를 어떻게 돌보지?’, ‘신생아실에 떼어 놓은 내 아이,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걱정과 미안함으로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쨌든 산후도우미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이에게 그런 능숙한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낮에는 산후도우미, 밤에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은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에 주로 아이를 케어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대체로 남편이 있을 때 똥기저귀를 만들어서 남편은 아이 엉덩이를 여러 번 씻겨주었다. 

집안일은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나는 수유할 때마다 아이에게 모유를 주려고 소파에 앉았다. 손을 씻고 수유쿠션과 손수건, 쮸쮸베이비(젖병 꼭지처럼 생긴 보조도구)를 착착 챙겨왔다. 등 뒤에는 망고 모양의 쿠션을 깔고, 아이 얼굴이 올 자리에도 손수건을 하나 깔아주었다. 

하지만 모유 수유는 정말 어려웠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아기새처럼 입을 쩍 벌려야 하는데, 산후조리원에서 2주 동안 젖병을 물고 지냈으니 그 타고난 본능이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대체로 쮸쮸베이비를 썼고, 종종 젖을 물리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아이가 얕게 물어서 유두가 아팠다. 입을 크게 벌려주지 않으면 깊게 물 수가 없어서 아이가 잇몸으로 내 유두를 잘근잘근 씹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젖을 물리는 성공률이 점점 올라가고 있어’라며, (내 상태가 좋을 때는)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유 직접 수유만으로는 아이가 먹는 양이 성장에 필요한 양보다 턱없이 부족한지, 양쪽 가슴을 15분씩 물리고 나서도 아이는 입을 쩝쩝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늘 모유수유 30분 이후에는 분유를 70ml씩 보충해주었다. 


그럼 완전모유수유로 가려면 뭘 해야 할까? 

찾아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지금처럼 30분씩 모유수유를 하되, 하루 10번 이상 해야 한다 (지금은 6회 수유중이다). 모유수유 후에는 보충수유 를 해주고, 보충수유도 젖병 대신 컵이나 숟가락 등을 사용해야 유두혼동을 방지할 수 있다. 수유 후 30분 이내로 유축을 해야 하는데, 이 때도 양쪽 가슴을 15분씩 총 30분을 들여서 유축해야 한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는 하루하루를 갈아넣어야 했다. 직접수유 30분, 보충수유 10분, 트림 10~30분, 유축 30분, 여기에 앞뒤로 준비하고 정리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1.5시간이 되었다. 이걸 하루에 10회 하라니 15시간이 필요하고, 24-15시간=9시간, 9시간/10회 =0.9시간, 그러니까 열 번의 0.9시간씩을 알차게 써서 쪽잠도 자고 우는 아이도 얼러줘야 한다. 

그나마 지금은 낮에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써서 면제 받고 있지만, 나중에는 그 여유시간 안에 빨래, 청소, 밥, 기저귀, 목욕, 보충수유에 쓰이는 젖병 세척까지 다 해야 한다. 완전모유수유가 된다면 젖병 설거지가 없으니 좋다지만, 그 전까지(최소 1~2개월)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젖병은 젖병대로 세척해야 했다. “출산 직후 2주 동안 했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당연히 돌이키는 데에 고생하는 법”이라고 하던데, 정말 가혹했다.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종종 젖을 무는 데에 성공시켰다고 해서 희망적으로 생각할 일이 맞았을까. 깊은 젖물리기에 성공한다고 해도 젖양을 늘리는 노력도 기울여야 하고……. 성공할 듯 말 듯 하면서 매일 실패를 겪고, 그게 언제 끝날 지 알 수도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우울할 때 하나씩 꺼내 먹었던 초콜릿 상자에는 벌써 초콜릿이 세 알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혼합수유에서 완전모유수유로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볼수록, 엉뚱하게 ‘분만 후 48시간 내에 첫 수유를 하고, 그 후 2주 내내 젖병 없이 직접수유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이가 태어난 지 3주가 지났고, 그런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 모든 사단은 산전에 충분히 육아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네 불찰’이라는 자책만 가중시켰다. 

아이 건강을 위해서는 모유가 좋다, 정 여의치 않으면 완분보다는 혼합이라도 해라……. 소아과 정보들을 찾으면 그런 얘기들만 들려왔다. 여기서 내가 분유를 선택하면,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아이의 건강을 희생시키는 나쁘고 무책임하고 자격 없는 엄마가 되는 것처럼 들렸다. ‘네 아이는 앞으로 너 때문에 병원을 더 자주 들락거리고, 배탈이 나고, 입원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저주를 듣는 기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 때문에’, 엄마라는 사람이 고작 1~2개월 고생을 안 하겠다고 포기해버린 바람에.  

어느새 나도 그런 관점에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잠도 모자르고, 매번 오래 앉아서 수유하고 있자니 회음부는 여전히 욱씬거리고 (대체 언제 완치되는 걸까?), 밤에 아이가 용쓰면서 소리를 지르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신경이 곤두섰다.

모든 일이 내 탓 같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럴 것 같고, 밖에 나가는 일도 없고, 밤낮의 구분도 없는, 그런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망치면서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얼마 전에, 50년대생 여성들을 인터뷰한 책을 읽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업고 집 밖을 나섰다가 갈 데가 없어서 돌아왔다”고 했었다. 힘든 와중에 아이를 데려가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의아했는데, 막상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는 이성이고 뭐고를 훌쩍 뛰어넘어서 어쨌든 떼어놓을 수가 없는 존재였다. 


맘카페에도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모유수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원인으로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중 어떤 댓글에서는 ‘베란다 창살이 감옥 쇠창살로 보이는 순간 위험한 거예요, 그 전에 어서 상담 받고 치료 받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맘카페에 고민을 하소연했다. 많은 댓글들이 서로의 수유 경험을 이야기했다. 모유수유를 하다가 점차적으로 분유수유로 갈아탄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도 얘기했지만, ‘육아는 어려워요’라는 사람들은 많아도 ‘모유수유는 어려워요’라고 하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모든 산모들은 모유수유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다. 심지어 조리원에서부터 완분으로 결심한 지인조차도 단유할 때 아이에게 미안해서 울었다고 했다. 

하소연에 달린 댓글들 중 하나는 ‘분유 먹이면 엄마가 좀 살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럴까……. 경험에 근거한 얘기니 맞기는 할텐데, 한편으로는 분유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혐오(진짜 그렇게 느껴졌다)하는 소아과 의사들의 말이 떠올라서 머뭇거려졌다. 


주말이 되어서 남편과 함께 아이를 보고 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밥을 주고, 우리가 밥을 먹고, 눈을 좀 붙이고, 샤워를 하고, 또 밥을 주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후 1시였다. 어젯밤과 같은 일을 했고, 오후에도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이 날은 내 생일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이 육아에 깔아뭉개진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자기가 아이를 볼 테니 나는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얘기해 주었다. 자신은 매일 회사를 출퇴근하지만 나는 집에만 있으니까. 고마운 얘기지만, 그러면 다음 수유텀에 아이에게 모유를 물리지 못하게 되었다. 매일 10회 이상, 적어도 7~8회는 직접 수유로 젖을 물려야 한다는데…….

하지만 다행히 오늘은 생일이라는 핑계가 있었다. 사치 부리러 간다는 것도 아니고, 스타벅스 가서 달달한 디카페인 라떼를 마시겠다는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모유 한 번 안 준다고 해서 폭삭 도루묵이 되어버릴 것이었다면, 모유 두 번 더 주면 바로 성공할 정도로 민감도가 높았겠지.


카페를 가는 길은 날씨가 무척 포근해져 있었다.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롱패딩을 입었는데, 병원-조리원-집을 전전하며 칩거 생활로 한 달을 보냈더니 이제 최고 기온이 18도에 달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고,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나의 아기도 나중에 크면 저렇게 같이 데리고 다닐 수도 있겠지, 지금은 신생아지만 조만간 금세 커서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다가가서 ‘모유 먹고 크셨나요, 아니면 분유 먹고 크셨나요?’ 하고 물어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진짜로 물어본다면 다들 ‘지금 무슨 질문을……?’ 하는 표정을 지을 게 분명했다. 아무도 자기가 모유를 먹고 컸는지 어쨌는지 신경 안 쓰고 살고 있겠지? 

감기에 걸리면 ‘비타민 챙겨 먹고 마스크 잘 써야겠다’라고 생각하지, ‘나는 생후 6개월 이상 모유를 먹지 못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다’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대상은 사실 그런 것이었다.


스타벅스에 왔더니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의 주말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색깔의 모자와 헤드폰, 노트북, 공부할 거리 등을 가지고 각자 자리에 앉아서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 때 1인 기업이라든지 스타트업, 노마드 워커 같은 것을 동경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동경은 단지 과거의 기억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지금의 나는 원하지 않는 건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니었다. 나는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를 하고 있을 뿐, 여전히 요가를 좋아하고 어학과 기술을 배우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신생아를 키우느라 잠시 파묻혀 버렸지만 ‘나’는 아직 나였다.


밖에 나왔더니 조금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모유수유가 어려워진 게 정말 전적으로 내 탓일까? 여기서 분유를 주기로 선택을 하면 단유를 하고 젖이 말라서 돌이킬 수 없게 될 텐데,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저찌 혼합수유라도 해서 아이 건강을 최선을 다해 챙겨줘야 진짜 엄마인데, 나는 자격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걸까?

머릿속에 이런저런 의문들이 맴돌다가 문득, 나는 모든 일의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있는데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너무 가혹할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 진학률이나 소득 수준마저도 개인의 능력과 노력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데, 모유보다 분유 위주로 돌아가는 병원과 산후조리원 시스템을 겪은 나도 그런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피해자였다. 

게다가 자연분만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산도가 너무 찢어지고 회음부가 부어서 소변줄도 꽂고 밥도 서서 먹었다. 잠깐 앉아 있는 것도 힘든데, 출산 후 2주 동안 아기가 찾을 때마다(=거의 1시간마다) 앉아서 수유쿠션을 껴안고 30분 동안 아이를 깨워가며 모유를 수유할 수는 없었다. 출산 전에 모유수유에 대해서 알아두었더라도 24시간 모자동실을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또 속상해 했겠지. 


모유든 분유든 그런 것을 떠나서, 출산 후 지금까지를 돌이켜봐서 가장 후회되는 점은 ‘좀 더 행복하게 지내도 되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잘못될까봐 늘 불안해 하느라 순간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젖병을 물릴 때는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모유수유를 할 때는 ‘이것도 지금이니까 해 볼 수 있는 일이지’라고 생각하고, 그 밖의 시간에는 그저 지금의 신생아 시기도 금방 지나가겠구나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추억을 남기면 되는 일이었다. 

지난 일을 후회하고 현재를 불행하게 여기고 미래를 암담하게 그리기에는 즐거울 수 있는 요소가 참 많았다. 눕눕하면서 임신 기간을 보낼 때도 침울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지금을 즐기자!’라며 게임이든 독서든 낮잠이든 최대한 즐기면서 지냈는데,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지금이라면 행복할 방법을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집에 가면 다시 남편과 육아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야겠다.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 저렇게 키우겠다는데, 땡전 한 푼 도와주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책임을 운운할까. 나 대신 유두가 헐어줄 것도 아니고, 수면부족에 시달리거나 설거지 한 그릇 해 줄 것도 아니면서. 

인생이 전반적으로 다 그렇듯이, 육아도 어느 정도 ‘마이 페이스’가 필요한가 싶다.

 * 사진출처: Unsplash의 Mother of Wi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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