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ghai 3/4 -2
자유여행은 뜻하지 않은게 묘미다.
가이드북이나 지도에 나온대로 찾지 못해서 실망할 때도 있고,
헤매다가 나처럼 반시간을 걸어다니기도 하지만,
오히려 뜻하지 않은 음식을 먹게 되거나
뜻하지 않게 발견한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를 찾게 되었을 때에
얻는 즐거움도 있다.
1. 내가 마라탕을 먹게 된 이유
아직까지도 내가 먹은게 마라탕인지 뭔지 모르겠다.
매워서 코를 엄청 찔찔 짰다.
사실 원래는 신천지를 구경한 다음에, 대세계 역으로 돌아와서 "가고탕포"에서 소룡포를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상해는 상전벽해가 심한 곳이라 "가고탕포"는 다른 데로 이전했다고 표딱지가 붙어 있었다.
표딱지에 쓰인 지도를 아무리 읽으려고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랑 너무 달라서 도저히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타이캉루 예술인 단지 근처에 있다는 "심플리 타이"를 먹으러 갔다.
다푸치아오(dapuqiao) 역에 내리고 보니, 엄청나게 큰 쇼핑몰이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 식당가 중에 반드시 심플리 타이가 잇으리라.
그런데 없었다... 못찾은건 아니겠지. 몇 번을 둘러봤는데.
그래서 마구 돌아다니다가, 뭔가 중국식 쌀국수같은 걸 하는 집에 들어갔다.
체인같기도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도 깔끔해 보이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앉아서 아래 메뉴판 중에 "마라" 어쩌고 하는게 쓰인 걸 주문했다.
불 표시가 있는걸 일부러 피해서 주문했는데, 나온 그릇을 보니 시뻘건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기름이 둥둥 떠서 해장국 같은 것이 (산초가루 같은 것도 넣던데) 분명 매워 보였다.
"마라"에서 "라"를 읽을 줄만 알았지 뜻을 생각하지 않은 내가 멍청이지 ^_^
선불을 한 다음에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에 부글부글 끓는 돌솥과 여러가지 접시가 나왔다.
뭔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저 생고기는 끓을 때 반드시 부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이 열기가 식기 전에 어서...!
주문을 받아주던 종업원 언니가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와서 반찬을 일일이 다 부어줬다.
이거 원래 다 부어서 먹는거구나.
씨예 씨예 ^_^
맵고 짜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끝맛이 약간 시큼했던 것도 같다.
도대체 어떻게 먹는 건지는 몰라도, 저 흰 국수를 한꺼번에 다 넣었다가는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입 크기만큼씩 집어서 담갔다가 먹었다.
한꺼번에 넣었다가는 큰일날 뻔 했다.
매웠던 게 생각나서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그래도 맛있어서 거의 다 먹어치웠다.
닭고기랑 샤브샤브 고기가 맛있었다.
2. 속을 달래주는 생과일 주스
가이드북에서는 "매일신선 과일바"라는 데에서 생과일주스를 마시라고 추천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지나칠 때마다 배가 불러서 안 먹었다.
매운 마라탕(?)을 먹고 났더니 생과일 주스가 굉장히 간절해져서, 쇼핑몰 안을 뒤졌다.
뒤지다가 예전에 대만 갔을 때 유명하다고 해서 사먹었던 지파이 집이 보여서 찍었다.
이 쇼핑몰에는 매일신선 과일바는 없고,
"갓 짜낸 생과일 주스"
가게가 있었다.
뭘 먹지 하다가, 망고에 배를 갈아준다는 (mangguo jia li) 주스를 시켰다.
번호가 찍힌 영수증을 줬다.
내 번호를 불렀을 때 이걸 주면서 주스를 받아오면 된다.
쿠폰도장은 기념으로 받았다.
맛있었다. ^_^
메뉴판에 가려서 안 보이지만, 여기 모토가 "물 안 넣고, 얼음 안 넣고, 설탕 안 넣는" 거라고 쓰여 있었다.
과연 지나치게 달거나 차갑지는 않았지만, 밍밍하지 않게 진했다.
3. 타이캉루 예술인 단지 (田子坊)
이름은 예술인 단지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오늘날의 인사동 중심가랑 비슷한 상황이다.
예쁘게 되어 있지만 사실은 간식과 기념품 가게들!
그러나 많이 예뻐서 좋았다.
옛날 가옥을 그대로 활용해서 조성한 곳이라고 들었다.
여기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상해에는 한국 음식이 널려 있다.
떡볶이 집, 분식집, 게다가 여기서는 지팡이 아이스크림과 닭강정까지.
협소한 골목에 사람이 많아서 북적거리는 지역이지만, 그래도 꽤 분위기 있고 여유로운 곳이 많았다.
나중에 혼자 오지 않게 되면, 여기에서 맥주 한 잔 해도 좋겠다.
자유여행은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돌아다니다가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를 발견했다.
사실 그림엽서와 수첩을 주로 파는 곳이었는데, 나는 기념품으로 엽서를 잘 사니까.
대만에 이어 이번에도 사서 장롱 벽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가게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분위기 있는 상하이 사진과 수채화가 그려진 엽서가 많았다.
작은 것 한 장에 3 위안.
4. 비엔나 카페에서 아큐정전 읽기
여행 오기 전에 가이드북을 읽다 보면, "이건 꼭 하고 싶다" 하는 리스트가 생긴다.
이번에는 그 중 하나가 비엔나 카페에서 살구쨈 케이크를 먹으며 책 읽기였다.
타이캉루 예술인 단지에서 걸어서 5~10분이면 닿았다.
사실 더 짧은 거리일 수도 있는데, 요즘 하도 걷다 보니 발이 터질 것 같이 아파서 더 길게 느껴졌을 가능성도 있다.
가이드북에서 "특히 이 집의 살구쨈 케이크 Sacher Cake"가 맛있다고 해서, Sacher cake이랑 Espresso 하나씩을 주문했다.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웬 초코케이크가 나와 있었다.
종업원에게 "원래 Sacher 케이크가 초코케이크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해서... "아 그렇구나 ^^ " 하고 돌아왔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원래 Sacher 케이크는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초코 케이크라고 한다.
자허 케이크.
이렇게 크림을 옆에 주고.
윗부분은 바삭바삭한 것이 마카롱같이 맛있었다.
?
생각해보니 이거 예전에 교환학생 갔을 때 스위스 친구네에 놀러가서, 친구들이랑 만들어 먹은 그 케이크같다.
어쨌든 되게 맛있었다.
진한 초코 케이크와 생크림, 그리고 너무 달다 싶으면 마시는 에스프레소 ^_^
혼자서 즐기는 호사 치고는 겁나 비쌌다.
통틀어서 약 65 위안.
카페 분위기가 좋았다.
분위기 상으로는 스마트폰에 있는 전자책으로 "길 위의 철학자"를 읽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배터리가 걱정되고 여기는 또 중국이기 때문에 "아큐정전"을 읽었다.
중간 쯤에 있던 단편 소설을 읽고 나서 너무 무서웠다.
아니 정말로 그런 시절이 있었단 말이야...?
상해와 중국과 중국인들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너무 절박해서, 사람 살점이라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라면, 우리 모두는 식인종의 자손들인 셈이다.
아무튼 카페는 분위기가 편안했다.
손님들도 다양했다.
영어, 중국어, 모르는 나라 말 (아마도 오스트리아에서 쓰는 말이겠지?) 을 쓰는 사람들이 왔다.
이 카페는 상해에 정착한 오스트리아 아저씨가 냈다고 한다.
그런데 카페 규모나 분위기에 비해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한적했다.
화장실이 생각보다 깨끗해서 좋았다. ^_^
나중에는 직원들이 스크린을 내려서 영화를 틀었다.
Suzhou River (수쥬) 라는 영화였다.
중국인 감독이 만든 것인데,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내용이 참 복잡했다.
얽히고 설킨 인물관계,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힘든 이야기.
뒤에 있던 손님이 "소리 조금만 줄여주세요~" 했더니 그냥 영화를 껐다.
그리고 나는 네 시 쯤이 되어서 푸동 지역으로 떠났다.
ps.
아아,
류자쭈이가 아니라.. 루, 찌아, 주이...
가이드북 제발 ㅜㅜ